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나는 배고프고 얼굴이 쓰라린데도 방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밖에서 무슨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우느라 알아챌 새도 없었다.


너무 슬프면 배고플 기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정신이 차려지더라.
이런 내가 너무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정작 뭔가를 먹으면 넘어가지도 않고 오히려 헛구역질만 나올 것 같았다.



문을 열어볼까,
아니야 참자.


선생님은 아직 그림을 그리시려나,
아까 그 소리는 뭐였지?


머릿속이 온통 그에대한 궁금증으로 가득찼지만
저 문 너머로는 차마 갈수가 없었다.


조금 창피한 행동이긴 하지만,
숨소리 하나라도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방 문으로 바짝 다가가서 귀를 살짝 대보았다.

이 얇은 문 하나만 두고 우리는 마치 남처럼 살고 있다.
내 말 한마디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희대의 사랑꾼을 꿈꿨던 것일까, 나는.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문에 기댄채 혼자 읊조렸다.
내 말은 전혀 그에게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나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그 그림에만 집중하느라
나같은 것의 하소연 따위는 지금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닌데, 난 원래 이렇게까지 비뚤어진 생각을 하고있지 않았는데.
한치 의심 없이 그를 사랑했고, 그의 사랑을 받았다.


요즘들어 더욱 다정해진 그 모습에
이것보다 더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다.


"왜그랬어요....."



정말 포기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대답 한 마디면 됐는데.
사랑을 확인하고자 했던 행동들과 말들이 하나하나 내게 되돌아온다.

감히 너를 사랑으로 감싸준 사람에게 이런식으로 말을 해?
감히 네가 나를 의심해.
네가 나의 사랑을.



.....네가 감히 예술의 자리를 넘봐?




헉.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아아, 꿈이었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이었던걸까.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보니 문 앞에 기댄 채 고개를 푹 떨구고 잠들었다.

울다가, 울다 지쳐서 그렇게 푹 잠이 들었나보다.
내 하루는 그게 전부였다.


울다가, 배고파하다가, 목말라하다가, 그리워 하다가, 잠들었다.



비참하기 짝이없다.
물 한 모금도 마실 힘이 없어서 점점 죽어가는 기분인데
왜 저 사람은 나를 데리러 오질 않는걸까.

열 발자국만 걸어서 나를 한번 봐준다면
난 지금 당장 그에게 잘못했다고 발가락부터 몸 전체를 핥아줄 수도 있을텐데.



"........!!"



저벅, 저벅

그의 맨발이 바닥을 걷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까지 가까이 들리는 걸 보니 아마도 이 근처다.
난 지금이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침대로 되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뛰쳐나가서 그를 마주해야 하나 갈등했다.


죄송하지 않지만 죄송해야만 했다.



그 때,
나직하게 그가 나를 불렀다.

"나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갈라질대로 갈라진 그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이와중에도 한마디만으로 그를 걱정하고 있는 내자신이 미웠다.




그가 작게 말했다.




"미안해."






싫어요, 라고 말하려던 내 목구멍이 콱, 틀어막혔다.
눈물때문에.


살면서 그에게, 아니 그냥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봤던가.
나는 차마 그 말을 생을 살아가면서 이제와서야 들었다는 게
너무 슬프고 또 서러웠다.



"흡.....흐윽...."



결국 청승맞게 또 울어버린다.
찌질하다, 주영아.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몸은 말을 듣질 않았다.

당장 그에게 달려가기 전에 정확히 들어야할 말이 있으니까.




"싫...어요."



나의 이 말이 그에겐 얼마나 충격일까.


과연 선생님도 나처럼 내 갈라진 목소리에 나를 걱정할까?
아니면 반항했다는 것에 화부터 낼까?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진다.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내 울음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이다.



내 방문 앞을 떠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 오랜 시간동안 서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그리고 내 의문과는 완벽히 다른 대답.


도저히 그가 내뱉은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한 소리가 나온다.





"제발.... 가지마라. 주영아."









해바라기는 고개를 든 게 아니라 애타게 해를 찾고 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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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3 02:09 | 조회 : 1,180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다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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