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기 (完)

참으로 흔한 광경이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기도 하다.
권력이 있는 자리에 있다면, 다른 권력자와 맞붙게 되는 것은 당연한 섭리이다. 비록 자신이 직접 얻어낸 것이 아닌 물려받은 거라고 할 지라도.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지금 나한테 뭐라고 지껄인 거냐?"

그건 아무리 나락에서 뒹굴고 있을 귀족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명예뿐인 지위라지만, 절대로 누군가에 의해 모욕당해서는 참을 수가 없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 준은 눈앞의 학생을 상대로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지금, 그 더러운 입에서 우리 가문에 대한 비방이 이뤄진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거냐?"
"이런, 그걸 또 들어버린 건가? 네 가문의 달팽이관은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나 보구나?"

가볍게 뱉어대는 도발에도, 이 준으로서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지 반응이 쉽게 온다. 그가 짓고 있는 표정만 봐도 누구나 훤히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표정은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저 녀석들.... 이런 장소에서 소란을 일으키다니. 여러모로 좋지 않은데."
"어째서야, 어천? 뭐 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 여태껏 귀족들 간의 세력 다툼이 일어났을 때마다 단 한번도 좋은 꼴을 보지 못했어. 애꿎은 우리들만 피해를 입을 뿐이지.

그리 말하는 어천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 반응에 허일도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자, 포스미도 대충 눈치챘는지 조용히 눈앞의 사태를 지켜본다. 어느 종족이던 간에 권력 있는 자의 다툼에 대한 시선은 비슷하다는 거겠지.

"미안하다. 그리 크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사과는 했으니까 이걸로 됐겠지?"
"그걸로 됐다고 내가 납득할 것 같냐! 단지 이곳에 눈이 많아서 참고 있는 것뿐이라고. 너는 그걸 믿고 깝친 것 같은데, 여러모로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여전히 입놀림이 더러운 것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를 않는 녀석이구나, 너도. 그러니까 아직도 그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대화의 내용을 미루어봤을 때, 둘은 이미 입학 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였을 것이다. 그 인연이 여기서 최악의 형태로 만나게 된 것뿐.

간신히 폭력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이 준에게 다시 한 번 도발의 폭탄을 떨구는 그는 아무래도 끝장을 보려는지 여유가 가득찬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와 대조되는 이 준의 표정이 참으로 인상 깊군.

하지만 그도 이렇게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우선은 이 상황을 피하려는지 그대로 말도 없이 등을 돌렸다.

"뭐야, 갑자기 왜 고개를 돌린 거야?"
"자신이 불리하다는 상황이란 것을 인지한 거겠지. 저래 보여도 귀족이니 나름대로 상황 판단은 가능한 것 같군. 물론 여기에 들어온 이상,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포스미의 의문을 시원스레 해결해주는 어천.
내가 봐도 현명한 선택이다. 적어도 감정적으로 추한 꼴을 보이느니, 차라리 이 상황을 피함으로서 명성이 조금 낮아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애초에 가문 싸움이라는 단순한 강약 구조에서는 강한 쪽이 결국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 외의 요소로 이길 수 있다면, 이 학교에서 직접 정해준 개인적인 순위가 있겠지만....)

그 방법은 서로가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지 않는 이상은 실행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방과후에도 명찰을 달고 있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으니, 여기서 이 준이 반격에 나서는 것도 힘들 것이다.

다만, 하나 의문이 드는 점은 저 학생에 대한 정보로, 귀족답게 여러 명품들로 치장을 한 것은 알 수 있지만 정작 내게 주어지는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다.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그런데 허일, 저 남학생을 몰아붙이는 저 녀석....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혹시 너도 알고 있나?"
"아니,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나는 아직 우리 반에 있는 학생도 다 못 외워가지고...."

두 사람도 온갖 비싸보이는 물건들로 장식한 귀족의 자제를 보고 여러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다. 쉬는 시간에도 거의 반을 벗어나지 않았던 내가 봤다면, 반이나 도서관에서 봤을 가능성이 크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이 답답하군.

우리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자존심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잘 낚아올린 먹잇감을 쉽게 놔줄 수는 없다는 건가.

