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편] 외면



황금이 자라난 듯한 금발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다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어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왕과 신하들과 그의 기사 윈스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소녀를 향해 그러면 안된다고,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소녀는 신경쓰지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작은 미소까지 띄웠다. 왜냐면 그녀는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지.....


*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백성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주시고,
회색으로 물든 왕성에 태양같은 활기를 가져다 주셨죠.

당신의 순수한 미소를 볼 때마다,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실 때마다,
푸르고 아름다운 눈동자와 마주칠 때마다,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죄가 모두 정화되는 기분이였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전 공주님을 목숨바쳐 지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공주님을 보고있으면 당신과 함께하던 추억으로 돌아간 기분이였어요. 그리고...또....아무도....공주님을 돌보려하질 않으니까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공주님껜 목숨바쳐 자신을 지켜줄 기사따위 필요하지 않았어요. 공주님은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바랬습니다. 제가 공주님을 사랑해드려야 했는데...제가 공주님의 가족이 되어드려야 했는데......

공주님께서도 알아차리셨던 거겠죠. 제가 호위기사로 자원한 이유는 공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동정과 죄책감 때문이란 것을요.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라가야할 나이에 저주의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누구도 공주님을 진심으로 아껴주지 않았습니다. 영혼없는 말뿐인 가족관계와 흑백의 종이같은 사용인들의 태도. 그것을 공주님이 모르셨을리가 없죠....

당신을 잃었는데도 나태한 본질은 변하지 않았군요.

역시 실망하셨겠죠. 원망하셔도 좋습니다.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영웅에게 더이상의 가치는 남아있지 않아요.

이대로 당신과 아가씨의 곁을 따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아리엘.
짧은 시간이였을지라도, 진실이 아닐지라도,
전 당신의 영웅이여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

기사는 공주의 피가 묻은 단검을 자신의 가슴에 찔러넣었다. 마치 자신의 앞에 죽은 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얼마지나지않아황금으로 장식된 고급 단검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었고, 기사는 그대로 잔디 위에 쓰러졌다.

기사는 공주를 바라보며 쓰러졌고 눈을 감기 전에 마지막 남은 시간을 모두 소녀로 채웠다. 그 눈엔 아픔의 빛따위 서려있지 않았고 오직 너무나도 슬퍼보이는 죄책감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기사의 가슴에서는 붉은 피가, 눈에서는 푸른 물을 흘리며 그의 세상이 점점 어둠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

그때였다. 그는 몸에 따스한 태양이 감싸오는 걸 느꼈다. 그 빛은 너무나도 신성해서 기사의 피와 눈물을 멈추었다. 그 영웅은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기분을 느끼며 행복하게 숨을 거두었다. 태양을 가져온 천사는 두 시체를 따뜻하게 품었다. 그 천사는 공주의 어머니이자 기사가 세상에서 가장 연모하는 자, 아리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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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1-02 22:34 | 조회 : 185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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