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숨겨진 땅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소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름답기도, 놀랍기도 하고 기력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소년은 제국의 고귀한 황태자였다. 죽음 앞에 평등한 어린 생명이기도 했다. 소년은 명백히 죽어가고 있었다.

다리가 시체처럼 굳어졌을 때서야, 이 땅이 나타났다. 마른 가지가 뒤덮인 새까만 겨울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남색 하늘. 여름 특유의 풀바람이 불어왔고, 황자는 홀린 듯 그 땅에 들어섰다. 얼었던 몸이 녹으며 피가 돌았다. 그 덕에 찔끔거리던 피가 쏟아져 내렸다.


소년의 피냄새를 맡은 것은 둘. 죽음과, 숨은 땅의 주인.

그 중 먼저 도착한 것은…


“…새끼는, 먹을 수 없는데..”


굶주린 땅의 주인이었다.

.

.

.

“누군데 갑자기 나타나서 질질..”


소년이 힘없이 빈정거렸다. 기대 누운 나무 그림자에 인영 하나가 소리 없이 섞이나 싶더니, 웬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색이라면 미색이었다. 부드러운 검은 머리칼 아래 시리도록 파란 하늘색 눈과 핑크빛 입술이 있었다. 제국인과 달리 여린 선으로 동그랗게 솟은 코와, 하얗지만 그 결이 다른 달빛같은 피부 또한 시선을 옭아맸다.

그러나, 가는 동공. 입술 새로 새는 핏내. 드러난 송곳니. 사나운 기색. 소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요사스런 생김새와 기색을 품고 드러난 정체에 비해, 하는 짓이 볼품 없어 맥이 빠지긴 했지만.

놈은 홀쭉한 뱃가죽을 서럽게 부여잡더니, ‘새끼는 먹을 수 없는데..’하며 영문 모를 소리를 끝으로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는 중이었다.

소년의 빈정거림에 뒤늦게 놈이 고개를 들었다. 눈을 마주치는가 싶더니,


“심지어 다쳤어. 말랐어. 어린애들은 다 통통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불쌍해, 비루 먹었어..”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며 거침없이 제국의 황태자를 폄하했다. 놈을 보며 소년은 가벼이 생각했다. 보다보니 우는 꼴이 제법이라고, 어쩌면 저는 남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나이 열 셋에 맞지 않는 다분히 조숙한 감상을.

그대로 잠시간 감상하던 소년이 사르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한 두시간 안에 죽을 것 같으니까, 계속 그렇게 성실하게 처울고 있어, 응? 명색이 황태잔데 가는 길 울어줄 이 하나는 두고 죽어야겠으니까.”


소년의 말에 놈이 시선을 부딪혀왔다. 놀란듯 두 눈이 둥글게 커지더니, 별안간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예, 예쁘다…”

“..아하?”


우습게도, 놈도 나름의 감상을 마친 모양이었다. 놈은 저 혼자 손부채질에 도리질에 법석을 떨더니, 슬그머니 다가왔다.


“죽으려고?”

“그걸 내가 정할 수 있어보이니?”

“겨우 이깟 상처 때문에?”

“너도 뱃가죽에 구멍 하나 뚫어줄까?”

“-못된 아기.”

“뭐?”


기똥찬 단어선택에 얼이 빠져 있자니, 놈은 소년의 허리춤에서 칼을 슬금슬금 뺏어 멀리 던져놨다. 한심하게 바라보며 비웃음을 짓던 소년은, 다음으로 이어진 말에 무표정을 되찾았다.


“선택권이 없다니.. 줄게. 너, 살려줘?”


풀바람에 놈의 검은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훤히 드러난 하늘색 눈동자에, 황금빛 이채가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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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1-04 01:35 | 조회 : 92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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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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