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完)

"이건.... 위험하군."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한 마디.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지붕 위에서, 그것도 저자의 탐지가 걸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많은 사건을 보면서 정리한다. 비록 거리가 멀어져 있어도 <도청> 마법으로 들을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것보다도, 이렇게 가다가는 용사가 죽어버리겠지만.... 으음...."

여기서 내가 그녀를 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나의 권위가 미치지 못한다.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호자인 지난이다.

비록 그 녀석을 대신해 내가 여기서 사건을 수습하더라도 이 사건에 의문을 느낀 지난이 몰래 조사를 한다면 더없이 귀찮아질 테니까. 이미 예견된 엉망이 될 미래를 알고서도 일을 저지른다니, 그런 건 사양이라고.

그래. 뭐, 용사라는 직책은 다시 세계의 규칙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정해질 테고. 저 이레귤러에 대해서도 나중에 따로 조사해보면 되는 일이려나. 그렇게 되면 꼭 여기서 그녀를 구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애당초 내가 가진 목표도 흑월을 무너트리는 거였지, 저 소녀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리로 온 것도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서고."

몇 번씩이나 혼잣말하면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처음의 간단한 목표를 생각해보면, 이유 없는 리스크를 지고 싶지는 않다. 안 그래도 일이 많아 죽겠는데 또 다른 일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가만히 놔두면 지난이 언젠가는 여기로 찾아와서 저들을 잡아 이 사건을 해결할 것이다.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내 역할은 그저 여기에 가만히 서서 지난이 이곳으로 올 때까지 저들을 감시하는 것뿐이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직접적으로 저 소녀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


"크헉-!"

무언가가 몸에 강하게 박히면서 튕겨 나간다. 더불어 나오는 고통의 목소리가 이 상황을 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좋은 유흥거리가 되겠지.

그러면서 온몸이 먼지로 뒤덮인 소녀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또 한 번 진실한 미소를 지을 것을 생각하면 짜증이 나면서도 그에 맞춰 더 격렬하게 팔다리를 움직여 그녀를 괴롭힌다.

(도대체 이런 게 뭐가 재미있다고.)

지금의 암살 부문장은 그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면서 같은 업종을 상대하고 있는 을의 위치에 관계한 것에 불과하다. 뒷세계에서 제일 영향력이 있는 돈과 실력, 그 두 가지를 모두 자신보다 많이 갖춘 자니까.

(명예는.... 아직 그리 널리 퍼지지 않은 녀석이지만, 필히 언젠가는 여기 뒷세계에 그 악명이 떨칠 녀석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녀석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지.)

물론 어디까지나 명목상으로는 서로 간의 공정한 거래일 뿐이지만, 실질적으로 암살 부문장의 세력이 훨씬 더 작으므로 을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실제로도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남자도 자신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가 다-)

"-너 때문이지."

증오를 담아 용사 후보인 이니를 발로 찬다. 뒤에서 암약하고 있는 그분이라는 자는 강자로 분류되는 용사를 괴롭힌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겠지만, 그로서는 단지 분풀이 대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실수로나마 죽여버릴까 노심초사할 정도.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의미 없다. 그거."

이니의 신체에서 무언가 밝은 빛이 나왔을 때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을까 싶어 나름 긴장했지만, 이미 평균적인 실력에서 월등히 차이가 났었기에 그의 말마따나 조금 강해진 정도로는 의미가 없었다.

눈에 띄게 바뀐 것은 신체 능력과 칼을 잡는 포즈. 그러나 저 정도라면 차라리 조금 전에 싸웠던 카프가 오히려 더 나은 상태다. 한마디로 형편없는 실력.

"그런 주제에 나의 방해란 방해는 전부 다 해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은 칭찬해주지.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거칠고, 과도했어."
"무슨.... 뻔뻔하게 그런 말을...!"
"이해해라. 그게 세상의 진리니까. 그것만은 앞이나 뒤나 다름이 없다고."

그걸 가장 느끼고 있는 것이 바로 여기의 두 사람일 것이다.
하나는 신체적으로, 하나는 정신적으로.

또다시 얼굴을 걷어차인 이니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서서히 일어났다. 슬슬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다고 판단한 암살 부문장이 뒤에서 여유 있게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남자에게 물어본다.

