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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3월 7일. 오후 3시.

길고도 지루했던, 아련하고도 행복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졸업식이 끝을 맺었다. 학사모를 쓴 학생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나와 때를 지었고, 그런 학생들을 반기는 가족들과 친척, 친구들까지 합세하여 운동장은 시장보다도 시끌벅적하다. 웃고, 울며, 끊이지 않는 셔터 소리를 배경 삼아 그들은 정들었던 학교와 헤어질 준비에 분주하다.

시끄럽고 혼잡한 운동장 안에서, 누군가를 찾으려 분주히 뛰어다니는 오렌지 빛 머리는 햇빛을 받아 유난히 돋보였다. 작고 왜소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그는 수많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치며 돌아다닌다. 입을 크게 벌리고 계속 무언가를 외쳐대지만 시끄러운 주변 소리에 묻혀 그것마저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귀가 터질 듯 아팠다. 목이 칼칼했다. 눈앞은 땀으로 흐리고 사람들에게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저려오고 숨이 가빠왔다. 등이 점점 젖어 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히나타 쇼요는, 오늘 졸업식에서 당당히 졸업증서를 받고 학사모를 쓴 졸업생이다.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그도 이 순간을 즐기고 웃고 울 권리가 있다.
그는, 히나타 쇼요는, 필사적이다. 이해도 가지 않는 애매한 대답만을 남기고 간 '그'를 찾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뛰고 봤다. 자신이 그 무엇보다 자신있는 건 오로지 하나, 몸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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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명씩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하자 시야가 트였다. 땀이 흐르는 얼굴을 대충 팔로 훑어내고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 키와 뒷모습, 걸음걸이와 행동은 절대 잊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하나, 강당뿐이었다.



강당은 한산하다. 졸업식이 끝나고 모두가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내려간 상태였다. 강당에는 의자나 소품 따위를 치우는 사람도 한 명 없다. 그저 맨 앞줄에 앉아 멍하니 강당 연설대를 바라보는 학사모를 쓴 한 학생이 있을 뿐이다.

히나타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잠깐 두리번거리는 그 짧은 시간에 다시 힘이 충전되기라도 했는지, 방울 져 떨어지는 땀을 못 본채하고 그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크게 연다.



"카게야마!!!"



둘 밖에 없는 강당 안에서 히나타의 목소리는 울리고 울려 카게야마에게 닿았다. 멍 때리며 앞만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달려오는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짐짓 놀란 듯 움찔했다.



"뭐, 뭐야?"

"흐아.. 한참 찾았네... 여기 있었구나! 혼자서 뭐해?"

"...딱히 상관 없잖아. 난 왜 찾은 건데?"

"에? 그치만 나 카게야마랑 사진 찍으려고 사진기까지 가져왔는걸?"

"사진기?"



히나타는 끈에 달려 가슴 언저리에서 가볍게 흔들리는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자랑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걸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인상을 가볍게 찡그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왜 나랑 찍는 건데, 멍청아. 다른 사람은 다 어디다 버렸어?"

"음... 반 친구들이랑은 이미 다 찍었고, 배구부 후배들이랑도 찍고, 선생님이랑도 찍고, 놀러 와주신 아줌마들이나 누나들과도 찍고, 다른 반 친구들이랑도 찍고.... 카게야마 빼고 다 찍었는데?"

"부ㅁ.... 아, 미안."



줄줄이 리스트를 나열하는 히나타를 향해 고개를 세차게 돌리고 무슨 말을 하려 했던 카게야마는 곧바로 입을 다물고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다. 졸업식에 하필 이런 말실수를... 카게야마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 카게야마를 빤히 바라보던 히나타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는지 더욱 환히 웃는다.



"뭘 그런걸 가지고 사과야? 어쨋든 이 정도면 나랑 찍을 이유가 충분하지 않나?"

"....싫어, 멍청아."

"왜애??!?"

"귀찮아."

"사진 한번 찍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아, 그냥 귀찮ㄷ... 찍지마!!!"



