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호수인간말종쓰레기주의)

네가 어디에 가건, 어디로 숨던, 네 행동 하나하나 숨 쉬는 속도까지.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건 단 하나도 없어. 피하려고 하지마. 똑똑한 넌 알고 있잖아. 발버둥 쳐봤자 내 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이러면 안 된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역시 너잖아. 나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거. 소연아, 네가 그렇게 현실을 부정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너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과 바람에 예기치 못할 운이 따라올 수조차 없다는 걸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내가 아닌 너야.
그러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무엇 때문에 널 움직이게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어. 내가 만든 요새 속에서 나를 받아들인다면 네 가족과 네 마음 역시 불안에 떨지 않을 텐데. 도대체 왜 그렇게 발버둥치는 거지? 반항인가? 자존심? 그런 건 네가 나를 가슴 속으로 품고 있었을 때부터 버려버린 것 아니었어?
-하악, 학, 흐억. 콜록 콜록
거센 숨을 몰아 내쉬며 몇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자신의 집을 찾아나선 소연이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뛸 수밖에 없는 그의 간절함, 가족의 그리움. 소연은 평생을 동생만을 위해 모든 궂은 일을 견뎌낸 존재이다.
그는 호수가 만들어놓은 요새 속에서 언제든 죽음을 마주칠 용기가 있었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자신과 생명선이 연결된 동생의 미래 때문이었다. 소연이 죽는다면, 그 싸이코는 서연이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평생을 지옥처럼 느끼며 살게 할 것이 뻔하다. 그것만을 생각하며 소연은 생지옥을 맨정신으로 버텨냈다. 버텨냈었다.
참을 수 없었다. 이젠 동생을 위한 모든 것도 끝이다. 이렇게 죽게 되면 그 후의 서연이의 인생 역시 어떨지 알고 있다. 내 의식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본능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몸부림쳤다. 그 결과 수 백 번 호수에게 맞고 차이고 고문 당했다. 너무 아프고 억울했기에 호수가 자기만족을 위한 섹스도 폭언도 모두 받아냈을 때가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소연이 바랐던 건 오직 호수의 불행. 무엇이 호수의 머릿속에서, 그 차가운 가슴 속에서 평생의 슬픔과 오열, 분노와 후회를 심어줄 수 있을까…
잠깐은 내가 죽는다면 호수도 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럴리가. 그 하호수가? 나를 위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는 묻혀두지도 말고 게워내라고 빚만 주렁주렁 달려있던 부모님께서 술에 찌들어 늘 하시던 말씀이시다. 호수는 내가 없어도 금방 자기 주위의 취향에 맞는 금방 굽실거리는 녀석을 골라내 타겟으로 삼을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저 금방의 욕구와 본능만을 위해 한 생명을 완전히 일그러뜨리는 추악한 벌레새끼.
끊임없는 반복과 좌절을 통해 알게 된 단 하나의 해답. 감정이 없는 인간에겐 그 무엇도 즐겁게 할 수 없으며 후회 역시 남겨줄 수 없다, 그 무엇도 매마른 감정에 남아있을 수 없다. 갇혀 있으며 늘 바래왔던 그 하나를 이룰 수 없다. 내 살을 깎고, 심장을 바치고,
가족을 버려서 까지도.
그 순간부터였나, 모든 것이 환해졌다. 어둡기만 했던 자신의 미래도, 어두컴컴한 지하방도, 쓰레기 같은 그의 얼굴과 모든 행동, 몸짓 하나부터 열 가지. 그랬던 소연의 아무 것도 남은 것 없는 미련 속에서 딱 하나, 동생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하나뿐인 가족이 살아있음을 직접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달려갔다. 그리고, 드디어 도달한 서연이 살고 있는 집.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에는,
검은 양복에게 목이 조여 금방 숨을 거둔 동생과 양복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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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04 22:48 | 조회 : 6,090 목록
작가의 말
아이스자몽에이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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