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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내 자리였어."

동생 수현이 회장 자리에 앉아있다. 그 자리는 형인 수진의 자리였다.
동생의 무례에 화가날 법도 하지만 수진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건 쓰린 속을 들키지 않게 내려가는 입꼬리를 일자로 만드는 거다.
수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사회인이 되서 표정도 못 숨기네."

수현이 가죽으로 만들어진 고급의자를 박차듯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의자가 바닥으로 쓰러지며 쿵 소리를 냈다.
성큼성큼 수진에게 다가온 수현은 빙긋 웃어보였다.
머리하나가 더 큰 수현의 모습은 위협적이다.
험악하기 그지 없던 얼굴에서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말려올라간 입꼬리, 생글생글한 눈동자 완벽한 접대용 표정이었다.

"이정도는 되야지."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표정에서 수진을 낮잡아보는 말이 흘러나왔다.
수현은 가까이 다가온 수진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이미 일그러진지 오래다.

"내가 도와줄게."
"읏!"

장갑낀 손가락이 수진의 입술을 거칠게 벌렸다. 마치 영화 조커의 한 장면처럼 수현은 손가락을 양쪽으로 쭉 잡아당겼다.
입끝에서 피가 흘렀다.

"아파? 도와주는 건데 그정도는 참아."

수진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울고싶어서 우는게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진은 수현을 가슴팍을 밀었다.
움직이진 않았지만 간신히 손가락을 빼네는데는 성공했다.

"뭐하는 짓이야."
"컥... 큭... 너야 말로 무슨..!"

수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수현의 손이 수진의 뒷목을 잡았다.

"윽!"

뼈가 으스러 질것같은 힘이었다.
그사이 수현은 손가락을 무지막지하게 처넣었다.
손가락 세개를 넣자 입이 꽉찼다.
목젖에 수현의 손가락이 닿았다.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입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으윽.!"
"형."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자신과 처음 만났을땐 자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다.
.
.
.
"도련님."
"형이라고 불러."
"하지만."

수현이 쭈뼛거렸다.

"수현아."

수진이 양팔을 벌렸다. 수현은 망설임 없이 수현에게 안겼고, 수진은 그런 수현을 안아 올리며 부드러운 볼에 여러번 뽀뽀를 해주었다.
킥킥 거리던 수현이 간지럼을 못 참고 꺄르르 거리며 크게 웃었다.

"우린 가족이야."
"정말?"
"당연하지."

수현이 수진의 목을 꼭 끌어 앉았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 우리가 가족이란 것만 알고 있어줘. 호칭은 뭐든지 상관없으니까."

끄덕이는 작은 머리통이 귀를 간지렸다.
수진은 자신이 이 작은 생명체를 꼭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
.
.

"아직도 우리가 가족인줄 알아?"

수현의 눈매가 차가웠다.

"피도 안 섞였는데 무슨 가족이야."

말하면서 손가락을 더욱 깊숙히 찔러넣었다.

"우욱!"

참지못한 수진이 결국 위에 있는걸 토해넸다.
먹은게 없어 나오는건 방금전 긴장을 풀기위해 마신 물과 위액뿐이었다.
수진은 모든걸 포기하고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저 자리도 자신의 것이 아니란건 자신이 가장 잘 알고있다.

"...내일 주주총회를 열거야."

수진의 얼굴에 장갑이 떨어졌다.

"그만두게?"
"원래 내 자리도 아니었어."
"그 주주총회 내가 취소했어. 사과의 의미로 꽃에다 손편지까지 썼다니까?"

수현이 큭큭 거렸다.

"왜..."
"고작 이정도로 나한테서 멀어지면 곤란해."
"...언제까지 이럴건데."

수현이 바닥에 쓰러져있는 수진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칼을 잡아 투박한 손과 까칠한 감촉. 예쁘게 뼈가 도드러지고, 손 끝이 항상 가지런한 수진과는 전혀 다른 손이다.

"가."

수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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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11 22:47 | 조회 : 1,784 목록
작가의 말
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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