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이 없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저 음슴한 기운에 서서히 눈을 뜨며 누워있는 상태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짙은 안개와 거뭇한 기운들이 땅위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있다. ''그 존재''가 말했던 것처럼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숲이었다. 손을 몇번 쥐었다 폈다 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현실적인 감각, 잔디의 감촉, 이제서야 내가 ''전생''하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난, 오늘 다시 태어났다.

황갈색의 긴 머리카락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존재''가 만들어 준 의체, 일단 의체가 입고 있는 옷을 만지작 거리다가 겉 옷 하나를 벗어서 옷을 한 번 툭 털었다. 그러자 후드 망토로 변한 옷을 자연스럽게 입고서는 얼굴을 가린체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걸었다. ''그 존재''가 준 혜택을 받으니 이 미로같은 숲에서 평야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머릿속에 숲의 길이 지도처럼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평야를 찾고서는 ''그 존재''가 준 혜택을 활용하여 작은 오두막을 만들었다. 안 그래도 조금 있던 나무들이 사라지니 진짜 평야의 느낌이 났다.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숲 한 부분에 구멍이 난 느낌이다. 감상은 뒤로 미루고 살기위해서 식재료를 조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지도에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마물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보였다. 눈을 감고 머리속에서만 상상하며 보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 한 나는 그것을 응용하여 마물을 찾을 수 있도록 눈에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세상이 백색으로 보였다. 나무와 풀들은 불투명했고, 그 사이에 살짝 붉게 마물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멀리 있는 마물들 조차도 망원경을 쓴 듯이 보였다. 조금 어지러움이 느껴졌지만 금방 익숙해 졌다. 언제든지 풀 수 있고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이 마법의 이름을 ''그 존재''는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마물을 잡으며 먹을 수 있는 고기인지 아닌지 나름대로 구별하고 분류하며 그 숲에서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며칠 뒤 ''그 존재''가 말했던 대로 그 숲 아래에 있는 마을을 향해 걸어나갔다. 왜인지 모르게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짐을 싸고 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모험가 길드에 들어갔다. 예상했던 것 과는 달리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사람들 중 가운데에 앉아있는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모험가 등록을 .."

''그 존재''의 혜택으로 몸에 악취가 나지 않고 언제나 깨끗하지만 옷이 조금 허름해진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여직원은 아무말 하지않고 조금 놀란 듯 나를 보는 듯 했지만 난 옷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여직원은 정신을 차렸는지 서류와 깃펜을 주며 말했다.

"작성부탁드립니다"

나는 가볍게 작성할 수 있는 부분을 작성을 했다. 그리고 빈 공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부분은 굳이 안 써도 되는 부분인 것으로 압니다.. 괜찮을까요"

그 여직원은 종이와 펜을 받고서는 살펴보며 말했다.

"예.. 출신지는 딱히 상관이 없지만, 이름을 안 적으시는 분은 여태 없어서.. 딱히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험가 분들 끼리 서로 부르실 때 힘드실 것 같아서, 저희 마을은 대부분 파티퀘스트 밖에 없거든요, 랭크가 좀 더 올라가야 솔로퀘스트가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 존재''에게 들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
"이름을 안 쓰려고?"

".. 네 그런 거 하나의 족쇄라고 생각 들어서 "

''그 존재''와 하얀 공간에서 이야기 하던 기억이 올라왔다.

" .. 뭐, 말리진 않아 이름 없어도 되니까, 근데 뭐랄까.. "

''그 존재''가 말을 끝마치지 않고 고민하는 듯이 보였을 때 나는 이 존재도 날 동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주 근사한 이름 하나 지어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쉽다"

그치만 예상 외 의 말에 나는 ''그 존재''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여기 라이센스 카드입니다"

