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내 손바탁만해.

?-03.-





그 날은 어머니께서 일찍 들어오셨다. 다른 날보다 훨씬. 그래서 괜한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약도, 술도 하지 않은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던 과자를 몇 봉지 들고 집에 들어오셨을 때, 작은 기대감과 혹시나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어머니는 아무말 없이 웃으시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허겁지겁 과자를 먹던 나에게 요구르트를 건내주셨다.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어머니의 허벅지 위에서 잠이들었다.





-




" 저기... 이게 부사장님 소울메이트... 입니까? "

" 응. 이거야. 부사장님의 소울메이트. "


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 그래서 카페알바를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던 거였구나. 큰 깨달음을 뒤로하고 부사장님의 소울메이트이자 애칭 싼로를 쳐다봤다.

부사장님의 소울메이트 싼로는 산레모 로마 TCS 커피 머신기였다. 그 것도 굉장히 좋은 카페에 있을 법한 크고 아름답고 은빛이 나는. 나중에 들어보니 몇 십만원도, 몇 백만원도 아닌 천만원 대의 싼로였다.


" 그러니까 우리 사무실에서는 싼로만 조심하면 되. "

" ...갑자기 앞날이 어두워보입니다. "

" 하하하. 걱정할 거 없어. 왜 천만원이겠어? 튼튼해!! "

" 그..그렇겠죠? 튼튼하겠죠! 하하!! "


김부장은 어색하게 웃는 하랑을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아마도...라는 불길한 말을 꺼냈다. 하랑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싼로의 앞에 있는 쇼파에 몸을 실었다. 이 쇼파도 몇 백만원 짜린가? 굉장히 소프트하고 푹신한 느낌에 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기지개를 펴고는 그르렁댔다.


" 고양이가 따로 없군. "

" 아, 부사장님. "

" 그래서, 우리 싼로를 본 소감은? "

" 아.... "


제하의 눈에서 자랑스러움과 기고만장함이 번뜩였다.

아,....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건...


" ... 크고 아름답네요. "


하랑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하는 호탕하게 웃으며 상체만 일으켜서 두 손을 뒤로 돌려 쇼파를 집고 있는 하랑의 옆에 앉았다. 하랑은 순간적으로 쿵쿵거리는 심장을 살짝 부여잡고 잘생긴 제하의 얼굴을 천천히 쳐다봤다.


" 원두는 저기 있고, 우유나 가루들은 냉장고에 그리고 시럽은 싼로 옆에 있어. "

" ..아, 네.. "


제하의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에 하랑은 급하게 정신을 차리면서 싼로에게로 눈을 돌렸다. 역시... 이 사람... 심장에 안 좋아...


" 야. "

" 예. 예? "

" 너. "

" 예, 저. "


꼬박꼬박 대답하는 하랑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 지 피식하고 낮게 웃고는 하랑의 머리를 헝크렸다. 하랑은 잘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혹여 제하에게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 몸을 뒤로 뺐다.


" 새끼, 사내놈이 좀 박력도 있고 해야지 비실비실하게 이게 뭐냐? "


제하는 가느다란 하랑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꽉 잡았다. 살짝의 아픔에 하랑의 입에서 조그맣게 소리가 났지만 제하가 자신을 생각해서 세게 잡지 않았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하랑은 제하의 말에 순간적으로 욱해서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 그러는 부사장님도 그렇게 몸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

" 뭐 임마? "

" 저기 계시는 형님들이 더 좋아보입니다. "

" 그건 그냥 덩치가 큰거고. 나는 근육덩어리인 거고. "


하랑이 제하의 말에 낮게 코웃음을 쳤다. 그런 하랑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하는 이게!라며 자신이 입고 있던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는 하랑의 손을 잡고는 자신의 배에다가 댔다.


" 야, 이 초콜릿이 보이냐? 만져지냐? "

" ...아..아니요. 이건 ... "

" 이건 뭐? "

" ...초콜릿이 아닙니다. "


굳이 따지자면 크런키겠죠.

하랑은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제하의 배의 느낌에 귀가 벌겋게 닳아올랐다. 슈트를 입은 것 만으로도 충분히 몸이 좋다고는 느낄 수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이건 급이 다르다.


" 흥. 지는 얼마나 좋다고. 딱봐도 허여멀게 보이는구만. "


제하가 눈을 얇게 뜨고는 하랑의 배를 쳐다봤다. 하랑은 움찔. 하고 살짝 떨고는 양 손을 올려 자신의 가슴위를 십자 모양으로 꼬아서 가렸다.


