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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을 다시 만났을때는 수진의 서른살 축하파티에서였다.
각국의 조직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수진은 소심해 보였지만 그건 집안에서 만 이다. 밖에 나가면 사람이 바뀌는 것처럼 냉철해졌고 철저히 계산하에 움직였다.
파티가 끝나고 떠나가는 하객들의 계산된 축하를 가늠하며 인사를 하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문을 닫으려는 찰나 검은 양복을 입은 험상굳은 사람이 수진을 가로막았다.
수진은 경호원인가 싶어 미소를 띄며 죄송하단 말과 함께 옆으로 비켜섰지만 그는 다시 수진을 맊아 섰다.
수진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이번엔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먼저 가라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나왔다.
남자의 가슴이 수진의 얼굴에 닿을 것 같았다.

"무슨일입니까?"

수진이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이젠 그런 말투도 쓰네."

눈동자가 흔들렸다.

"수현이..?"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반가움 보다도 두려움이 앞섰다.

'왜 갑자기 찾아온 거지?'

"십년이 지나긴 지났나보네. 형."

수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에 빠져, 회장님 놀이에 빠져 수현을 찾지 않은 자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양복을 입었지만 목에 보이는 칼자국이 선명했다.

"아직 대화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눈 봐야지."

수현이 수진의 얼굴을 감싸 자신을 보게했다.
얼굴을 돌리고 싶었지만 요지부동인 손힘에 어딘가 꺼림직함을 느꼈다.

"걱정마. 할머님의 지시로 난 형을 도와주러 온거니까."

'할머님!'

회장 자리에서 내려온지 벌써 사십년이 넘었지만 회사의 모든 인맥을 쌓아올린 그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그녀를 믿고 자신들과 거래를 하는 업체가 많이 있다.

"오늘부터 내가 비서야. 원래 비서한테는 적당한 자리 알아봐 줬으니까 다시 찾아오려는 생각따윈 하지마."

'불안하다.'

"설마 아니라고 하는건 아니지?"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말 하는건지 모르겠구나."
"구나? 이젠 아버지 말투까지 따라하는거야?"
"아버지?"

아버지의 말투를 수현이 알리가 없다. 아버지는 수진에게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수현에게는 말할것도 없이 무관심이었다.
그런 수현이 아버지 말투를 알리가 없다.

"그런건 나중에 천천히 알려줄게."

수현은 자연스럽게 수진을 차까지 에스코트했다.
뒷좌석에 앉은 수진은 운전석에 앉은 수현을 처다봤다.

"기사를 부르지. 넌 옆에 앉아라."

수현은 대답하지 않고 차를 출발 시켰다.

"한수현!"
"할머님한테 가야되. 급한 일이야."


허름한 아파트에 고급차가 주차되자 사람들이 지나가며 한마디씩 했다.

"누구집이레?"
"저런차 타고다니는 사람이 이런데 살겠어? 주차만 하러온거 아니야?"

자연스럽게 몸만 내린 수진에게 수현이 지시했다.

"거기 있는거 들어줘."

수진은 양손가득 들어오는 과일바구니를 한손으로 들고 다른 한손으로 옆에 놓인 꽃다발을 들었다.
수현은 그사이 트렁크에서 한우상자 다섯박스를 꺼냈다.
둘은 양손가득 짐을 안고 허름한 아파트로 들어갔다.

"어서와라."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할머니가 나왔다.
인자해 보이는 주름, 주머니가 흔들리며 들려오는 알사탕소리, 향수는 아니지만 포근한 냄세.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수진은 알고있다.

인자해보이기 위해 스스로 이빨을 뽑았다, 모두가 그 퍼포먼스에 속아 맘을 놓고지만, 사자의 발톱은 건제하다는걸 알고있다.

"할머니."

옆집이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왔다.
수진은 오랜만에 할머니를 방문한 손자처럼 행동했다.

"할머니. 손자분들 오셨나봐요?"
"귀찮다고 오지 말라니까 이렇게 오네."
"에이. 좋으시면서."

둘사이에 대화가 오갈동안 수현과 수진은 목례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다녀와."

할머니가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늘함이 등꼴을 오싹였다.
둘은 자연스럽게 쇼파에서 내려와 바닦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머니는 쇼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치마가 흘러내리며 그 나이때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끈한 다리가 비춰졌다.

"둘이 오랜만에 보지?"

자상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사업가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네."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수진아. 이건 너에 대한 경고다."

수진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비서랑 그런 앙큼한 짓을 하고 있을지 할미는 정말 몰랐구나.

수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앞으론 그런일 없어야 할게야. 그런일은 할미가 지시할때만 하면 되는거다. 알았지, 우리손주?"

수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네."
"착하구나. 그럼 온 김에 밥이나 먹자꾸나."

금세 집밥이 차려졌고, 둘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밥을 먹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허름한 아파트를 나왔다.


"당분간은 여기서 같이 지내."

집안엔 이미 수진의 물건이 옮겨져 있었다.

"알았어."

이층에 올라가자 방문이 딱 하나 놓여있었다.

"형 방이야."

테라스가 딸린 방이었다. 커다란 창문과 벽을 가득체운 책들, 사무용 책상이 배치된 방은 어릴적 둘이 살던 방과 똑같았다.

"저건뭐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침대사이즈였다.

"방 여기 하나밖에 없잖아. 나도 여기서 지내."

수진이 인상을 썼다. 감시역으로 나타난 걸로도 모자라 이젠 다큰 놈이랑 같은 방을 써야한다.
따지고싶었지만 이 역시 할머님의 지시였다.
수진은 깊에 한숨을 쉬고 옷을 넥타이를 풀렀다.
할머님을 만나고와 힘이 빠진 수진은 신경질적으로 침대에 누웠다.
위가 아프다.
체한건지 속이 울렁인다.
창백해진 수진이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화장실."
"여기야."

수현은 수진을 화장실로 안내했다.

"나가."
"난 신경쓰지마."

슬슬 한게였다. 수진은 떨리는 손끝을 등뒤로 감추며 수현을 밀었다.

"나가."
"손끝이 차갑네."
"나가라・・・."

말하는 순간 속이 뒤틀렸다.
수진은 변기를 잡고 방금까지 먹었던걸 다 토해냈다.

"끝났어?"

수진이 찬물로 세수를 했다.

"왜 아직도 있어."
"씻는거 도와줄게."
"뭐?"

수현의 커다란 손이 수진의 허리를 쓸며 배를 감쌌다.

"뭐하는・・!"
"아직도 배가 차갑네."

거친손이 배를 위아래로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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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11 22:49 | 조회 : 1,350 목록
작가의 말
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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