회상을 끝마칠 때 즈음 여직원의 목소리에 눈을 뜨며 카드를 받았다. 이름 부분이 공백으로 남겨져있었다. 난 망토를 고쳐쓰면서 여직원이 이야기하는 설명을 다 듣고서는 게시판을 향해 걸어갔다. 꽤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저기서 종이를 흔들며 파티를 구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다시 게시판에 눈을 돌리려는 순간, 의자에 앉아서 술을 한 잔하는 모험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 사람들을 다 내보내다니.. 왕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 말을 언뜻 들은 나는 짐을 싸고 떠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왕의 권한으로 일반인들과 모험가들을 보내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는 듯 해보이는 사람들, 나는 게시판에 있는 약초채집 의뢰를 보고 종이를 집으려 했으나 파티 의뢰인 것을 보고서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거기 망토입은 형씨"

그 것이 나를 부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망토를 입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은 나 혼자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4명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있었다. 한명은 누가 보아도 리더였고 탱커 같은 느낌이었다.

"방금보니까 혼자에다가 솔로인 것 같은데, 약초 채집부터 할 꺼지?"

"예"

갑옷을 입고 등에 방패를 매고 있던 남성은 약초 채집 임무를 뜯고서는 말했다.

"같이가지 형씨"

아무래도 유명한 사람들인지 주변사람들이 부러운 눈치로 나를 바라보았다. 구성원을보니 마법사, 힐러, 탱커, 도적 정도인가 정확한 직업은 모르지만 전생의 지식으로서는 그렇게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찌할지 고민하던 도중에.."

나는 고개를 숙여 예를 차리고 인사를 하자 당황하는 듯 그 리더로 보이는 남성이 말했다.

"어이어이,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러나~ 어서 가자고!"

남성은 카운터에 있는 여직원에게 의뢰서를 주고서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 파티에 속해 있던 여 마법사가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겁니다 걱정마세요, 후후.. 귀족 신분이 모험가 분들에게 예의 차리시는 게 좀 신기해서, 어서가시죠"

나는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이 분들은 날 귀족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게 그저 그냥 귀족 신분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모험가로 전향하여 이 나라를 나가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귀족이라고 생각할지.. 내가 너무 과대해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모험가들의 눈 빛이 왠지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한 둘이 아니라는 소리였다는 증거겠지,

"그러고보니 이름을 안 적었다고 들었는데, 뭐라고 부르면 될까? 아, 참고로 난 철의 기사 레이튼이다. 잘부탁한다고"

"후후, 전 불의 마녀 진이에요"

검은 꼬깔모자를 쓴 아까의 그 여성은 그렇게 말했다. 붉은 머릿결이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앞의 불의 마녀나 철의 기사는 별명이나 사람이 부르는 명칭 같은 걸 까

"전 빛의 인도자 루시에요, 잘부탁드립니다"

"아, 난 크로커 다일 소속 암살단 카르펜이다"

나는 그들의 자기소개를 끝까지 듣고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부탁드립니다. 보다싶이 이름이 없습니다. 출생지도 어디인지 모릅니다.. 편하게 마음대로 불러주세요"

나의 말에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는 듯 하더니 리더인 레이튼이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크흠, 저기.. 오해해서 미안하군"

"괜찮습니다"

난 중간중간 보이는 약초를 채집하며 대답했다. 그들은 사방을 경계하면서 우물쭈물 말했다.

"요즘 시국이 그렇다보니 다들 예민해져서 말이야.."

"무슨 일이 있나요?"

"하하!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구만~ 뭐.. 마의 침범이 일어난다고 하더군.. 그래서 힘없는 사람들이나 자유를 권해진 모험가들은 다른 나라로 보낸 거지, 조금이라도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그런데 귀족들은 본인들도 무서워서 모험가 신분으로 떠다려고하는 거지 "

"그렇군요, 마의 침범이 뭐죠?"

나는 흙이 묻은 손을 탈탈 털며 약초 바구니에 약초의 갯수를 새며 말했다.

" 마의 침범은 마물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굶주린 마물들이 먹이를 찾아 대이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

카르펜은 무덤덤하게 나무에 기대며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

나의 말에 레이튼이 물었다.

"응? 뭔데?"

"약초가 하나 모자랍니다"

"응?"

내 진지한 대답에 레이튼은 멍하니 날 보다가 웃음을 터트리며 다같이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 .. 이상하다 분명 여기가 칼라초 서식지인데.. "

"원래 이렇게 개채 수 가 적나요?"