"뭐, 네 녀석이 먼저 물러난다면 나로서는 더 잡을 이유가 없긴 하지. 하지만 아마 소문이 나게 된다면, 절대로 너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거다."
"...조용히 해라. 내가 지금 여기서 물러나는 것에 고마워하라고. 애초에 이 <그랜드 스쿨>에서 언제까지 귀족의 자부심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냐. 잠자코 꺼져."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협박인가."

후우, 한 번 한숨을 바닥으로 내뱉는 귀족. 나름대로 만만치 않은 살기를 띤 그를 앞에 두고도 절대 기가 죽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평소에는 이것보다도 더 엄격한 귀족 사회에서 단련되어 왔겠지.

점차 그에게서 멀어져가는 이 준을 보면서 그는 마지막까지도 그에 대한 비방과 비난을 아껴주지 않는 것을 보면 저 녀석도 참 독하군. 저런 녀석들과는 전혀 엮이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상황은 계속 진전되어 간다.

"정말 너무하네.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데. 이런 곳에서 만난 것도 우연이라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넨 것뿐인데, 오히려 내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의 화살이라니. 역시나 말이 통하지 않는 건가, 너희 가문과는."
"...마지막 경고다. 입 다물어."

다시 그가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이 준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면서까지 그에게 마지막으로 선포했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며, 동시에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이 있다는 뜻.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까지가 한계점이다.)

어제 봤던 그의 모습은 귀족이라는 자신의 위치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성향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 발산을 위해 그가 선택한 조치는 폭력. 단순히 알기 쉽게 상하 관계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었다.

"눈빛이 변했군? 아무리 나라도 이 이상은 건드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
"흠, 나도 본래 목적은 식사였으니 굳이 이런 데에서 이 이상 힘을 뺄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 다시 가던 길이나 가라."
"정말 뻔뻔한 녀석이다, 너 같은 새끼는."

비꼬는 말에 맞서 이 준 또한 직설적인 악평을 하며 서로의 일방적인 대화를 마쳤다.
아직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귀족들 사이에서는 학교에 어느 정도 세력이 눈에 잡혔는지 슬슬 행동을 개시하는 것 같아보이는군.

"음, 다행히 생각보다 소규모로 끝난 건가."
"하아,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는 줄 알았네. 서로 대놓고 막말을 늘어놓다니. 여러모로 무섭네, 귀족이라는 위치는."
"뭐야~ 재미없어. 처음에 보였던 그 긴장감은 뭐였던 거야."

내심 불안했는지 뒤에서 각자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 한 마디씩 늘어놓는다. 전체적으로 다른 귀족들에게 큰 파장이 일어나는 것보다 아직은 이 상황이 끝났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이 나라에서는 귀족의 권위가 상당히 강하다는 말이겠지. 이 여자애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자아, 그럼 부디 다음번에 만나자."
"다시 한 번 내 눈에 띄는 순간, 너는 뒤졌어."
"충고 잘 받아줄게. 아, 맞다. 그리고-"


-이미 불타버린 너희 집안 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대신 안부 좀 전해주지 않을래?


온전히 순수의 마음으로 가득찬, 진심으로 우러난 미소와 함께 그는 바닥으로 쿵하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덮쳐온 누군가의 습격 때문이었다.

(저 미친 새끼.)

뻔히 알고 있으면서 결국은 일을 저지르다니.
그 이상 발을 들여놓으면 참지 않는다는 말을 누구라도 알기 쉽게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시도했다는 건-

"야,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이봐, 경비원을 불러와! 빨리 저 녀석을 말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가게 내부의 관계자들이 그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이곳 <그랜드 스쿨>에서의 폭력은 자칫 잘못하면 퇴학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텐데. 설마 그걸 노린 건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얼굴은 무사하지 못하겠지.)

이 준은 위에서부터 그를 내려다보고는 한 손으로는 그의 멱살을 잡고, 남은 반대쪽의 주먹을 공중으로 높이 들어올렸다.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힘조절이 일절 없는 듯 했다.

"-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 그래, 역시 너는 이래야지. 이런 행동이 지금의 네게 딱 어울리는 행동이다. 나쁘지 않아."
"...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그게 너의 사인(死因)이야."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폭력은 절대 엄금이라고 했을 텐데!"

