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소녀의 예상과는 다른

커튼이 반쯤 가리고 있는 창가를 보았다.
여전히 회색을 띈 우중충한 하늘이었다.

해는 숨어버린지 오래인데다가 시간마저 늦어지니, 당연하게도 하늘도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처음에는 그나마 밝은 회색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하늘은 푸른빛의 짙은 회색이었다.
하늘을 뚫고 떨어지듯이 사방으로 힘차게 쏟아져내리는 비는, 쉽게 멈출 것 같지는 않았다.

수건을 가져다 준 소년은 친절하게도 담요도 가져다주었다.뽀송뽀송한 담요를 덮고 있자니 차가웠던 몸도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 결과 생긴 문제 아닌 문제 하나,그것은 바로 쏟아지는 잠이었다.

아까 깜빡 졸았던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대놓고 자려고 하고 있으니.

'남의 집에서 이러는 건 실례야.'

열심히 나 자신과 타협하며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키려했지만, 몸에는 담요를 두르고 가만히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잠이 달아날 턱이 없었다.
자면 안된다고 계속 생각하는 와중에도 눈은 반쯤 감겨있었다.

"많이 피곤하신가봅니다."

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던 와중에 들려온 목소리는 그나마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네...?아, 네..."
"밖을 보아하니 쉽게 그칠 비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게요."

어설픈 대답에 대화가 끊어져버렸다.짧은 정적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소년의 쪽이었다.

"아까 왜 여기 계셨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지요,"
"처음 와 보는 곳이라서요."
"그럼, 이곳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건가요?"

내가 의도해서 온 것이 아니니 여기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것은 당연했다.

"네."

소년의 얼굴에 조금 당황한 듯한 기색이 스친다.

"정말, 하나도 모르시는 겁니까?"
"네."

당연한 걸 왜 두 번씩이냐 묻나, 싶었다.
여기가 그렇게 대단한 곳일리는 없을테고, 그냥 사람도 별로 없는 오래된 지역일 뿐이잖아.

소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잠시 후에 다시 고개를 든 소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곳은,"

고민 끝에 말을 꺼낸 듯, 뜸을 들인다.

"죽은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뭐라고 말을 하려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서 말이 안 나왔다.
한참을 입만 떡 벌린 채로 있었다.

죽은 사람들이 오는 곳.가상의 장소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내가 그 곳에 있다.

이곳은 내가 이전에 있던 곳이 아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내가 죽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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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6-24 14:33 | 조회 : 1,647 목록
작가의 말
상자 속 작은양

nic77730844 님,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한동안 잊고 있던 글이었는데 댓글 보고 다시 글쓰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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