"이제, 팔 하나 정도는 잘라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언제까지나 이런 것을 반복해도 질릴 테니까 말이죠."
"...그렇군요. 반복 행동도 그분께 있어서는 조금 그럴 수도 있겠네요. 허가하겠습니다."

(...무슨 놈의 허가냐. 자기가 뭐라도 된 듯 지껄이는 것이 조금 짜증 나는군.)

잘난 듯이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탐탁지 않은 암살 부문장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광장에서 <전이>했다는 것이 그 길드 마스터한테 알려져 들킬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지금은 참고 그의 말대로 빨리 끝내는 것이 좋았다.

"그럼, 곧바로라도-"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포기할 마음이 없었는지 이니는 또 한 번 그에게로 달려간다. 한 손에는 단검을 꽉 쥔 채로. 그 사이에서 피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건가."

발견 초기에는 와이어를 써서 몰아붙였던 암살 부문장이었지만, 지나친 공격이라 판단한 것인지 남자가 제한을 두는 바람에 끝에는 거의 귀찮은 듯이 발로 대충 차버린 그였다.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체력이 평소와 같지 않아 제압하기 간단하다는 장점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것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다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면서 그분을 즐겁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눈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저건 분명히 무엇을 노리고 있는 듯한 눈이었다.

(...이 상황에서 반격할 기회가 있다면, 여기뿐인 건가.)


-그렇다면 대처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


"비록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갈 목숨이었지만, 지금까지 그 나약한 몸으로 힘들게 살아오느라 고생했다."
"....."

그러기 위해서 우선 일부러 그녀를 조금 도발해본다. 그런 험한 말에도 이니는 말도 없이 달려오기만 한다.

"아아, 이제 지겹구나. 한 번만 더 날려주고 이제는 진짜 팔을 잘라주겠다."

그러면서 방금과 같이 대충 발을 휙 휘둘러 아까와 정확히 똑같은 곳을 노린다. 즉, 이 타이밍은 자신이 강자로서 방심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머리를 쓸 줄 아는, 그래야만 하는 직종인 안내원인 그녀가 노릴 곳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바로 강자가 심장의 틈을 보이는 지금이겠지!)

천천히 그녀가 아까까지 보고 있던 눈초리를 쫓는다. 이건 분명히 패턴화된 그의 다리를 보고 어떻게 할지 이미 파악한 눈이다. 그러면 그녀도 예비 동작을 취할 것이 분명했다.

피하고 반격인가. 그게 아니면 기어코 몸으로 받아들이고 찌르기인가.

직진 이외의 움직임을 보이려는 기색은 없다. 그렇다고 무언가 묘수를 쓰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까까지는 그녀의 몸 앞에 두었던 단검이 전보다 훨씬 더 뒤로 가 있는 것 또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내 발차기를 받아내고 심장을 찌르기, 인가."
"-!"

예상대로 이제는 패턴화된, 지나치게 단순히 빠르게 뻗을 뿐인 다리가 이번에는 이니의 예측을 뒤엎고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복부를 향해 거칠게 찔러졌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치명상인 듯 피가 뿜어져 나올 정도.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왼쪽의 와이어를 휘두른다. 일부로 오른팔이 아닌 오른손의 단검만을 빼앗아 오는 이유는 역시 절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제대로 된 반격도 못 해 먹겠네, 아가씨."

평균적인 성인 남성이라도 한 방 맞으면 기절, 심지어 즉사에 이를 수 있을 강한 공격이었지만, 잘나신 용사님의 버프이신지 둘 모두에 실패했다. 다만, 이루어 낸 성과에 비하면 그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었다.

"기껏 한다는 것이 역시 그 정도인가. 이미 그런 수법들은 과거에 내가 죽여버린 모든 약자에게서 볼 수 있었지. 강자의 방심에 모든 것을 거는 그 녀석들, 심지는 굳었지만 정작 그걸 지탱할 초가 녹아있어. 전투에서의 '기초' 말이다."

