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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의 회사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회계사 사무소였다.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먹고 살았고, 직원들 역시 좋지만 작은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대외적으로나 이다.
사실상 모든 대기업과 해외기업은 수진의 회사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 해외기업이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이 회사의 인맥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설사 들어왔다 해도 일 년을 넘기기 힘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히 회계만 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검은손들과 연결되 있다.
평범한 회계 사무소가 각국에 하나씩 있는 이유였다.

고아원에서 일곱살까지 살던 수진은 여덜살 생일에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사생아였던 수진은 태어나자 마자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수진을 대리러온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의 결혼상대가 출산을 거부해서였다.
차안에서 수진의 아버지는 향수뿌린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수진은 앉은 상태로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조금이라도 냄세가 안 나길 바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욕실로 향했고, 수진은 자신을 유모라고 소개한 여자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수진은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저건 뭐지?"

수진은 교육방송에서 나오던 영화가 생각났다.
우아한게 뭔지는 잘 몰랐지만 분명 저기 앉아있는 여성이라 생각했다.

"후계자."

채소를 자르던 손이 멈췄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진을 빤히 쳐다보다 "나 오늘 안 들어와"라고 말한 뒤 나갔고, '아빠'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수진의 앞에는 향긋한 스푸가 놓여졌다. 일하는 사람들은 둘의 접시를 치우고나자 식탁에 남은건 정말 수진 혼자였다.

일주일 뒤 엄마가 돌아왔다.
뒤따라 오는 아이를 보고 수진은 백설공주가 나타났다 싶었다.
검은 머릿결과 발그레한 볼, 작은 입술은 빨겠고,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웠다.

"걔 뭐야."
"후계자."

그날부터 두 사람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우는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둘은 상관없었다.
어른들끼리 싸우는거다,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었다. 같은 옷, 같은 학원, 같은 취미. 둘은 모든걸 함께 했다.


차이가 나기 시작한건 고등학생때부터였다.
같은 콩쿠르에 나가도 수진은 간신히 입상이었지만, 수현은 대상을 탔다. 둘다 취미로 시작한거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후계자 수업에서까지 수현이 우월했다. 수현은 공부보다 음악을 더 좋아했다.
공부를 빨리 끝내고 연주를 하던 수현과 다르게 수진은 그날분의 숙제를 끝내는 것도 버거웠다.
수진이 못하는게 아니었다. 수현이 특출날 뿐.
모든 사람들이 후계자는 수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엔 잠시 질투하며 수현과 멀어지려고도 했지만 수현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때는 외적으로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수진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빼쩍마른 몸을 가리기 급급했다.
하지만 수현은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과 그을린 피부, 다부진 몸과 큰 키로 수진의 옆에 있으면 경호원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수진이 신경질을 내면 수현은 아무말 없이 받아줬다. 그리고는 새벽에 훌쩍이며 수진을 찾아왔다.
성숙해보이는 수현이 수진의 옷자락을 잡으며 울었다.
수진은 그럴때면 수현을 안아줬다. 미안하다 말하며 둘은 한침대에서 같이 잤다.
남들이 보기엔 매서운 눈이었지만 눈물이 고인 지금은 어릴적 수현이 겹쳐보였다.
수진은 수현의 얼굴에 여러번 뽀뽀를 해주며 미안하다 반복였다.
수현도 어린이 취급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수진을 꼭 껴안았다.

하지만 둘을 갈라놓는건 의외로 간단했다.
장남 이라는 이유로 수진이 최종 후계자가 되었다.
모든 결정은 회사의 최대 주주이자, 회장, 외할머님의 결정이었다.
그날부터 수현은 수진을 찾지 않았다.
매번 수현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에 수진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기다리는 나날이 지나다 한 달이 흘러갔다.
새벽에 깨어난 수진은 서러움이 몰려왔다.
회장 자리가 뭐라고 수현이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진은 그길로 수현의 방에 찾아갔다.
방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캄캄한 방. 수현은 바닥에 앉아 큰 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두어 찬공기가 가득했고, 수현은 윗도리를 벗고있었다. 새벽에 운동이라도 했는지 머리카락과 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방안에서는 비릿한 냄세가 났다.
하지만 수현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린 수진은 코가 막혀 아무 냄세도 맞지 못했다.
왜 태도가 변했는지, 왜 심술만 부리는지 묻고싶었지만 수현을 보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두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과 울렁이는 시야가 짜증났다.

"흐앙!"

수현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수현은 방문앞에서 대성통곡하는 수진을 침대에 앉히고 방문을 닫았다.
수현이 수진의 앞에 양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후계자라서 그래?"

찬바람에 머리가 조금 식혀졌는지 수진은 울면서 말했다.

"네자린데 내가 뺏어서 그래?"
"아니야."

오랜만에 듣는 수현의 목소리였다.

"그럼 왜 그러는・・・."

수진을 말을 잊지 못하고 또다시 대성통곡을 했다.
당황하던 수현은 수진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어릴땐 눈 하나 가리기도 힘들었는데 어는세 양 손으로 수진의 얼굴을 다 덮을 정도로 커버렸다.
수현은 얼굴을 가까이 했다.

쪽.
쪽.
쪽.

수진이 해줬던 것처럼 수현이 얼굴 이곳저곳에 뽀뽀를 했다.
눈가에, 이마에, 볼에, 턱에. 일부로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아슬아슬하게 입술을 피한 입마춤이 끝나자 수현은 볼이 빨게졌다.
수진이 수현을 꼭 껴안았다.
수현이 품안에 다 들어오지 않자 수진은 목에 팔을 둘렀다. 수현은 머뭇거리다 허리에 팔을 감았다.
오랜만에 껴안은 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는때보다도 행복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수진은 수현의 침대에서 깨어났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도착하자 마자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왔다.

"수현이가 나갔다. 그러니 이제 맘 편히 지내라."

몇달만에 본 아들에게 인사도 없이 본론을 꺼냈다.
이젠 네 세상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과 자신의 자식이 후계자가 됐다는 만족감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잘했어."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냄세가 난다며 코를 막고있던 아버지가 자신과 눈을 맞춰준다. 웃어준다. 예쁜아이를 다루는 듯한 목소리. 상냥하다. 그동안 받지 못했던 사랑을 한꺼번에 받은것 같은 느낌이었다.
황홀함에 젖어있는 수진을 뒤로 한체 아버지는 방을 나갔다.
수현은 이미 머리 뒷편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수현을 다시 만났을때는 수진의 서른살 축하파티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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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11 22:48 | 조회 : 1,824 목록
작가의 말
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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