"아니요.. 원래는 엄청 많아요, 한동안 모험가 분들도 급격히 줄어서 더 많을텐데..."

루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쭈그려 앉아서는 풀을 뒤적거렸다. 나는 잔디를 뒤지다가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보다가 눈에 마법을 걸었다. 우리 주변을 가득히 둘러 싸고 있는 마물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살짝 한 숨을 쉬었다. 그 들이 눈치 못채게 마법으로 피 튀김이없이 소리없이 마물들을 죽이고 있으나 꽤나 멀티로 이 짓을 한다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게다가 밤이 될 것 같자 마물들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슬슬 내려갈까요, 밤이 되어가는데"

나의 말에 그들은 해가 져가는 것을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아 그래야겠네, 어서 갈 채비하자고, 그 뭔가 미안하네.. 의뢰 제대로 못 도와줘서.."

나는 마물들을 해치우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여러분들이 없으셨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레이튼은 부끄러운지 목을 여러번 가다듬었다. 레이튼 선두로 숲을 해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와중에 루시가 말했다.

"오늘따라 숲이 더 음침하네요.."

"하아. .그러게 긴장을 늦추면 안되겠어"

그녀의 말에 진이 대답을 했다. 나는 줄어들지 않는 마물의 개수를 보며 목을 손으로 주무르며 레이튼 앞 방향에도 있는 마물들을 소리없이 마법으로 죽였다. 그리고 공간 전이 이동 마법으로 차원수납에 넣어두긴 했지만 슬슬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눈 빛에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살기를 담은 눈 빛..? 아니 조금 다른 눈 빛이었지만 뭔가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마물을 줄이는 것에 집중했다. 한 참 말없이 사람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마을로 내려가는 도중 카르펜이 내 바구니를 집으며 말했다.

"힘들어보여서, 들어주지"


그랬나? 나는 얼떨결에 바구니를 내어주고는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곧 마을이 나왔고 우리는 무사히 길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살짝 지친 그들을 보며 고개숙이며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휴 뭘 또.. "

레이튼은 코를 쓱 훑으며 부끄러운듯 말했다. 덩치는 산만해서 하는 행동이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 나는 카르펜이 건내어주는 바구니를 받고서는 카운터로 갔다. 여직원이 갯수를 새더니 말했다.

"어? 딱 6개인데요?"

"아..?"

내가 갯수를 잘못샌건지 의뢰 숫자에 맞다는 소리에 뒤에 있던 레이튼 일행분들이 기뻐했다.

"어이어이~ 첫 의뢰 달성 축하한다고~!"

"아.. 감사합니다"

나는 레이튼이 목을 끌어 안 고서는 이야기하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계속해서 마법을 쓰면서 약초를 채집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정신적으로 조금 피곤했지만 무언가.. 기뻤다. 첫 의뢰에 대한 달성감인가?... 잘 모르겠다..

''그 존재''가 바라는 게 이런 건가...?

다들 여관으로 헤어질 즈음 나는 집으로 갈 채비를 끝내고 마을 밖으로 나가는 문을 지나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 .. 카르펜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 나인 건 어떻게 알았지?"

".. 걸음걸이의 소리가 똑같아서요"

카르펜은 서서히 걸어나오며 내 앞에 섰다. 무슨 일인가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생각한 나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나보다 조금 큰 키, 조금 큰 체격, 누가 잘못보면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르펜은 서서히 손을 올리더니 내 볼에 손을 올려망토를 넘기며 말했다.

"넌... 누구지?"

달 빛에 카르펜의 얼굴이 드러났다. 분명 걸음걸이와 목소리는 같지만 얼굴은 딴판이었다.

".. 그럼 카르펜, 당신은 누구시죠?"

카르펜은 알수없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나라의 국왕 ''아서'' 다"

나는 아서의 말에 국왕이 꽤나 젊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리고 좀 잘생겼다는 생각에 나의 볼을 매만지고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 다시 묻지.. 넌 누구지?"

나는 볼을 매만지는 손등에 손을 덮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 전.. 이름이 없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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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1-28 13:22 | 조회 : 747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