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약속 (1)

-01, 약속-





햇빛이 쨍쨍한 어느 날, 하랑은 길거리에서 제하와 마주쳤다. 정말 우연히. 언제 미국에서 돌아 온 걸까?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을 쥐어잡고 제하에게로 갔을 때, 그에게서 들은 첫 말은...


' 뭐야? '


였다. 그래도 열심히 설명한다면 기억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몇 번 말을 꺼내보지만, 제하는 차가운 눈초리로 하랑을 내려 볼 뿐이었다. 결국 한숨을 내쉰 하랑이 꺼낸 말이, 결혼해주세요. 였다. 이거라면 기억해주겠지! 잊었을리가 없어! 확신했건만.. 돌아 온 대답은 오메가라는 껄끄러움 뿐이었다.


"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미국에서 교통사고라도 당했나?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그러나 번호를 저장하자마자 뜬 프로필은 '박제하'였다. 맞아, 제하형이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만 바라보고 이 쓰레기창을 지낸지 6년차. 언젠가는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겠다던 제하는.. 꽃다발이 아닌 차가운 눈초리를 들고 돌아왔다.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다가 번호를 꾹꾹 눌렀다.


" 나야. "

[ 알아. 나 지금 업무 중인데. 왜? ]

" 바빠? 나 제하형 만났어. 방금. "


뭐어?!

큰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상사의 눈초리를 받았나보다. 신다현, 하랑의 둘도 없는 친구. 하랑이 씨익 웃으며 아까 전 상황을 전부 말했다. 그러고나니 남는 건.. 허탈함이었다.


[ 너를 기억 못한다고? 아, 그 기억력 붕어빵.. ]

" 왜지? 분명 ...형이 자기한테 시집오랬는데.. "

[ 6년이나 기다렸으면 됐잖아. 그만해, 이제. 기억력이 붕어빵이라서 그래. ]


6년이라서 그만 못해.

하랑은 단호하게 말했다. 카페에 앉아서 아메리카노 잔만 만지작거렸다. 전화기 너머로 다현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단어'만 쏙 들어왔다.


[ 오빠, 약혼했대. 알파 여자랑. ]


....

머리가 어질거렸다. 구두 약속으로 한 약혼은 있다고 들었지만.. 한숨을 푹 내쉰 하랑이 테이블 위로 머리를 박았다. 다현은 상사가 보고 있다며 나중에 연락할게!하고 매정하게 끊어버렸다. 끊긴 전화에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고 있자니, 카페 안이 시끌해졌다.


" 그만 나가주세요! "

" 그만 대줘. "

" 이...! 하아... 그렇게 대줄 사람이 필요하면 사창가나 가시죠. "

" 싫어. 너 아니면 싫어. "


한 눈에 봐도 알파다.싶은 남자(율)가 자기의 체격에 비해서 훨씬 작은 다른 남자(하루)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며 말하고 있었다. 당연히 주위의 시선이 저절로 모여졌다. 하랑은 좋은 때다~하며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워서 무작정 들어 온 카페인데.. 낭패다.싶었다.


" 그럼 번호라도 줘. "

" 정말 잡초같네요. "

" 잘 자라긴 했지. 빨리 줘. "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하루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결국 전화기에 자신의 번호를 찍었다. 율은 땡큐하고는 얼른 가게를 나가버렸고 후폭풍이 남은 하루는 점장의 권유로 휴게실로 들어갔다.


" 하하. 고생이 많네. "


하랑이 실소를 터트리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 제하형.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문자는 보내놨지만.. 답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말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게 다였을까? 그냥... 그게 전부였을까? 애꿎은 아메리카노 잔만 만지작거렸다.

지이잉-.

적막을 깨는 진동소리에 얼른 전화기를 본 하랑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 이번 주 주말에 보자. 일단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


문자!! 그것도 데이트 약속(?)!!!

