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62화




"여운이가 아프다고 하면서 오늘 조퇴를 했었는데, 집 가던 도중에 사고가나서 다리가 부러졌다더라."


선생님의 말에 교실이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자,자. 조용조용."
"...."


하여운은 이미 집을 간 것이었다.
가방도 들지 않고 갔었기에, 당연하게도 학교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완전하게 잘 못 짚었던 거였네.'


"그나저나 다리 부러졌다면 연극은 어떡해?"
"그러니까 여운이가 주인공아니야?"

"이것들이 친구가 지금 다리가 부러졌다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여운이가 말해주더라. 자기는 연극을 망치기는 절대로 싫으니까 무대 준비를 한다더라. 무대준비하는 애들 중에서 한 명이랑 바꿔달라고 하던데."


그 말을 들은 애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랑 바구라는 거야.."
"준비하는 애들 누구누구 있지?"
"그 중에서 그나마 역할 어울리는 애가...."


하여운의 속이 다 보이는 수법에 기가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고개를 들어봤더니, 반 애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다 몰려있었다.

'뭐..뭔데? 어쩌라는거야'

사실 애들이 나한테 바라고자 하는게 어떤건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지만. 죽어도 정말로 죽어도 하기 싫었고 하여운이랑 역할이 바뀌게 된다면 걔만 좋은 일 시켜주는거니까, 더더욱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반 애들의 눈빛들을 모르는 척 했다.

'내가 편해졌나보지'

윤 설의 이미지가 생각보다 더 빠른 시일내로 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안도의 웃음이 나왔다.


"....야야 저것보라니가? 윤 설이 딱이야"
"그러게 윤 설이 하면 되겠네."
"그니까 윤 설정도면 하여운이랑 비등비등하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반애들은 절대로 포기할 생각따위는 없어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여운이도 설이 너랑 바꾸고 싶다고 하던데?"
"걔가요?"
"그래. 너랑 잘 맞을거라면서, 너를 적극추천하던데?"
"............."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로 내가 연극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아...씨 미치겠네...'


"잠깐만요. 무작정 시킬 순 없잖아요. 의견을 물어봐야죠."


갑자기 난 소리쪽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더니 왕자역할 중에서 공주랑 이어지는 왕자읭 역할을 맡은 남자애였다.

이름이..뭐였는지도 기억이 안나서 명찰을 보니까 정후라고 적혀있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얼굴도 흐릿하고 기억도 안나고 분량도 없는 걸 보니까, 완전하게 엑스트라인게 확실한데 공들이 남주인공역할들을 포기하니까 엑스트라들이 주인공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무슨소리니, 정후야?"
"...윤 설이 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요."


그 말을 들었던 선생님도 갑자기 얼굴표정을 찌푸리더니 몰아세워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라며 나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며 일처리 때문에 내려가봐야한다고 하시고는 이도하에게 회의를 해보라며 나가셨다.


"하지마, 너."
"뭐?"
".....하지말라고, 여운이 자리니까 너가하지마."


갑자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게 너무나도 시끄러웠다.

'얼굴이라도 조금 잘 생겼다면 그냥 싸가지가 지랄하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을 =텐데.. 마치 처음 봤었던 김태겸 처럼.. 못생긴게 저러니까 더 화가나네..'

하여운이 왜 그렇게 주인공을 바꾸고 싶어했는지 조금 이해가 갔다.
이 자식이랑은 나같아도 하기 싫었다. 싸가지도 없고 생긴것도 별로였다.

'아.. 짜증나네.'

하여운이 처음으로 안쓰러워졌다.


"야! 내 말 안들리냐고?"
"들려, 조용히 말해."
"..하.. 내가 어떻게 잡은 역할인데 그걸 너가 방해하려고해?"
"..뭔소리야."
"너 작년에는 아무 행사도 참여안하지 않았나. 여운이만 미친듯이 괴롭혔으면서 갑자기 왜 착한척이야. 토나오게."


점점 말이 격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냥 참고 넘기려고 했지만. 계속 심한 말을 내뱉었다.


"그냥 평소처럼 나오지마. 싸가지꼐서 갑자기 한다고 해서 지랄이냐고. 자기때문에 여운이가 작년에 어떻게 지낸줄은 알아?"
"....하"


정후인지 뭔지 하는 그 자식은 계속해서 내 앞담을 깠다.
다들 자리에 앉아서 눈알만 굴렸다.
내 옆에 앉아있는 김태겸은 정말로 화가나보이긴 했다.

