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밥만 먹자고

깜빡- 눈을 뜨자 시린 달빛이 나의 방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바람소리와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소리. 시끄러웠다. 좀 조용히해주지- 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 위에 웅크려 있던 중 난데없이 큰 소음이 들려왔다.

쾅-

문을 박차고 들어온 흑발과 황금빛 눈을 가진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잠이 덜 깨 그저 잘생긴 얼굴이 보여 넋을 놓고 보고있자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와 칼을 목에 겨눴다. 온몸과 칼이 피 투성이라 피비린내가 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윽..."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에겐 들린 듯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이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선 툭 내뱉었다.

"얌전히 항복한다면 아프진 않게 보내주지."

"뭐?"

.
.
.

... 씨발. 나는 순간 정신이 확 깼다. 어디선가 들어본 저 말투, 그리고 익숙한 저 동작…

"뭐? 유언이 그것 뿐인가."

아니아니아니 잠깐만요 선생님. 이번 생은 가늘고 길게 살고 싶습니다만- 이미 늦은건지 그는 시선을 나의 목에 두고 팔을 위로 올리는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아래로 내리려는 순간-

"잠깐!!!!!"

나는 크게 소리쳤다. 그것도 엄청 크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도 사람은 사람인 듯 바로 앞에 있는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멈칫했다. 나 정도는 어느 때나 쉽게 처리할 수 있을거다, 이건가? 조금 울컥했지만 뭐라할 처지가 아니기에 빠르고 간결하게 말했다.

"밥!! 밥만 먹게 해주면 죽이던 말던 상관 안 쓸테니까..."

왜 갑자기? 밥 이야기를 꺼내냐 싶을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 배가 고팠다. 죽을 땐 죽더라도 밥 한끼 정도는 먹어도 되잖아? 나는 슬금- 그의 눈치를 살폈다.

"..."

그래, 솔직히 말해서 그는 엄청 어이없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런것이, 그 누가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밥을 먹겠다는 말을 꺼내겠는가. 뭐든 할테니 살려달라던지, 죽이지만 말아달라던지, 제발 자비를..! 아, 다 똑같은가. 하여튼 이런 말들만 들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달랐다. 무려 몇십번의 죽음을 겪어본 결과, 이제는 무섭지 않다. ... 그래, 솔직히 조금 쫄리긴 하지만. 그래도,


"밥만 먹고 죽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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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2-19 00:04 | 조회 : 96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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