카게야마가 말을 하는 도중에 찰칵- 하고 셔터소리가 울렸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히나타에게 달려든 카게야마는 곧장 카메라를 뺏기 위해 도망치는 히나타를 쫓았다. 히나타는 그에 반응하여 도망 다니면서까지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벌써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먼저께부터 뛰어다니느라고 이미 지쳐버린 히나타가 쓰러지자, 카게야마는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를 뺏었다. 그리고 서둘러 버튼을 눌러대며 사진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히나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울상을 지었다.



"하나만 찍자... 응? 하나만!! 추억거리잖아!"

"추억이 뭐라고 그렇게 난리야!!"

"나중에 두고두고 보면 되지!! 나 액자도 샀단 말이야!!!"



옆에서 벌렁 드러누운 채 찡찡거리는 히나타를 잠시 한심하게 쳐다본 카게야마는, 카메라를 뚫어지게 한번 바라보더니 그 옆에 같이 드러누웠다. 카메라 렌즈가 그들을 향하고, 셔터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엣?"

"끝."

"에에????"



너무 황당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히나타는 바로 앞에 있던 의자와 머리를 크게 부딪혔다. 쾅- 하는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짐에도 히나타는 그저 붉어지는 이마를 부여잡고 카게야마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뭐야 이게!! 다시 찍어!"

"기회는 한번뿐이야 멍청아. 이제 안 찍어"

"나 표정 완전 이상한데??"

"내 알 바냐"



자기 손에 있던 카메라를 곧장 돌려받은 히나타는 급히 사진첩을 뒤져 사진을 찾았다. 사진 속에 히나타는 땀에 절어 누워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카게야마는 약간의 땀이 난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멀쩡했다. 히나타는 사진과 카게야마를 몇 번이나 번갈아 보며 카게야마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한번만 더 찍자, 한번만!! 액자 걸 건데 이런 사진 어떻게 걸어...."

"난 만족하는데. 더 안 찍을 거다."

"..........."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애절한 눈빛으로 올려다 보았지만 카게야마는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맞대응 한다. 결국 지고만 히나타.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얼굴에 울상이 가득했다.

그런 히나타를 잠깐 쳐다보다 카게야마는 다시 얼굴을 돌려 강당의 연설대를 바라본다. 그 높은 연설대는 자꾸 어릴 적 기억을 회상시킨다. 태양을 가릴 정도로 크고 거대했던 그들의 형상을 상기시킨다.

카게야마는 다시 얼굴을 돌려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히나타와 눈이 마주친다.



"멍청아."

"왜, 바보카게야마."

"졸업하고 뭐할 거야?"

"대학가야지. 어디 갈 때가 있나?"

"....나 취업했다."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기가 들은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빛으로 카게야마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카게야마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똑똑히 말했다.



"CCG알지? 구울 잡는 수사단체. 거기서 날 어릴 때부터 지원해줬었다."

"구울이라면... 뉴스에 간간히 나오는 그 이상한 괴물들? 거기서 널 왜?"

"그냥 어릴 때 사건에 좀 휘말린 적이 있어서. 그때 눈독 들였단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입사하래."

"헐 바보카게야마가 취업이라니... 헐..."



연신 헐을 남발하며 멍한 표정을 짓는 히나타. 카게야마는 그런 표정을 보며 피식 실소를 지었다. 솔직히 자기 자신도 별로 믿기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이라니, 전형적인 엘리트의 단계가 아니던가.



"근데 솔직히 너 맨날 공부 1등하고 그랬잖아. 그럴 만도 한데?"

"너랑은 다르게 천재니까, 멍청아."

"......그런 건가..."



반박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까는 히나타가 순간적으로 귀여워 보인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풍성한 오렌지 빛 머리칼을 세게 문질렀다. 얼굴을 찌푸리며 머리카락을 훑어 정리하던 히나타는 그 나름대로 안심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었구나. 앞으로 자주 못 볼 것 같다고. 잘 있어, 라고.

나름대로의 생각에 빠진 히나타를 보던 카게야마는 그대로 그의 사진기를 뺏어 들었다.



"멍청아, 빨리 봐. 마지막이야."

"어?"

"하나, 둘.."

"잠만, 잠만!!"

"셋."



찰칵-

히나타는 반짝 반짝한 눈빛으로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사진기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둘의 모습이 보였다. 히나타는 사진기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히죽댔다. 카게야마 또한 간만에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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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1-22 23:29 | 조회 : 4,30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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