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우쮸쮸. 형이라고 해봐.

-05.-




하랑과 제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종업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하랑이 허망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황한 건 종업원도 마찬가지였다.


" 몇 이라고? "

" 25.5에서 26이시네요. "

" 잠시만요. 그거 이상해요. "


종업원은 얼굴을 찌뿌렸다. 자신도 27을 입는다. 그런데 다 큰 남자가 (그것도 예쁘장하게 생긴) 25애서 26을 입는다니!!!

하랑은 자신이 말랐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신의 몸무게는 키에 비해 조금 마른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정도 허리라면... 이건 문제다. 군을 갔다와서 힘을 많이 쓰는 일을 해서 그런 것이가? 조금이나마 붙어있던 살도 근육으로 붙은 것인가?

제하도 이렇게 얇은 줄은 몰랐다는 듯이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정도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지 멀쩡한 성인 남자가 왠만한 여자들이 입는 26도 안된다니... 제하는 눈을 돌려 하랑을 봤다.


" ... 앞으로 많이 먹여야 겠군. "

" ... 사무실에... 오기 전에 힘쓰는 일을 했더니... 그마저도 근육으로 붙었나봐요. "

" 너 밥은 제때 먹고 다니냐? 하루 4끼는 먹어야 겠다. 몸무게 얼마야? "

" 58인가 4인가... "


제하는 하랑의 입에서 나온 숫자에 눈을 부릅떴다. 하랑의 키가 170을 넘지 못했다면 이렇게까지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랑은 172를 조금 넘는 키를 가졌다. 하아.... 제하의 입에서 길게 한숨이 나왔다.


" 일단 제일 작은 사이즈에 네이비의 단정한 걸로 피팅해주시고요. 제 직원이 허리띠를 사온댔으니까 그 걸로 허리는 맞추면 될 겁니다. "

" 아. 네.. 그럼 이번 신상으로 드릴게요. "

" 문제는.. 바지 통인데. 수선하는 데 시간 얼마나 걸립니까? "

"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요. "


제하는 자신의 왼손에 있던 가죽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지금이 3시... 파티는 7시.. 충분하군.

그러고는 사이즈를 재 달라며 하랑을 종업원에게 떠밀었다. 하랑은 떨떠름하게 자신의 사이즈를 쟀고 빠르게 왔다갔다 거리며 이런저런 양복을 입히는 종업원 때문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베스트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

" 음.. 베스트 입어볼래? "

" 아니요. 부사장님. 이정도면. 충분. 합니다. "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는 하랑의 표정에 제하는 쇼파에 기대어 있다가 픽. 하고 낮게 웃었다. 그리고 손을 살짝 올려. 다음 신발. 하고 간단하게 말했다.

약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이런저런 옷을 입어 온 하랑은 지친다는 듯이 쇼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곧 카드를 종업원에게 건내는 제하가 보였다.


" 부사장님! 제가 살게요!! "


남에게 빚지고 못 사는 하랑의 성격이었기에 이 양복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 제하에게 달려갔다. 제하는 의외인 듯이 (감사합니다하고 받을 줄 알았다.) 하랑을 보며 됐어. 하고 큰 손을 들어올려 하랑의 머리 위에 얹었다.


" 너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

" ...얼마입니까? "


하랑이 지갑을 꺼내며 말하자 제하가 하랑의 손을 한 손으로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 융통성 없기는. 500이다. "

" ...50이요? "

" 500. 오 백. 오. 백 "


제하가 강조해서 말하자 하랑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뭐라고...? 500??? 50도 아니고?!?! 보통은 50정도 사잖아!!! 그것도 꽤 가격대 있는거 아닌가?!?! 500이라니!!


" 부..부사장님!! "

" 시끄러 임마. 그럼 내 비서로 가는데 이 정도는 입어야지 안 꿀리지. "


제하는 굳어서 양 손이 제하의 한 손에 잡혀있다는 것도 모르고 입만 꽥꽥대는 하랑을 바라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푸하하. 웃었다.

보통은 이렇게 비싼 양복을 사준다고 하면 고마워서 뻘뻘대는데 하랑은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마음에 든다니까.


" 나..나가요. 다..다른데 가요. "

" 너 이 새끼. 나를 욕보일꺼냐? 어? 나한테 망신주고 싶어? "


제하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안 그래도 하얀 얼굴에 핏기가 싸악.하고 사라졌다. 물론 제하는 장난으로 말한거지만. 하랑은 제하의 말에서 자신이 실례를 했다는 것에 머리가 하얘졌다.


" 아.. 아니요. 죄..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


뻘뻘대며 하얘진 얼굴로, 덜덜 떨리는 입으로 사과를 하는 하랑을 보자 제하는 뭔기 모를 쾌감을 느꼈다. 안쓰럽기도 했고 귀엽기도 했다. 자신 한 명의 지위에 이렇게 뻘뻘대다니. 제하는 갑자기 하랑이 귀엽다고 느껴져서 잡고있던 손을 풀고 이번에는 하랑의 양 볼을 잡았다.

