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모든 일의 수습

몇 차례의 위기가 넘어가고 나서야, 그들은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의 범죄자를 놓쳤다고는 하지만, 인류의 희망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잠깐, 그러고 보니-!"

아니, 아직 한 사람이 남아있었다. 카프라는 이름의 흑월 소속 암살자.

그 자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가 최악의 상황이었다. 감히 길드원 중 한 사람인 이니를 건드리다니. 비록 바로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사적인 감정보다 공적인 업무를 우선시해서 놔둔 것뿐이다.

(그것도 라이 님의 명령으로 풀어준 거에 불과하지.)

풀어준 두 사람의 뒤를 추적할 사람을 보내 그 둘의 조직 위치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보낸 길드원들도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었다. 아마도 그 후부터 지난의 스트레스가 늘어난 듯싶었다.

(비록 아까 전의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 사태를 최종적으로 일으킨 원인 중 하나는 그 녀석일 것이다.)


'이미 그 길로 돌아가기에는 늦었으니까.'


카프의 외침이 조금씩 그의 머릿속에서 일그러지듯 머리 구석구석에 퍼져나간다. 그 길이라는 것은 아마도 이전의 암살자로서의 길이겠지만-

(이미 손에 흉기를 들었고, 그걸로 사람을 죽였다면 돌이킬 수 없다고.)

인간으로서 어떤 금품적인 욕구만을 얻기 위해 같은 인간을 죽였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과 비판을 받아야 한다. 이미 그가 암살자로서의 과업을 저질렀다면, 더는 손을 씻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끄러워! 이제 그 소속감은 없어!'


"아니, 너는 이미 손을 더럽혔어. 벗어나고 싶다고 그리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살인이라는 것은."

고개를 돌려 서서히 이니가 있는 쪽을 살펴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도망가버린 것인가.

아마 그녀에게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암살자로서 격이 높아진 지금의 그를 아직 용사 후보에 불과한 이니는 어디 갔는지 인식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후우, 그사이에 도망가버린 건가. 이것 참 곤란한데...."
"...! 어, 어느새...!"

그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이니는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없어져 버린 카프에 경악하며 자신도 모르게 힘이 풀린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 절규를 느낀 그녀로서도 그가 남긴 말에 깊은 인상이 남았을 정도이다.


'...이미 버려진 지금에서야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건 마치 다른 모든 이들에게 버려진, 매우 위태로운 어린아이의 모습인 것 같았어.)

몇 차례의 단계를 거쳐 진정한 용사가 된다면, 아마도 이런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상에만 앉아서 정보를 받아올 때와는 달리 현장에서 직접 겪은 처참함과 잔혹함이 깊숙이 그녀의 마음속에 침투한다.

"세상은.... 이렇게도 잔혹하던가요...."

지금껏 속으로 삼켜왔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때마침 아까부터 미묘하게 어두워지던 구름이 이제는 마침내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는지 그들에게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기분을 표현하는 것에 가장 적합한 날씨.

저 위의 높은 하늘을 둘러보아도 이제 그분의 존재는 없다. 아마도 인간들 틈에서 섞여 여러 곳곳을 탐색하고 있겠지. 그렇다면 아무래도 자연적으로 내리는 비다.

"...참으로 눈치가 없는 날씨로군. 기분이 나빠질 만큼. 자, 이니. 그 차림으로 있다가는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 이거라도 덮으렴."

입고 있던 옷을 그녀에게 건네준다. 그녀의 눈물인지 비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만큼의 격렬한 비가 계속 구름 아래로 떨어졌다.


☆☆☆


"비가 오는군요."
"그러게."

<유메니티> 어딘가에 존재하는 건물 안.
그곳은 창문 밖으로 내리는 비처럼 아직도 홀로 어둠 속에 있는 밤이 끝나지 않은 듯, 너무나도 어두컴컴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작정입니까?"
"뭐, 내 고집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머물러 있다가 가는 것은 어때?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많더라고. 여기에는."

