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장 (完)

"이런, 제기랄! 그런 수를 쓰다니!"

방심했다. 자신이 상대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생각에 무심코 방심해버렸다.

아마도 그 마법은 D급 마법인 <풍압>이겠지만, 확실히 그 남자에게서 그 정도의 출력이 나오는 것은 이상했다. 그렇다면 마도구를 썼다는 것인데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놓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앞에서 항상 범죄자들에 대한 경계심을 잊지 말고,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고 했던 자신이 그런 실수를 범하다니, 거기에 이 방심이 낳을 결과는 용사의 죽음이라는 최악의 사태.

"절대로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지금 당장.

불행히도 지금의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좌표는 모르기에 <전이> 마법은 사용이 불가했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그가 엄청난 바람으로 날아온 장소까지 건축물들이 파괴되어 일직선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마 이 길을 따라가면 되겠지만....

"문제는 그 녀석이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니, 아무래도 그럴 리는 없겠지."

누군가가 잡아놓거나 한다면 가능성이 있지만, 지난이 몸에 구멍을 뚫어놓을 정도의 심한 부상을 입고 있는 그라고 해도 이니가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시라도 빨리 달려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다지 남은 체력이 없을 거라는 것. 장소를 옮긴다고 해도 사람 한 명을 데리고 그의 눈을 피해 도망갈 수 있을 만큼의 힘이 남아돌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일 염려되는 점은 그녀를 인질로 삼았을 때 정도인가.

"여러모로 둘 다 마음에 들지는 않는 상황이군. 만약에라도 정말 이 힘을 써야 한다면-"

이제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면서, 지난은 재빠르게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

"뭐, 뭐지? 지금 이 상황은?"

그러나 그런 각오가 무색할 정도로 그곳의 상황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조금 전의 여러 전투의 흔적을 반영하듯 긁힌 자국들과 이미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굳어버린 피뿐만이 아니라,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 박혀있었던 듯한 흔적이 벽과 바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게다가 조금 전 풍압에 날아가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이니는 피가 튀기고 험하게 찢어져 버린 드레스를 제외한 신체는 이미 깨끗한 모습으로 치유되어 있었다.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는 암살 부문장은 이미 기절한 채로 쇠사슬로 묶여있다.

"이 흔적들.... 분명히 누군가 와서 그를 제압한 것은 분명하군. 게다가 이니까지 치료된 모습을 보면 적어도 이니가 반항한 흔적은 아니라는 뜻....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원."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이니의 신변에 무언가 이상이 있을까 걱정하던 감정이 교차하고 있던 이 와중에 지금의 정리된 상황을 보게 되어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진다. 자신도 모르게 방심해버린다.

(아니, 아니.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 무슨 짓을 벌이려는 저 녀석의 생각일지도 모르니 일단 경계는 해두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니를 치유할 이유는 없을 텐데...?)

다시금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자신을 고무하며 이번에는 암살 부문장 특유의 묘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는 망상이 지나치다. 차라리 적에게 부상을 입히면 입혔지, 치유해줄 이유는 없으니까.

그렇게 계속해서 의문이 깊어지고 있던 가운데, 잠시 기절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니가 눈을 뜨면서 조용히 일어난다. 쓰러져 있는 암살 부문장의 기습이 들어올까 재빠르게 경계하며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준다.

그의 도움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이니는 겉보기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평범한 소녀 같았다. 물론 입고 있는 살벌한 드레스코드를 본다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가겠지만,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던 그로서는 매우 의아한 부분.

(...역시, 이건 당사자한테 물어볼 수밖에 없나.)

"가, 감사합니다, 길드 마스터. 일으켜 세워주셔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도.... 이니,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사이에 괴로운 기억을 가져버렸을지도 모르는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지난이 잠시 말을 주저했지만, 그래도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망설이면서도 물어보았다.

"아, 그것이 저도 기절해 있었던지라.... 솔직히 제대로 기억나는 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길드 마스터."
"음.... 그런가."

다행히 이 주제에 대해 그녀가 불편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무언가 열기를 띠고 희망에 가득 찬 목소리를 풍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체력이 다 빠져나가 이제 다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눈이 감길 때쯤에 저는 봤어요. 무언가 한 사람 천사의 형상이 성스러운 빛을 내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천.... 사라고?"

