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작업실 안의 어둠은 늘 나를 포근하게 만들어주었는데,
오늘은 그것들이 나를 공격할것만 같이 날카로웠다.
"으흑....흑..."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우는 소리가 선생님에게 닿을까.
그가 듣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당최 가늠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나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괜히 그에게 분출시켰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래, 내가 이렇게 이상해졌어.
나때문에 포기할 수 있단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내가 자기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센스가 없는 건지,
진심이 아닌 말은 꺼낼 수도 없는 건지.
내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방을 나가버린 채 계속 작업 중이다.
오늘은 그림을 다 그리지 않았는데도 나를 안았다.
그게 퍽 마음에 걸렸던걸까.
울다가 또 울다가 지쳐버렸다.
떼쓰는 어린 아이들을 그냥 가만히 두면 제 풀에 지쳐서
먼저 사과하러 오는 것처럼,
나도 지금 그가 보고싶었다.
순식간에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사랑을 달라고 떼를 썼던 게 그렇게 잘못이던가.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감히 대들어서 죄송해요.
의심해서 죄송해요.
...나는 의심한 적이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화날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귀엽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내가 그의 예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처럼 보였나보다.
전혀 그런게 아닌데,
그가 그렇게 느꼈다면 나는 당최 할 말이 없다.
"...선생님..."
아무리 작게 속삭여 봤자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는 그가 내 방문에 딱 붙어서 귀기울이고 있지 않는 이상
들리지 않을만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사랑해요..."
사랑해서 미칠 것 같아요.
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미안하다고 수천번 말하고 싶은데,
내 입이 떨어지지가 않아요.
그리고 지금은 별로 사과하고 싶지도 않아요.
당신이... 조금 미워서.
"그냥 한 번 대답해주시지..."
그냥 나 때문에 모든 걸 다 포기할 수 있다고 대답 한 번만 해주시지.
시간조차 가늠되지 않는 그 방안에서 나는 밤을 샜다.
이미 밤을 새서 운 이후로 다시 밤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동안 선생님은 한 번도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나 필요할 때면 나를 봐줬던 사람인데,
이젠 내가 부르는 소리 조차 듣지 못한다.
해바라기는 더이상 해를 찾지 않는다.
태양이 사라졌는데도 고개를 빳빳히 들고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