그러면서 곧바로 옆에 있던 꼬치구이를 잡고는 한입 베어 문다. 그러면서 창밖의 경치를 즐기면서 옆의 부하에게도 권유해본다.

"아뇨, 됐습니다. 그것보다, 저 뒤의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아, 이 녀석 말이야? 며칠 있다가 우리 본거지로 데리고 가도록 하지. 그나저나 이야, 여기 이 꼬치구이 집 잘하는 데네. 처음 먹어보지만. 이봐, 그냥 저 점장 아저씨 납치해서 데리고 갈까?"
"...여전히 자신의 흥미 위주로만 움직이시려고 하시네요. 뒤의 이 남자는 며칠 전만 하더라도 <유메니티>의 뒷세계를 평정하던 자인데."

정장 차림의 부하가 뒤를 돌아본다. 쇠사슬로 묶여있는 그는 어딜 가서도 볼 수 있을 듯한 중년의 모습이지만, 또 그렇기에 그의 범상치 않은 신체가 부각이 되었다. 더불어 품에 숨기고 있는 칼날의 수는, 모두를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더해 그가 가지고 있는 세력이나 재력, 어둠 속에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바닥에서부터 긁어모은 인맥 등 대단히 노련한 암살자였다. 그 어떤 위협적인 사회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자라고 그는 평가했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

하지만 그의 주인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미 저 녀석은 저기의 길드 마스터한테 패했고, 결국 내가 내온 의뢰에 실패했다. 저 녀석의 스펙이 어쨌건, 결과가 이따위인데 뭘 어쩌겠어? 뭐, 그래도 유능하니까 데려오기는 했지만 말이야. 내 뒤를 캐려는 비범한 행동도 하다니."
"...정말로 목적이 그것뿐입니까?"

뒤편에서 나오는 의문의 목소리가 들린다. 평소의 그의 성격을 아는 만큼, 쓸데없이 신중한 것이 이상해 보이는 건가.

"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그렇다면 자신 또한 평소와 같이, 어중간하게 이 자리를 넘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저한테 대답하실 생각은 없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야, 그까짓 대답 좀 안 했다고 삐진 거냐고."

비아냥대는 듯한 말투의 남자였지만, 딱히 뒤의 부하는 익숙한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중요한 명령을 받게 되었다.

"자, 일 얘기는 이제 됐고, 밑에 가서 내가 늘 먹던 술 좀 가져와 봐. 이야, 역시나 최고급 여관 <플러스토어>, 없는 게 없다니까."


☆☆☆


한창 열기가 돌고 있는 식당 안.

각자가 맡고 있던 임무를 끝내고 난 뒤에 먹는 술은 모두에게 각별하게 느껴지는 법일까? 마치 술이 든 잔을 생명줄이라는 듯이 잡은, 향후 같은 밥을 먹게 될 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역시, 이 일도 쉽지가 않은 건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바로 이곳에 영입됐다만, 예상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모두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험가들 같았다. 예전에 몸 담갔던 조직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떠들썩한 분위기의 식당을 지나 어느 한 복도 쪽으로 가면, 점차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훈련을 마친 자라면 어둠을 기꺼이 뚫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건가.

"자아, 아직은 주위를 둘러보는 데 별 지장이 없지?"

앞에서 그의 상사가 자신에게로 질문하는 것이 들린다. 대답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애써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목 안으로 삼킨다. 지금 자신을 놀리고 있냐고 불평하려는 말을 가까스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빛이나 랜턴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렇다 해서 마법을 사용하려고 해도 앞의 그가 방해할 것이다. 결국은 앞에서 걷고 있는 상사와의 대화를 들으며 그 소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전혀 기척이나 발소리를 내지 않는군. 적으로 돌린다면 꽤 버겁겠어.)

