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오랜만이구나..."
"평생 안볼 수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지?"


일부러 딱딱하게 말했다. 이 여자는 왜 대리인으로 나서겠다고 했을까.
아니, 애초에 이여자가 먼저 나선다고 한 게 맞는 걸까? 선생님이 부탁한 건 아니겠지?


"주영아... 여전히 날 싫어하는구나."
"당연한 소리 하지 마요. 그리고 여기에 유의해야 할 사항들 다 적어놨으니까 읽어 보면 이해할 거야."


일부러 서류를 먼저 만들어갔다. 인터뷰나 대리인으로 관계자들과 접촉을 할 때 대답할 때 유의할 점이 꽤 많았다. 그걸 정리해서 가져다 주었다.
말로 설명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나는 그 시간마저도 그 여자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고 화백님이랑은...."


저 더러운 입에 감히 선생님 이름이 올라간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함부로 오르내리게 될까. 감히.


"깊은 관계가 되었나보구나...."


새삼스럽게 그녀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왜?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자신이 엄마로써 무언가라도 해줄줄 알았나?


"선생님이 아니었어도,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
"......."
"선생님이 안계셨을리가 없지만."


어차피 우리는 만나게 되었을 인연.



"할 말 다했으니 갈게요. 그 안에 스케줄도 다 있으니까 정말 필요한 연락만 해요."
"...그래."
"그리고 선생님 명성에 먹칠하는 짓 하지마."


이정도 말했으면 알아듣겠지. 나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그녀를 두고 나왔다. 햇살이 밝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도 나는 작업실로 가고 싶다.

저 여자의 눈물을 보는 건 싫다. 눈물은 그 대상이 어떻든 마음이 약해지게 만들어버리니까.


가는 길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한시라도 빨리 보고싶다.


"선생님!"
"벌써 얘기 다 끝난거야?"
"네. 선생님 너무 보고싶어서 가는 중이에요. 오늘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없어요? 가는 길에 사갈까요?"
"....기다려."
"네?"


전화기 너머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려. 나갈게."
"...왜요?"
"나도 보고싶으니까. 밖에서 오랜만에 밥이나 먹지."


내 생에 이런 날이 오는 구나. 완전 데이트 같잖아.
금방 준비하고 오시겠다면서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그가 기자회견이나 갤러리 오픈날 같은 공식적인 행사 이외에 차려입고 밖에 나오는 걸 본적이 없었다.

장도 내가보고, 거의 그림그리고 섹스하는 데에만 시간을 쏟아부으니....


"선생님!"


어느 새 면도까지 하고 외출복을 입고 나온 그가 차에서 내렸다. 내리는 그 순간 정말 심장이 떨어지고 입도 벌어졌다.

말끔하게 다려진 검정색 니트가 그의 다부진 몸에 적당히 핏된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누가 화실 안에서의 야수같은 모습으로 보겠어.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다."
"뭐라고?"
"사람들이... 선생님 이렇게 멋있다는 거 몰랐으면 좋겠어요."


그는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라."
"......."
"나는 너 밖에 모른다."


어감이 묘했다.

나만 그를 안다는 뜻도 됐고, 그는 나만 바라본다는 뜻도 됐다.
후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둘 다야."
"네?"
"그런 표정 짓지 말란 소리야. 난 너 밖에 모른다는 것도 맞아."


그는 정말 나를 너무 잘 안다.
어쩌면 그가 나밖에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
그에게 오롯이 꿰뚫어진 존재도 나밖에 없기 때문에.


2
이번 화 신고 2017-11-22 02:25 | 조회 : 1,648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오랜만입니다ㅠㅠ 수능을 두번보고있네요 참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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