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68화






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김태겸의 고개가 다시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진정시킨건데 다시 시무룩하게 만들 수 없었다.


"누가 그래"
"...."


마치 쫄딱 젖은 강아지처럼 쳐다보는게 조금 재밌었다.
웃음을 최대한으로 참은 후에 나는 말을 이어갔다.


"아니니까 고개들고 얘기해줘. 응?"
"......응"


'저렇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은 해주네.'

나는 고개를 살짝 들면서 대답을 하는 김태겸에 그냥 웃었다.
내가 웃는걸 본건지 자기도 따라서 웃는 모습에 은근 귀엽다고 생각했다.


"...왜 웃어?"
"너도 웃잖아"
".....너 나 웃겨서 웃는거지"
"......"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다시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김태겸이 그네를 흔들거리며 얘기를 꺼냈다.


"한 개도 기억이 안나?"
"....응?"
"우리가 언제 만난게 처음인지, 어떻게 만난건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거지?"
"어.."
"그렇구나"


김태겸은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다가 갑자기 고개를 휘젓더니 웃어보였다.
억지로 웃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그럴줄 알았다는 느낌의 웃음이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되려나.."
"처음부터"
"막상 하려니까 막막하네.."
"천천히 해도 되니까, 다 해주라."
"응"


이 얘기를 듣게 된다면 조금의 실마리는 풀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진짜 윤 설이 아니기에 이 얘기를 내가 들어도 될지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거 가릴 때가 아니니까..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우리 다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어,"
"전부 다?"
"응. 나머지 애들 얘기는 아마 다 각자 할테지만..."
"....."


김태겸은 말을 이어갔다.


"나 엄마 아빠 없는거 기억안나지?"
".....어 미안해"
"아니, 니가 굳이 미안해 할 필요없어."


김태겸의 집안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정작 본인은 진짜로 아무렇지도 않아보였지만.


"그 때, 얘기했듯이 남동생이 있거든"
"아, 취향 귀여운 동생이었나?"
"....어. 진짜로 착한 동생인데...."


동생얘기가 그렇게 즐거운건지, 그 이후로 5분정도 동생얘기를 이어가다가 정신을 차린 후에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부모님의 마지막 얼굴이 제대로 기억이 안난다?"
"..."


윤 설과 만남을 알고 싶었던건데, 이런 얘기를 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얘기를 끊지 못하고 계속 듣고 있었다.

내가 들으면 안될 것 같았던 얘기들이지만, 왠지모르게 그냥 들어주고 싶었다. 처음 듣는 내용임이 분명한데도 뭔가 익숙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말도 안돼지만..'


"나 7때 쯤, 우리 할머니가 나 데리러 왔거든"
"...."
"그때는 나 고아였으니까."
"....그럼 친할머니가 아니라는거야?"
"아니, 친할머니는 맞아."
"..."
"엄마가 밖에서 낳아서 온 애라더라."
"....."
"당연히 엄마는 그런내가 싫었나봐.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날 갖다버린거지. 고아원 앞에."
"응"
"그렇게 고아원에서 7살때까지 컸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할머니가 날 데리러왔어."


아무렇지 않게 들어줄 생각이었는데, 들을수록 표정이 안좋아지는게 눈에 보였나보다.
내 표정을 보더니 김태겸이 웃음을 지었다.


"그런 표정 안 지어도 돼. 나한테 훨씬 좋은 일이었어, 아빠 얼굴은 못 본게 한이지만"
"......."
"동생도 엄청 잘해주고, 할머니도 처음보자마자 나 끌어안으면서 우시더라."
"......"
"근데 내가 그때 많이 어렸나봐."
"어리지, 7살이었다며."
"응,그래도 나한테 잘해주려고 하신 할머니한테도 못난 말 되게 많이 했거든"
".....그럴 수 있어"
"그때랑 똫같이 얘기해주네,"
"그때라니?"
"우리 처음만났을 때, 8살 때?"
"....."


이 얘기를 윤 설한테 두 번째로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더라니.. 내가 익숙해도 되는건가'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나를 감쌌다.


"설아 괜찮아?"
"응.. 나 괜찮아. 얼른 얘기해봐."
"나 7살 때 할머니가 데리러왔다고 했잖아, 그 전부터 그냥 사람이 싫었어."
"......"
"고아원 원장님은 항상 좋은 말만 해줬어. 우리 엄마가 나를 생각해서 여기 맡기고 간거라던가, 너를 싫어해서 그런게 아닐거라던가, 그런 이상한 말?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나 상처받지 말라고 한 말씀이시겠지만, 그 때는 너무 힘들었거든. 누가봐도 나 안좋아해서 버리고 간게 분명한데 그런거 당연한데 원장선생님 말이 다 가식적이라고 느껴졌어."
"........"
"그렇게 고아원에서도 벽을 치면서 살았어. 애들이 놀자고 다가와도 무시하고 항상 혼자 지냈어. 그러다보니까 다른 친구들은 입양을 가고해도 다른사람들은 나를 보지도 않았거든."