"그런데.... 너도 원한 거 아니야, 저런 분위기를?"
"...!"

생각에 빠진 그때, 먼저 선두를 걷고 있던 그의 상사가 느닷없이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경계 태세를 갖췄다. 아직도 그 폐해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불가능한, 과거의 상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남아버린 습관.

정작 이미 그가 뒤에서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을 그는 대수롭지 않게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면서 대화를 시도한다.

"아, 뭐. 너의 트라우마를 내가 깨워버렸나? 하지만 나도 그 기분은 잘 안다고. 모든 것에 증오만 쏟아내고, 괜히 남에 대한 불신감만 쌓이고. 그렇게 세상 모든 게 다 싫고. 지금 네 심정이 딱 그 기분이잖아, 안 그래?"
"...! 네가 뭘 안다고-"
"음, 확실히. 완전히 안다고는 할 수 없겠네. 애초에 여기에 있는 모두가 다 너 같은 경험을 겪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신의 마음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는 한번 고개를 끄덕여 잘난 척한다. 첫 만남 때는 겉모습 때문이라도 나름대로 매력을 느낄 여지라도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는 정말로 거만한 행동이다.

이미 그를 심리적으로 망가트려 버린 그 남자에 대한 생각은 가까스로 떨쳐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이용하려는 누군가의 의지에는 되레 민감해져 버렸다.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달까.

"신경 꺼라.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그 누구도 쉽게 믿지 않는다는 거다."
"...너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전부 의심한다는 눈초리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그냥 그대로일 뿐일 텐데. 그렇다면 너는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오로지 복수를 위해서 우리를 이용한 거야?"

하지만 도리어 그러한 태도는 대체로 우호적인 동맹이나 아군들에게 또 다른 의심과 불안감을 남겨줄 수도 있다. 이제 아무런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그에게 있어서도 더는 적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 않았다.

"비록 저번의 임무로 크게 다쳐 죽기 직전까지 갔지만.... 너 하나 없애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제길...."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그것도 자신보다도 몇 배 이상은 더 강한 자와의 대결이라니. 우선 이 자에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몰래 품속에 숨겨둔 단검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민다.

"이곳은 임무에 대한 책임과 냉정함,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간의 신뢰가 뒷받침되는 곳이다. 믿을 수 없는 자는 필요 없어. 광기 하나만은 인정해서 데리고 왔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적어도 이곳에 있을 동안에서는 이 생각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 남자를 웃도는 살기가 그의 앞에 닥쳐온다. 지금에 와서야 주위의 어둠은 아예 상관이 없을 만큼, 눈에 보이는 그런 위협 정도가 아니다.

마치, 진정한 죽음이 닥쳐오는 듯한-

"그만둬라, 로딘."

그때, 뒤에서 들려온 제지의 목소리. 다만, 그로서는 경계 태세 중 갑작스레 등 뒤를 잡혔기에 자신도 모르게 단검을 인간의 목 부분으로 휘두른다.
절대로 그가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들로서는 명백한 반역 행위로 볼 수도 있었다. 애초에 이 기술을 알려준 자도 이 자였으니까.

"여전히 패기만은 대단하구나, 카프."
"이 목소리는.... 여기로 오라고 시킨 건 당신인가...!"

손쉽게 그가 뻗은 단검을 잡아낸다. 그것도 칼날 채로 잡아냈지만, 카프 쪽으로 흐르는 피가 없기에 부상은 일절 없는 듯했다.

"이쪽으로 데려오라고만 했지, 손을 대라고는 하지 않았을 텐데, 로딘."
"아, 예!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이봐, 모처럼 네가 의욕을 내는 듯싶었더니. 새로 들어온 신입에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거냐? 됐고, 다시 네 임무로 돌아가라. 아직 넌 남아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는 더는 카프의 앞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어둠 속에 완벽히 적응한 건가.

