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시모사이산의 호랑이 전하

두 섬중에서도 '작은 악마의 섬'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얼음과 눈의 산. 시모사이 산이 존재하고.
시모사이 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왕국으로서 대륙과 다르게 봉인 된 어둠의 왕들의
힘을 가진 왕조가 존재한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세계의 시작 이후에 단 한번도 녹지않은 만년설과 존재가 밝혀지지않은 몬스터들에 의해
시모사이 왕국을 실제로 본자는 없다. 시모사이 국민도 대륙에 나온적이없다.
천연의 요새로 다른 왕국과 교류도 하지 않고 문헌에서만 존재하는 이 왕국이 존재하는지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의 뜨거운 감자다.



[세계의 정의: 미지의 왕국]












차가운 눈보라는 그칠 줄 모르고 여행자의 얼굴을 핡퀴었다.
거적대기로 보이는 로브를 눌러 쓴 여행자는 눈보라에 흘러내린 옷깃을 여미며 숨을 내쉬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찢는듯 매서운 냉기가 들어와 그는 몸을 떨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기서 죽는건가..'

왕명을 수행하지 못한채.
기사는 이곳에 자신을 보낸 주군의 뜻은 잘 알고 있었다.
죽으라는 것이겠지.
자신의 주군은 항상 기사를 제거 할 생각만을 하셨고, 지금은 딱 적기였으니 말이다.

'작은 악마의 섬으로 가서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전설의 보물을 찾아와라.'

왕실의 기사로서 그가 받은 명은 수행 할 수 없는 명이었다.
그렇다고 명을 받들지 않을 수도 없었다. 기사는 왕명에 따라 소용돌이 치는 바다를 건너 '작은 악마의 섬' 이라고 불리는 이 곳까지 왔다.
거친 파도에 배는 전복 되었고, 같이 왔던 수행원들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주변에 떠다니던 배의 잔해를 붙잡은 채 기사는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쳤다.
해안에 다달아 모래 사장을 밞았을 때 기사는 탈진 해서 쓰러졌다.
나무에 달린 생전 처음보는 열매를 따먹으며 기사는 독이 든 과일이라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과즙을 벌컥 들이켰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지. 세 개나 따먹었음에도 기사의 몸엔 이상이 없었다.

멀리 보이는 하얀 산을 올려다 보며 기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죽이려는 왕이든 뭐든 주군의 명이었다.

찾으라 명하셨으니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주군이 명하신 보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산을 향해 걷기 시작한지 3시간이 지났을 무렵 기사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런 추위가 기다릴 줄 알았으면 수행원들과 함께 그 바다에서 목숨이 끊어졌다면 좋았을텐데...'

지저분한 로브가 어깨에서 미끌어 졌다.
눈 속에 파묻혀 죽어 있던 시신에서 벗겨 낸 로브는 더럽고 구역질 났지만
기사의 몸을 파고드는 추위를 어느정도 막아 주었다.

눈보라 속을 해베이길 7시간.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건너온지 13시간.
왕궁을 떠나온지 이틀이 되었을 무렵.

기사는 결국 쓰러졌다.

발가락은 매서운 눈에 이미 잘려 버린것 처럼 아팠고.
주린 배는 더이상 요동치지도 못하고 아렸다.

'결국 주군의 뜻대로 죽는구나..'

기사의 흐릿한 눈이 감겨 갈 때. 시끄러운 눈보라 속에서 소복 거리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짐승의 발이 보인듯도 하다.

얼어죽어 먹히거나. 먹혀죽고 얼거나 둘 중 한가지겠군.

기사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리는 누가 두드리는 듯 울렸고 눈은 아무리 노력해도 떠지지 않았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까지 어디 한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뼈마디 하나하나. 파고든 고통에 기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한참을 더 씨름하고서야 겨우 눈 만 뜰 수 있었다.

흔들리는 시야를 정리하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자 두툼한 이불과 가죽에 폭 쌓여 침대에 누워있었다.
침대 역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듯. 반듯하게 놓인 손바닥에 짐승 털의 부드러움과 거칠함이 느껴졌다.

어두운 방엔 벽난로의 불 빛 뿐이었다. 화려한 금실과 짐승의 가죽, 붉은 비단으로 장식 된 방은 화려하고 난잡했으며
아늑했다. 기사는 억지로 몸에 힘을 주고 허리를 일으켰다. 허리가 움직임에 따라 관절 하나하나에서 우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살았다는 안도보다 어떻게 자신이 살았는지가 더 궁금했다.

눈을 감기 전 보았던 하얀발은 정확하진 않지만 짐승의 발이었다.
혹여 주인 있는 짐승이었나? 짐승의 주인이 근처에 있어서 자신을 발견하고 살려 준건가..
여전히 굳어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굽혀 보며 기사는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깨어나셨군요."

커다란 나무문이 열리고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온 여성이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하얀 모피를 걸친 중년의 여성은 쟁반을 침대의 협탁에 내려놓고 기사의 손을 잡았다. 가늘고 거친 손이 기사의 손을 쓸며
어디 잘못된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기사는 얼떨떨함에 아무말도 못하고 그녀가 하는 양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여성은 그런 기사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고는 침대 구석에 접혀 있던 모피 이불을 기사의 어깨에 감싸주었다.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저는 이 성의 하녀장 하이넨이라고 합니다. 도통 깨어나질 않으셔서
걱정했답니다. 온 몸이 동상이에요. 좀 더 쉬시며 식사를 하세요. 그 후에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시면 몸이 나을겁니다."

"여..여기가 궁입니까?"