" 보지마세요... 변태입니까 부사장님은..? "

" 뭐 임마?! 이 새끼가! 내가 왜 변태야! "


흥분한 제하의 목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물론 밖에까지 들렸고 밖에 있던 형님들은 설마 부사장님이 하랑에게 손을!? 하며 문에 다다닥 붙었다.


" 왜.. 왜 남의 배를.. 보십니까? "

" 남자가 남자놈 배 좀 보면 어떠냐!? 아, 오기 생기네. "


그리고는 하랑을 휙하고 잡고는 티셔츠를 올리려고 애를 썼고 하랑은 여름이라 티셔츠 하나 밖에 없는 옷을 내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근본적인 힘차이와 제하 앞에서는 쿵쿵거리는 심장으로 인해 힘을 쓸 수 없는 하랑이었기에 제하가 이씨! 하며 힘을 팍!하고 주는 순간 하랑의 윗 옷이 그의 얼굴 위로 올라갔고 그 반동으로 자연스럽게 손까지 머리 위로 올라갔다.


" ...부..부사장니임! "

" 야, 이게 남자냐? 너 허리 몇 인치야? "

" 놔 주세요! "


제하는 하랑의 얇고 하얀 허리가 신기했는지 자신의 손을 가져다가 배위에 얹었다.


" 와. 이 놈 이거 물건이네. 너 무슨 아이돌이야? "

" 예..예?! "

" 아이돌도 아니고 이게 뭐야, 부서지겠어 부서져. 너 밤일은 할 줄 아냐? "


화르륵.

하랑의 귀와 목이 곧 터질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제하는 신기하다는 듯이 양손으로 하랑의 허리를 잡았다. 히익!! 하랑이 차가운 제하의 손 느낌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제하를 하랑의 반응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신기하다며 계속 하랑의 허리를 잡았다가 자신의 허리를 잡았다가 하며 골똘히 생각을 했다.

하랑은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티셔츠가 얼굴을 가려줘서 너무 고맙다고 생각했다. 물론 근육을 키우고 싶어도 먹는 양이 부실할 뿐더러 어렸을 적부터 잘 먹지 못해서 영양부족에 빈혈까지 있었으니 클 수가 없었다.


" 흐음... 너. 네 허리 내 손바닥 만한거 알아? "


제하의 말에 하랑이 예!? 하며 크게 놀랐다. 물론 자신의 허리가 얇기도 하고 제하의 손이 키에 비례해서 크기도 했지만 그래도 ... 손바닥만하다니!!


" 그게 무슨 실례예요!! 부사장님! "

" 아니, 진짜야. 너 좀 조심해야 겠다. 왠만하면 김부장이랑 같이 있어라. "

" 예? 왜요? "


제하는 그제서야 하랑의 얼굴을 덮고 있던 티셔츠를 다시 배위로 올려놨다. 하랑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제하를 쳐다봤고 제하는 하랑의 위에서 내려와서 옆에 앉았다.


" 신다현이랑 약속도 했으니까... 여기 내 입으로 말하기도 뭐하지만 원래 조폭소굴이였으니까. "

" 아... "

" 그런 일도 하기도 하고, 이 근처에 조폭 놈들도 많고 그래서 말이지. "


제하가 슬쩍 하랑을 쳐다봤다. 하랑은 제하의 눈빛을 마주보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 그래, 그런 얼굴말이지. 그런 조폭 놈들이 보면 꼴리기 쉽거든. "

" 네!? "

"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더워도 좀 두툼하게 입고오고 그래라. 그리고 왠만하면 나랑 김부장 옆에 붙어있고. "

" ...네. "


제하가 아까와는 조금 다르게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하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자신에게는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이 더 치근덕댔고, 몇 번 위험할 뻔한 적도 있었다.

제하는 그럼. 하고 하랑의 머리를 짚고 일어났고 하랑은 제하의 무게 때문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 크큭. 더우니까 아메리카노 한 잔만 타와줘. "

" 아. 부사장님! ...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


제하는 오냐. 하고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주하는 수많은 눈과 코, 입들에 인상을 찌뿌렸다.


" ...내가 애를 잡아 먹냐!? 안 꺼져!? "


제하의 말에 다들 일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손을 내려다보고 몇 번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가를 반복했다.


' 여주...만할려나? '











-

0
이번 화 신고 2016-07-28 13:01 | 조회 : 7,968 목록
작가의 말
MIRIBYEOL

댓글도 달아주시고!! 너무 감사해요!! :)))) 많은 관심 정말 감사해요!!! 5화쯤부터는 삽화랑 같이 올라올 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여러분! :)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