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뱀

그는 아주 오래된 존재였습니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그런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싫어했습니다.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조차도 모릅니다. 너무 오래되었으니까요.

때문에 사람들은 그 보다 더 오래된 전설 속의 괴물의 이름을 따,

푸른 뱀

이라고 불렀습니다.




*




붉은 피가 철철 흘러 비닥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아, 이런. 또 실수로 인간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퇴치니 어쩌니 쓸데없는 임무를 맡았다며 미친듯이 쫓아오는게 짜증이 나서 그저 손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인간은 너무 나약했습니다.

그는 잠시 배가 터져 내장이 줄줄 흐르고 있는, 이미 죽어버린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습니다. 가늘었던 눈동자가 평범한 인간으로, 길었던 푸른빛의 머리가 짧고 단정한 검은 머리로, 푸른 한기의 몸이 형체를 갖추어 단단한 성인 남자의 체격으로.

그는 그가 죽인 인간으로 변했습니다. 누가 보았다면 깜짝 놀랄일이지만 그에게는 숨쉬듯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요괴들과 귀신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그가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그가 그만큼 강한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로든지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었건, 부모님이었건, 혹은 연인이었던간에.




*




천천히 남자의 기억을 더듬어 본래 남자가 살았던 곳으로 와봤습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기억에 짜증이 날 만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번듯하게 지어진 집이 보입니다.

들어갈까.

잠시 고민을 하던 중에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왔습니다.

새까만 머리를 조금 기른, 순한 강아지 처럼 피부가 새햐얀 남자였습니다. 눈이 마주치고, 잠시 놀란 듯 하더니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그에게 달려와 폭 안깁니다.


"안다쳤어.? 많이 힘들었지.."


그의 머리가 닿은 가슴이 숨이 콱 막히면서도 간질간질 합니다.


"이제 그냥 여기에 있자, 유반."


아, 이 남자의 이름이 유반이었나봅니다.

그 - 유반은 자신의 품에 안긴 이의 머리를 만져보았습니다. 부드럽고, 향긋한, 아주 기분좋은 느낌. 울망이는 눈으로 저를 올려다 보는 이가 왠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




집은 생각보다 아늑했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퇴마사였던 유반이 모아둔 쓸데없는 부적이라던가 하찮아서 신경조차 쓰지않을 작은 요괴들이 봉인되어있는 것들이 잡다하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유반, 밥먹자."


남자가 그를 불렀습니다. 그는 아주 자연스레 식탁앞으로 가 수저를 사용해 음식을 입에넣고 몇 번 씹다가 삼켰습니다. 애초에 그는 이런 식사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음식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 몇 번 이와같은 행위를 한 적이 있었지만, 그다지 즐거운 기억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자가 그의 눈치를 봅니다. 뭔가 불안한건지, 아니면 혹시 자신이 유반이 아니란걸 눈치챈걸까요?


"... 왜?"

"어? 아, 아니.. 벼, 별로 맛없어...?"


조심스레 물어보는게 꼭 작은 동물 같았습니다. 그는 잠시 제 앞에 놓여있는 음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식사를 즐겨하지는 않지만 인간들에게는 나름대로 진수성찬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아니."


살짝, 무뚝뚝한 대답에 그가 고개를 푹 숙입니다.

뭐가 잘못된건지 모르겠습니다.




*




늦은 밤. 인간들은 이제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보통 인간들이 침대를 이용해 잠든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집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저 남자와 같이 침대를 쓴다는것일까요.

그는,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유반과 저 남자는 어떤 관계일까? 가장 큰 가능성은 둘이 형제라던가, 혹은 연인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오래전 부터 인간들은 동성간의 연애를 끔찍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둘은 형제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사이가 좋은.

다 씻었는지 물소리가 멈추고 그가 나왔습니다. 가벼운 차림의 그는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습니다. 살짝 붉어진 귀로 그가 주춤주춤 다가오더니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는 가슴팍에 머리를 몇번이나 비비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봅니다.

창문 너머로 비추는 은색 달빛에 그의 눈이 영롱하게 빛납니다. 꼭 빠져들어갈것만 같이.

그 - 유반은 잠시 남자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자신의 목에 팔을 매달아 저의 상체를 잡아당기자 그에 응해 상체를 숙여 그와 진하게 입을 맞췄습니다.

그러고보니 인간들 중에서 남들 몰래 동성간의 연애를 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이 남자들도 그런 관계였나봅니다.

유반은 남자를 가볍게 안아 침대로 데려갑니다. 그리고는 사뿐하게 그를 내려 그의 위에 올라탔습니다. 얇은 가운을 벗기자 새하얗고 뽀얀 속살이 보였습니다. 납작한 그곳에 야트막하게 솟아있는 작은 분홍빛 돌기들. 히란은 혀를 내밀어 그곳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하응..."


곧바로 남자의 신호가 옵니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자 부끄러운 듯 새빨간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보입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즐길거리를 찾아낸것 같습니다.




*




"하.. 하윽, 아.. 아으응.. 조, 좋아아.."


허리를 꾹 누르면 자지러 지고, 살짝 빼도 자지러지고. 유반은 웃음이 났습니다. 어쩐지 인간들이 왜 교미를 즐기는지 조금 이해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 아, 유반.. 유반..."


애처롭게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마음에 듭니다. 유반도 그의 이름을 불러볼까,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유반은 그의 이름을 몰랐으니까요.

허리짓을 멈추고, 유반은 그에게 물어봅니다.


"너, 이름이 뭐야?"

"..... 어?"


쾌감에 젖어있던 눈동자가 급격하게 차가워집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가려는 그의 양 어깨를 콱 잡고 다시 한 번 물어봅니다.


"이름."

"... 유, 유온..."


유온이 덜덜 떨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유반은 싱긋 웃으며 그를 다시 안아들고 허리를 깊숙히 밀어넣었습니다.


"아, 아으응..."


어쩐지, 유온이 도망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진 유반이 잠시 그의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댑니다.

여기서 이렇게, 조금만 움직이면 유온은 목이 잘려 죽어버립니다. 그는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도망가는게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짜증이 나니까 그냥 죽여버릴까. - 하고 말이죠.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기분이 나빠서, 혹은 그냥 한 번 죽이고 싶어서 라는 이유로 많은 인간들을 죽여왔습니다.


"흐음..."


뭔가를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유온이 덜덜 떨고 있습니다. 유반이 빤히 유온의 얼굴은 내려다보았습니다.

여기서 유온을 죽이면, 저 얼굴은 다시 보지 못합니다. 다른 인간들의 시체가 그랬던 것처럼 축 늘어져 새하얗게 식어가버리고 말겠죠.

유반은 유온의 목에 있던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그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렸습니다. 겁먹은 눈동자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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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31 00:02 | 조회 : 3,258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뭐지... 갑자기 폭스툰이 달라져서 엄청 놀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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