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갈수록 최악임을 깨닫는

오늘 하루는 정말 극적인 하루였다.

4월 2일, 봄날의 예쁜 오전이었다.
아침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 머리도 아프고 잘못 잤는지 온몸이 쑤신 데다가 방 안 공기는 눅눅해 기분이 나빴다.
베란다 커튼을 걷으라 시켰다.
충동적으로 커튼 걷으러 가는 길에 베란다 방충망까지 열고 상쾌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건조대 위의 빨래의 것인지 벚꽃의 향인지 모를 달큰한 향기와 착각 같은 따스한 햇살의 향, 아침 공기 특유의 코가 아릴 정도로 상쾌한 향이 섞인 냄새였다.

눅눅한 방 안의 냄새와 대조되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향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 그런 강렬한 아침이었다.

오후는 이렇게 위로, 위로 솟구친 기분이 다시 진창으로 처박혀 버린 물속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뭐라고 그러는지 엄마가 알기는 할까?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진짜 내가 쓰레기 같지만 엄마가 미친 것 같다.
4년을 알고 지낸 친구다.
6학년때, 소심한 성격에 아는 친구도 없어 묘하게 반에서 고립된 상황에서도 다른 반임에도 날 계속 챙겨준 애다.
보통 1년이라도 지나면 어색하고 서먹해져 연락이 끊기기 마련인데, 그 애가 계속 먼저 다가와 준 고마운 애다.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애가 없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엄마는 만나본 적도 없는 애를 엄마는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질 않는, 날 뒤에서 조종하며 날 진창에 처박으려는 속셈을 지닌, 그래서 일부러 내게 접근한 불량식품 같은 애라며 절교하라 하신다.
말이 되는가?
어이가 없어 근거가 있냐 물으니,(최대한 공손히)
처음엔 그냥 마음에 안 든다 하셨다.
"내 마음에 안 들어, 그거면 끝이야ㅡ" 하시더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가 걔한테 가정사 관련된 고민 상담 하는 것을 들었단다.
그런데 나는 맹세코 걔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화를 받으면 복도 전체에 소리가 웅웅 울리기에, 보통 카톡으로 연락하며 굳이 받는다 해도 응, 몇 신데, 나 엘리베이터 앞이야 등 지극히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예의바른 말만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솔직히 예상은 했다.
몇주 전 나한테 위층에서 여자들이 내 옆에 누굴 붙였다며, 그게 ##이라 하는 소릴 들었다며 내게 쏘아붙였다.
동생도 들었고, 오늘까지도 기억한다 했다.
걔 아니었음 난 내가 미쳤는 줄 알았을 거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는 자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네?

어이가 없어 몇 번 버릇없이 근거가 있냐며 캐묻다, 엄마가 중간에 말을 끊고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쳐서 대답을 강요하는 엄마에게 알겠다고, 끊겠다고 했다.


요즈음 엄마가 지친다.
쉬는 시간에 문제집을 풀라며(반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며 쥐여준, 푸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그런 문제집) 반 애들로부터 다시 나를 고립시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널 위해서야. 저기 어떤 미친년 자식새끼가 껴서 니 인생 엿되게 만들려는 건지 넌 모르잖아? 넌 아직 분별력이 없으니까 엄마 시키는 대로 해. 그냥 중학교 땐 혼자 지내. 세상은 넓고 친구 같은 건 나중에 만들면 된단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그런데 애초에 위층 소리가 그렇기 잘 들릴 리도 없으며 엄머거 소리거 들린다 할때 난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하는 건 아빠도 동생도 마찬가지다.

돌아버릴 것 같다. 급격히 피곤해졌다.
어디든 이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0
이번 화 신고 2022-04-03 00:49 | 조회 : 505 목록
작가의 말
stande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