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하랑편 (1)

이상하게 울컥거렸다. 제하의 현실이 하랑에게도 와닿아졌다. 울지말자, 울지말자 다짐했지만 점점 눈물이 세어나왔다.


' 그래, 내가 같이 있어줄게. '
...
' 나한테 시집오면 되잖아? '


6년 전, 여름. 제하는 그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가버렸다.

6년 전 하랑이 18살이었던 시절. 그는 우성 오메가임에도 유능한 인재임에 틀림 없었다. 항상 전교 열 손가락 안에 들었으며 성실했다. 딱 하나, 발정기만 빼놓는다면.

발정기란 유능한 오메가에게 있어서 귀찮은 것이었다. 다행히 하랑은 약이 잘 듣는 체질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오메가들에게는 위험하고 걸리적거리는 그런 것이었다.


" 너, 웃는 거 굉장히 귀엽다. "


하랑이 1학년이었을 때, 그는 학생회장이었다. 베타인 그가 하랑의 볼을 살짝 쓰다듬고는 말했다. 그 뒤로였을까, 하랑이 쫄레쫄레 그를 따라다니게 된게.

강 한. 그저그런 집에서 태어나서 가난하지도 그렇게 부유하지도 않게 살아 온 그에게는 한 가지 엇갈린 '약점'이 있었다.

'베타'.

그가 베타라는 것이 항상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며 쟁취하고 또 약탈했다. 남들보다 더 늦게까지 공부하고 더 열심히 살아 온 그에게 하랑은 빛과도 같은 존재였다. 오메가가 무시 받는 일은 예전부터 쭉 이어왔기 때문에 그 차별은 베타에게 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 그러나 하랑은 그런 차별을 넘어서서 1학년 대표자리로 우뚝섰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1학년 대표라고 단상에 슨 하랑을 바라봤을 때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단순히 대단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부럽다, 친해지고 싶다, 그 이상이었다.


" 2학년 회장 강 한이라고 해. "


항상 열등감에 시달려서 힘들게 견뎌 온 그에게 하랑이란 마치 새로 가보는 여행지와도 같았다. 신선하고 놀라웠다. 하랑 또한 그랬다. 자신을 오메가로 보지 않고 '이 하랑'으로써 사랑해준 첫 사람. 그게 바로 강 한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한은 잘생기고 멋있었다. 그 두 마디는 그에게 힘을 줬다. 그가 베타라는 사실은 그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알파보다 우수한 베타. 그 수식어가 항상 그의 이름 앞에 뿔처럼 달렸다. 그리고 그 만큼의 여자들도 꼬리처럼 붙었다.


" 나 한 선배의 아이를 가졌어. "


하랑이 서기의 기록을 다 정리하고 있었을 때 문을 열고 들어 온 누군가가 말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마치, 내가 이겼다는 듯한 미소. 하랑은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럴리 없다고, 자신에게만 사랑을 고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나뒹구지 않았을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확신은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 아이는 지우기로 했어. 둘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방해니까. 아직도 화났어? "


그는 다정한 손길로 하랑을 달랬다. 싫다고 우는 하랑의 뺨을 치면서 외쳤다. 어떻게 너까지 나를 버릴 수 있냐고. 버려? 누가, 누굴 버려? 그는 무자비하게 하랑을 범하고 안 속 깊이 자신의 것을 묻었다. 그래도 성이 안 찬다는 듯이 몇 번이고 안을 넘나들었다. 다리는 이미 후덜거렸고 다리보다 더 후덜거리는 가슴을 꼭 쥔 하랑은 이미 나가고 없는 빈 자리를 보면서 퍽 울었다.

애초에 그는 다른 오메가들에 비해서 임신 가능성이 굉장히 낮았다. 선천적인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를 낳기 힘들다는 병원의 말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다. 한과 결혼한다면 그게 방해가 될까, 그 생각만 했지 그 한이 자신을 내버려두고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속삭이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후덜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학생회실을 나왔다. 이대로 죽을까, 그냥 뛰어내려버릴까, 그 생각으로 옥상까지 올라가서 난간을 꼭 쥐었다.

거기까지 올라가놓고도 막상 아래를 보니 무서워서 더 비참해졌다. 다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정액은 마치 하랑보고 뛰어내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발 앞으로 내딛었을 때 하랑의 몸은 갑작스럽게 위로 들려졌다.


" 그렇게 죽는다고 모든 게 편하지는 않아. "


그게 제하와의 첫 만남이었고 그의 첫 말이었다. 예쁘게 사랑받아야지, 그렇게 말하는 제하 품에서 하랑은 모르는 사람의 품이라는 것도 잊은 체 목 놓아 울었다. 마침 모교를 들른 그는 바지도 다 입지않고 비틀거리면서 옥상으로 향하는 하랑을 보자마자 따라 갔다. 하랑의 상태를 보자마자 이미 무슨 상황인지는 대충 눈치챘었다. 자신보다 어리고 작은 아이가 그렇게 우는 장면을 보니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 쉬, 뚝. 그래그래. "


그렇게 몇 십분 동안 제하는 말 없이 하랑을 다독였다. 그리고는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하랑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집 앞에 차가 서자 그제서야 하랑은 집에 들어가기 곤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랑이 오메가라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의 할머니와 그녀의 가족들 때문이었다. 하랑은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어머니 이외에 재혼해서 얻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랑을 좋아하지 않았다. 삼촌, 이모들의 눈치를 먹고 지낸 하랑은 차 문 열기를 망설였다.


" 아, 그 상태로 집으로 가는 건 무리일려나.. "


제하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더니 차를 돌려서 빈 오피스텔로 향했다. 수건과 가벼운 티, 바지를 건낸 그는 친절하게 욕조 물까지 받아주었다. 다 씻고 나오자 제하가 쇼파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하랑을 본 그는 베시시 웃으면서 물을 건냈다. 자고 갈래? 위험해보이는 말이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다정해서 들어갔던 눈물이 다시 나올 것만 같았다.

결국 집에는 친구네에서 하룻밤 묵는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딱히 하랑이 무엇을 하든 그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제하는 그 날 밤 내내 하랑의 이야기를 들었다. 묵묵이 듣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 그 새끼가 나쁜놈이네. 그 새끼 전화번호 좀 줘. "


그는 웃으며 말했다. 잔잔한 음악과 천천히 내려오는 달빛에 취해서 하랑은 그의 말에 베시시 웃었다. 그리고 그 날 하랑은 처음으로,

스스로 누군가를 유혹해서 관계를 맺었다.





-


...내일은 하랑이 과거 2탄과 현재로 찾앋뵐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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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5 19:45 | 조회 : 2,959 목록
작가의 말
MIRIBYEOL

....4편 올린다는 걸 까먹고 같이 올립니다 다음편은 내일 올릴게요 ((그래서 분량이 이다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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