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_사랑으로 보살펴줘라(9)

집 안의 적막함에서 나는 돌아왔구나를 느끼고 있었다. 하누는 따뜻한 집이 좋은 것인지 한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여행지에서 보고 들었던 것이 계속 떠올랐다. 푸른 바다와 시원한 파도 소리, 맛있는 음식들까지 모두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런 행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행복했던 꿈은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 땅을 밟은 순간 끝이 났지만 내 기억으로 내적 행복은 계속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주인님은 바삐 업무를 보실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를 방으로 부르셨다.

그 뒤의 일은 내 존재의 이유와 충실한 강아지 노릇이었다.
가슴을 집요하게 만지다 천천히 내려간 손은 오랫동안 하지 않아 뻑뻑해진 뒤를 풀어주는데 시간을 소모했다. 다른 손과 입으로는 내 머리카락을 잡고 키스를 하거나 이제는 다 사라져 깨끗해진 목에 자국을 남겼다. 젤을 듬뿍 부었는데도 잘 풀리지 않자 주인님은 어느 정도 풀린 상태로 집어넣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 악.. 으으.. ”
“ 힘 풀어. ”
“ 흐윽.. 아으... ”


하지 않던 기간 동안 좋았지만 그것과 비례로 고통은 찾아왔다. 나도 구를 만큼 굴렀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손님들이 내게 말했던 것처럼 내가 명기인 것인지 아니면 주인님이 큰 것인지 언제나 이 행위는 내게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즐겁게 놀고 받은 만큼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것은 이거였다. 그렇게 늦은 밤이 되도록 아래에서 구르며 손을 꽉 쥐어야 했다.



늦은 밤까지 제대로 못 자고 굴렀더니 오랜만에 허리가 쑤셨다. 이게 내 현실이었다. 이 공간이 내가 지내는 곳이고 내 행동반경이다.


“ .. 윽.. ”


안에 있는 것은 어제 다 빼주신 것 같았는데 배가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나도 익숙한 주인님의 방을 나서자 오랜만에 보는 선생님이 주방에 계셨다.


“ 일어나셨어요? 오랜만이네요. ”
“ 선생님..? ”


중국에서 지훈이에게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그의 모습이 조금 달라 보였다. 저렇게 주방 일을 하고 있는 착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일을 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과거가 좋지 않나 싶기도 했고 왜 굳이 귀찮을 텐데 나를 가르쳐주러 여기까지 오시는지 싶기도 했다. 그 무엇 하나 답을 얻을 수 없겠지.


“ 재미있었어요? ”
“ 네.. 전 여행은 처음이라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즐거웠던 건.. 마지막으로 언제 그렇게 즐거웠는지 기억도 잘 안 나요. 다 처음 보고 처음 해보는 거였어요. ”
“ 재미있었겠네요. ”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 말이 막 나오기 시작했다. 별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중국에서 몰디브에서 뭘 하고 무엇을 보고 먹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솜씨가 없어 지루했을 텐데 그는 그런 내색 하나 없이 내 이야기를 쭉 들어주었다.


“ 좋았으니 다행이네요. 시우 씨 이건 선물이에요. ”


그는 즐거운 여행을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을 했다. 내 앞에 들여 밀어진 것은 작은 꽃다발이었다. 졸업식 날에도 받아보지 못한 꽃다발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받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계속 내밀고 있었기에 일단은 꽃다발을 받았다. 꽃의 달달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 이건 왜.. ”
“ 아, 새해도 지났고 한 살 먹은 거 축하해드리려고 꽃다발 사 온 거예요. 이번 연도에는 복 많이 받고 행복한 일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


새해 축하를 받은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 어.. 그.. ”
“ 아, 울지 마세요. ”


졸업식 날 같은 반 아이들이 부모님께 꽃다발을 받는 것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친구들에게 서로 졸업 축하한다 말하며 사진을 찍고 꽃다발을 교환하는 것이 그때에는 부러웠다. 꼭 꽃을 받고싶은 것은 아니었다. 축하의 말 한 마디라도 아니, 그냥 누군가 와주기만 해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미리 아버지께 조심히 말을 꺼내봤다. 몇 번이나 말을 해봤지만 아버지의 기분만 건드렸을 뿐 부정의 답변과 함께 내게 돌아온 것은 익숙했던 아버지의 폭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졸업식 참석은커녕 지옥 같은 곳에 팔렸다.