기사는 쩍쩍 갈라져 아프고 답답한 목을 붙잡고 하이넨에게 물었다.
전설에서만 존재 하는 줄 알았던 시모사이산의 왕궁이 실존 한단 말인가. 살았다는 놀라움 보다 왕궁의 존재가 더욱 놀라웠다.

기사의 생각을 간파한듯 하이넨이 쟁반에 있던 따뜻한 음료를 건내주며 웃었다.

"네. 시모사이 산의 왕궁입니다."

"..전설인 줄만 알았는데..."

기사가 손바닥을 덮혀주는 잔을 꼭 쥔채 중얼 거렸다.
그렇다면 주군이 찾아오라 명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보물도 있을 수 있다.
한참을 생각하던 기사는 퍼뜩 고개를 들고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의 말도 전하지 않다니!

"생명의 은인께 감사의 인사도 올리지 않다니!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페오. 살려주신대다 이렇게 보살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하이넨."

"어머! 감사의 인사는 제게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페오.
당신을 구해주신건 제가 아닌 이 성의 주인이신 전하시랍니다."

"시모사이의 전하께서 저를.."

"네! 전하께서 사냥을 나가셨다가 눈 속에 파묻힌 당신을 발견 하셨지요.
참 다행이에요.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했으니까."

페오는 멍한 표정으로 하이넨의 웃는 얼굴만을 보고있었다. 시모사이 왕국의 존재만으로도 놀라운데
자신을 구해준것이 왕이라니!! 세상에. 자신이 죽은건 아닐까. 페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건 죽어서 꾸는 꿈일지도 몰라.



식사를 하며 들은 하이넨의 설명에 의하면 시모사이 왕국 경계지역에는 눈보라가 엄청 불어대는데
신기하게도 경계 내부로 들어올수록 눈보라가 약해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왕국내에도 눈이 아예 없는건 아닌지라
시모사이 왕국의 특이한 법중 하나가 눈 속에서 조난자를 발견하면 무조건 구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것이다.
시신을 발견 해도 장례를 지내줌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물론 외부에서 누군가 오는건 매우 드문 일이랍니다. 온다해도 보통은 저 눈보라 속에 지쳐서 죽어버리죠."

하이넨의 설명을 들으며 시모사이의 왕은 국법을 매우 잘지키는 정직한 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모시는 주군과는 다르게..페오는 입 안이 까끌해져 음료를 한참 머금고 있다 삼켰다.

하이넨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몸의 고통도 사라지고 조금은 움직일 만해졌다.
하이넨은 처음의 인자한 얼굴로 페오를 욕탕으로 보이는 곳에 밀어넣고는 아래 시녀들인듯한 사람을 시켜
목욕시중을 들게했다. 이런 호사가 처음인 페오는 부끄러움에 그녀들을 나가게 하려 했지만
그녀들의 억척스러운 손길과 치료를 병행한 목욕이라는 하이넨의 말에 포기하고 전문가들의 손에 몸을 맡겼다.
길고 긴 치료 겸 목욕이 끝나고 노곤한 몸으로 가운을 걸친채 욕탕을 나왔을 때 페오는 몸을 맡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손끝과 발끝의 찌르는 통증도 마디가 쑤시던 관절도 편안해 졌다.

"곧 정무가 끝나신 폐하께서 오실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조난자를 구한 구조자는 조난자를 책임져야하니까요.
의복을 갖춰입으시죠.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침대 한켠에 준비되어져 있는 옷은 자신이 살던 서대륙 헤스파왕국의 의복과는 꽤 달랐다.
가벼운 천에 실용성을 위주로 통이 큰 바지를 입던 서대륙 의복과 달리 시모사이 왕국의 의복은
몸에 딱 붙는 디자인이었다. 하얀 바지는 페오의 다리에 꼭 맞았고 끈으로 장식 된 셔츠 역시 허리를 따라 라인이 잡혀있었다.
추운 왕국 답게 모피를 걸치는건 기본인지. 목과 등을 감싸는 부드러운 모피를 걸치고 나서
옷을 매만져 주던 하이넨은 만족한건지 흐뭇하게 웃고는 한걸음 떨어져 페오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몸에 착 감기는 옷이 영 불편해 이리저리 팔을 틀어보는 페오를 보며 그녀가 웃었다.

"딱붙는것 같지만 잘 늘어나는 재질이니 움직임에 불편함은 없을겁니다."

자신의 의중이 간파당한 페오는 멋쩍은듯 뒷목을 쓰다듬다 손을 내렸다. 영 불편하지만 불평 할 수도 없으니 참을 수 밖에.
그래. 그 눈 속에 죽는것에 비하면 몸에 들러붙은 옷같은건 힘든 축에도 못꼈다.

하이넨이 페오의 목장식을 바로 잡아 주며 모피의 먼지를 털어줄 때 나무문이 한 번 더 열렸다.
몸을 돌려 허리를 숙이는 하이넨의 움직임에 잘 훈련 받은 기사 인 페오는 그녀를 따라 허리를 숙였다.

"레라지에 시모사이 1세 전하 드십니다."

우렁찬 소개와 함께 터벅이는 부드러운 걸음소리가 들렸다. 눈보라 속에서 들었던 소리와 흡사함에 페오는
무례도 잊은채 고개를 들었다.



이 섬은 도착 하기 전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소용돌이 치는 바다. 처음보는 열매, 눈보라, 전설의 왕국의 실존.

그리고 정말 끊임없이 사람을 놀래켜 주고 있다.

페오의 눈 앞에 시모사이 전하라고 소개 된 분은 거대한 덩치에 하얀 털을 휘날리는 호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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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7-15 12:53 | 조회 : 3,509 목록
작가의 말
찬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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