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일생}

저무는 해와 떠오르려는 달에 경계선이 존재하는 신비로운 시간대. 그곳에 시간만은 멈춘 듯 고요한 적막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마치 그림 같은 눈밭 위로 목화솜 같은 하얀 눈송이가 내린다. 시리디시린 겨울이 찾아왔다.
이 모든게 꿈인 것 같이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날이었다.

이 세상에 겨울은 몇 번이 지나도 몇백 번이 지나도 익숙해질 수 없는 계절이었다. 적어도 내겐.

이런 겨울을 반기는 이들이 있었다.송이송이 내리는 하얀 눈은 그만큼 아름다웠고 그렇기에 그 순간은 찰나에 불과했으니. 반대로 몇몇 이들은 겨울을 싫어했다. 송이송이 내리는 하얀 눈은 그만큼 시리고 고됐으니.
자신도 예전엔 눈을 싫어했다. 지금도 변함없이. 왜냐면 자신은 가난했고 그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볼품없는 존재였으니까.

자신의 삶은 하루하루가 치열했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에 비참함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걸 느끼기에 그 당시 자신은 너무 어렸고 그것을 느낄 시간도 없었으니까.

너무 지쳤다.

지금까지 난 무엇을 위해 살아왔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뜬금없게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수십 년에 세월 동안 애써 외면해 오던 생각들이 한번 트이니 또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쉽게 그 상념들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중한 것을 잃었고, 소중한 것을 잡을 수 없다.

하루하루 무더져만 갔다.
자신은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가난해도 좋았다. 자신은 그리 거창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비록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한 번쯤은 ‘가족’ 같은 존재와 ‘집’이라는 안식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에 소소함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이 이리도 어려울 줄은 몰랐다.

이제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신은 그저 겁쟁이일 뿐이었을까.

자신은 겉과 속이 다른 족속들을 싫어했다. 근데 이미 자신도 그런 족속이 되어버렸다.
덫을 피해 가려다 더 큰 덫에 걸려 사지가 결박 당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래야 됐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더 먼 길을 돌아왔지만 이미 종착지는 정해져 있었다.

드디어 나도 평범해질 수 있다.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이 보였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저물고 달이 떠올랐다.
쓸쓸한 겨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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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2-14 16:23 | 조회 : 743 목록
작가의 말
Talia

새로운 방식으로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잘 부탁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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