설마, 그녀가 이 사건에 개입했던 건가?

그녀가 이 사건에 대해 아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나라라는 아주 큰 조직이 활동하다 보면, 반드시 몇 차례의 위기와 같은 것이 있을 테고. 이미 수호자 회의에서 급하다는 것을 표출했으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분.... 지금은 라이 님이 거주하고 계셨던 천계 담당의 그녀가 이곳으로 내려와 나에게 도움을 주고 갔다? 세라 피아가 나를 무상으로 도와줄 정도로 그리 착한 녀석은 아닌데.)

종족이 천사이고, 생긴 것도 딱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사의 이미지 그대로기는 하지만, 본질은 대단히 냉정하고 차가워 마치 얼음과도 같았다. 그것도 날카롭게 튀어나와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있을 뿐인 사람들조차 다치게 만드는 그런 얼음.

"단지 제대로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손에 무언가 들고 있었던 것도 생각이 나요. 긴 장대 같은 물건이었던 것 같아요."

머릿속이 복잡한 지난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니는 무언가 작은 희망을 본 것처럼 환하게 미소지으며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점차 확신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세라 피아의 장창이겠지. 역시나 그 녀석이 움직였다는 것 자체는 확실한가 보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암살 부문장과 싸운 후에 그를 잡아놓은 후, 추가로 그녀까지 회복해주고 떠나간 듯하다. 그래서 벽에 창이 박혀있던 것과 같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자신을 도와줄 이유를 전혀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녀가 저 범죄자와의 어떠한 전투를 벌였는지는 이제 와서 상관없다. 이미 해결이 되어있다면 그걸로 좋다. 다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제는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녀 또한 지난의 빚을 늘리려는 걸까?

(세라 피아가 나를 도와줄 이유, 이득을 취할 형태가 있었던가...?)

"마치 저를 구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보내주신 것처럼.... 그 빛은 성스러웠죠."

계속된 생각과 생각의 연결고리에 고심하던 그가 망설일 때쯤, 옆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다. 평소 건실한 신의 신자였던 이니로서는 그저 기적을 보았기에 그런 예찬적인 태도를 보였겠지만, 수호자였던 그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늘에서 보내준 것 같은.... 그런가! 이 녀석은 그저 그분의 명령을 따라 이곳으로 왔을 뿐인가!)

그 생각이 머릿속에 미치자마자 지난은 재빨리 <위치 탐색> 마법을 사용하여 주위에 누군가 감시하고 있는 자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본다. 하지만, 역시나 아까와 같이 아무런 존재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런 결론이 나온다면 당연히 그녀 혹은 그분이 직접 이 사태를 짐작하고 마지막의 뒤처리를 했다는 말이 나온다. 즉, 라이 님께 들키지 않고 이 흑월 사태를 완전히 수습하지 못했다는 무능한 수호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존경하는 주인에게도.... 같은 일을 하는 동료에게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기대기만 한 것인가, 나는...!)

극심한 자기 혐오에 이어 자괴감이 든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주인에게 불안감을 드려 같은 동료인 세라 피아가 움직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확실히,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니는 어떤 참상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 자신에게 화가 난다. 수호자라는 중요한 직책을 받았음에도 이런 최악에 가까운 결과를 내버린 자신의 상태가.

"저, 저기. 길드 마스터? 무슨 불편하신 점이라도...?"

옆의 이니가 갑작스레 표정을 돌변시킨 지난에 대해 불안감을 표출하지만, 이미 그에게 있어서 그녀의 목소리가 닿기는 힘든 상태였다. 끊임없이 책임감과 정의를 표출하는 그에게 있어 이번의 실패가 낸 결과는 크다.

실패를 감추려고 하면서 추악한 모습을 보인 것이나, 그런 모습을 감당하면서도 결국 아무런 성공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패배자의 마음이 속에서부터 서서히 기어 나오는 듯했다. 며칠 간의 실수투성이로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계속해서 그런 그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던 이니까지도, 왠지 모르게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의 그가 느끼는 것은 기쁨이 아닌, 무언가의 일에 의해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

"길드 마스터...."

어떻게든 위로해줄 수 없을까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니가 그의 속사정도 자세히 모른 채로 무슨 말을 건네는 것은 불가능했다.

"....."
"....."

