철왕 2화

천하도방.

사람들의 관심이 한 사내에게 쏠렸다.

은전 백 냥으로 오천 냥을 만들어낸 기적의 사내.

임건이었다.

대륙전장 악양지점에서 나온 그는 그 길로 천하도방을 찾았다.

단시간에 돈을 불리는 데에는 도박만 한 게 없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

하지만 임건은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가 오천 냥이라는 거금이었다.

불과 한 시진도 안 되어 얻어낸 쾌거였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사람들을 가르며 한 여인이 나타났다.

“…!”

임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륙전장의 지점에서 본 그 여인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미인이었다.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좀 더 도발적이라 할까.

여인은 가슴이 반쯤 드러난 상의에 한쪽이 길게 트인 치마를 입었다. 왼쪽 가슴 위로 나비 문신이 있었고, 오른쪽 허벅지에도 나비 문신이 있었다.

‘나비가 몇 마리 더 있을 것 같은데? 거기에도 있으려나? 흐흐.’

여인에게서는 남자 여럿 잡을 염기가 흘러나왔다. 입술 옆에 있는 작은 점이 농염을 더했다.

‘아무튼 대박!’

임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시선은 여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데 그 여인이 임건의 맞은편에 털썩 앉는 게 아닌가?

“소저가 본인의 상대요?”
“부족해 보이나요?”

되묻는 목소리가 끈적끈적하다.

임건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고 말았다.

“좀 전까지 나를 상대하던 자가 말하길, 이번에 올 자는 천하도방에서 제일가는 꾼이라던데…… 소저의 어딜 봐서 꾼이란 말이오. 소저는 결코 도박장과 어울리지 않소. 여기라면 모를까.”

임건은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그러자 여인이 눈을 흘겼다.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난 임건이라 하오. 소저의 방명은 어찌되시오?”
“도박사예요.”
“오, 도 소저였구려.”
“…….”

여인이 정색했다.

뜨끔한 임건은 헛기침을 한 뒤 그녀를 마주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도 소저.”
“왜 그러시죠?”
“난 이번 한 판에 내 돈 전부를 걸겠소.”
“오천 냥 전부를요?”

여인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도 꽤나 놀란 기색이었다.

“그렇소. 그리고 소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소.”
“제안이라면?”
“일종의 내기요.”

여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임건이 말을 이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는 거요.”
“소원이요?”
“그렇소.”
“호호. 무슨 속셈이 있으시군요?”

임건은 부정하지 않았다.

“있소.”
“무엇이지요?”
“소저요.”
“…?”

임건이 여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이기면 소저의 오늘밤을 주시오.”
“…!”

여인이 화들짝 놀랐다.

사람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저런 노골적인 말을 하다니.

그럼에도 임건은 당당한 표정이다.

여인은 저도 모르는 사이 얼굴이 붉히고 말았다.

‘뻔뻔한 공자네?’

한데 이상하게도 싫지 않은 기분이다.

그동안 저런 남자가 있었던가.

임건이 말했다.

“내 말이 무례했다는 걸 모르지 않소. 허나 사과는 하지 않을 거요. 왜냐하면 소저는 나를 무례하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니까.”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이 썩은 표정을 지었다. 헛구역질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임건은 일절 개의치 않고 제 말을 계속했다.

“맹세컨대 이런 마음인 적이 없었소. 처음 보는 여인에게 이런 말을 해본 적도 없었지. 그런 만큼 소저가 내 제안을 꼭 받아들여주길 바라오.”
“음, 그 말 정말인가요? 처음 보는 여인에게 이런 말 해본 적 없다는 거.”

임건은 가타부타 대답 않고 여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빛이 마치 명경지수 같다.

이윽고 여인이 대답했다.

“좋아요. 내기를 받아들이겠어요.”
“하하! 그럴 줄 알았소. 오늘밤 나와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임건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주변이 왁자지껄해졌다.

그때 탁자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두 남자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과연 대화만 할까?”
“밤에 할 얘기가 뭐 있겠어?”
“육체의 대화?”
“옳거니!”

그들의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임건과 여인 역시 그들의 말을 들었다. 임건은 흡족한 표정이었다. 반면에 여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귓불을 붉혔다.

임건이 말했다.

“자, 시작합시다. 먼저 던지겠소?”
“그러죠.”

여인이 주사위 두 개를 쥐었다.

승부는 간단했다.

점이 하나부터 여섯 개까지 찍혀 있는 정육면체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높은 수가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여인이 주사위를 던졌다.

탁, 탁탁! 팽그르르!

주사위가 탁자 위에서 돌았다.

사람들이 외쳤다.

“삼!”
“육!”
“구!”

삼(三)과 육(六)이 나왔으니 도합 구(九)다.

구는 꽤 높은 수였다.

“내 차례로군.”

임건이 주사위를 던졌다.

뱅글뱅글 돌던 주사위가 하나씩 멈추자 이번에도 사람들이 외쳤다.

“이!”
“사!”
“육!

육(六)이었다.

‘이런 떠그랄!’

임건은 외수(外手, 속임수)를 쓰지 않은 걸 후회했다.

외수를 썼다면 쌍육이 대수냐.

운에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여인에게 실망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의연하게 대처해야 했다.

“내가 졌소. 소원을 말하시오.”
“무엇이든요?”

임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인이 배시시 웃으며 은전 열 개를 집더니 임건의 앞에 툭 던졌다.

“꺼져주세요.”
“…!”
“그게 제 소원이랍니다. 그 돈으로 술 한 잔 하시고 오늘 일은 잊으세요.”

입을 떡 벌리며 놀라는 임건을 일별하며 여인이 등을 돌렸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던 여인이 잊은 게 있는 듯 임건을 돌아보았다.

“아 참. 이 얘기를 해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
“전 말이에요. 양갓집 규수처럼 정절을 지킨다거나 할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남녀의 일에 대해 무척 개방적이랍니다. 매력적인 사내와 사귀는 걸 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자님은 제 취향이 아니네요.”

그녀의 말이 비수처럼 임건의 가슴에 박혔다.

임건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승부에서 졌으니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임건은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 소저.”
“…?”
“소저야말로 정말 매력적인 여자요. 나는 더 반해버렸지 뭐요. 내가 소저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찌해야겠소?”

여인은 입매에 미소를 물고는 대답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아니. 있을 거요. 내가 반했으니까.”
“호호!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앞으로 세 번.”

임건의 외침에 여인이 의뭉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안에 소저의 마음을 얻겠소.”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어떻게요?”

임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선 돈을 구해야겠지. 오천 냥을 잃었으니 그 두 배인 만 냥을 구해 오겠소. 그리고 다시 소저와 승부를 하는 거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요.”
“제 환심은 무척 비싸답니다.”
“이를 말이오. 허나 백만 냥인들 아깝겠소?”
“호호!”
“후딱 가서 만 냥을 구해 오겠소.”

여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긴 도방이에요. 돈만 있으면 언제든 올 수 있답니다. 하지만 만 냥이 적은 돈이 아니에요. 과연 공자님께서 만 냥을 구해올 수 있을까요?”

여인이 말하자 임건은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구나.’

쿵쿵!

임건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두고 보면 알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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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6 16:09 | 조회 : 2,524 목록
작가의 말
오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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