"자아, 그럼.... 다시 협상을 시작해볼까."
"...책상과 종이와 펜도 없는 이런 곳에서 말이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암살자에게 있어서 그런 건 구두 계약으로 끝날 게 당연하잖아. 아니면 너희 흑월은 그렇지 않았던 거냐?"

자신과 친하다는 듯이 어깨동무를 하려는 팔을 애써 뿌리친다. 어디까지나 이들은 암살 부문장에 대한 복수를 위해 일시적으로 맺은 계약일 뿐이다.

"너는 우리에게 훈련을 받아 복수를 완료하고, 그 대가로 우리는 너의 그 전력을 이용한다, 그런 계약이었잖아?"
"그래.... 하지만, 암살 부문장은 아직 죽지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야."

잡은 단검에 대해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필히 카프의 속마음은 더욱 복잡해지겠지.

"그래서 제안이다. 아마도 그 녀석은 <단지로우스>로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 너는 훈련이 끝나면 거기서 새로운 임무를 받아줘야겠어."
"뭐지...? 또 어떤 일을 시키려는 거냐?"
"아.... 분명히 그거 이름이...."

카프의 뒤에서 그는 무언가 생각이 안 나는 듯 한 번 고민하더니, 뒤늦게 그 이름이 기억이 난 듯 천천히 소리 내며 되뇌었다.

"아, 그래. 너는 부디 암십자(暗十者)에 들어가 줘야겠어."


☆☆☆


마지막으로 원탁에 앉은 자는 곰방대를 쥔 남자였다.
흑월의 각 부문을 통솔하는 부문장들은 원탁에 모여 한 자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손에 든 서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아니면 다른 정보에 집중한다거나.

원래부터가 서로 다른 부문에 대해 존중해주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 분위기가 더욱 거세졌다. 다름 아닌 지난번에 발생한 사건으로 흑월의 본부를 잃고, 새로 회의장을 정한 시점이 되었기에, 짐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시간이 없어 제때 옮기지 못한 몇몇 정보의 복구는 물론, 스크롤의 낭비도 꽤 심한 편이었다. 도주로가 전부 막혔다는 정보를 알아버려 어쩔 수 없이 그 방법을 선택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흑월 전체의 전력 감소였다.

"제기랄, 광장에서의 사건이 있었던 후, 경비 부문장과 암살 부문장 모두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정말로 그때 전부 체포되거나, 죽어버린 건가?"
"두 녀석 모두 끈질긴 녀석들인데. 설마, 약속된 회의 시간인 이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줄이야. 거기에다 하필이면 두 녀석 모두 무력과 관련된 녀석들이고."

아무리 제멋대로인 경비 부문장이라고 해도 회의를 빠지지는 않았다. 괜히 최신 정보를 접할 기회를 잃을 수 있을뿐더러, 배신하고 있다고는 생각되고 싶지 않은 법일 테니까. 그런데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게 아니면, 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건가....)

마약 부문장이 속으로 연거푸 한숨을 내쉰다.

솔직히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은 없지만, 흑월의 피해가 막심한 지금은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기사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무력을 가진 두 부문장의 힘이 필요했다. 물론 금방 이곳이 들킬 이유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한, 불안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직접 다른 어둠의 거물들에게서 경비원을 고용해오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기 흑월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지."
"어머? 마약 부문장. 당신에게 있어서 여기가 없어지는 것이 그렇게도 불안한 거야? 이제 슬슬 이득을 챙겼겠다, 빠져도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려나?"
"생각보다도, 파이가 커졌으니까. 원래는 다들 이득을 챙기려고 여기 흑월에 소속했지만, 이제는 서로가 손해를 막기 위해 흑월을 살려내는 수밖에 없게 됐어."

슬쩍 마약 부문장을 떠보는 창관 부문장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노예 부문장이 제지하는 듯한 기세로 말한다. 이제 와서 서로가 싸워봤자 더 큰 손해를 불러일으킬 뿐 이득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눈앞의 두 사람을 가리키고는, 한쪽 손으로는 턱을 괴면서 그들에 대한 비판을 시작한다.

