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첫날

제대로 닦이지도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아이는 몸을 조금 움크린 채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어색한 듯 제 목에 두껍게 씌워진 사슬을 만지작거리다가 상단을 출발할 때만 해도 상품들로 가득 차 있었던 텅 빈 마차를 둘러보았다.

뒤늦게 낮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처음으로 자신이 있는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차의 덜컹거림이 멈추고 밖에서 웅 웅 하고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가 빌 시간이 왔다.’ 라고 아이는 생각했다.

“내려라.”

덜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이 열리며 관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서있는 것은 지루하다는 얼굴로 하품을 하는 한 소녀.

옷차림 등이 그리 관리받은 모양새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재질만큼은 무척이나 좋은 것이라는건 보는 눈이 없는 아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무슨 하자가 있는것 같다 싶으시면 반품신청도 가능합니다만 저희쪽의 책임에 대해서는 지금이 아니면 물으실 수 없습니다."

관리자의 말에 소녀는 됐다는 듯 팔을 내젓고는 관리자에게서 열쇠를 받아들어 아이의 사슬을 플어내렸다. 사슬이 풀어내린 아래로 검은 목줄이 드러났다. 그저 개목걸이로만 보여도 노예가격의 3/1을 차지할 만큼 가격이 상당한 마도구다.

"등록을 도와드릴까요?"

관리자가 사슬을 받아들며 물었지만 소녀는 대답 대신 아이가 찬 목줄의 움푹 파인곳에 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순간 붉게 달아오르는 목줄. 관리자는 그대로 두말 없이 인사와 함께 마차를 끌고 가버렸다.

"아, 저기.. 주인......님?"

아이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마차가 떠나는 걸 바라보다가도 아이를 보고는 슬며시 웃는 소녀. 그리고는 끼익 소리를 내는 정문을 열며 저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대체 언제부터 방치되었는지도 모를 만큼 식물들이 제멋대로 자라있는 정원을 지나 저택의 문이 반쯤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안은 어둡기도 어둡거니와 안에서 나오는 공기가 더 서늘해서 정말로 귀신이 나올것만 같은 폐가의 느낌이었다.

팔의 소름에 아이가 자신의 팔을 꽉 부여잡을 때, 소녀는 그저 놀랐다는 듯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조금 더 당겨 열고는 집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정상이다. 여기가 바로 소녀의 집이니.

"문 닫아."

아이가 집안으로 발을 내딛기 무섭게 말한 소녀는 근처의 벽에 주먹을 때렸다. 마치 마법처럼 집 안이 환해졌다.

아이는 소녀가 말을 할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아주 조금은 놀라면서 문을 닫으려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멈칫. 정원의 건너편의 문이 닫혀있었다. 소녀는 아이보다 앞서가고 있었고, 아이는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순간 섬득한 느낌이 들었다.

"이름이 뭐야?"

그 말에 바들거리며 문을 닫던 아이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의 손에는 어느새 불이 밝혀진 등잔이 들려 있었다. 아이는 재빨리 등잔을 제가 들겠다고 했다.

"됐어. 그보다 이름."

처음과 거의 변함이 없는 얼굴로 아이의 말을 거절한 소녀는 선반에 놓여있던 물병을 집어 벽의 구멍에 흘려보내며 물었다. 아이는 왠지 모를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이름.. 없습니다."

그 말에 소녀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다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마구 문질렀다. 천천히 집안이 어두워지며 주인의 손에 들린 등잔이 주인의 모습을 돋보이게 했다.

"그럼 앞으로 아이라 부르지."

그리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내뱉은 하나의 이름. 아버지가 지어 줬다는 덧 설명에 소녀의 이름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으나 그 이름을 내뱉은 소녀의 얼굴이 무척 안좋아서. 아이가 훈련소에 있을 때 어느날 제게 잘 있으라 하고는 영영 가버린 친구의 얼굴과 비슷해서 아이는 그런 소녀의 얼굴을 마음에 담느라 소녀의 이름은 깊은 곳에 묻어버렸다.

"여기는 지하로 가는 게단. 지하엔 나도 뭐가 있는지 몰라."

앞쪽에 있던 계단으로 덜어가 옆면의 벽을 밀어내며 숨겨진 계단을 보여준 소녀는 그것을 시작으로 자신이 아는 내의 저택의 모든 곳을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그것도 1층과 2층이 다였지만..

"그리고 여기는 네방. 이 옆은 내방. 그럼 잘자."

3층으로 오르자 마자 보이는 두개의 방을 차례로 가리킨 소녀는 미처 아이가 무어라 입을 열 새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녀의 등잔이 사라지자 아이만 남은 복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아이는 바짝 말라 굳어가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안녕... 히 주무십시오."

소녀에게는 결코 닿지 않을 소리였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기분에 조용히 중얼거린 아이는 소녀가 처음에 가리켰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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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0-03 16:40 | 조회 : 1,50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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