이제 암살 부문장이 가진 단검의 수가 하나 더 늘고, 그녀는 반격조차 불가능한 상태. 거기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쿨럭, 숨조차 쉬기 힘들어져 답답해진 가슴을 손으로 부여잡는다. 갈비뼈가 문제인지 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몽롱하다. 이니가 맞은 이번 공격의 효과는 굉장했다.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네가 해볼 만한 건 오직 속임수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투에 몸을 담가본 적이 없는 네가 그렇게 나를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어, 어떻게...."
"너희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가진 최고의 무기가 바로 방심을 유도하는 거다. 그냥 입 다물고 아무렇게나 움직이면 그것만으로도 발휘가 되는 것이니까."

힐끔, 뒤의 남자를 은근슬쩍 보았다. 다행히도 그는 이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고, 시각적인 정보만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그건 뭐, 나중에 내가 저자를 상대로 갖출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내가 대비를 해놓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어떠한 면으로는 가장 무력한 무기이기도 하지."

슬쩍 목소리를 낮추면서 대화하듯 읊조리면서 단검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이제야 조금 눈이 죽은 것 같군. 이 시기까지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을 봐도 너를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해했겠지. 너는 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목숨이 좌지우지하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그, 그럴 리가...."

자신이 마지막까지 믿고 있던 희망의 끈이 끊기자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진다.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포커페이스가 감정적인 동요를 이겨내지 못하고 돌변해버린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턱을 거칠게 잡는다. 그러고는 눈과 눈을 강제로 마주친다.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범죄자의 눈을 바라보게 되어버렸다.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이제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눈초리로군?"
"윽?!"


그가 그리 말하면서 점점 더 눈을 쳐다보자, 당황한 듯 이니가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뒤에서 지켜보던 남자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한 반응이었다.

곧이어 그렇군, 이라고 말을 마친 암살 부문장이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등을 돌렸다. 더는 뒤의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도 않았다. 방금의 눈을 보니 등을 돌린 이 상태에서 기습할 용기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의 그녀는 망가져 있다.

기분 나쁜 발걸음은 점차 남자에게로 가더니, 곧 몇 발자국 앞에서 그를 마주 보고 걸음을 멈춘다.

"보십시오. 이제 목표는 저를 공격할 의지가 없습니다. 아니,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마지막까지 온존해두었던 카드를 잃어버렸으니까 말입니다."
"음, 상태를 보니 그런 것 같이 보이는군요. 그래서...?"
"이제 그녀를 가지고 노는 것에도 그분께서 흥미를 느끼실지 아닐지, 저로서는 조금 염려가 돼서 말입니다. 이제는 그냥 처리해버리는 것이...."
"흠.... 좋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시간을 더는 끌고 싶지 않은 암살 부문장으로서는 그녀를 처리하고 여기서 벗어나 빨리 쉬기를 원했다. 그리고 드디어 떨어진 허락.

(이제 더는 이런 거지 같은 의뢰 따위 할까 보냐.)

일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가능만 하다면 그때로 시간을 돌릴 정도로 후회하고 있다. 그 며칠 사이에 벌어진 괴로움을 드디어 끝낼 수 있다면 멈출 이유가 없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

암살 부문장이 등을 돌린 그 순간, 무언가가 바람과 같이 그에게로 날아왔다.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바닥으로 크게 넘어지고 만다.

(잠깐, 그 전에 들린 이 소리는 뭐지? 무언가가 몸에 깊이 박힌 듯한 이 소리는....)

아직 사태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로 자신을 바닥으로 넘어트린 장본인을 찾는다. 넘어진 상태로 무언가 묵직한 것이 위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스레 그 녀석이 범인.

(그리고 나한테 이런 짓을 할 만한 자는 한 명뿐.)

"여기까지 와서 아직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거냐, 이니!"
"당연히, 저는 여기서 죽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운명이니까 말이죠."

분명히 눈을 비롯한 모든 것들에서 나타났듯 허무함과 박탈감을 느끼고 무기력해졌을 텐데. 한번 좌절된 자가 의지를 다시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아까까지의 그녀에게서 보인 모습은 이런 일에 전문적이지 않은 뒤의 남자조차도 알 수 있을 만큼 전투 의지가 상실된 상태였다. 거기에 무기조차도 빼앗은 상태였으니 맨몸으로 타격을 줄 생각을 하기도 어려울 텐데.

(그런데 어째서 이 여자는-!)