지금 당장은 한 대 때려 속이 시원해질지도 모르지만, 하필 이 식당에는 여러 개의 눈이 있기 때문에 절대 아무런 일도 없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가오는 수많은 제지의 손길에도 두 사람은 각자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성실히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한 사람은 폭력의 실천을, 남은 한 사람은 그것조차 무시한 도발을.

"죽어버려."

결국 감정이 이성을 넘어버렸군.

잠시 망설이던 그였지만, 거기에는 후일을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었을 뿐 그에 대한 자비와 용서의 기미는 단 1g도 보이지 않았다.

"이봐."


-터억


그렇게 주먹을 뻗으려던 그때, 모든 것이 잘 되어가던 그의 코앞에서 이 준의 주먹이 멈춰버렸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었던 거냐."
"뭐야, 네 녀석은...."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의 이 준은 바로 앞까지 옮긴 주먹을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의 팔목을 잡고 있는 눈앞의 남성이 밑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힘이냐, 이 녀석...!)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은 채로 갑자기 나타난 남학생에, 다가오던 다른 관계자도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설마, 이 타이밍에 저 녀석이 나올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어느 틈에 이곳으로 온 거냐, 재-현."

노란색으로 염색된 머리카락에 한쪽 눈을 가린 공격적인 외견, 특히 왼쪽 눈 아래의 긴 흉터가 돋보이는 그.
명찰에 새겨진 재-현이라는 이름 옆에는 81이라는 붉은색의 숫자가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을 뿐이다.

"눈에 띄는 곳에서의 폭력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을 텐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참견하지 마. 갈 길이나 가라고."
"크큭, 그럴 수는 없지. 딱 봐도 재밌어 보이는 이벤트인데 나를 빼놓으면 쓰나."

재-현은 고개를 돌려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바라보는 시선은 그 누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은, 모두를 깔보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런 눈빛. 이 가게의 모두가 그리 생각하겠지.

(어찌 보면 저기에 쓰러져있는 저 귀족보다도 더한 더러운 낌새가 느껴지는군.)

"윽, 뭐야. 나름 미남이 튀어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표정이 너무 썩어있어. 저런 녀석과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겠다."
"잘 알고 있네. 저 녀석은 입학 전부터도 여러 곳에서 악명을 펼친 녀석이야. 장난삼아 접근하다가는,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 거라고."

포스미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는 듯 옆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허일이 말했다. 나도 저번에 머물렀던 여관에서 보인 그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강하게 피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학생이기도 하다.

"네가 그 재-현이구나. 초면에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위에 올라와있는 내 친구 좀 치워주지 않을래? 아무래도 잘못하면 이 녀석한테 죽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뭐, 지금 나한테 말하는 거냐?"

호기롭게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바닥의 귀족을 재-현은 잠시 바라보더니, 그대로 소리내어 그를 비웃기 시작한다.

"크크큭, 더럽게 뻔뻔한 녀석이구먼. 너 같은 위선자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역시나 귀족의 자제라는 건가."
"...!"
"이미 맞을 각오를 했던 녀석이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어차피 네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든 거잖아?"

여유 있던 표정이 그 말에 잠깐 무너지기 시작했다.

"몇 대 맞더라도 경쟁자를 이 학교에서 퇴학시킨다라.... 뭐, 좋아. 너희 귀족들이 사용할 만한 전략이긴 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애초에 난-"
"너희들에게 있어서 명문 마법 학교를 나왔다는 건 후에 출세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런데 벌써부터 이런 수작을 벌일지는 예상도 못했군."

마지막 말은 거짓말이군, 저 녀석.
재-현은 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여유의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비록 그 말이 사실이라 할 지라도 지금은 전혀 이상이 없다 말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여유를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거기에 직접 저 녀석이 나선 것도 분명 어떠한 목적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군.)

재-현은 잡고 있던 이 준의 팔목을 놓았다. 제동이 걸려있던지라 주먹은 곧바로 밑으로 떨어졌지만, 거기에 힘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자, 이제 때려라. 비록 내가 중간에 멈추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뒤의 녀석들이 오는 걸 막기 위해서였으니까. 정말이지, 폭력의 미학을 모르는 녀석들이란 곤란하군, 안 그래?"
"....."

