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2)

호텔을 나온 정하는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터덜 터덜 거리며 집으로 도착한 정하는 곧바로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눈물이 흘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막 흘렀으니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정하는 매니저가 바빠서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혼자 장을 보러 밖으로 나갔다.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정하는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검은 마스크를 눈만 보이게 쓴채로 근처의 마트로 나갔다.

마트가 조금 웅성거렸다.

평소엔 이정도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운거지?

저도 모르게 향한 시선의 끝에는 월이 있었다.

그 날과는 다르게, 그는 조금 홀가분하고 편해보이는 것 같았다.

월의 옆에는 정하도 알고 있는 월의 오래된 친구가 보였다.

가끔 투닥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정하는 월과 시선이 마주칠 것 같자 곧바로 몸을 숨겼다.


제발 날 찾아오지마.


그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돌았다.

마주치면 안된다.

정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기서 뭐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는 성현이 서 있었다.

정하와 같은 소속사에 종종 정하를 챙겨주던 성현이었다.

그도 나름대로 숨긴다고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그렇게 큰 키가 쉽게 숨겨질 리가 없었다.

거기다가 모자 하나만 달랑 쓰고 변장이라니.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월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정하는 성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정하는 그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정하의 집에 도착했다.


? 집에는 왜..?

아, 그, 차라도 한잔.. 먹고갈래?

?? 그래, 뭐..


정하는 엉겹결에 성현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성현은 차를 한잔 마시고는 그간의 근황을 물었다.

월, 하주.

그 둘과의 일을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성현은 여전히 틱틱 거리면서도 이것저것 챙겨주는 성격을 버리진 못한듯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성현은 이제 나가보아야 겠다며 정하의 집을 나섰다.

성현이 집을 나서고 정확히 5분이 지나서 하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 여보세요..

이젠 월이 안되니까 성현일 끌어당기는구나.

.. 너 말이 너무 심하잖..!!

시끄럽고, 지금 너네집으로 갈거야. 준비해 놔.


전화가 끊겼다.

정하는 당황스러웠다.

지금 우리집 앞으로 온다고?

준비를 하라고?

뭘 준비하라는 건지 모르겠고, 왜 집에 찾아온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일 알 수 없는건 어떻게 성현이 정하의 집에 있는걸 알았는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고 하주가 들어왔다.

하주의 행위는 저번의 호텔에서와 차이가 없었다.

그저 좀 더 거칠어 졌을 뿐이었다.

최악의 컨디션이던 정하는 하주의 움직임을 차마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하는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

몸을 약간 움직이자 허리에서 통증이 타고 올라왔고, 다리 사이에선 무언가가 몸속에서 기어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소름돋는 느낌에 정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마침 거실엔 하주가 앉아있었다.

하지만 정하는 그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붉게 부어오를 정도로 온몸을 박박 문지르고 나서야 화장실을 나와 하주를 보게되었다.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는 하주가 참 원망스럽기도, 참 더럽기도 했다.


이제 일어난거야?

... 뭐?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2시였다.

그렇게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나...

지금도 그닥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정하는 얼른 매니저에게 연락해 당분간 일은 하지 못할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정하의 갈라진 목소리를 들은 매니저는 몸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끊었다.

그러자 거실에 있던 하주가 웃는 얼굴로 정하에게 말하였다.


잘했어. 아니면 동영상 퍼뜨릴려고 했는데, 운이 좋네?

..... 내가 뭐 잘못했어?

응?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잖아... 넌, 넌 원래 되게, 착한 애, 였는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자 하주가 킥- 하고 비웃었다.


난 원래 이런새끼야. 왜, 더러워?


정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주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정하에게 다가와 그를 품에 안았다.


떨지말고.

......

알지? 동영상 나한테 있는거. 그거 퍼뜨리면 너도 그러겠지만, 월은 엄청나게 욕먹겠지?

어..?


하주가 정하를 품에서 놓고는 굉장히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이 동영상을 보면 네가 싫은데 꼭 월이 널 강간하는 것 같단 말이지.

......

후배의 천재성을 질투하던 선배가 후배를 연예계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성폭행을 했다! 이정도면 신문 1면을 장식할 내용이지?

... 안돼, 하지마..


이제야 겨우 행복해진것 같은 표정을 짓는 월에게 그런 일을 당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하주는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내 말 잘들어. 내가 오라고 하면 곧장 튀어나오라고. 알겠어?

...그래..


정하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걸 봤는지 아닌지 모르는 하주는 정하의 머리를 몇번 쓰다듬어 주더니 일이 있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그런 하주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그날 밤이었다.
















+)


사실 제가 글 올리고 나서 거의 다시 안찾아 오는데 오늘 존잘님들 글을 아침부터 미친듯이 읽고 다니다가 봤습니다.

2등 감사드려요!!

10
이번 화 신고 2017-08-02 11:04 | 조회 : 3,506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열심히 하겠습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