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윤지가 나를 그대로 두고 빠져나간 후,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설아?"
"...네?"
나를 부르는 은호 형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 오늘 너무 많은거 들었지?"
"....네..그런데 괜찮아요."
"데려다줄게. 일단 나가자."
"...네."
"우리도 같이 가요. 형"
뒤에서 자신들의 가방을 챙기면서 달려오는 애들을 은호 형은 가뿐히 무시하고는 나를 데리고 집을 빠져나왔다.
"형.. 애들은?"
"그냥 우리끼리 가자. 내일 어차피 애들 볼거잖아."
"그렇긴한데.."
"지금 쟤네한테 잡히면 둘이서 저녁 못 먹을테니까.. 둘이 가면 안돼?"
"아.. 좋아요."
나는 은호 형을 따라서 승용차에 탔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일단 시내쪽으로 나가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저희 뭐 먹으러 가요?"
"뭐 먹으러 갈 것 같아?"
"모르겠어요."
"맛있는걸로 먹을거야. 형이 쏠게 오늘은."
"....오늘 승호한테도 얻어먹고, 형한테도 얻어먹네요. 다음에 한 번 승호랑 같이 맛있는거 사드릴게요."
"...승호랑 같이?"
갑자기 얼굴이 굳은 은호 형이 언제그랬냐는 듯이, 밝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오늘 형이 엄청 비싸고 엄청 맛있는거 사줄테니까, 승호한테는 안사줘도 돼."
"...네?"
"승호는 내 동생이니까, 내가 승호 대신해서 사줄게."
"그럼 너무 죄송한데.."
"아냐. 내말대로 해주는게 나한텐 더 좋아.. 혹시 싫어?"
은호 형 얼굴로 저렇게 얘기해버리면,,, 싫다고 절대로 말 못할 것 같다.
"응? 설아? 싫어?"
"아니요. 안 싫어요."
"다행이다.."
"큼.. 시내 다왔습니다."
".....네."
은호 형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답을 해버렸다.
답을 내뱉고도, 나도 당황해버렸지만, 은호 형은 그런 대답도 좋았던건지 더 밝게 웃어주면서,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도 딱히 할 말이 사라져서인가, 그냥 눈을 마주치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 시내에 다 온건지, 앞자리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해주시던 기사님께서 목을 가다듬으시며 다왔다고 말씀하셨다.
은호 형은 어디로 세워달라고 말하며, 그제서야 눈을 창 밖으로 돌렸다.
"여기면 될 것 같아요."
"네
은호 형은 차에서 내리면서 기사님에게 데리러 올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내가 내릴 때까지 차 문 앞에서 기다렸다.
내가 내리자마자, 기사님은 차를 타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여기로 가자."
"....네."
"설이 이런거 싫어해?"
은호 형이 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돼지국밥집이었다.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른 곳에 도착해버려서 순간 당황했다.
은호 형 성격으로는 가게를 다 빌리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취향저격을 해줄 음식을 사줄줄은 몰랐다.
"이런건 싫어? 아..뭐지.. 그 먹고 카페도 가자. 승호한테 얻어먹은거까지 오늘 뿐만이 아니라, 다음에도 같이 먹자."
"....."
"혹시 돼지국밥 싫어해? 아..그것까지 생각 못 했다. 하긴.. 우리 가족들도 돼지국밥은 안 먹긴 하던데... 지금이라도 딴거 먹으러 갈까? 진작에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돼지국밥 진짜 좋아해요. 좋아하는 음식중에 진짜 순위권이에요. 진짜에요. 진짠데.."
"하핳.. 그렇게까지 얘기안해줘도 돼. 다행이다. 나 진짜 하루종일 후회할 뻔 했어."
"그게뭐에요.."
"진짜야. 나 오늘 너 집 앞에서 기다리면서도 계속 후회했단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그게 무슨소리에요?"
"니가 이미 잠든건가.. 혹시 다른 약속 있는건가.. 미리 얘기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아.. 문자라도 남겨주시지.."
"이거 주려고 반에 찾아갔는데, 너도 바빠보이고 니 친구도 엄청 열심히 하길래, 그냥 왔지..."
은호 형은 그 얘기를 하면서, 가방에서 쇼핑백 한개를 꺼냈다.
나는 형이 건내주는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이게 뭐냐는 내 눈빛에 형도 바로 알아들은건지, 대답해주었다.
"시험이었으니까.. 이거 초콜릿이지"
"감사히 잘 먹을게요."
"밥은 뭐 먹을거야?"
"저.. 그냥 돼지국밥이요."
"그거면 돼?"
"그리구.. 부추 많이 주세요."