그렇게 서로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몇 분이 지난 후, 지금껏 생각에 잠겨있던 지난이 먼저 이 정적을 깨고 이니에게 말을 걸었다.

"우선은 이 처참한 현장에서 벗어나지. 위생적으로도 이런 뒷골목은 좋지 않으니까. 지원군을 부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 그렇게 하죠. 길드 마스터."

결국,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은 그렇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형식적인 말로 대화를 끝냈다. 이제 그녀는 아마 예정대로 <웨포스트>로 떠나 용사 후보에서 진정한 용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몇 년 이상은, 이곳 <유메니티>의 지인들과는 못 만나게 돼. 나를 지금까지 도와준 동료들과 가족, 그리고 이곳의 길드 마스터까지....)

아니, 잘못하다가는 평생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차 위에서 보았던 용사 일행은 모두 강인해 보이고 빛났지만, 과연 그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아마 그들 각자의 지인들을 떠올리며 외로워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수고했다, 이니. 그럼 나는 우선 이 녀석을 데리고 먼저 <모험가 길드>로 가도록 하겠다. 지원군은 불렀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무적인 말만을 마친 지난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 묶여있는 암살 부문장에게로 다가간다. 왠지 모르게 그가 위태로워 보이는 걸음을 걷는 것 같은 건 어째서일까.

"저어.... 지난 씨-!"
"-위험하다, 이니. 숙여라!"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갑작스레 지난이 그리 큰소리를 내더니 전력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빠르게 일어난 만큼 미처 대응할 순간이 되지 못했지만, 자신이 의도치 않은 힘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후, 빠르게 지나가는 무언가.

사태를 파악할 겨를도 없이, 또 한 번 신체가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가 뒤에서 끌어당긴 것처럼. 그러나 앞에서는 지난이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기에 그의 소행은 아니었다.


-빠각!


"뭐냐, 네 녀석은.... 갑작스레 나타나서 공격하다니."
"하하, 지원군? 아직도 이곳으로 보낼 지원군이 있었냐?"

곧이어 앞쪽에서 들려오는, 무언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난을 공격한 남자가 그의 팔에 한쪽 발을 올려두고 있는 상태였다. 암살 부문장과 싸우면서 범죄자를 몰아붙이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그가 지은 표정은 정말로 당황한 표정.

"기껏 이렇게 나라를 뒤흔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흥을 깨면 안 되지? 그나저나 이런 녀석이라도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약하더군."
"뭣.... 네가,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라는 거냐?"
"뭐. 따지고 보면 그런 건가? 하하."

난데없이 자신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면서 일부로 도발하는 말투를 꺼내면서 명백히 악의를 보인다. 문득, 암살 부문장과 정장 차림의 남성이 말한 '그분'이라는 자가 생각났다.

"-혹시나 당신이 그 두 사람이 말했던 그분인가요?"
"오오, 아직 살아있었네. 이니 양.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죽을 거로 생각했는데 더욱더 발버둥 쳐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오랜만에 즐거운 장면을 봤거든."

문득 자신에게 말을 건 이니에게 고개를 돌려 방심한 것 같이 자세를 유지하지만, 지난이 그자를 공격하려는 기색은 없다. 그의 성격이나 행동 방침을 생각하면 의아한 부분이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알았다.

"그런 말 마시고 제 말에 대답이나 하세요. 당신이 이유도 없이 저를 계속해서 위협했다고 했던 그분 맞죠?"
"오오, 화면에서 보던 거랑은 성격이 좀 달라 보이네. 응, 맞아. 내가 너를 죽여달라고 이 녀석에게 시켰지. 아, 참고로 내 부하는 다시 본거지로 데려왔어."

얼핏 보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모든 걸 말해주는 바보 같은 자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본 그분이라는 작자는 절대로 만만치가 않았다.

계속해서 강한 척을 하는 그녀의 포커페이스를 뚫는 듯한 예리한 눈빛. 무력화돼있다고는 하지만 이 나라를 위협하는 거대 조직 흑월의 한 부문장을 하찮게 생각하는 말투.

무엇보다도 저 길드 마스터를 앞에 두고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자신감.

"아니면, 뭐? 불만이라도...?"
"...큭."

틀림없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저 사람은 명백한 강자다. 그것도 지난 급의. 그 증거로서 지금의 지난이 그가 말하고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본래라면 말을 듣지도 않고 주먹부터 나갔을 텐데.

