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74화



엔딩도 끝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까 영화관에도 우리만 남게 되었다.
뒷정리를 하기 위해서 직원도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았고, 나도 지금 이 상황이 쪽팔려서 얼른 짐을 챙겨서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사실 들고 나올 짐이라고 해봤자, 내가 먹은 것들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먼저 나가자 뒤에서 나머지 애들이 뒤따라 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남정네들 5명이서 한꺼번에 뛰어나오는 소리는 꽤나 위협적이게 느껴졌다.
나는 내 손에 있는 쓰레기들을 얼른 버리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는 영화관 건물을 빠져나갔다.

영화까지 보고나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난 듯 했다.
바깥이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뒤에서 저녁을 먹고 가자는 성 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남고생들이라 그런지, 간식을 먹어도 금방 배가 꺼지는 듯 했다.

'슬슬 나도 배가 고프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저녁을 먹기로 거의 확정되고 있는 상황에 솔깃하기는 했지만, 요즘 계속 내가 집에 올 때까지 밥을 안드시고 기다리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 얘기를 핑계삼아서 나는 집에 가겠다고 얘기하자, 나머지 애들은 다 반기지 않는 얼굴로 배웅해줬다.


"너네는 먹고 갈거지"
"난 그냥 집 갈래, 일찍 오라고 연락오셨네."


저녁을 먹고가자는 성 준의 반강제적인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긍정을 표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부정의 말을 담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도하..넌 왜.. 그냥 같이 먹고 가자아아"
"연락오셨다니까. 나 집 간다."


이도하는 성 준의 앙탈을 말끔히 무시하고는 아주 짧게 대답하고서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걸어갔다.
나도 이끌려가는게 익숙해진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끌려갔다.
뒤에서 인사를 해주는 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손을 들어주려고 했지만, 열심히 끌고가는 앞의 분 대문에 뒤를 돌아보지도 못한 상태로 손만 허우적거리며 정류장에 도착했다.


"뭐 이리 급하게 가"
".. 별로 그렇게 급히 간 건 아닌데, 힘들었어?"
"아니. 그건 아닌데"


옆에서 쳐다보는게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토끼 같았다.


"안그래도 하얀놈이"
"뭐라구?"


내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건지 더 반짝거리면서 쳐다보고 있는 눈을 나는 애써 피했다.
내가 딱히 중요한 말이 아닌 것 처럼 굴자, 이도하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신경을 안써주려고 했던 걸수도 있고..


"그나저나 도하 너 괜찮아?"
"..괜찮냐니? 갑자기 이 상황에?"
"너 연극 말이야."
"연극? 왜?"
"너 나서는거 싫다면서, 그렇게 말하면서 준비담당 맡았잖아."


내가 연극얘기를 살살 꺼내보자, 이도하가 자기가 언제 그랬는지도 잊어버린듯한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나는듯 탄성을 질렀다.


"기억났어?"
"..아, 어. 넌 뭘 그런 것 까지 자세하게 다 기억하고 있냐."


웃으면서 대답하는 이도하에 의해서 순간 정적이 돌았다.
얘네는 다 자기얼굴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고서는 저런식으로 하는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너무 사기라고 생각될 얼굴이었다.


"너 얼굴 왜 그렇게 생겼어."
".. 욕 아니지?"


자기도 욕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일부러 고개까지 옆으로 갸웃거리면서 얘기하는게 진짜 얄미웠다.
나는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보니까, 버스가 들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나와 이도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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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올라타서 어디에 앉을까 고민을 하던찰나에 내 몸이 다시 끌어당겨졌다.
누군지 볼필요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도하가 또 내 손목을 잡아끌어서 자기 옆자리에 앉혔다.
뭐 어디 앉던 상관도 없으니까, 그냥 잡힌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버스 정류장에서와는 다르게 조용하게 집으로 갔다.

'조용하지만 소란스럽게 갔다고 해야하나..'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로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에, 창가자리에 앉게 된 나는 창밖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깨위로 무게가 쏠리는 느낌에 옆을 쳐다봤더니, 이도하가 눈을 감은 상태로 기대있었다.
정말로 자는건지, 자는척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 깨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냅두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머리에 무언가 툭 떨어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있었던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후에야 내가 지금 무슨 자세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잘 잤어?"
"....어.. 잘 자긴했는데.."
"우리 이제 내려야 할 것 같은데.."
"....그래.. 미안"


분명히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도하의 머리가 내 어깨에 있었는데, 왜 지금은 내 머리가 이도하의 어깨위에 안착되어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먼저 내렸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창피한 일들을 많이 겪는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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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응? 뭐가?"
"표정이 안좋은데?"


버스에서 내린 후에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데, 이도하의 말이 들렸다.
어쩐지 계속 내 얼굴을 보면서 걷더니, 뭐가 묻은 줄 알았다.

사실 오늘 하루종일 불편한 마음을 가진 상태로 놀았다.
아무 말 없이 걷다보니까, 그 감정이 분출되었던 것 같다.
나는 윤 설이 아닌데, 진짜 윤 설이 느꼈어야 했던 기분과 감정들은 내가 뺏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어디 아픈거야?"
"아니... 괜찮아."


지금 받고 있는 걱정들도 사실 다 윤 설이 누렸어야하는 것들인데, 계속 이런식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윤 설에 대한 기만과 얘네들에 대한 죄책감만 늘어나는데도 멈출수가 없었다.

정말로 즐거웠지만, 계속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멈출 수 없었다.
찜찜하고도 미안한 그 감정들이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게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나보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내가 내 생각보다는 연기를 잘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연극은 어떻게 하냐 진짜..'

이상한 잡생각도 계속 드는 것 보니까 진짜 정신이 없는 듯 했다.
이도하도 내가 더 이상 얘기하기 싫은 걸 눈치라도 채준건지, 아무런 말도 묻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별 말 하지 않고 집 앞에 도착했다.


"이거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네"


이도하가 얘기를 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뒤로 돌렸다.


"아, 설아."
"어?"
"딱히 나서는거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기대되네."
"...."
"갈게 학교에서 보자."


이도하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은채 자기말만 하고서는 달려갔다.
저런거보면 딱 자기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것 같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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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번 화 신고 2021-09-24 12:44 | 조회 : 2,077 목록
작가의 말
gazimayo

감사합니다.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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