아. 모찌같다.


" 브사장임? (부사장님?) "

" 괜찮아 임마. 장난이야. "


제하의 눈꼬리가 휘어지며, 평소에는 살에 감춰있던 보조개가 드러나며 웃자 하랑은 심장이 다시 쿵쿵거리는 것을 느꼈다. 제하가 잡고 있는 볼이 후끈 달아 오르는 것 같았다. 목 뒤와 귀 끝이 알싸하게 달아올랐다.

제하는 안심한 듯이 홍조가 다시 도는 하랑의 볼을 보며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하랑의 볼을 쭈욱 하고 늘렸다. 정말 모찌처럼 하랑의 볼이 쭈욱하고 늘려졌다. 얇은 피부가 늘어지면서 하랑의 얼굴이 찌뿌려졌다.


" 아.. 아흡히아. 노흐시져. (아픕니다. 놓으시죠.) "

" 크크큭. 아. 새끼 귀엽기는. "


하랑의 말에 제하가 웃으며 손을 놨다. 그리고는 가자. 하며 먼저 문 쪽으로 걸어갔다. 하랑은 걸어가는 제하를 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 먼저.. 먼저. 다가온 건 당신이예요....치사해요. 이러는 게 어딨어요.... 아...정말... 큰일났다. '

' 큰일났어. '


하랑의 머릿속이 위험하다. 큰일났다. 하며 경고음을 울렸다. 겉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제하의 웃음을 보자마자 모든 사고와 주위 시간이 정지 되었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길 바랬다.


' 치사해. 치사하다고. 당신. 너무해. '


하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하랑의 목뒤가 적날하게 드러났다. 하얀, 조금 홍조가 도는 얼굴과 다르게 새뻘건, 터질 것 같은 목뒤를 하랑이 부끄럽다는 듯이 감싸잡았다.




-





" 샵으로 가지. "

" ...샵이요? "

" 머리는 이러고 갈 건가? "

" 아... "


차를 타고 제하가 운전수에게 말하자 하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까 제하에게 잡힌 볼이 살짝 부어 있었다. 제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잡고 눈을 가늘게 떴다.


" ...?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

" ...큭.. 아니. 아 맞다. 너. "


제하가 아! 하며 말하자 하랑이 움찔하며 제하를 조심스레 올려봤다.


" 내기. 너가 졌다. 어쩔래? "

" 아... 뭐.. 어쩌긴요... 악덕업주에게 잡힌거죠... "


하랑이 흑흑거리며 말하자 제하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호탕하게 웃자 앞에 있던 운전수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그 떨림에 순간 차가 휘청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휘청거리는 차의 반동으로 하랑의 몸이 휙 기울어 제하의 가슴팍에 퍽.하고 부딪혔다.

헉.


" 아...! 부사장님 죄송합니다! "


하랑이 고개를 들려고 움직이자 제하가 손을 들어 하랑의 뒷통수를 꽉 잡았다. 아아! 꽉 잡힌 뒷통수의 통증에 하랑이 신음을 내뱉었다. 제하가 고개를 숙였다.


" ...야 너 향수 뭐 쓰냐? 향수가 아닌가? "


제하는 하랑의 목 덜미 쪽을 킁킁하고 냄새를 맡듯이 코를 가져다 댔다. 하랑이 딱딱하게 굳었고 창피함에 자신도 모르게 제하의 품을 더 파고 들었다.


" 아.. 뭐지. 애 같은 게 애 냄새가 나. "


제하가 궁금하다는 듯이 더 냄새를 맡기 위해 하랑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자 하랑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뭐야. 마약 같애. 이 향 뭐지?


" 부..부사장님.. 놔.. 놔주세요. "

" ...형이라 해봐. 제하형. "

" ...부..부사장님...! "


꽈악.

제하는 하랑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허리를 둘렀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 힘에 하랑이 윽. 하고 고통을 내뱉었지만 제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 형. 형이라고 하라고. "

" ...혀엉. 제..제하형. "


피식.

목덜미에서 제하가 웃는 게 느껴졌다. 이 남자... 위험해. 이게.. 이게 뭐하는 거야!


" 혀엉! 형! 놔줘! 아파! "


그제서야 제하가 하랑을 놨다. 제하의 품 속에 얼굴을 오래 파묻고 있던 하랑의 얼굴이 빨개졌고,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제하는 형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앞으로 꼬박꼬박 형이라 불러라. "

" 하아하아. 치사해... "


한 가닥. 얇고도 얇은 한 가닥 하랑의 진심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제하가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하랑을 쳐다봤다.


" 뭘. 이런걸로. "


치사하다고 이 인간아!!! 아... 큰일이야 정말. 미치겠다...


