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끝나지 않은 복수.

쇼요 선생님을 그렇게 무력하게 놓쳐버린 그 날 이후로 몇 년이 흘렀다.

우리는 쇼요가 죽지 않았고, 막부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긴토키는 쇼요를 구하기 위해 양이지사가 되었다.

천인을 배제하고 막부를 견제하고 덤비는 것, 일종의 반항이었다.

솔직히 난 양이지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만 어쩔 수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성장에 관해서다.

나는 여기 온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긴토키는 많이... 아주 많이 자랐다.

얼굴은 아직 앳된 청년이지만, 키 만큼은 내가 알던 30대의 긴토키 만큼이나 키가 커 버렸다.

애초에 서당에 있었을 때부터 성장에 관해서는 포기했다만 과거의 긴토키를 처음 만났을 때 내려다 보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긴토키를 올려다 보며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올려다볼 때마다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들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면, 긴토키는 이따끔 내게 짓궂은 장난을 친다.

"여, 카오루. 매일 보지만, 이거 꽤 심각한 거 아냐? 키가 1cm도 안 자랐다고?"

"시끄럽습니다, 긴상."

"어이! 위험하잖아! 칼은 내려놔! 죽일셈이냐아아!"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오늘도 웃으며 긴토키에게 달려간다.

떠돌이 생활에 양이지사 일까지 하며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는데, 쇼요가 아직 잡혀있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부터 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부쩍 든다.

그래서 서로 뜻을 이어서 과거 동기들과 힘을 합치기로 했다.

나, 긴토키, 타카스기, 카츠라, 그리고 쇼요의 가르침을 받았던 서당의 동기들 전부, 양이지사로 모이기로 했다.

카츠라는 양이지사 동지들, 타카스기는 귀병대. 그리고 서당 동기들은 그들 전부.... 그러고 보니, 우리만 두 몸뚱아리 뿐이다.

"긴상... 우리만 둘뿐입니다. 다른 동기들은 일행을 잔뜩 데리고 올 텐데..."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린 일당백이니까."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어떻게든 넘기면 돼. 그녀석들한테. 우린 주인공처럼 위급할 시, 짜잔! 하고 등장하면 된다니까? 우리가 가는 어디든 가는 곳이 길인 법이니까!"

"긴상, 미쳤죠? 긴상은 오늘만 살죠?"

"뭐, 임마?!"

이번엔 긴토키가 칼을 들고 날 쫓는다.

하지만 금방 칼을 내렸다. 금방 약속 장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이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우리들은 서로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만나야 정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이런 형식으로 만나게 되었다.

쇼요의 가르침을 받은 자라면, 한 지정 장소에, 이 날에 모이자고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르는 이 소식을 긴토키와 나는 패기 넘치게 그곳으로 향했다.

함정이 아니라면 동기를 만나고, 함정이면 속게 될 동기들을 위해 우리가 먼저 나서 때려 부수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그런 긴토키의 말도 안되는, 계획같지도 않은 계획에 반대하려다가 포기했다.

둘이서만 싸우는 것도 지쳤고 이렇게 바리바리 흩어져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함정이라도 우리가 먼저 가서 때려부수는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 문제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긴상... 잘 안 보이지만... 누군가 있죠?"

"그러네."

"그 큰 키로도 안 보입니까?"

"그래.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주위에 기척이 많은데... 매복... 아닙니까, 이거?"

"... 글쎄, 살기는 없다만."

"일부러 감춘걸 수도 있습니다. 탈출할 가능성은?"

"만에 하나 못하더라도 큰 타격 정도는 줄 수 있겠지."

"...... 그건 그렇겠지만... 쇼요 선생님을 구하지 못하고 죽는 건 쓸데 없는 죽음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쇼요 선생님이라면 이런 식의 죽음은 용납 안할텐데 말이죠."

"그럼 죽지마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긴토키는 검을 뽑아 눈앞의 보이는 상대에게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상대 역시 검을 뽑아 가볍게 막았다.

상대는......
타카스기였다.

서로를 알아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거기까지였다. 둘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마지막으로 목에 검을 들이민 건 긴토키.

"이번에는 내 승리다."

긴토키가 그에게 나직히 중얼거렸다.

나는 조용히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긴토키가 그에게 칼을 들이밀 때 잠깐이지만 근처 매복... 된 곳에서 살기가 일었다.

하마터면 덤벼들 뻔 했지만, 타카스기가 먼저 손을 들어 제지 했기에 검 위에 올려 두었던 손을 조용히 내렸다.

아마도 그의 부하들인 듯 싶다.

"보자마자 검부터 들이밀다니...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만. 그래. 나이 생각 좀 하지?"

"거기에 응수한 네놈부터 나이 생각이나 하지 그래."

"둘 다 칼이나 집어 처 넣으시죠?"

내 말에 마주보고 서로 으르렁 대던 두 녀석이 동시에 날 돌아본다.

먼저 입을 연 이는 타카스기였다.

"카오루...... 의 뭐냐, 네 녀석은."

순간 울컥했다.
순식간에 둘에 사이에 끼어들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퍽.

검 손잡이 끝부분으로 밀어내듯 깔끔하게 턱을 쳐 올렸다. 강하진 않고 약간 얼얼할 정도로만.

"카오루 본인입니다만, 투덜이씨."

그러자 뒤로 넘어간 고개를 내리며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금 그 녀석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고 거짓말... 닮긴 닮았군. 동생이라도 되는 건가?"

"카오루... 입니다만, 이렇게 말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검이라도 겨뤄 볼까요? 저한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으니까 말이죠."

"진짜... 카오루냐?"

"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습니다, 투덜이씨."

"언제부터 내 이름이 투덜이가 된 거지? 언제 투덜거렸다고."