(왜 이 정도의 거물이 이런 곳까지...!)

"그나저나 뒤에 있는 암살자가 있는 데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몇 시간 사이에 심장을 강화했니? 아니면, 그저 모르고 있던 것뿐인가? 내가 알기론 이 녀석의 부하였었던 것 같은데."
"-?!"

혹여나 해서 뒤를 돌아보면 정말로 그녀의 뒤에 검은 망토의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여 온몸이 오싹거린다. 보이지 않는 얼굴 쪽 부분에서 나오는 붉은 피가 검은 옷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이니에게 접근하지 마라, 범죄자!"
"아니, 나를 상대하는 것은 너잖아. 나를 신경 써달라고."

미처 그녀에게 달려간다는 행동을 취하지도 못한 채 지난은 그저 그의 발을 팔로 막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직감적으로 이 발과 팔을 억지로 떼어놓는 순간, 무언가 큰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명확했다.

(뭐지, 도대체? 이런 녀석은 어디서 또 튀어나온 거야?)

분명히 어떠한 징조도 없었다.

자신과 같은 <전이> 마법을 써서 이곳으로 온 것이라는 건 이해가 간다. 다만, 이니와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녀가 지금까지 겪은 상황을 어디선가 보고 있었다는 말투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난이 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아니, 그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봐, 이 녀석의 부하가 맞지? 그 목표를 네가 대신 죽여주지 않으려나? 뭐, 잘 되면 내 쪽으로 영입할 생각도 있어. 이 녀석이 매기는 값보다도 훨씬 더 많이 쳐줄 거라고?"
"-이 자식!"

시간을 길게 끌지 않겠다는 의지가 전해져 온다. 이 자가 이니의 뒤에 있는 자와 서로 알고서 명령을 내렸다면, 저 건방진 명령을 듣고도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어떻게든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암살 부문장.... 님의 상관인 건가...."
"그래! 빨리 거기 앞에 있는 여자를 죽여버려!"
"미안하지만, 그건 안될 것 같군.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호오?"

그 말에 잠시 계산이 어긋난 듯, 그분도 잠시 망설인 듯 반응이 살짝 느려졌다. 그 와중에도 지난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방심하지는 않는다.

"어째서지? 분명 몇 주 전에 이 녀석에게서 리스트를 받았는데. 혹시 내가 이 녀석보다 위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거냐?"
"아니, 네 모습을 보아하니 단숨에 알 수 있겠더군. 풍기는 분위기며, 자세 같은 것이. 그렇기에, 더더욱 그럴 수 없다."
"...어째서?"
"이미 그 길로 돌아가기에는 늦었으니까."

그러면서 붉은 기운이 넘치는 검은 후드를 벗는다.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얼굴을 보며 분명 이런 음산한 분위기에서 본 적이 있었던 남성의 얼굴이 나온다. 곧 지난도 그의 모습을 보며 경악한다.

"흑월 소속 범죄자, 카프인가! 하필이면-"
"시끄러워! 이제 그 소속감은 없어!"

아까까지의 차분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평범한 분노를 넘어 아예 격노까지 표출하는 카프에 옆에 있던 이니가 놀란다. 자세히 보니 저번보다도 무언가를 더 짊어진 듯한 얼굴.

"...이미 버려진 지금에서야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물론 다시 한번 나를 고용한 녀석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완벽하게 신뢰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내 원수의 상사라니. 명령을 들을 이유가 없지."
"아아아아아아아.... 이 몇 주간에 벌써 신뢰를 잃은 부하가 한 명 생긴 거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요 녀석."

예상치도 못하게 아군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그자는 강렬하게 인식했다. 적어도 이렇게까지 변심한 자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 통감 된다. 그렇기에 그는 지난의 팔에서 발을 내리고는 물러난다는 선택지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발을 내리면서 잔뜩 빈틈을 보이는 남자를 앞에 두고도 지난은 우선 경계 태세만 취하며 뒤에 있는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앞에 선다. 어디까지나 나머지 한 명은 그의 방패 뒤에 숨어있는 꼴이겠지만.

(무엇보다, 옆에 있는 이니를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겠어.)

