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56화






"그럼 얼른 먹을까?"
"네.."


나랑 은호 형은 시켜놓고 얘기를 하느라 먹지도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언제 우울하고 진지한 얘기를 했냐는 듯이 장난스러운 얘기를 하며 놀았다.

은호 형은 더 이상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나를 눈치챈건지, 이야기의 주제를 돌려주었다.


"이제 일어날까"
"네."


나랑 은호 형은 까페에서 나왔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같은 버스 타고 가니까 좋다. 그치?"
"네.. "
"내일이 평일만 아니었으면 지금 안 보내는건데.."
"내일이 주말이었어도 지금 갈거거든요?"
"우리 오늘 분위기 좋았던거 아니야..?"
"뭐래요. 버스 왔어요."


나는 은호 형을 냅두고 버스를 타서 앉았다.
버스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저녁이라서 사람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은호 형은 갑자기 귀쪽으로 다가오더니 귓속말을 했다.


"오늘 대부분 학교가 시험끝나서 그런지 고등학생들이 많은 것 같네.."
"그러게요."


은호 형은 한 개 남은 자리에 나를 앉히고는 옆에 서있었다.
얘기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것 같았다.
은호 형도 내가 숨을 참는 걸 알게 된건지, 은근슬쩍 더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나도 뭐 싫지 않았기에 모르는 척 굴었다.
그러다 마침 내 앞 자리 사람이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형을 밀면서, 얼른 저기 앉으라고 얘기했다.
형도 못이기는 척 내 앞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번 정거장은 시내를 벗어나려면 타야하는 버스가 서는 정거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리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고, 타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를 먹은 어른들처럼 보였고,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여러 학교의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은호 형 말대로 오늘 시험 마지막 날인 학교가 많아서, 우리처럼 시내에서 놀고 집에 가려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창밖으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 쟤 윤 설 아니야? 야 얘 윤 설 맞지."
"누구..어~ 맞네. 윤 설이네."


'얘네는 누구지...기억 속에서는 못 본 애들인데...'

누군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아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버스에 올라탄 그 두명은 금새 다가왔다.


"저기요. 윤 설 아니세요?"
"....맞는데요"


내 쪽으로 다가온 둘은 누가봐도 나인걸 알면서도 비꼬듯이 물어보는 모습에 확실하게 내게 좋은 의도로 다가오지 않는 다는 걸 알게되었다.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이러한 더러운 기분을 내가 느껴야하나 싶어도 지금 여기는 버스 안이고, 시끄러워지면 뭔가 내가 더 손해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보세요? 윤 설?"
"이 새끼 왜 대답이 없냐.."
"원래 대답 잘 안했지 않나?"
"하긴... 설아 전학가서는 잘 지내나보네. 분위기도 달라진 것 같고.. 얼굴도 훨씬 폈네."

"....."


진짜로 쟤네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얼굴도 무슨 말린 갑각류 처럼 생긴 놈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뭐라고 지랄하는게 슬슬 화가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쳐야 하나...'


"윤 설. 대답 좀 해봐."
"윤찌질이 어디가겠냐."
"그렇긴 해. 그나저나 너 지호랑 연락은 해?"
"야 연락하겠냐. 지호 뒤통수를 그렇게 갈겼는데."
"그렇긴 하지?"


'지호? 그게 누군데.. 왜 이러지..'

지호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몸이 요동치듯 떨려왔다.
받아치고 싶은데, 미친듯이 요동치는 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윤 설 성격으로는 친한친구를 뒤통수 칠 성격이 아닌데..'


"우리 찌질이 잘 지내는거 보니까 열받네..?"
"그러니까. 지호는 너때문에 트라우마까지 생겼는데.."
"그렇게 말해봤자 얘가 눈 하나 깜짝하겠냐? 자기 챙겨준 애 등에 칼을 꽃았는데,"

"...."


얘네는 나나 자기들이 내리기 전까지 막말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지랄해도 나는 알고 있는게 없는데 어쩌라는거지..'

떨리는 몸만을 붙잡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냥 내려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아, 내리자."
"...형?"


갑자기 몸이 일으켜졌다.
누군지는 당연히 알았다.

은호 형의 표정이 엄청 굳어있었다.

'다 들었겠지?'

내가 한 일은 당연하게도 아니지만, 윤 설이 했다고도 생각하지는 않지만, 불안했다.
은호 형의 표정이 풀어질 생각을 안했다.

