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옥地獄(1)

“아아아아악!”


큰 비명을 지르면서 운호는 깨어났다. 자신은 무강표국의 일원으로서 물품들을 배송 중이었다. 그러한데 갑작스럽게 침입자가 발생했고, 그 1명으로 인해 모든 표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아무리 무강표국이 표국중에서도 거의 최하위권이라고 해도 너무나도 쉽게 죽임을 당했다. 침입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벌레를 다루듯 표사들을 죽였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사내는 그저 걸어가고 있었으나, 그를 저지하려 다가간 다른 사람들은 마치 묵이 썰리듯 죽었다. 아니, ‘갈렸다’가 옳은 표현일 듯하다. 검은색 복장의 사내는 결국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까지 배었다. 하지만 운호는 의아해했다. 자신은 이렇게 살아있지 아니한가? 그 순간 앞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이름을 대거라.”


앞에는 거대한 인간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인간은 눈을 부릅뜨고는 운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운호는 사지가 떨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곧장 이름을 말하였다.


“태,태운호라고 합니다.”
“흠, 그래......네 이놈!”


운호는 앉아있는 사람의 입에서 날아오는 엄청난 풍압에 몸을 휘청거렸다.


“네 놈은 도대체 무엇을 하였기에......아니다. 물어볼 것도 없구나. 대답을 들었다가는 내 귀가 더러워질까 두렵도다. 여봐라! 이자를 끌고 가거라!”


운호는 도대체 무엇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곧이어 자신의 두 배는 거뜬히 되어 보이는 병사들이 와서 자신을 끌고 갔다. 병사들이 자신을 끌고가는 도중, 자신은 저 멀리 세워져 있는 문이 보였다. 문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상한 점은 들어오는 사람들의 줄이 문 뒤로는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위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그는 어안이 벙벙해져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적혀있던 것은 다름 아닌 ‘명부(冥府)’, 지옥이었다. 그렇다면 저기 앉아있는 거대한 인간은 1관문의 수장, 진광왕(秦廣王)이라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살아있을적에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 어떻게 자신이 관문에서 불통(不通)을 받았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도 운호는 점점 도산지옥(刀山地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악귀나찰(惡鬼羅刹)들이 득실대고 사출산(死出山)이 있는 곳, 도산지옥.


“이......이것은!”


도산지옥의 입구 앞에서 그제야 입을 연 운호가 본 것은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였다.


“잠깐!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어!”


운호는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하지만 그 두 명의 병사는 자신을 매섭게 밀어냈다. 진광왕을 쳐다보았으나 그는 이미 다른 혼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제발!”


하지만 그가 버티기에는 무리였는지, 운호는 결국 도산지옥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
“아아......”


운호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옥이라니. 악한 사람들만 모인다던 그 지옥이라니. 자신은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옥에 온 것만으로도 운호는 절망에 삼켜졌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만 있을 수는 없는 일. 결국 운호는 움직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걸었고, 걸었으며, 계속 걸었다.


“허억......얼마나 긴 거야 이거?”


운호는 밤이 되도록 걸었으나 끝은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는 구름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배고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게 된 것이 조금은 무서웠고 낯설기도 했으나 운호는 오히려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인간이었다면 지금쯤 배가 고파서 죽을 맛이었을 지도, 아니, 시간이 지나면 죽었을 것이다.


“후......그나저나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군.”


하지만 구름이 걷히고 들어난 거대한 산의 모습에 운호는 기겁했다.


“저,저것은!”


사출산에 도착한 것이다. 바위 모서리들이 하나같이 검처럼 날카로웠다. 만약에 이 바위를 잘못 밟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신의 발과 평생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가 있는 곳도 아니였다. 이곳을 넘어서면 건너편에는 2번째 관문에서 초강왕(初江王), 화탕지옥(火湯地獄)의 지배자가 있는 곳이다. 그 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모든 것이 풀릴 터. 결국 운호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험난한 산길과 날카로운 돌들에 의해 발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잘리거나 심각한 부상은 자신이 조심했기 때문에 없었다고 해도 온몸이 돌 때문에 배인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운호는 계속 산을 올라갔다. 지금까지 왔는데 포기할레야 할 수가 없다.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참는다. 그래야지만 이 고난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운호의 생각이었다.





운호는 순간적으로 멈췄다. 옆 풀숲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의 눈동자를 보자마자 운호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눈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마치 온몸에 가시를 찔리는 듯했다. 검은색의 인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으며, 목 위에 달린 두 개의 머리가 이형의 존재임을 과시하는 듯했다. 운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찰귀!’


나찰은 갑자기 달려들었다. 나찰의 날카로운 손은 언제든 운호의 배를 뚫고 내장을 헤집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날카로움에 정신이 순간적으로 깬 운호는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큭!”


완전히 피하지 못했기 때문에 운호의 배에는 얕게 상처가 났다. 나찰은 손에 묻은 피를 핥으면서 자신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운호는 느꼈다. 지금 나찰은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재미로 개미를 괴롭히는 것처럼 나찰 또한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하지만 운호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이대로 여기서 끝난다면 다시 인간이 되지도, 억울함을 풀지도 못한다. 운호는 조용히 땅위에 모래를 손에 쥐었다.


“여기서 끝날까보냐!”


운호는 나찰을 향하여 달려갔다. 나찰은 재밌다는 듯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도 앞으로 달려갔다. 일정 거리가 된 순간! 운호는 자신의 손에 움켜쥐고 있던 모래를 그의 눈에 뿌렸다. 나찰은 우습다는 듯 모래를 피하고는 빙그르르 돌아 손을 가슴에 찌르려고 했다.


팍!


운호는 왼손에 몰래 숨겨두고 있던 다른 모래를 들고 나찰의 눈에 뿌렸다. 그러고는 나찰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그 다음은 머리, 그 다음은 다리를 찼으며, 팔을 꺾었다. 운호가 압도적으로 유리해보였다. 운호는 생각했다.


‘이길 수가 있다! 할 수 있다!’


나찰은 뒤로 급히 물러났다. 그러고서는 짜증이 난 듯, 운호를 쳐다보았다. 운호는 언제든지 싸울 수 있도록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나찰은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운호는 싸움에서 어쩌면 이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푹!


하지만 일어난 일은 그저, 나찰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살펴보니 자신의 복부에 손이 하나 박혀있었다는 것뿐이다. 처음부터 승산은 없었다. 나찰은 진심으로 그저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었을 뿐. 아무것도 못하는 운호를 두고 나찰은 손을 빼버렸다. 쓰러진 운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나찰은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누구라도......좀.”


운호는 힘들게 말을 이어나갔다. 배고픔은 느끼지 못하지만 이런 종류의 고통은 그대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들은 자는 없었고, 그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들려왔다.


‘살고 싶은가?’
‘뭐?’
‘살고 싶은지를 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이제 저승까지 와서 혼도 사라지게 생겼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살고 싶다!’
‘설령 그것이 네 삶을 망치고 너를 구속한다고 해도?’
‘그렇다!’
‘그렇다면......’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면서 모든 것이 흰색으로 물들었다. 몸이 점점 편안해지고 빛이 허공에서 난무했다. 마치 솜털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나서 운호는 정신을 잃었다.

0
이번 화 신고 2016-12-28 16:27 | 조회 : 1,614 목록
작가의 말
mikeymike

무협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는 하고 많이 읽었지만 제가 직접 쓰니 역시 기분이 다르네요. ㅎㅎ 다만 제가 전하고픈 이야기를 다 전달할 수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게 저에게는 축복이자 희망이니까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