"하아, 됐어, 이렇게 되면 깜짝 등장한 의미가 없잖아. 그렇기에 나중의 빅 이벤트를 위한 연습 한번 했다 치고 물러나지 뭐. 더 할 것도 없으니."
"내가 그렇게 하도록 보내줄 것 같으냐."
"아니, 너는 그렇게 하게 돼 있어. 저 검은 망토는 그렇다 쳐도 최소한 뒤의 아름다운 그녀를 잃을 수는 없지 않냐. 나도 굳이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다고."

다르게 말하면 여기서 날뛰다가는 뒤의 이니가 죽을 것이 확정이라는 일종의 협박. 또다시 이렇게 약점을 노출되어 적의 협박을 받다니, 다시 한번 자괴감에 몸이 지친다.

"아, 이 녀석은 데리고 갈게. 물어볼 것이 좀 생겼거든. 이 녀석, 용케도 내 뒤를 캐려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더군. 네 몫까지 혼내줄 테니, 여기서는 좀 보내줘라."
"그게 가능할 리가...!"
"돼. 그게 나의 의견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맺도록 하자고. 이제는 좀 지치니까."

그렇게 말한 남자는 묶여있는 암살 부문장의 멱살을 잡고 서서히 마력을 응집한다. 그리고 점차 자신을 위협적으로 보는 한 길드 마스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다음 이야기를 고대한다.


"그럼, 안녕. 아마 분명히 나중에 다시 보게 될 거야."
"지금은 준비가 아직 안 됐을 뿐이다. 다음번에는 너를 기필코 죽일 거다."


그의 단호한 말에 남자는 코웃음 치며 돌아가지만, 그 눈을 절대로 비웃음이나 상대를 얕보는 눈초리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말.

"부디 그때를 고대하겠다고. 길드 마스터."

또 하나의 기쁨이라는 것처럼,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그곳으로 <전이>했다.


★★★


"대단하군.... 완전히 저 녀석을 압도하고 있어."

큼지막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단련된 모험가가 그리 기사 단장을 무리가 아니었다. 비록 자신들이 체력을 어느 정도 빼놓았다고는 하지만, 그 덩치에 걸맞은 힘을 가진 거물급 범죄자를 압도하고 있으니까.

비록 한 손으로는 공격용의 장창을, 한 손으로는 방어용인 방패를 들고 있어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주먹으로만 싸우고 있는 그를 몰아붙이기가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저 무기를 가지고도 저렇게까지 싸울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진짜.... 이 나라의 왕을 지킨다는 최강의 방패라는 것이 전혀 과하지 않을 정도군. 너는 저 정도도 안 되겠지만, 빙혈."
"뭐라고? 저분과 같은 크기의 신체면서도 전투력에 있어 훨씬 약한 네가 괜히 질투 나서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 아니냐, 프리먼?"
"방금 뭐라 했어, 임마!"
"고막에도 벌크업 했냐, 이 멍청아!"

이들 서로의 다툼은 성가신 점이, 절대 상대방의 의견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는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래서 그 의견을 중심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자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빨리 대답해보렴. 화 안 낼 테니...?"
"으으.... 모, 몰라요...."

밑에서 그 두 사람이 깔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그들이 윽박지르며 소리친다. 거세게 몰아붙이는 클랜 마스터들의 카리스마에 조금 전까지 싸웠던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둘한테 도끼 던져봤잖아! 좁혀지는 거리감이라던가, 달려올 때의 모습이라던가, 그런 모습을 보면 딱 봐도 답이 나오지?"
"야, 당연히 네 험악한 얼굴로 하면 너의 완승이지, 프리먼! 자, 거대한 고릴라는 무시하고, 기술적으로 보면 당연히 내가 더 강하겠지, 그렇지?"
"아, 아...."

경비 부문의 NO.2라고 불렸던 그조차도 두 사람의 거친 목소리와 협박과도 같은 강요에 미처 기가 눌리고 만다. 그러다가 결국은....

"이봐, 왜 갑자기 말이 없어졌냐? 빨리 말해!"
"이건.... 아, 기절했군. 이 녀석."

뇌가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함인지, 결국 정신을 놓고 만다. 즉, 그 말은 경비 부문장에게 있어 그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짐짝에 불과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언뜻 봐버린 경비 부문장 또한 그 상황을 인식한다.

(제기랄! 이 녀석의 존재만 없었어도!)