"그건 아무래도 당신들이 여기에 있기에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뿐이겠지. 준비된 자들이었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모든 순간에 대비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마치 자신은 그게 가능하다는 얘기네. 언제부터 우리를 그렇게 자신보다 아래로 보고 있었던 거냐, 창관 부문장."
"응? 오히려 나는 언제부터 당신들이 나와 동급이라고 생각했는지가 더 궁금한데? 이미 오래전부터 격차가 심하게 벌려져 있었잖아?"

난데없는 그녀의 저돌적인 비판에 두 사람은 매도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넘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 회의를 담당하는 사람의 수가 좀 줄었다고 해서 여기에서 혼자 무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봐, 창녀. 그 이상 말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너 자꾸 그러면, 영원히 뒷골목의 바닥 속에 있도록 묻어버린다?"

참다못한 마약 부문장이 그렇게 소름 돋는 경고를 날려보지만 역시나 한 부문의 리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코웃음만 날린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건넨 한 마디.

"당신 혼자서? 아서라."

사실상, 지금의 마약 부문장은 그녀의 상대가 안 된다는 말.

"이봐! 지금 네년, 정말로 한번 해보자는 거냐? 이 이상은 더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애초부터 그럴 예정이었어. 무력이 모두 없어진 이상, 당신들은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해. 재력으로도, 세력으로도, 당신들의 멍청한 두뇌로도 말이야."
"이 녀석...!"

이렇게까지 된다면 이제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상 우호적으로 이어질 수 없다. 점점 격해지는 두 사람에 노예 부문장은 눈치만을 살피며 상황을 능동적으로 판단한다. 옆의 도박 부문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웃으면서 아무런 말도 없지만.

(이렇게 되면.... 당장 오늘이라도 흑월이 사라질 수도 있는 건가.)

설마 <유메니티>의 상층부의 배신에 의해서가 아닌, 흑월 내부의 갈등으로 위기가 닥쳐올 줄이야. 하지만 흑월이 조직으로서 뭉친 이유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실리를 챙기기 위한 회의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수순이었던 걸까.

모든 것이 계산적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옆에 있는 도박 부문장은 정말 짜증 날 정도로 깊게 미소를 짓기만 할 뿐이다. 마치 이 사태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설마! 이 두 사람이 전부 계획한 건가...!)

문득, 모두가 거의 마지막으로 회의를 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 같이 옆에 붙어있었던 두 사람이 무슨 짓을 논의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이른바 동맹이라는 것.

(만약에 이 두 사람이 동맹을 맺기라도 한다면, 인맥으로도 자금으로도 나와 마약 부문장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노렸다는 거야?)

남은 흑월의 부문장은 이제 4명.
그렇다고 한다면 자금과 인맥이 나름대로 넓은 두 사람이 있으면, 이 장소를 장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이 회의를 열었던 것이 예상외의 인물인 도박 부문장이라는 것도 왠지 모르게 깨달았다.

"아무래도 깨달은 것 같네요, 노예 부문장."
"...!"

그리 말하곤 소름 끼치게 웃는 도박 부문장.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선 창관 부문장에게 화를 내는 마약 부문장과는 달리, 노예 부문장이 이 사건의 진실을 깨달은 상황을 보고는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무런 생각도 안 했어."
"오우, 그렇게 시치미 떼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사태가 맞으니까요."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부정을, 도박 부문장은 미소 지으며 그의 생각을 긍정한다.

"이 사태는 저와 창관 부문장, 그녀와 함께 벌인 일입니다.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문장들이 사라진 이상, 이제부터 흑월을 이끌기 위해서는 두뇌가 총명한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 그, 그걸 우리가 용납할 거라고-!"
"용납하셔야죠. 당신의 현상 유지를 위해. 그게 아니면 마약 부문장과 동맹이라도 맺어 지금의 저희에게 반항해보시겠습니까?"
"그, 그건...."