옆에 있던 2명의 표정도 굳어졌다.


"윤 설이랑 아는 사이세요?"
"....."
"얘랑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 얘 특기가 뒤통수치기니까."
"하..."
"쟤랑 안 엮이는게 나을걸요?"
"야"
"......야? 지금 저한테 그러신거에요?"


은호 형이 그냥 무시하려다가 갑자기 반말을 시전했다.


"그래. 야"
"하.. 진짜 어이없네. 왜?"
"너 나 알아?"
"...."
"뭔데 말 붙이고 지랄이야."
"....그냥 알려준거야. 너 나중에 당하지 말라고."
"몇 살이길래 꼬박꼬박 반말이지? 너 나 아냐니까?"
"....."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고, 신경 꺼. 가자 설아."


은호 형이 내손을 잡은 상태로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내리고서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은호 형은 정류장 벤치에 나를 앉혔다.


"설아. 괜찮아?"
"....네"
"거짓말"
"...맞아요. 안괜찮은 것 같아.."


은호 형은 가만히 옆에 앉아서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듯 했다.


"미안하다. 설아"
"...네? 형이 왜요?"
"괜히 오늘 보자고 했네. 아니었으면 아까 그 새.. 걔네들 만나지도 않았을텐데,,"
"그게 뭐에요. 형이야말로 집에 늦게 가서 어떡해요."


형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왜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지금 이 상황에 형의 잘못이 있을리가 없는데도 사과를 하는게 내가 더 미안했다.


"그리고..아까 "
"괜찮아. 안믿어."
"...."
"울지마."


은호 형의 말에 내 얼굴을 만져봤다.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나보다.

은호 형은 계속 기다려줬다.
그리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평소같았으면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기대고 싶었으니까 은호 형이 하자는대로 따랐다.
집에 도착해서 휴대폰 시계를 확인해보니까, 예상보다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얼른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조용히 불이 꺼져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환한 조명이 켜져있었고 부엌에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오늘은 생각보다 늦었ㄱ..."


말을 하다가 끊겨버린 아버지의 말에 나는 왜 그런건가 싶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왜 그러지.. 뭐 묻었나..'


"울었나?"
"..네?"
"울었냐고 물었다."
"아..아니요.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요."


아버지는 마시던 커피도 그대로 내려놓고는 내 쪽으로 성큼 다가오시더니 내 얼굴을 잡아올렸다.

그리고는 울었냐고 물었지만, 사실대로 얘기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내가 왜 운건지도 모르겠었고, 괜히 뭔가 일이 커질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것 같아보였다.

'하긴 나였어도 못 믿겠네..'


"누구랑 같이 있었냐"
"아.. 그게"
"내가 그거 하나 못 알아볼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겠지?"
"...."
"직접 말 못하겠다면, 내가 직접 알아보는 수 밖에."
"아니에요. 아빠! 오늘 만나서 논 사람은 은호 형이에요."
"....백은호?"
"네. 은호 형이요. 은호 형때문에 운거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럼 왜 울었지?"
"...잘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하.."


아버지는 내 말에 한숨을 쉬셨다.
그래도 더 이상 추궁은 안 하실 생각이신 것 같아 보였다.

'다행이다'

그제서야 안심이 된 나는 인사를 드리고 올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한 번 더 나를 불렀다.


"윤 설."
'..네?"
"백사장님 집 안, 큰 아들이랑은 언제부터 친했지?"
"....아.. 얼마 안됐어요."
"너는 즐겁나?"
"...네 즐거워요. 정말 잘해주거든요."
"그럼 됐다. 얼른 자거라."
"잘주무세요 아빠."
".....너도"


아버지는 그 말을 하시고는 다 마신 커피를 싱크대에 넣어놓고는 먼저 계단을 올라 일하는 방으로 가셨다.

아버지와의 오해도 분명히 있을거라고 느낄 수 있었던 밤이었다.
나는 오늘 겪은 많은 일들을 기록했다.

그리고는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은호 형일거라고 생각했다.

'이 형은 헤어진지 한시간도 안되었는데 전화를 하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은호 형.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전화를 해요.."
"...."
"여보세요?"
"...나야"


나는 무언가 익숙한 목소리에 얼른 전화기를 켜서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아. 이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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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7-18 18:39 | 조회 : 1,33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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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im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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