이 준은 주변에서 그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볼 수 있다.
모두가 지금은 재-현의 말에 당황스러워하고 있겠지만, 그 그룹에 속해있지 않은 이 준이 보는 관점은 완전히 다르겠지.

(이런 방식을 쓰는 건가.)

"뭐해? 한 번 때려보라니까? 아까의 그 기세는 어디로 없어진 거냐, 어?"
"...제기랄."

이미 그의 말에 전의가 상실된 듯, 이 준은 잡고 있던 그의 옷을 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이 장소를 떠나간다.

(단 몇 마디의 말과 행동으로 싸움을 아예 끝내버리다니.)

무슨 목적으로 그를 도와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떠한 이득을 노렸으니까 저런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단순히 깽판을 치고 싶었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건 가능한 녀석이니까.

"자아, 이제 상황은 끝났다. 언제까지 이 식당 바닥에 누워있을 생각이지, 귀족님?"
"...여러모로 그쪽도 만만치가 않네. 만약에 이곳 <유메니티>의 귀족 출신이었다면 나조차도 애를 먹을 것 같아."

위에서 내려다보는 재-현의 말에 그도 바닥에서부터 일어나 옷 주위의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한다.

"그럼, 알다시피 타겟도 이미 떠났곘다. 지금은 더 이상 서로 볼일이 없을 것 같네. 그렇지 않아?"
"확실히. 하지만 네 녀석과 달리 나는 이득을 보았지. 예상 외의 장기말을 얻었거든."

서로 단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주위의 반응을 살피면서 더는 이득을 기대할 수 없는지 귀족의 자제가 먼저 말을 꺼낸다. 하지만 재-현은 그의 의도를 따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

"무지막지한 힘을 지닌 저 녀석의 주먹을 강제로 잡아 멈췄으니, 팔목이 무사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치료를 해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이제 그만 끝내지 않겠어?"
"상대가 바뀌니 갑자기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는군. 요즘은 귀족과 상인들이 키운 새끼 새들은 교육이 잘 되어있네."

그리 말하면서 계속 썩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절대로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살기가 느껴질 정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침묵 속의 대립 끝에, 의외로 재-현이 먼저 물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의견을 굽히지 않을 것 같은 그가 등을 돌리자 주변의 관중들이 조금 뒤로 물러나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한다.

"흐음, 생각해보니까.... 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군. 오늘은 여기서 끝이다. 더 이상 얻을 것도 없어 보이니까. 손에 조금 무리가 간 것 같기도 하네."
"그래. 그러는 게 좋겠군."
"하지만, 나는 빚을 남겨두지 않는 성격이지. 기껏 공격을 막아줬으니, 너한테 뭐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어?"
"...미안하지만, 지금은 지불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말이지. 물론 이곳에서의 식사라면야 대접할 수 있지만...."

그는 잠시 그쯤에서 말을 멈추고는 재-현의 눈빛을 살폈다. 아무래도 거물인 만큼, 그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은 듯 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계획을 망쳐버린 자라고 해도.

"아무래도 그걸 원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하지만 나도 뭔가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군."
"너의 창의력은 거기까지인 거냐. 흠, 좋아. 잘나신 귀족님이신 만큼, 예외적으로 차후에 빚을 받아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원한다면."

지금 시점에서야 자신이 불리한 입지에 있다는 것을 단단히 알아챈 듯하군. 물론 처음부터 자신이 유리하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었겠지만, 상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자다.

이미 그가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것을 피력한 걸, 재-현이 눈치채고 한 발짝 물러나주었다. 물론 빚을 진다는 조건하에.

(...여러모로 만만치 않은 녀석이군.)

사람 좋은 듯한 표정으로 악수를 청하는 재-현과 귀족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보이는 모습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 다른 귀족과 상인들만 눈치를 채고 있겠지만.

명찰 옆에 적혀있는 숫자 81.
E반의 반장이면서, 7각성인 그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무엇을 의도하여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가지는 알 수 있겠군.

"지금껏 봐왔던 중에서 가장 영악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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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5-23 01:07 | 조회 : 14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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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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