".....풉.. 그래.. 부추 많이 달라고 할게."
은호 형은 내 말을 듣고는 음식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아주머니는 은호 형을 보고 잘생긴 청년이라며 여러번 칭찬을 해주시고는 갔다.
은호 형은 부끄러운지 그냥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는 아주머니가 가자마자 아주머니가 장사를 잘 하시는 것 같다며 얘기했다.
'아주머니는 진짜로 진심을 얘기한 듯 했지만.. 뭐... 본인이 모르겠다면..아쉬운데...'
"설아?"
"아...네!"
"음식 나왔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는거야?"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먹자."
"네.."
은호 형은 내게 얼른 먹자며 얘기했다.
나도 얼른 먹었다.
"왜요? 은호 형"
"설이,, 나한테 물어볼 거 없어?"
"....어...있어요. 오늘 승호랑 애들 얘기 들으면서 형한테도 물어볼게 생겼어요. 형은 제가 물어보는거 다 대답해 줄 수 있어요?"
"응. 해줄 수 있어."
"제가 뭘 물어볼 줄 알구요.."
"뭐가 됐든.. 딱히 설이한테 감추는 것도 없고..얘기해줄게."
"나중에 카페에 가서 얘기해도 되는거에요?"
"음... 나야 좋지.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늘었으니까."
은호 형의 간질거리는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돼지국밥을 먹어치웠다.
내 말대로 엄청 많은 양의 부추가 나왔다.
"형.. 너무 많이 받은거 아니에요?"
"설이 너 많이 먹으라구."
"잘먹을게요.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은호 형은 내 말에 웃어주고는 밥을 먹었다.
다 먹고나서 가게를 나오니까, 생각보다 늦게 먹은건지 7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설아. 너 카페 가도 되는거야?"
".....당연하죠. 형이랑 할 얘기도 있구요."
"그래. 그럼 카페까지 걸어가면서 지금 먹은거 소화시키고, 가서 왕창 시켜."
"...카페에서는 제가 사도 되는데..."
"승호 값까지 사줘야지 너가 승호 안 사줄거 아니야.."
"...네 가요."
은호 형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카페까지 걸어가고 있는데, 은호 형이 나를 불렀다.
"설아."
"네?"
"너 아까 우리 집에 왔던 애들이랑 그냥 친구야?"
"...그냥 친구라는게 무슨 말이에요?"
사실 은호 형이 말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당연히 알아들었지만,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처럼 행동했다.
은호 형도 우물쭈물하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뭔가 은호 형이 귀여워져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는 모습을 보면서 은호 형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웃는게 더 좋아."
"...네?"
"아니야. 얼른 까페 가자."
형의 말을 들어버렸던 나는 순간적으로 쿵하는 느낌을 치울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 사람에게는 미움 받기 싫어. 내가 윤 설이 아니라고 해도 이 사람은 나 자체를 좋아해줄 수 있을까..?"
여러가지 의문들이 들었지만, 이 의문이 가장 큰 의문점이었다.
내가 윤 설이 아니기에, 이 형이 주는 다정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은호 형은 윤 설에게 보이는 다정함일테니까.. 윤 설 몸에 들어와서 윤 설 행세를 하는 나같은 애한테는.. 보이지 않을 다정함이 아닐까'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당연하게 생각해야하는건데., 내가 윤 설이 아니니까 윤 설에게 주는 다정함들을 받고서는 좋아해서는 안되는 건데.. '
오늘 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윤 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내가 너무나도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윤 설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윤 설에게 못할짓을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 윤 설이 내 몸에 들어가있는게 아니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대신 받아도 되는걸까.'
항상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근본적인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설아?"
"...."
"어디 안좋아? 그냥 들어갈래?"
"형.."
나는 은호 형을 불러세웠다.
은호 형은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왜 부르냐고 대답해줬다.
'이런 사람에게까지 이걸 숨겨도 되는걸까.. '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너무 비참해졌다.
은호 형이 말하는 윤 설은 내가 아닐것인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 상냥함을 그대로 받고 있으면 안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이 몸의 주인인 윤 설과,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은호 형에게도 못할 짓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대로 말해서 이 관계가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돌아갈지라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은호 형의 팔을 잡아 끌어서 바로 앞의 까페로 들어갔다.
들어와서도 은호 형은 나보고 올라가서 쉬고 있으라며 자기가 주문을 다 해서 가지고 올라왔다.
그런 은호 형을 보면서,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얘기해주고 싶었다.
나는 내 앞자리에 앉은 은호 형을 바라봤다가, 앞에 놓여진 딸기라떼를 한입 마신후에, 은호 형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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