확실히 그의 말대로 여기의 두 사람도 동맹을 맺어 그들에 대항하는 방법 또한 선택지 일부겠지만, 노예 부문장은 선뜻 그 말에 찬동하지 못했다.

"당신들의 승률, 저희보다 확실히 높습니까?"
"크윽...."

<유메니티> 내부의 노예 단속으로 인해 수입이 줄은 노예 부문장과 마찬가지로 마약을 만들 때 필요한 밭에 자꾸 이상이 생겨 곤란한 마약 부문장. 그에 비해 아직 창관 부문장과 도박 부문장의 세력은 건재했다.

-선택지는, 애초에 하나밖에 없었다.

"이봐, 나도 이제 참지 않는다고. 이 이상은 역시 나로서도 대응하도록 하겠어. 각오해라."
"어라? 어디선가 패배자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게 바로 당신이려나, 마약 부문장?"

아직도 끝나지 않은 두 사람의 말싸움에 노예 부문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고는 마약 부문장의 어깨에 체념의 손을 올린다.

"이봐, 우리가 졌어. 저 둘에게 당한 거야."
"노예 부문장, 그게 무슨 소리냐? 저 둘이라니. 애초에 적은 저년뿐-"
"아니야. 그녀뿐만이 아닌, 옆의 저 기이한 남자마저도 같은 계략을 가지고 있었어. 무력을 담당하는 두 사람이 없어진 이상, 재력과 세력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분하다는 듯이, 어깨 위의 손이 떨린다. 그의 행동과 말에 마약 부문장도 사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을 깨닫고는, 눈을 앉아있는 두 사람에게로 돌린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래. 이미 흑월은 저 둘에게로 넘겨졌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힘의 부재뿐만이 아닌, 이 회의를 이끌어나가는 간부 수의 부재일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우연과 계략이 합쳐져 지금, 흑월 내의 힘의 불균형이 맞춰진 것이다.

(만약에 이곳에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왔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또각


"...!"

그때, 저 멀리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간곡한 희망을 찾는 나머지, 자신의 환청이 아닐까 생각한 노예 부문장이었지만, 그 발걸음은 이동을 멈추지 않는다.


-또각


계속해서 이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희망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 부문장도 있었다.

문밖의 복도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암살 혹은 경비 부문장이라면 이 계획이 날아가고, 반대로 적이라고 해도 좋은 결과가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들로서는 어느 쪽이든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이다.

점차 다가오는 시간 동안 마침내 문 앞에 도달했는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리가 멈췄다.

"적...? 그게 아니면 다른 부문장인가...?"
"암살이냐, 경비냐!"

노예 부문장과 마약 부문장의 문을 뚫고 나갔을 외침에도 문밖의 자는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제2의 흑월 침입 사태가 될 수도 있기에 몇몇 부문장들은 이미 스크롤을 손에 쥐고 있었다.

몇 분간 이어진 긴 침묵 속,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드디어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너, 너는...."
"암살 부문장인가...!"

서서히 드러나는 그의 옷차림은 검은 외투를 입고 온몸에 피를 적신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그에게는 없는 여러 형태의 단검과 붉게 염색된 외투 속의 옷. 무엇보다도 후드 밑에 언뜻 보이는 입에 주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던 검은 그림자는 후드를 벗고 앞에 있던 원탁까지 걸어가더니, 단 한마디를 내뱉고는 회의를 재개한다.

"전(前) 암살 부문장은 이제 죽었다. 이제는 사신이라고 불리던 내가 신(新) 암살 부문장이 되어 이 흑월에 남도록 하지.“

흑월 내부의, 교체가 일어난 것이다.



1부 - 흑월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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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04 18:38 | 조회 : 1,061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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