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푸른 장미

스피네스가 가져다 준 옷은 하얗고 긴 원피스였다. 그런데 이 원피스가 레이스로 된 반투명이라 걸쳐봤자 트리스의 몸을 가리는데에는 일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야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 진짜 이걸 입고 나가라고요?"

"그게 제일 무난한거야." 스피네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네..? 그럴리가... 옷장은 어디있어요?"

스피네스는 옆방에 있던 옷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스피네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예 투명인 티셔츠와 팬티, 망사로 된 우주복(?)같이 생긴 일체형 슈트, 심지어는 다리 사이를 가리지도 못하는 짧은 누더기까지 있었다. 새삼 이게 제일 무난하다는 스피네스의 말이 트리스에게 깊게 와닿았다.

실망한 트리스는 결국 스피네스가 준 옷을 입고 성을 구경했다. 의외로 구경거리는 많았다. 복도에는 거의 장식품이 없었다. 그냥 수많은 문들과 창문들 뿐이었다.

트리스는 우선 방에 들어가지 않고 복도만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벽, 아니, 문에 맞아 뒤로 고꾸라졌다.

"헉! 괜찮-히익-!!" 문을 연 것은 바이드 성의 시종 같았다. 그는 푸른 눈에 흑발이었으며, 뱀파이어인 듯 했다. 그는 쓰러진 트리스를 보고는 놀랐다. 그리고 손으로 시선을 가리며 민망한듯 말을 더듬었다.

"아니, 왜 그런 옷을- 여기에 왜 인간이-"

"...." 트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눈 앞의 뱀파이어는 트리스의 목에, 정확히는 쇠목걸이와 목줄에 시선을 주더니,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 펫이구나?"

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방에서 나와 문을 닫더니 트리스에게 물었다.

"근데 너, 왜 안 일어나?"

트리스는 넘어진 후부터 계속 바닥에 앉아있었다. 트리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고, 그는 그런 트리스의 반응을 보고 말했다.

"어... 난 일이 있어서 이만."

그의 말에 트리스가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하는 순간, 여집사 스피네스가 모퉁이를 돌며 남자와 트리스가 있는 복도에 왔다.

그녀는 트리스가 바닥에 앉아있는 꼴을 보고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남자한테 말했다.

"레논, 이제 일 하러 가지 그래."

"그럴려고 했습니다." 레논이 눈을 굴리더니 어딘가로 걸어갔다. 트리스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봤다.

"적당히 구경하다가 들어가. 이 층에는 별 거 없으니까." 스피네스가 말하고는 그녀마저 어디론가 사라졌다.

심심했던 트리스는 일어나서 아까 레논이 걸어갔던 곳을 향했다. 그를 찾아서 이곳에 대해 물어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레논이 향했던 곳으로 가자 계단이 나왔다. 아래층으로 갔을지, 위층으로 갔을지 고민하다가 트리스는 자신이 층을 벗어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음... 잠깐 정도야........

...모르지 않을까?'

애초에 '노아 아렌트'는 모험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트리스는 결심했다. '위층이다!'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자 아까 있던 층과 같은 방식의 문이 나열된 복도가 나왔고, 그는 레논의 흑발과 문이 닫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트리스는 당연히 레논의 들어간 곳을 향했다.

그 문의 손잡이는 특이했다. 다른 문들의 손잡이들과 다르게 꽃과 장식이 과할 정도로 새겨져 있었고, 꽃 모양으로 빚은 은이 손잡이부터 손잡이가 문에 붙어있는 주변까지 달려있었다.

트리스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공간이 울렁거리더니 갑자기 눈이 부시더니 따사로운 햇빛이 느껴졌다.

'...?'

오랜만에 느껴보는 햇빛이었다.

주변에는 온갖 아름다운 꽃들과 나비, 벌, 곤충, 동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실외의 정원에 있는 것 같았다. 장미, 튤립, 달맞이꽃, 평범한 풀꽃, 이름을 모르겠는 아름다운 꽃들과 심지어는 연못도 있었다.

트리스가 앞으로 나아가자, 그곳에는 거대한 유리로 만든 관이 있었다. 아름다운 푸른 장미가 가득 피어있는 유리관. 그리고 그 장미더미 속에 묻혀있는 여인은 트리스의 어머니였다.

"마..말도 안 돼... 이래서 다른 층에는 가지 말라던 거였어...?"

트리스는 어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변이 울렁거리더니 꽃과 정원은 간데없고 가운데에 관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관 속에서 어머니가 눈을 뜨시더니 두 팔을 활짝 열며 말했다.

"이리 온, 내 아들."

"엄마..."

트리스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자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목줄을 당겼다. 트리스가 뒤로 고꾸라지자 검은 손이 재빨리 트리스를 잡아 그의 눈을 가렸다.

"..!! 이거 누구야!! 놔-!"

"야, 인간이 저걸 그냥 보면 어떡해! 나도 보면 안되는데!!"

레논의 목소리였다.

트리스가 뒤를 돌아보자 검은 장갑을 낀 레논의 한 손에는 물뿌리개가, 다른 손은 트리스의 머리, 눈 언저리를 잡고 있었다.

다시 정원에 돌아와있었다.

"뭐야, 벙어리는 아니었네?" 레논이 벙찐 트리스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그나저나 방금-방금 그건... 도대체 뭐야?" 트리스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어머니의 관을 가리키며 물었다.

"글쎄, 안에 무슨 중요~한 분이 주무시고 계신다던데 누군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뭐?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 왜 몰라?"

"너도 봤잖아? 관 안쪽을 보는 순간 엄청난 환각에 빠져들어. 결국 환각속에서 헤매다가 늙어 죽는다고." 레논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저 관에는 항상 검은 천이 덮여있지. 오늘은 잠깐 먼지 터느라 내가 거뒀지만."

트리스는 말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각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너 이름이 뭐야?" 레논이 물었다.

"...트리스."

"그래? 난 레논 하르타라고 한다."

레논이 악수를 하려고 트리스의 머리를 놓고 그 손을 내밀었다. 트리스는 손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왜 나한테 잘해줘..? 난 인간에다가...." 트리스는 자신의 쇠목걸이를 가리켰다.

"그야 뭐.... 일단 같은 성에 살고 있기도 하고..... 에이, 인간이면 어때!" 레논이 악수하려고 내놓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결론지었다. "나야 뭐 맨날 성에서 주는 피만 먹으니까 지금까지 인간은 본 적도 없다고."

트리스는 그런 뱀파이어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트리스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레논을 쳐다보자 그는 살짝 옆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향하자, 정원의 문 앞에 서있는 로미니티가 보였다.

그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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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1-01 13:14 | 조회 : 9,027 목록
작가의 말
Xe

해피 뉴 이어~~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여러분! +끊는게 아침드라마급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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