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카밀라 다이애나

(남자 시점으로 가겠습니다)
"프하!"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미동 하나 없었다. 맥을 짚자 아주 약한 맥박이 느껴졌다. 코에 손가락을 대보니 숨이 약하게 느껴졌다.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대체 왜 뛰어내려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조금 망설여졌다. 무엇보다 이 여자는 처음 보는 여자다. 이 여자를 위해서 이럴 일 또한 없다. 하지만 왜 인지 모르게 그녀에게 이끌렸다. 일단은 탱크를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그녀를 데리고 어떻게 빠져나갈지 막막했다. 그녀를 깨우기라도 해야하나. 그녀는 맥이 빠진 상태였다. 여기서 깨우면 그녀의 상태만 더 나빠질 것이다. 일단 그녀를 한 쪽에 고정해 놔야 했다. 일단 탱크 안 쪽에 걸려있는 고리에 허리띠를 묶어 그녀가 다시 가라앉지 않게 고정해뒀다. 그리고 탱크를 빠져나온 뒤,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흐읍!"

힘을 주자 그녀가 쉽게 올라왔다. 생각보다 굉장히 가벼웠다. 그녀를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혀두고 탈의실로 향했다. 그녀의 옷은 흰 원피스였다. 하지만 오래 입었는지 구석구석에 낡아보이는 흔적이 남아있었다. 일단 그녀의 옷과 겉옷을 챙기고 자켓까지 챙긴 뒤,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화학물질에 뛰어들어? 뭐, 자살 시도라도 한 거야?"
"..."
"말 좀 해봐. 그리고 옷 가져왔으니까 옷 입어. 네 자켓도 가져왔으니까 얼른 입고 나가."
"봤죠?"

그녀가 뒤돌아 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지었다.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뭘 봤다는 거지? 네가 자살 시도라도 한 거?"
"자살 시도라뇨, 말도 참 심하게 하시네."
"그럼 뭔데."
"당신이 날 구하러 왔잖아요? 난 당신이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쪽은 날 구할 필요도 없었잖아요, 그쪽이 위험할 수도 있는 데 목숨을 바치면서 까지 날 구할 이유가 있었어요? 없었잖아. 그런데도 그쪽은 날 구했잖아?"
"진짜 억지스럽군."

그녀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내 손에 들린 옷을 들고는 날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뒤 좀 돌아보라 속삭였다. 그녀의 말대로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멀어지더니 옷을 갈아입는 듯한 소리가 났다.

"됐어요."

그녀는 흰 원피스에 카키색의 점퍼를 걸친 채,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녀가 뭔 갈 말하려는 듯이 입을 움찔거렸다. 그녀의 쪽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나의 어깨에 손을 걸친 채, 까치발을 서서 내게 속삭였다.

"제 이름은 카밀라 다이애나, 그쪽 집 근처에 있는 술집 알죠? 그 술집 주인의 딸이에요. 뭐... 나 보고 싶으면 와서 보고 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선 뒤를 돌아 공장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구두 소리가 메아리쳤다.

*

그가 천을 풀고 내게 미소지었다.

"누군데 이런 짓을 저지르는거지? 청부업자라도 되나?"
"오, 똑똑한데? 정답입니다. 전 아가씨께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살인 청부를 받았어요. 아가씨 보기와 다르게 원한을 많이 샀나 봐? 무려 3명이나 아가씨를 죽여달라는 청부를 했어."
"그게 누구지?"
"음... 이건 말 못하지. 두 명은 공작이라. 아, 한 명 말해줄까? 이 사람은 후작이야."
"음? 공작 둘에 후작 하나?"
"그렇지. 높으신 분들께서 이런 일을 내게 맡긴거야."

아하, 그렇구나... 그럼 이쯤에서 끝낼만 한 거지?

"알려줘서 고맙네, 그런데 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고 싶지 않거든!"

가지고 있던 칼로 내 몸을 묶던 밧줄을 자른 뒤, 발로 그의 명치를 힘껏 차버렸다. 그는 바닥으로 나 뒹굴었다. 높은 힐이 있는 구두로 찬 덕에 그는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 했다. 그의 옆에 떨어진 열쇠꾸러미를 주워 문으로 달려갔다.

"악!"

이럴수가, 내게 도움을 주었던 구두가 오히려 날 넘어지게 만들었다. 발목이 심하게 삔 듯 했다. 그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빠져나가야 한다. 구두를 벗고 맨발로 걸어 열쇠 구멍에 열쇠 하나를 꽂았다. 첫 번째 열쇠는 꽝이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마지막 열쇠는 당첨이다! 문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밖을 향해 힘껏 뛰어보았다.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온 몸에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꺄악!"

그가 뒤에서 잡아 끌어 넘어져 버렸다. 제발 누군가 이 숲 속을 지나가길 빌고 또 빌었다.

"아..가씨, 아가씨 좀 당돌하네? 그런 힐로 사람 차는 거, 아니야."

그가 징그럽게 웃음을 띄었다. 공포감이 물 밀듯이 차올랐다. 그 때 누군가의 발 소리가 들렸다. 둔탁한 발소리인 걸 보니 남자였다.

"도와줘요! 살려주세요! 이 사람이 절 죽이려 해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내 앞에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그를 향해 그만하라 말했다. 말이 먹히질 않자 남자는 그를 제압했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몸에 힘이 쭉 풀렸다. 눈이 빛에 적응을 하자 그의 얼굴이 서서히 보였다.

"저기, 고맙습..."

그의 얼굴이 다 보이자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에밀리아 프뢸리히,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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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4-14 12:35 | 조회 : 451 목록
작가의 말
이멷

카밀라 다이애나는 완벽한 빛이라는 뜻으로 Camila Diana라고 씁니다. 그리고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영향을 받은 이유는 원래 바다로 뛰어드는 걸 연출하려다 그러면 작품성과 몰입도도 쉽게 떨어질 거 같아 화학물질에 뛰어드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