새해에는 떡국을 먹는다던데 배를 굶주리던 그 당시의 내게 그런 떡국과 꽃다발과 축하의 말은 모두 사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이 조금 세어 나온 것 같다. 이건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라 기뻐서 흘린 감동의 눈물이었다.


“ 감사해요.. ”
“ 아, 생일이 언제예요? ”
“ 10월이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
“ 음.. 제가 전에 알아봤던 것 같은데... 아 10월 28일. 이번 연도 운세 봐드릴게요. ”


요즘에는 쉽게 접해볼 수가 있어서요. 선생님은 핸드폰을 보며 내게 천천히 읽어주었다.

다양한 변화의 계기가 찾아올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슈가 생겨납니다. 물꼬가 트일 듯하면서도 트이지 않는 상황이 있겠습니다. 마음속에 답답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복수불수,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합니다. 이번 연도에는 조심히 행동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사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니 조급해 하거나 다급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생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더 크게 성장할 수 기회가 될 수 있는 한 해가 됨을 뜻하기도 합니다. 올해를 잘 다져놓으면 곧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좋은 기운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음.. 운세는 운세일 뿐이에요. 재미로 읽고 넘어가는 거죠. ”


이번 해에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건가. 한고비를 넘어가면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려나.



“ 제가 일이 있어서 잠깐 들린 거라. 죄송한데 먼저 가볼게요. ”
“ 아... 네. 조심히 가세요.. 선생님. ”
“ 다음에 봬요. ”


선생님이 가고 혼자 남은 집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 내가...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걸까... ”


난 행복해도 되는 걸까. 즐겁고 행복하고 기꺼운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것일까. 감히 나 같은 게. 부모님의 인생은 모조리 망치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민폐에 쓸모없는 사람이었던 내가 감히 행복해져도 되는 것일까. 잠깐 느끼고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 아아.. ”


나는 여전히 과거에 속박되어있는 모양이다. 여전히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고 머물러있다. 이제는 무섭다. 내가 과거를 잊는다면 내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것을 쓸 용기도 없을뿐더러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조그마한 행복에도 무서워하고 피하려고만 하는데 내가 감히 과거를 벗어난다면 나란 존재에서 어둠을 벗겨내면 뭐가 남을까.

나는 나 스스로를 어둠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머리가 아프다.



그날 이후로는 매우 평범하고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나는 아직 여행지의 추억에 빠져있었지만 동시에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백날 해도 결국 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마 버림받을 때 뿐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하루빨리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 애교가 부쩍 늘었네. ”
“ 네? ”


주인님 품에 안겨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였다. 피곤함에 포근한 품으로 자연스럽게 머리를 비빈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내가 자연스럽게 안기게 된 거지.

낯설면서도 이런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 두려웠다. 점점 강아지처럼 변하는 것 같다. 날 만져주는 손길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모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반응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더 만져달라는 듯 주인님께 더 매달리고 안기고 그랬던 것 같다.

잠을 자는 것도 예전에는 관계 후에 기절해서 어쩔 수 없이 주인님 방에서 잠에 들었다면 요즘에는 관계 후에 꼭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예전에는 힘든 몸을 이끌고 억지로 씻은 후에 잠에 들었지만 이제는 대충 정리를 하고 주인님 품에 안겨 잠에 들고는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지.


“ 졸려? ”
“ 아.. 네에.. 피곤해요.. ”
“ 자자. ”


주인님은 자연스럽게 안겨있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자신의 방으로 갔다. 침대에 눕혀주자 더 미친 듯이 잠이 쏟아졌다.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 복잡하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어.


“ 멍멍아. 일어나야지. ”


주인님은 내게 가벼운 키스를 해주었지만 나는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자 나를 억지로 끌어다 앉혔다. 나는 비몽사몽 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눈을 비비며 주인님을 바라봤다. 눈이 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다.


“ 주인님.. 나가세요..? ”
“ 오늘은 일찍 올 거다. 다녀와서 놀아줄 테니 기다려. ”


또 이상한 기구를 구입하신 것은 아닐까 무서웠다. 주인님의 놀아준다는 기준은 분명 평범한 놀이가 아닌 밤에 하는 관계일 테니까. 예전보다 횟수가 줄어들었으니 싫다며 투정을 부릴 수도 없다. 애초에 내가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기는 하다.