당연하게도 사람이 싫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나이에 이유도 모른채로 부모님을 볼수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갑자기 가족이라고 찾아온 사람들이 반가울리가 없잖아."
"......"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서도 벽을 치면서 지냈거든."
"응"
"그러다보니까 학교에 들어가서도 친구같은거 없었어."
"...."
"당연하게도 없었겠지, 나같아도 나같은 놈이랑 친구안하고 싶을거니까. 그냥 혼자다니려고 했어."
"........"
"할머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나봐, 정말 정이 많아 우리 할머니가."
"손자니까 그렇지"


불쌍해서 할머니가 그렇게 대해준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소리를 치는 식으로 나가버렸다.
순간적으로 나도 놀랬는데, 김태겸은 당황하는 것도 없이 웃었다.


"그치. 손자니까 그렇지. 지금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
".....응"
"그래도 그때는 조금 힘들었어. 동생도 다가오면서 장난감도 주고 그랬는데 난 내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거든. 할머니는 학교라도 좋게 다닐 수 있게 하자며, 전학 보냈거든"
"......"
"그 때 너를 만난거야. 전학간 학교에서 너를 딱 마주친거있지?"
"......그랬구나"
"뭐, 난 전학가서도 애들 아무랑도 친하게 지낼 생각 없었거든."
"......"
"넌 내가 전학 오기도 전에 이미 옆에 친구들도 많더라."
"내가?"
"응. 백승호랑 성 준 표정이 너랑 말이라도 걸면 잡아먹을 표정이었는데.."


나는 백승호랑 성 준과는 김태겸이 전학오기 전에 이미 친한관계였던 것 같다.

'이도하는 언제 만난거지...그러면....'


"이도하는 조금 뒤에 만난거지만, 뭐.. 나중에 걔한테 직접 들어. 내가 얘기해주면 가만히 안 둘 놈이거든."
".....응"
"아무튼 그래서 전학을 갔는데, 당연히 어린 나이에는 모든 애들이 전학생 궁금해하잖아."
"...그치?"
"그래서 모든 애들이 다 내 자리 둘러싸가지고 엄청 웅성거렸거든"
"그럴만도하지. 너 잘생겼잖아."
"....그게아니라, 그냥 신기했겠지. 초등학생들인데 얼굴이나 신경썼곘어?"
"..뭐래.. 너 완전 인기 많았잖아"
"..........기억나?"
"응?"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는 나를 쳐다보며 물어보는 질문에 순간적으로 놀랬다.
나도 모르겠던 기억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분명히 모르는데, 왜 김태겸이 고백을 받는 장면들이 생각이 나는건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머리가 아프네."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지마. 괜히 아플 수도 있으니까."
"응"


정말로 떠올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식으로 얘기해주는 김태겸으로 인해서 울리던 머리가 다시 괜찮아지고 있었다.

내 걱정을 하느라 얘기해줘야하는 것도 까먹은건지 그냥 계속 쳐다만보고 있던 모습에,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제서야 안심이 된건지 계속 이야기를 했다.


"아무튼, 그 때 너도 내 자리에 왔었던거 기억나?"
"....."
"안나겠지 당연히."
"미안"
"괜찮다니까. 너탓도 아니고"
"응..."
"그 때는 내가 다 싫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전학간 학교도 다 싫었어. 나한테 다가온 애들도 다 너무 싫었어. 짜증났어. 아무랑도 엮이고 싶지 않았어."
"......"


김태겸은 참 상처가 많은 아이였구나 생각이 들었다.
원래 초등학교 1학년은 친구랑 노는게 낙인 나이인데도, 날을 세우며 자기를 보호했다는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엄청 싸늘하게 대하면서, 신경쓰지말라고 했었어. 아무리 말걸어도 무시하고 소리도 지르고, 거의 무슨 양아치다 그렇지.."
"...아냐"
"그런데 내가 아무리 뭐라고해도, 화를내도 끝까지 안가는 애가 한명이 있더라. 무슨 병풍도 아니고, 옆에서 비켜주질 않더라. 기분나쁜 말은 뱉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면서 받아치고, 나 무슨 그렇게 기가 강했던 애는 처음이었다니까."
"...."
"곧 떨어지겠지, 곧 신경안쓰겠지, 금방 지칠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어."
"..........."
"그런데 엄청 웃긴게 내가 신경이 쓰이더라. 얘는 언제 등교하지, 오늘은 뭐 입었을까, 오늘도 말 걸어주려나, 옆의 친구들은 뭐지 이런 생각?"
"....."
"나도 엄청 외로웠나봐, 금방 스며들어버린거 있지? 절대로 친해질 생각따윈 안했는데, 결국에는 한 달내내 그러다가 걔가 아침에 오자마자 인사를 평소처럼 해줬는데, 나도모르게 대답해버렸어. 안녕이라고.. 걔가 어쨌는줄 알아?"
"....아니"
"울더라. 막 엄청 울었어. 아침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엄청 서럽게 울어서 남들이 보면 내가 때리기라도 한 줄 알정도로 울었어."
"........"
"내가 그래서 걔를 데리고 나갔어. 그리고 물어봤거든. 왜 우는거냐고"
"...."
"뭐라는 줄 알아? 이제 괜찮냐더라. 이제 안 힘드냐고 그랬어, 이제 안 외롭냐고 그러더라."
"...."
"나도 거기서 부둥켜 안고는 울어버렸어."
"...."
"그 이후로는 걔가 인사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인사하고 얘기하고 말걸고 같이 다녔어."
"....."
"그게 너야 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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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8-08 21:56 | 조회 : 1,98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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