김태겸 뿐만이 아니라 저 새끼를 미친듯이 째려보는 성 준이랑 이도하도 있었고, 백승호는 좀있으면 때릴 듯한 자세로 서있었다.

그 애는 반애들의 동조도 얻으려는 듯 얘기를 크게 했다.


"야, 니들도 어이없지 않아? 저 새끼 갑자기 이상해져가지고. 좆같게. "
"......"


반애들은 눈치가 있는건지, 아무도 동조같은 건 해주지도 않았지만, 그래서 그런건가 더 욱 더 열변을 토하면서 바락바락 거렸다.

'...내가 성격이 좋진 않지. 근데 남한테 저딴 식으로 말하는 걸 직접 들으니가 화가 나네.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원하는대로 해줘야지.'

싸가지로 알고있다면 싸가지처럼 해줘야지. 괜히 더 불타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계속 무례한 말을 내뱉는 그 애를 쳐다봤다.
내가 갑자기 일어서자 그냥 상황을 지켜보던 애들이 다 내 쪽을 쳐다봤다.
그렇게 욕을 하던 그 애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지켜보면서 버벅거렸다.

내가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리 쫄거면 뭐하러 저딴 말을 한건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그 애 앞으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아있는 그 애의 앞에 딱 서서는 눈을 쳐다봤다.


"...뭐? 한 대 치려고?"
"...."
"하. 역시 양아치 본성 따위는 어디 안간다던데, 와. 이럴줄 알았지."

"저게 진짜 씨ㅂ"

"괜찮아."


아까부터 나보다 더 화가난 것처럼 있었던 김태겸은 저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 대 칠 것 처럼 성큼 걸어와서는 내 옆에 섰다.
나는 괜히 일이 더 커질 것 같은 상황인 것 같아서 김태겸을 말렸다.

팔을 잡고 안 놔준거긴 하지만.
그래도 내 생각대로 멈춰준 김태겸에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정호야?"
"....."
"너 나 개 싫어하구나~"
"당연한거...아니야?"
"..너 여운이 좋아하지"
"....어쩌라고"

"오오오오오"


그 애의 당돌한 말에 순간적으로 반애들이 환호를 했다.

'이 어린것들이...'

항상 저 나이때애들은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는게 흔했기에 나는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는 나는 칠판앞으로 걸어갔다.
분필을 잡고는 아주 해맑게 웃으며 정후라는 애랑 눈을 마주쳤다.

걔도 순간적으로 움찔하는게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뭐하는"
"나, 하여운이랑 바꿀게."

"...뭐?"


싸움이 날거라고 걱정했던건지 말리려고 앞에까지 나왔던 이도하가 굳은 얼굴로 얘기했다.

나는 그 말에 다시 한번더 확신을 새겨줬다.


"한다고, 공주. 얘들아 내가 할게."


나는 하여운의 이름이 적혀진 곳에 두 줄을 찍 그어버리고는 내 이름 '윤 설'을 적어넣었다.

그리고는 산뜻하게 얘기했다.


"어디한번 싫은새끼랑 뽀뽀해보자 정후야. 응?"
"....."


나는 그 말을 전하고는 내자리로 돌아갔다.
김태겸도 허겁지겁 따라서 들어오더니, 내 쪽으로 몸 방향을 돌린채로 아무 말도 안하고 계속 쳐다봤다.


"왜?.. 할 말 있는거야?"
"...할 말? 어. 엄청 많아. 그니까 오늘 마치고 기다려."


그 말만 남기고는 다시 앞을 보더니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은채로 정면만 보고 있었다.


"일단 확실한 건 아니니까, 기다려."
"......"
"자습이나 하자."


이도하가 내가 적었던 내 이름을 다시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자습을 하자고 말하고는 들어와서 앉았다.

반 아이들도 다들 나처럼, 시험 끝났는데 무슨 자습인가 싶기도 하고, 축제 준비를 하고 싶어하는 애들도 있는 것 같은데 이도하의 표정이 누가봐도 화가나보인 듯한 표정이어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 듯 했다.


'...그나저나 시험이 끝났는데 무슨 자습을 하라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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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8-02 22:49 | 조회 : 1,62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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