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별

"나 진짜 무서웠어... 저런 사람이 경찰을 해도 되는 거 맞아..?"
"뭐... 요즘 경찰이 다 그러지. 이제부터 경찰이 따로 어디 가자하면 절대 따라가지 마. 아니면 다른 경찰을 동행해서 데려가든가... 여자 경찰이면 더 좋고."

그는 말 끝을 흐리며 커다란 손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는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넘겼다. 그 모습까지 너무 멋져서 다시 한 번 너가 없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만약 너가 날 떠나면? 그러면... 안돼는 거잖아. 그치?

"왜... 오늘 갑자기 갔어?"
"아, 일이 있었어. 오늘 조금 바빴거든..."
"그래? 그래도 너가 와서 다행이다. 나... 너가 안 왔다면 무슨 꼴 당했을지 모르잖아? 아무튼 정말 고마워, 맨날 너한테 신세만 지네? 나도 너한테 뭐 하나 해주고 싶은데... 뭘 해줘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안 해줘도 돼. 방금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의 말에 가슴 한 켠이 찡해졌다. 사랑 받는 기분이 이런 걸까? 전혀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 기분을 잃고 싶지 않다.

붉게 물드는 우리의 눈 또한 아름답지 않아?

*

"들었지?"
"어떤 거?"
"리아첼이 전염병에 걸린 거."
"아~ 당연하지. 그 여자 부모가 걸려서 옮겼다며?"
"응, 그거 때문에 우리 저택은 난리야. 평소에 창고에서 꺼내지도 않던 십자가나 꺼내고... 공작은 뭐하는 지 알아? 성당에 다닌다니까? 풉, 자기 빼고는 아무도 안 믿는다던 그 공작이 말이야."
"푸흐... 그건 좀 웃기네."

그와 내가 걸을 때마다 바닥에 깔려있는 나뭇잎들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와 여우 소리가 들렸다.

"너 요즘 페코 봤었나?"
"페코? 그 여우 말이야?"

방금 여우 우는 소리는 페코의 울음 소리였다. 오랜만에 들리는 페코의 울음 소리에 반가웠다. 요즘 잘 지내고 있을까? 몇 주 전까지는 내 곁에 머물다가 떠나버린 페코는 붉은 여우였다. 페코는 내가 어릴 때부터 곁에 있던 존재였는데... 어느 날, 날 떠나버렸다.

"페코? 페코?"

산책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페코의 이름을 불렀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붉은빛 여우가 나타났다.

"페코? 아..."

페코인 줄 알고 눈을 찡그려 가까이 보았지만 페코와 다르게 오른쪽 귀에 검은 털이 없다. 여우를 돌려보내고 다시 돌아왔다.

"왜 다시 돌아왔어?"
"페코가 아니었어."
"그래? 완전 똑같던데?"
"귀에 검은 털이 없어, 페코는 있었잖아."

그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어깨를 한 번 들썩이고는 조금 더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 그 여자 소식 들었어?"
"누구? 아, 다이애나?"
"응, 그 여자 경찰서 갔더라?"
"흐음? 갑자기 왜 경찰서에 갔대?"
"몰라, 풍문으로는 살인 용의자로 지목됐다나 뭐라나..."
"용의자? 뭐... 우리한테는 잘된 일 아니야? 딱히 손 쓰지 않아도 처리할 수 있잖아. 요즘 왕족들이 점점 힘을 주고 있어. 이번에 다이애나를 사형 시킨다면 그건 평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테지. 이걸 왕족들이 포기하지 않을리가 없잖아?"
"그렇지, 근데 그 멍청한 신하들을 그걸 제안할까?"
"응, 그래서 내일 내가 갈거야."
"내일? 너무 섣부른 거 아니야?"
"아니야, 우리한텐 다이애나를 처리하는 게 먼저야, 우리는 다이애나를 처리하고 왕족에선 평민들의 본보기가 되고. 아무한테도 손해가 되지 않을거야."
"그렇네, 아무튼... 내일 나도 같이 갈게. 공녀 하나 가는 것보단 후작 하나라도 따라붙는 게 좋지."
"그래, 내일 보자고."

*

"안녕하십니까, 여왕님. 서남부의 에밀리아 프뢸리히 공녀입니다. 오래간만 이네요."
"아, 프뢸리히 공녀군요, 옆엔..?"
"아, 네. 니콜라이 윌슨 후작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겐 어쩐 일로 오셨나요?"
"여왕님, 요즘 왕권이 점점 약해지고 평민들의 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진압군에게 지원을 하고 있긴 하나... 시민군이 줄어들 기미 자체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것이 있습니다."
"오, 그렇지요. 하지만 갑자기 시민군을 제압한다든가... 진행을 하면 왕권에 더 큰 타격이 갈텐데..."
"아닙니다. 시민군은 제압하지 않고 왕권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죠. 이번에 카밀라 다이애나라는 평민 여자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그녀의 명함과 지갑이 그 증거지요. 증거들이 그녀가 범인이라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증거들을 바탕으로 그녀를 사형 시키는 겁니다. 뒷조사를 좀 해보니 그녀는 시민군에 거의 70% 정도의 물자를 지원하고 있더군요. 근데 만약 그 물자가 끊긴다면 시민군은 무너질 게 뻔하죠. 그녀는 가족도 친구도 없어 죽고 나서 물자를 대신 전달할 사람도 없고요."

"과연... 프뢸리히 공녀다워. 정말 영리하군. 정말... 혹시 로지아레즈라는 사람을 아나? 마치 그 같아. 정말 100년에 한 번 나올 천재로군. 그 의견 받아들이겠네. 전적으로. 만약 성공한다면 그 만큼의 보상을 주도록 하지."
"황송합니다. 보상은 바라지 않으나... 카밀라 다이애나라는 여자를 완벽하게 처리해주십시오."
"물론이지."

정말 완벽한 계획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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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7-16 22:14 | 조회 : 442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