"저한테는 처음부터지만 당신은 오늘 처음 듣는거죠? 왜, 처음 인상을 봤을 때부터 투덜거리길래 말입니다. 사무라이의 길을 모르겠다 투덜거리고, 약한 녀석밖에 없다고 투덜거리고, 졌다고 투덜거리고."

뭐, 중2병을 다르게 말하자면 투덜거린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중2병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뭐, 일단 그건 둘째 치고, 소문이 거짓말만은 아니었나봅니다. 이렇게 모인 걸 보면. 그런데 함정이 아니었더라도 이런 모이자는 정보가 적의 귀에 들어갔더라면 큰일 날 뻔 한건 똑같았습니다. 소문은 누가 퍼뜨린거죠?"

"소문의 근원지는 나도 몰라. 단지 이게 함정이라면 부숴야겠다고 마음먹고 여기 왔을뿐."

"그럼 그 카츠라 녀석인가. 근데 그 녀석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정도로 똑똑했다고 하지 않았나?"

"... 그랬지."

나, 긴토키, 타카스기는 머릴 맞대고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의미 없는 고민이라 관뒀다.

일단은 손이 부족하던 차에 만나 다행이지 않은가. 그에 따르는 작은 문제들은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일단 우리들처럼 소문을 듣고 올 이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당분간은 여기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적이 와도 베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매복할 장소도 많이 있고. 하지만 역시 오래 머무르는 것은 문제가 되겠죠..."

"매복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말인데. 저기 널려있는 녀석들은 네녀석의 부하들이냐?"

"귀병대다."

타카스기가 귀병대라고 부른 바람에 홍앵 의뢰 때 총잡이랑 변태가 기억이 났지만, 그 때 총잡이랑 변태가 긴토키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걸 보면 나중에 들어오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넌 어째서 성장을 하지 않은 거지? 병이라도 있는 건가?"

"그건 저한테 묻지 마시고, 제 몸한테 물으시죠?"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그 인간이 아닌 자한테 죽을지도 모르겠군요, 긴상."

"으아아아! 농담! 농담이라니까!"

웃음을 멈추고 칼을 뽑으며 쫓아가자 새파랗게 질려서 도망가는 긴토키였다.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있지만 내 스스로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성장하지 않는 몸은 잊을만 하면,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여! 동지들 먼저 와 있었던 건가. 함정만이 있던 건 아니었나 보군."

"어이, 왔군. 즈라, 네녀석이냐? 소문을 퍼뜨린게."

"카츠라다. 소문을 퍼뜨린 건 내가 아니네. 하지만 그런 건 이제와서 따져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되지 않나? 만났다는 게 중요한거지. 그나저나 이 아이는 누구인가? 어째서 양이지사 사이에 있는겐가?"

"카오루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카츠라. 어째서 저만 알아보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모습도 하나 안 변하고 그대로인데."

"그대로라서 못 알아본 걸세. 어떻게 기억 그대로의 모습인가?"

"모르겠으니 묻지 마십시오."

그가 오자마자 시끄러워진 분위기가 적응이 안된다. 그리고 그 역시 타카스기처럼 아군 양이지사들을 이끌고 왔다.

"너도 바리바리 싸들고 온거냐... 정말 우리들만 빈손이 되잖냐."

"긴토키... 네 녀석 설마설마 했지만 정말 카오루랑 단 둘만 온 거냐!"

"문제 있남?"

"자, 자. 그만 하세. 오랜만에 만난 동지들이 아닌가."

카츠라가 중재에 나섰다. 나는 그런 그들을 잠시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오늘 동시에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셋 다 오늘 오다니..."

"아, 말하지 않아서 몰랐나 본데, 우린 어제부터 와 잠복하고 있었다. 단 한 명만 데리고 온 누군가와는 다르지."

"타카스기... 그거 저한테 하는 욕입니까? 긴토키 한 명만 데리고 와서 불만입니까?"

"아니, 이건 긴..."

"됐습니다. 긴상에게 하는 말이 제게 하는 말이랑 똑같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죠. 많은 숫자가 아닌 저희 둘만으로도 충분히 해쳐왔으니까."

"... 그러지."

나는 깔끔하게 문제를 접어두고 카츠라에게 시선을 향했다.

"카츠라는 뒤에 매복한 아군들 말고도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이 있네요. 저희에게 소개할 정도의 사람입니까?"

"아아, 이 분은 우리만큼 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한 무리의 양이지사들을 이끌어온 분이라네. 지금은 내 휘하로 들어왔지. 다카하시 유이토란 분이네."

"다카하시 유이토입니다, 부족하지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흠칫.

몸이 굳었다. 이 이름 알고 있다. 나는 굳어서 잘 돌아가지 않는 목을 억지로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였다.

내 기억속보다 조금 젊었지만 그였다.
유곽을 불태우고, 가족 모두를 학살한 그.

그러자 무심히 지나쳐버린 긴토키의 말이 기억났다.

긴토키는 그 때 처형한다는 신문을 보며 말했다. 어디서 들은 듯한 이름이라고.

이런 뜻이었나......

"오루.... 카오루!"

카츠라가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든다. 주위를 보니 심각해진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 무슨 일입니까."

"그건 내가 할 말일세! 심각하게 굳어진 얼굴로 살기까지 피웠으면서! 카오루, 자네야말로 무슨 일 있는 건가?"

"저는, 저는... 없습니다. 놔 주십시오. 단지 조금 혼란 스러워서... 아무튼, 제 일입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주변은 뭔가 더 물어볼 분위기였지만, 잊고 있었던 기억이라는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긴토키를 만나기 전 내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알 리가 없었다.
여긴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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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08 00:46 | 조회 : 2,023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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