"아마도 당신은 그때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겠죠. 늘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틈을 노릴 거라고. 거기서 저는 일부러 당신의 계략에 넘어갔습니다."
"뭣...! 일부러 알면서도 넘어갔다는 거냐...!"
"계속해서 마지막이라고 강조하며 저의 초조함을 끌어내 함정을 파놓으신 계략이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제가 돌진할 바로 그때, 당신의 입꼬리를."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 있었다고, 친절히 그에게로 알려준다. 그때야 비로소 확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마지막으로 본 너의 눈은 완벽히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사람에서 발견되었던 특징이라고! 몇십 년 이상 이 눈을 믿으면서 살아왔다! 조금 전에 네가 보인 그 모습은 절대적인 무력감이었다고!"
"제 유일한 특기가 포커페이스니까요."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지만, 그녀의 단 한마디로 모든 반박이 불가능해진다.

분명 암살 부문장도 광장에서의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그녀의 표정을 본 적이 있지만, 아까 전의 그녀만큼 자연스럽지는 않은, 억지로 만들었다는 것이 티가 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 짧은 사이에 설마 그 표정이 완성되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저건 포커페이스로도 위장이 불가능한,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본능으로 나와버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걸 감추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그의 눈을 속일 만큼의 경험을 그 이상으로 쌓던가, 아니면 특출난 재능이 있어야-

(-강화된 용사의 능력이, 그녀의 본심을 감춰준 건가...!)

제기랄, 설마 이런 데에서 발목이 잡힐 줄은 몰랐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지금의 그가 상대하고 있는 자는 생태계에서도 최강의 위치를 담당하고 있는 용사라는 직책. 더불어 그들을 지원해주는 여러 환경적인 요소와 물질적인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그 능력만을 보더라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대.

(그래. 내가 어느 정도 방심한 것은 사실인 건가....)

"...그렇군. 너와의 심리전에서 나는 져버린 것이다, 이런 말인가? 또다시 알려줘서 고맙다. 이제야 비로소 의지를 다잡을 수 있게 됐어."
"...?"

이 사건을 일으킨 가장 큰 요인이 방심인데, 후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로 정신을 놓아 다시 이런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다. 뒤의 남자한테 또 한 번 평가가 낮아질 공산이 컸다.

아니, 오히려 쓰러져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무언가 흥미진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이제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빨리 이 상황의 주도권을 다시 이쪽으로 가져오는 것.

"인정하지, 이니. 네가 나를 이 정도까지 몰아세운 것은 순전히 너의 운 때문이 아닌 것 같군. 거기에 강화된 신체 능력으로 순식간에 나를 이렇게까지 만드다니 말이야."
"...무슨 말이시죠?"

급격히 변화한, 아까보다 여유가 생긴 암살 부문장에 이니는 의문의 물음표를 띄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니가 왜 그렇게까지 의기양양해 있는지 의문의 목소리를 표했다.

"작전대로 너는 다시 한번 나의 명성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지금 나 스스로조차 나의 눈을 의심할 정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주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상황에서 너에게 무슨 도움이 되지? 여전히 네가 죽을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똑같은데."
"....."
"기껏해야 네가 나한테 한 것은 방금 말한 두 가지와 지금 위에서 내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나를 누르고 있을 뿐. 지금의 네 상황을 헤쳐나가기에는 너무 부족한 카드다. 나는 그저 여기에서 일어나 너를 죽여버리기만 하면 돼."

이니도 그의 말을 듣고는 수긍했다. 지금의 그녀가 이런 행동을 취하고서 우위에 얻은 점은 단 하나도 없다. 이렇게 허세로라도 그에게 많은 설명을 한 것은 그의 심리적인 압박도 있었지만, 내심 떨고 있는 자신을 감추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일어나지 못하게 하면 될 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니는 그의 입을 거칠게 틀어막듯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손을 급하게 움직인다. 곧이어 그 밑에 깔린 암살 부문장도 눈치챈 듯 그녀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다.

"-뭐, 이제서야 나를 공격해보겠다는 거냐. 그러나 약간 따끔할 뿐, 아무렇지도 않아.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잠깐 숨을 고를 겸, 가만히 이니의 모습을 바라보던 암살 부문장은 그녀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느껴지는 충격량을 봐도, 이건 분명히 그녀의 착오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니는 묵묵히 힘을 주어 움직인다.

