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노예가 되서 죄를 갚아라



이 세계엔 단지 7개의 나라가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리안의 <웨리아>, 그리고 마인의 <가리어드>이다.
태초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설에 따라 황족 중 첫째로 태어나는 여자만이 신력을 부여받아 그 나라를 가호한다. 신력을 가진 자는 그 증거로 눈동자 색이 은빛으로 변질되는데, 신력 발현 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신력의 활용범위는 무궁무진하며, 그녀들은 나라를 수호하며 칭송받는다.


그에 반해, 남자임에도 신력을 이어 받아 태어난 리안은 그 존재가 알려질 적부터 이미 주위에서 많은 차별어린 시선을 받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데리지아는 그것을 숨겼고, 어린 나이부터 리안을 가두기에 급급하며 황실교육을 시킨 것이었다.


원래라면 데리지아의 첫째 딸이 그 힘을 이어받았어야 할 것을,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남자인 리안이 그것을 받아 은빛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심지어는 그 힘 또한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매우 특별하고 거대하여, 두려움까지 얻은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리안이 7살이 되던 해, <그 사건>으로 리안의 신력은 특수제작된 나머지 6개국의 신녀들의 신력을 불어넣은 봉인구로 철저하게 봉인되었다. 그랬기에 리안은, 자신을 지킬 방법으로 순수한 검술을 독학으로 데리지아 몰래 익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릴 적 부터 익혀왔던 검술이었다. 아무리 신력을 못 쓴다 한들 이렇게까지 마인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전쟁이 시작되고, 마인과 리안은 서로 투구를 사이에 둔 채 1대 1 결투를 신청했다. 선방은 리안이 앞섰다. 빠르게 자리를 치고 나간 리안은 그 즉시 몸을 낮추어 빠르게 마인의 배를 공격했다.



그러나 마인은 그것을 가볍게 피한 채, 몇 번 발을 내딛지도 않고 리안의 복부에 장타를 꽂았다. 그 이후론 반격할 새도 없이 눈으로 좆을 수도 없는 빠른 스피드의 공격이 이어졌다. 결코 리안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마인의 실력이 워낙 월등했을 뿐.



투구가 마인의 칼에 벗겨지고, 리안의 이마에 선명한 혈흔이 흘렀다. 전쟁은 너무도 손쉽게 끝나 버렸다. 잔뜩 기가 빠진 채 허탈해하는 군사들과는 달리, 리안만은 이제 곧 마인의 손에 인생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죽으래?"



라며 마인은 칼을 거두곤 다짜고짜 리안의 머리채를 붙잡아 고갤 들어올려 자신과 시선을 맞추게 했다.


"윽-"


"니 망할 어미가 되도 않는 질투로 죽인, 우리 어머니 죗값은 치루어야지."



차갑고 분노에 가득찬, 그러나 그것을 절제하고 있기에 조용한 마인의 푸른 눈에 리안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이제 데리지아는 처형할 거다. 그 여자가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니까 말이지. 다만 넌 그 여자 대신 남아 줘야 겠어."



마인의 말을 들은 리안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예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마인의 어머니를 질투해 예전부터 자객을 가리어드에 계속 보내왔다는 것은 시녀들 입소문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그 죽이는 계획은 성공했으며, 그것 때문에 이 전쟁이 일어났고 자신이 벌인 전쟁에 아들을 내보냈다는 것이다.



"하-...."



어이 없는 듯 허공을 울리는 리안의 한숨이 입가로 내뱉어졌다. 끝까지 제 발목을 잡으시는 군요, 어머니. 제가 갇혀 있던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리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인과 눈을 맞추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어차피 난 당신에게 졌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존대라니. 꼴에 예의라도 지키겠다는 건가."




"왜, 꼬우십니까?"



마인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 긴장 감을 형성하고 있던 주위의 군사들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상황에 그 자리에 멈춰 둘을 바라보았다.


"어떤식으로 죗값을 갚을 줄 알고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건지, 쿡. 뭐, 소원대로 해주지. 내 마음대로 해주겠다. 황족에서 노예로 전락했을 때의 네 표정이 궁금하군."



마인은 붙잡고 있던 리안의 머리카락을 놓았다. 그러자 리안은 힘없이 바닥으로 쳐졌다. 그리곤 제 기사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 한 명을 불렀다.


"이 녀석, 끌고 갈 테니 뒷 일은 알아서 해. 황족 녀석들은 빠짐없이 데려오고, 성은 불태워버려. 협상 따윈 없다. 백성들에게 전쟁이 끝났음을 선포해라."


"예!"


가리어드 측 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리안은 이마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그리고 곧 마인이 그를 들쳐업곤 어디론가로 걸어가는 것까지가 리안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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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21 00:28 | 조회 : 4,252 목록
작가의 말
렌테

연재 주기는 허허..제가 예비고다 보니 이것저것 바빠서 아마 자유연재가 될 듯하네여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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