“ 네.. 다녀오세요.. ”
“ 오늘부터는 지하실 근처로 가지 마. ”
“ 네. ”


주인님이 나가고 나는 침대에 다시 엎어졌다. 피곤해. 며칠간 안 했으니 오늘 밤은 아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아침을 대충 먹고 낮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을 나섰다. 음식을 대충 먹고 꼭지가 다 따져있어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딸기를 하나 두 개 집어넣고 있을 때 즈음에 이번에는 형이 집에 왔다.


“ 도훈이 형. 안녕하세요. ”
“ 시우 씨 오랜만이네요. 잘 놀다 왔어요? ”
“ 네.. 형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 그러게요. 아쉽기는 한데 다음에 또 가면 되죠. ”


내가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사람 앞 길은 모르는 법이니까.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생활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법이다. 엄청 행복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 하아.. 죽겠어요. 시우 씨 살려줘요. ”
“ 형.. 무슨.. 일이세요? ”
“ 한국 돌아온 후부터 매일 3시간밖에 못 자고 병원 생활 중이에요. 지금 일 때문에 간신히 빠져나오기는 했는데.. 으.. ”


아버지 호출만 아니었으면.. 형은 피곤한 듯 식탁에 엎드리며 중얼거렸다. 병원 일이 바쁜가 싶었다. 형이 인턴으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저리 바삐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병원에 응급환자가 늘었다던가 하겠지.


“ 형 조금 주무세요. ”
“ 하아.. 일해야 돼서 잘 시간도 없어요. 시우 씨 저 커피 진하게 좀 내려주세요. ”


형이 쓴 커피를 먹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어봤지만 샷 두 번 넣고 물 조금만 넣어서 타 달라 했다. 십 분만 눈 감고 있을 테니 커피가 다 되면 깨워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도훈이 형의 저런 모습을 보니 조금 낯설었다.

나는 커피를 천천히 내렸다. 주인님께 타 드리느라 배웠기에 쉽게 내릴 수 있었다. 고소한 커피 향이 점점 여기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 냄새 좋다.. ”


커피는 빨리 내려졌지만 형의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심히 그를 깨웠다.


“ 형.. 도훈이 형.. 일어나세요. ”
“ 하아아.. ”


형은 눈을 뜨자마자 앞에 있는 따뜻한 커피를 한입 크게 넘겼다. 커피 한 모금으로는 피곤을 전부 물리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 내가 이 짓을 또 하게 될 줄이야.. 성인 되면서 끝날 줄 알았는데. ”
“ 네? ”
“ 아니에요. 저희 아버지가 좀 극성맞아서. 아 피곤해. ”
“ 단 것 좀 드실래요..? ”
“ 뭐 있어요? ”
“ 음.. 과일이랑 케이크랑 마카롱이랑.. 젤리도 좀 있어요. ”
“ 그럼 케이크랑 젤리도 좀 주세요. 이따 일하면서 먹게. ”


나는 냉장고에서 얼른 조각 케이크를 꺼냈다. 형은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대충 먹기 시작했다. 저러다 곧 잠들 것 같았다. 나는 선반에 있는 몇 개 남지 않은 젤리를 꺼내서 형에게 건넸다.


“ 아아. 고마워요. 좀 살겠다. ”


형은 기지개를 하며 내게 말했다. 얼마나 커피를 달고 지냈던 것인지 형에게서 커피 향이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다크서클도 진하게 내려와있고 아무래도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는데 형은 바쁘다며 커피 한 잔을 더 내렸다.


“ 아, 시우 씨 웬만하면 지하실 근처로 오지 마세요. ”
“ 네? ”
“ 제가 시우 씨 좋아하니까 하는 말이에요. ”


그럼 이만. 형은 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 걸까.







복수불수(覆水不收)
1.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한다는 뜻  
2.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어찌 할 수 없음을 이름  
3. 다시 어떻게 수습(收拾)할 수 없을 만큼 일이 그릇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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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길들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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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4 01:07 | 조회 : 2,492 목록
작가의 말
최윤형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피드백은 댓글에 남겨주세요. 오타 발견 시 댓글에 남겨주시면 확인 후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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