"이봐, 네가 아무리 그렇게 행동해도 이건 전부 내 예상 범위 내의 일이다. 미리 그런 것에 대한 각오는 되어 있다고. 이 정도의 부상은 부상도 아니야. 물론 용사의 힘으로 조금 강화되었겠지만 네 주먹만으로는-"
"...제가 가진 무기는 아까 잃어버린 단검을 제외하면, 손을 쓰는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조금 전에 새 무기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끊어버린 이니에게 불쾌함을 표출하지도 않고 암살 부문장은 계속 말해봐, 라는 듯이 턱을 들어 올렸다. 압도적인 강자의 위치에서 그녀를 마주하고 있기에 보이는 작은 방심.

"그리고 지금 그 무기는,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죠."
"그러니까, 그게 문제인 거다. 손으로 공격해봐야 소용이 없고, 기껏 해봐야 주위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 정도가 너에게 닿는 무기의 한계겠지. 물론 그 정도로 내가 상처 입을 리는 없고."

그러니, 그 작은 방심을 이용한다.


"조금 전에 떨어트린 단검, 잘 쓰겠다고요?"
"...!"


운 좋게 그가 알지 못하도록 떨어트린 단검을 숨기는 것은 성공한 것 같다. 물론 용사의 능력으로 은신의 능력이 더 강해진 것일 수도 있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가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심장 부근에 두었던 단검을 잡은 손을 재빨리 밀어 넣는다. 상대는 이 뒷세계를 지배할 정도의 강자였지만, 무적은 아니니까. 약점 또한 다른 인간들과 같다.

"이걸로, 이제 나를 괴롭히고 무섭게 하는 것은 없어-"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긴 하지만, 이미 그런 것에 대해서는 각오를 한 상태이다. 신을 믿는 신자로서 용서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용사의 각오를 다진 그녀에게 있어 그건 평생을 가져가야 할 새로운 짐이라고 생각되었다.

(적어도, 악이라는 질 나쁜 존재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허억, 허억. 땀으로 가득 차버린 무기를 쥔 손에 더없이 힘을 주었다가, 이내 힘이 빠져 앞으로 쓰러진다. 모양으로서는 한 남성의 몸 위에 한 여성이 엎어 쓰러진 형태가 되었다. 지금의 남자가 위에서 보고 있는 형태가 바로 그런 느낌.

"아하, 이것 참. 뒷골목이라 어둡다고는 하지만 대낮에 지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정말 꼴사납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잇...!"

방금까지도 흥미롭다는 듯이 보고 있었고, 어째서인지 같은 편이라 생각했는데도 전혀 이 상황을 말리는 기색이 없었다.

"아아, 그 의문과 혐오가 섞인 표정을 보니, 알겠군요. 저자와 저는 동료나 같은 편이 아닌, 어디까지나 일로 만나는 거래 상대에 불과합니다. 그가 당신을 처리하는 것이 일이니, 제가 도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 것처럼 보여. 모든 시민의 희망인 용사님들을 나쁜 식으로 말하는 만큼, 어디까지나 당신은 속이 뒤틀린 사람이겠지."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그녀의 말을 정면으로 받아치듯, 남자의 입에서 나온 서론.

"아직 많은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당신이, 그것도 용사 후보라는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당신이 어떻게 저희의 마음을 다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까?"
"뭐...?"
"그건 어디까지나 전제 기준이 용사라는 존재가 정의라는 것에 입안했을 때 나온 당신의 독단적인 결론일 뿐. 저희가 이렇게 바뀐 것도 그들 때문이라고요?"

남자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이니. 그러나 곧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판단하여 반박한다.

"거짓말을 밥 먹는 듯이 하는, 더불어 용사님들에 대한 혐오 관점을 가진 네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용사님들을 볼 수는 없겠지!"
"흠.... 뭐, 그 말도 맞긴 맞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이 사실에 대해서 믿을 것인가 아닌가는 당신의 자유지만 말이죠. 하지만, 당신도 있지 않았습니까? 용사님들의 뜻에 찬동하지 않았던 부분이."
"그럴 리가! 나는-"


-설마, 시민들이 품은 많은 기대와 희망을 배신하려는 건가요?