" 풉. 귀엽기는. "


하랑이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자 재하가 웃으며 말했다. 두근두근뛰는 하랑과 다르게 자신에게 멍청한 이 남자는, 뼛 속까지 한 사람밖에 모르는 이 남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이 남자는. 자신이 하랑에게 어떤 기름을 부었는지. 불난 집에 어떤 기름을 부었는 지도 모른체 기분좋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둔한 이 남자를 하랑은 알기에. 자신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걸 하랑은 알기에. 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 같이 웃는다는, 자신의 마음을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





샵에 들어간 제하는 하랑을 가장 안쪽의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뒤에 있던 고급스런 쇼파에 몸을 기댔다.


" 어머! 박 실장이 왠일로! "

" 이제 실장아니다 임마. "

" 알지! 그런데 이게 익숙한 걸? "

" 됐고, 쟤 머리 좀 봐줘. 노친네들 파티 가야돼. "

" 노친네들 파티가 아니라 자선파티지. "



제하가 그거나그거나. 하며 때마침 나온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뿌리고는 커피잔을 내려놨다.


" 커피 너가 안탔지? "

" 내가 탔거든요. 내가 안 타면 맛 없다면 화낼거면서. "

" ..원두 바꿨어? "

" 우리 원두는 똑같거든! "


제하가 뭐야. 하며 거울너머도 자신을 보고있던 하랑을 불렀다 그리고는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 저 방에사 커피 한 잔만 타줘. "

" 어? 형? "

" 이거 맛 없어. 너가 타 준거 먹고 싶어. 맛 없어. 이거. "


제하가 징징대며 말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뭔 행패냐라며 짜증읓 냈겠지만. 제하를 보통사람으로 보지 않는 하랑은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보였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습. 샵의 원장인 민혁은 터무니없는 제하의 부탁에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 박 실장. 입맛이 바꼈네. "

" 네가 못 타는 게 아니고? "

" 허. 오지마! 가! "


민혁이 어이가 없어서 낮게 한숨을 뱉었다. 그 사이 하랑이 커피를 두 잔타서 나왔다. 왜 두 잔이냐고 제하의 눈이 묻고 있었다.


" 원장님도... 형만 타주기 뭐하니까요. "

" 어머. 예뻐라. 예뻐예뻐!! "


민혁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하랑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 사랑스런 생물은 도대체 뭔가!

제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둘을 쳐다봤다.


" 우리 알바생한테 꼬리치지마. 이 자식아. "

" 알바? 나 줘!! 나랑 일하자!! "

" 꺼져! 하랑이한테서 손 떼!! 이미 나랑 백 년 계약했어! 에비에비 지지! 하랑아 이리와. "


제하의 말에 하랑이 쭈뻣쭈뻣 제하에게로 갔다. 제하는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웃으며 하랑이 타 준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낮게 아... 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 백 년 계약말고 천 년 계약하고 싶다. 커피 맛이 환상이야. "

" ..어머. 진짜! 당신 입맛이 왜 바꼈는 지 알겠네. 예쁜애가 타주니까 더 맛있네~ "

" 아. 눈 독 들이지 좀 마. "


민혁이 방긋방긋 웃으며 하랑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냈다. 그러자 제하가 휙하고 뺏어갔다.


" 당신은 빠져! 합법적인 스카웃이야! "

" 지랄마! "

" 흥. "


제하가 버럭대며 민혁에게 옆에 있던 휴지를 던졌다. 민혁은 가볍게 휴지뭉치를 잡고는 하랑을 끌어 의자에 앉혔다.


" 어쨌든. 단정하게만 하면 되는거지? "

" 어. 왁스만 해. "


하랑은 여전히 거울너머로 커피를 마시는 제하를 훔쳐봤다. 발그레진 볼은 하랑의 귀여움을 더 해줬고 빨개진 귀 끝은 이상하게 야릇해보였다. 민혁은 그런 하랑을 보다가 머리를 끝내고 흐음. 하고는 하랑의 귀 끝을 살짝 깨물었다.


" 아악!!!!! 흐아!! "


하랑이 크게 놀라서 의자에서 쿵하고 떨어졌고 양 손으로 귀를 감싸며 벌벌떨자, 쇼파에 앉아 있던 제하가 벌떡 일어났다.


" 미안미안. 너무 하얘서 먹어보고 싶었어. "


생글생글 웃는 하랑의 몸이 다시 위험신호를 보냈다. 감이다. 이 남자! 그거다! 위험해! 나랑 같아! 위험!

입맛을 다시는 듯해 보이는 민혁에 벌벌떨던 하랑은 자신의 몸이 들려 올라감을 느꼈다.


" 우리 막내한테 뭐하는 짓이야. 그런 짓은 바에 가서나 해. "


낮게 말하는 제하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사자 같았다.

아, 이렇게 둔하기는. 민혁은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하랑을 어깨에 메고 신경질적으로 샵을 나가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 아. 꿀잼. 프흐흐. "


민혁의 얼굴에 장난꾸러기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

1
이번 화 신고 2016-07-31 17:14 | 조회 : 7,439 목록
작가의 말
MIRIBYEOL

http://blog.naver.com/giddb3428 로 가시면 4화 그림 올려져있어요! 부끄부끄 :) 모두들 좋은하루 되세요!! 츤데레제하ㅋㅋㅋㅋ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