그를 걱정할 여유조차 없이, 기사 단장의 거대한 창이 그의 몸을 노려온다. 힘겹게 몸을 돌려 어찌어찌 창을 피한다. 다시 한번 경비 부문장은 기사 단장에게 주먹을 날려 보지만, 저 거대한 방패의 존재가 그것을 불가능케 한다.

"소용없다. 너로서는 이 방패를 뚫을 수가 없어."
"제기라아아아아아아알!!!!"

격렬한 금속음 후에 밀려오는 주먹의 통증까지도 이제는 쌓이고 있다. 거기에 첫 기습으로 창에 뚫려버린 팔의 통증이 무시하기 힘든 정도의 부상으로 계속해서 그를 방해한다.

(이 녀석에게는 뇌물에 의한 시간 벌기도 안 통하고 무력이나 세력으로 짓누르는 것도 불가능한 건가! 그렇다고 하면 이곳에서의 탈출이 유일한 답인데...!)

힐끔, 옆의 두 사람을 바라본다. 이미 제압당해버린 부하를 깔고 앉고는 포션을 통해 아까까지 받았던 자신들이 받은 피해를 다시 복구하는 중.

(이 녀석뿐만 아니라 힘이 돌아온 저 두 녀석까지 따돌리고 탈출하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잖아, 제길!)

힘이 점차 빠져간다.
공격은 통하지 않고, 방어도 불가능.
거기에 탈출구까지 보이지 않는다.

"더는 빠져나갈 구멍 따위는 주지 않겠다, 흑월!"
"이대로 너희들에게 잡힐까 보냐!"

정직하게 앞으로 날아오는 창 하나를 손으로 잡는다. 곧바로 주먹을 내찌를 자세로 기사 단장의 얼굴을 짓누르기 위해 왼쪽 주먹을 뻗으며, 일갈한다.

"감옥에 있어서 평생을 썩다니, 죽어도 사양이라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의 강인한 공격이 기사 단장의 얼굴에 직격한다. <폭파> 마법으로 인해 닿자마자 터지듯이 나오는 엄청난 양의 연기.

그 공격을 몇 발자국 멀리서 보고 있던 프리먼과 빙혈조차 그의 위력에 내심 경악한다. 자신들이 이끄는 클랜원들은 차차 하더라도 자신들조차 저 공격을 맞는다면 과연 버티고 서있을 수 있을지.

"기사 단장님!"

빙혈이 그를 불러보지만, 연기로 뒤덮여 있는 그 상황에서는 두 사람 모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장 검은 실루엣이 그 연기를 뚫고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그러고는 벽으로 부딪히는 거대한 무언가.

그것도 창과 같이 날카로운 것이 아닌, 둔기와 같은 것으로 맞은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그의 몸에 크게 새겨졌다. 아까와 같은 경비 부문장의 주먹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에 날아간 사람은 기사 단장이 아니었다.

"창이 아닌, 방패로 막으면서 동시에 그냥 나를 쳐 날린 거냐!!"
"그래, 범죄자가 나를 상대로 허튼짓을 하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해준 것뿐이다. 또, 단순한 완력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너보다 상위이다."

연기에서 나오는 기사 단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만의 자부심이 있는 듯했으며, 발걸음 또한 당당해 보였다. 명백히 한낱 범죄자와 기사인 자신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표출하듯.

"그리고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녀석은 감옥에 가지도 못한 채 즉결 처형이다."

창을 바로잡아 하늘 위로 올곧게 세워, <유메니티> 기사단 특유의 자세로.

"알겠냐? 아무리 너희들과 같은 범죄자들이 이 <유메니티> 어딘가에 숨어 기회를 노린다고 하더라도, 조금씩 이 나라에 대한 피해를 몰고 온다 하더라도-"

어디선가 보고 있을지도, 혹은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잦은 뇌물로 부패를 일으켜 상층부를 혼란 시킨다고 하더라도, <유메니티>를 안에서부터 장악하려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국민들과 모험가나 자신과 같은 기사들에게.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이 모든 원인을 제거할 것을-"

또는, 몰래 훔쳐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적들의 앞에서.

"-소리 높여 맹세한다."

그는 굳게 다짐한다. 그리고는 부패한 눈앞의 범죄자를 척결하기 위해 창끝을 그에게로 향한 뒤, 한번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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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04 18:38 | 조회 : 96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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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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