그때, 갑작스레 떠오른 일리아나와의 말다툼.
그것도 그 누가 아닌 자신이 낸 의견 차이로 다투었다는 것이, 아직도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무언가의 형태로 박혀있었다.

"-나, 는...."

그러면서, 자연스레 목소리는 작아지게 된다. 그 틈을 놓칠 남자가 아니었다.

"그 반응을 보니, 역시 있으시군요? 대략 예상은 갑니다만."
"나, 나는.... 그저...."
"다른 시민들보다도 한 발자국 더 관계가 가까워진 당신도 그런데,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조금 변질되어 버린 저희는 어떻겠습니까? 자연스레 그에 대한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겠죠?"

왜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지 못했느냐?
어째서 이번에는 여기의 사람들을 죽게 놔뒀느냐?
더 빨리 왔다면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의문을 품었을 때 해결해주지 못한 용사들에게 반감을 품은 것은....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의무에 위반된 건가, 이니?"
"-!"

그 남자가 말하는 말투를 보아 하면, 자신들이 바로 그런 케이스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그만큼이나 용사들의 일 처리에 있어서 문제가 많았던 건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암살 부문장님?"

순간, 그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했으나 그 강자가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에.
사실, 그때의 틈을 이용해 남자는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어, 어떻게...."

그 남자의 말이 사실이니까.
심장에 단검이 찔렸음이 확실한 그가,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조금 전에 남자가 말하던 의문은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던 것인가.

먼지를 툭툭 털어낸 그는, 심장 부근에 박혀있는 단검을 빼내려고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멍하니 이니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습할 생각이었는데, 무슨 짓입니까."
"아아, 그분께서 그런 전개로 흘러가서는 재미없다고 말씀하시길래. 조금 지나치게 느슨해진 그녀에게 긴장감을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이제는 체력이 많이 회복되었는지 그의 심장 부근에 박힌 단검도 무시한 채로 상반신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망토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의 실체가 밝혀진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슬갑옷. 단검이나 짧은 길이의 화살 등에서의 부상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갑옷으로, 기동성을 중시한 갑옷이 힐끔 보였다.

남자의 말을 의미 없이 듣고 있었던 것은, 역시나 자신의 안전을 염려해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그것도 암살 부문장이 아직 기절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속의 가면을 벗지 않았던 것이 아마도 답일 것이다.

"아.... 아아....!!"
"아까 말했을 거다.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패닉한 이니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땀과 피로 젖어있는 검은색의 망토를 벗는다. 강자의 부활, 거기다가 살기를 담은 듯한 눈초리에 오직 그녀는 떨고 있는 행동밖에 할 수가 없었다.

"설마 떨어트린 단검을 다시 주워서 공격할 줄은 몰랐지만, 나도 모르게 네가 역전할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었군. 그러나, 준비성에서는 이미 이쪽이 훨씬 우위라고. 미리 준비된 나와 이곳에서 서둘러 짜낸 계획하고는 완전히 달라."

갑옷에 걸려 더 파고들지 못한 단검이었지만, 사슬갑옷으로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는지 검붉은 피가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곧장 바닥으로 떨어트린 후, 발로 세게 짓밟아 칼날을 아예 부러트려 버린다. 이제 정말로 그녀에게 반격의 여지라고는 없다.
그녀의 진정한 마지막 일격이, 그의 발에 의해서 끊어졌다.

"자아, 그럼 이제 정말로 끝-"
"-드디어 찾았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내려는 그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는 목소리가 저 위에서 들려왔다. 그리고서 들려오는 엄청난 굉음.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엄청난 양의 먼지와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은 그 속에서 걸어 나오면서 실루엣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분노에 가득 차 있는 것은 확실했다.

아마도 이 계획을 망친 또 하나의 주범.
다만,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하다. 다름 아닌 그 사신이 졌다고 하는 충격적인 보고를 이루어낸 인물이니까. 아까 전과는 달리 진심으로 식은땀이 나와버린다.

"길드 마스터인가...!"

바로 이 나라 최강의 길드 마스터, 지난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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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04 18:35 | 조회 : 687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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