하랑은 얼른 답 문자를 보내며 실실 웃었다. 아직 가능성은 있어! '그 일'은 차근차근 설명하면 되는거야!! 행복해진 하랑은 헤헤헤, 웃으며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켰다. 갑자기 창 밖의 뜨거운 여름이 따뜻한 해변으로 바뀌었다. 물론, 하랑의 눈에만.





***





두둥!...이였을 예정인... 토요일이 찾아왔다. 그러나 하랑은 발로 땅만 툭툭 건드렸다. 약속시간 한 시간 오버!!!! 볼이 빵빵해지도록 바람을 불어넣은 하랑은 전화기만 건드렸다.

지이잉, 지이잉.


" 어디예요? "

[ 미안. 아침에 갑자기 일이 들어와서. 연락을 준다는 걸 까먹었네. 지금 갈게. ]

" 아아.. 사람을 이렇게나 기다리게 하다니요.. "


6년이나 기다리게 했으면서.. 또 기다리게 하다니요...


[ 맛있는 거 사줄게. 안 더워? 근처에 카페라도 가 있지? ]


우당탕탕거리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무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바람맞힌 건 아니니까 용서해줄까... 네~하고 밝게 대답했다. 그러고 정확하게 30분이 더 지나서야 하랑은 제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내린 머리에... 젊어보이는 셔츠와 청바지! 항상 정장을 입은 모습만 본 하랑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미안. 늦었네. "

" 한 시간 삼 십 이분이요. "

" ...그만하지... "


정확하게 제가 기다린 시간은 두 시간 반이 넘지만.. 이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지.

하랑은 주문하고 온다는 제하를 바라봤다. 당연하게 주위의 시선이 제하에게로 몰렸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망나니..에게로..


" 어라? 저 사람... 여기 그 카페였나? "


하랑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주문대 서서 시끄럽게 구는 남자를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율이, 하루를 꼬시고 있었다. 그 열정이 너무나도 강열해서 다른 사람은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 여기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이요. "


그리고 그 적막을 깬 사람이 바로, 제하였다.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던 둘의 시선이 제하에게로 향했다.


" 이걸로 결제해주시고요. 너 이 새끼는 여기서 뭐하는 짓거리야. "

" 아, 안녕. 형? "

" 안녀엉? 전세냈냐? "


아, 뭐.. 곧?

율은 중얼거렸다. 하루는 얼른 계산을 하며 진동벨을 건냈다. 하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아는 사이였어? 알파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제하와 아는 사이였을 줄이야. 그리고는 곧 바로 고개를 휙 돌렸다. 일단은.. 창피하니까 모르는 척..


" 됐고. 시끄러우니까 나가서 하던가 해. 구애도 적당히 해야지 매력적인거다. "

" 구애가 아니라 유혹이야. "

" 그게 그거야, 병신아. "


제하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루를 바라봤다. 율이 그렇게나 가지고 싶어서 미친듯이 매달리는 남자는 어디사는 누구야?라고 생각하며 쳐다보고는 놀랐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오메가? 너 오메가 취향이였냐? "

" ..오메가가 뭔데. 이애 이름은 하루인데. "

" ... "


제하는 말을 말자. 하며 다시 하루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 이 모자란 병신 새끼가 폐를 끼쳤네요. 죄송합니다. 그냥 계--속 무시해주세요. "

" 아하하.. 네.. 뭐.. "

" 뭐야, 형. 왜 끼어들고 난리야. 30대는 꺼져. "

" 아직 삼 십 아니거든?! "


하루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의 눈에는 둘 다, 모자란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둘을 외면하는 하랑이었다. 일단은.. 모르는 사람인 척 하자. 갈갈 날뛰며 싸워대는 두 멍청이를 바라 본 하랑은 고개를 저었고, 그러다가 자신을 바라보던 하루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웃은 하랑과 하루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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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인의 만남(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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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18 19:47 | 조회 : 3,023 목록
작가의 말
MIRIBYEOL

매아내도 올려야 하고..단편도 올려야 하고...((바쁨주의사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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