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4)

"여러분들 모두 대피하십시오! 모두 줄을 맞춰 가세요!"

우리를 대피시키는 경비병들과 기사들의 안내를 받고 나아간다. 아무래도 국가 공인의 안전한 대피소 같은 데로 데려가는 듯했다. 뭐, 나로서는 그냥 이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 상관없긴 하지만.

아까부터 들리는 비명과 혼란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그리고 저 멀리서 들리는 폭발음과 전투의 함성이 이쪽에까지 들려온다. 며칠 전에 여기 올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아비규환이다.

문득 나의 옆을 스쳐 지나가 재빨리 달려가는 사람을 보았다. 옷차림새나 가지고 있는 물건을 보니 기자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이 사건은 규모가 규모인 만큼 필히 다른 나라에도 상황이 전해지겠지. 특히나 이 사건에 적지 않을 영향을 가지고 있을 <웨포스트>의 개인적인 대처가 궁금해지는군.

(용사 환영식을 위해 기껏 파견한 용사들에 대한 실례를 많이 저질렀으니까. 그리고 철벽의 도시라 불릴 만큼 <유메니티>에 대한 안전도는 높았으니, 여러모로 이번 사건에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

정녕 다스 에이나 폴로가 이때까지 흑월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된다. 그건 그거대로 나라 관리에 대한 부실이란 책임으로 질타를 받을 것이 뻔하니까.

(이래서 관리자라는 직위는 귀찮다고.)

"그나저나 도대체 누가 이런 테러를 벌인 걸까?"

갑자기 옆에서 그런 생뚱맞은 소리가 들렸다. 나에게 말하는 건가 싶어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 목소리의 장본인은 다른 쪽을 향해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 아니, 그건 그렇고 다른 녀석들은 어디로 간 거냐?"
"아마도 여기저기로 흩어진 것 같아. 용사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많이 모였으니까."

어이쿠야, 내 곁에 있던 자들은 정안섭과 장건영 두 사람이었나. 어느새 또 내 곁으로 온 건지.
다행히도 그들과 나 사이의 접점은 얼마 없는지라, 있다고 해도 조금 전에 정안섭이 나를 구해준 것밖에 없다. 바로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나란 존재는 잊혔겠지.

"애당초 이딴 짓거리를 이 나라의 왕이 보고 있는데 대놓고 일으킨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를 망치고선, 쓰레기들."

장건영은 이 나라의 출신답게 오늘 할 예정이었던 축제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심 많이 기대했겠지. 그런데 매년 즐기던 축제를 더러워진 역사의 길로 바꾸어버린 흑월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있는 듯했다.

뭐, 아무래도 이런 일을 저지른 조직이 흑월이라는 사실은 기사 단장의 아들인 그라고 해도 모를 테고. 사건을 자세히 알 만한 학생들은 나와 왕녀 정도일까나. 혹여나 상층부와 커넥션이 있는 학생이나 귀족의 자제들은 알지도 모르지만.


(--- --- -- -- --. -- - ---- ---!)


“-!”

뭐지, 이 느낌은?

저번과 같은 강렬한 감정이 나의 머릿속에서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저번과는 다르게 원인은 로딘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용사 후보인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보낸 SOS 신호다.

(아니....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광장에서 몇몇 용사 일행들과 같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런데 지금 들린 위치는 언뜻 봐도 광장 근처도 아니고....)

우선 내게 들린 목소리를 <위치 탐색>을 발동해 대략적인 그녀의 장소를 추정해보지만, 이 시간 내에 전속력으로 간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분명한 건 무언가 마법 같은 것을 썼다는 것. 그렇다면 <전이> 마법이 제일 유용할까.

거기에 이 느낌은 그날 밤과 같은 불길한 기운이 든다. 그때는 다행히 시간 내에 맞아 떨어져 지난을 보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면은 직접 가보는 것이 좋을까.

그러기 위해 다른 이들이 보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 옆의 뒷거리로 슬쩍 빠졌다. 주위의 사람들은 다들 살기 위해 바빠 보였고, 주위를 둘러보는 경비병이나 기사들의 눈도 속였다.

거기서 몇 발자국 더 걸어 나와 사람의 눈이 전혀 없다고 확신할 곳까지 걸어간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곳은 공교롭게도 몇 시간 전의 로딘이 나를 데리고 온 곳과 같은 곳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이곳으로 온 건가.

"자아, 그럼 슬슬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가볼까."

당연히 그곳으로 가기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은 <전이>. 그러나 그곳에 어떠한 광경이 펼쳐질지 모르니 신분을 숨기기 위한 나로서는 몰래 조심히 가야 한다. 저번의 <전이> 실패의 실수를 알았으니 정확한 좌표를 잡아 인근의 건물을 목표로 한다.


★★★


검은 망토의 두 남성이 서로를 마주 본다.

한 사람은 중년 특유의 수염과 주름이 있는, 어떻게 봐도 중년 모습의 아저씨. 하지만 그가 살아온 나이와 비례한 아슬아슬한 죽음의 경험이 지금의 그가 강적이라는 것을 카프는 잘 알고 있었다. 두 손으로는 날카로운 와이어를 가지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흑색의 머리카락과 붉은색의 눈동자, 그리고 바로 그 밑에 있는 흉터를 가진 남자. 여러 개의 단검을 손가락 사이로 끼워 넣어 그에 맞서서 싸운다. 거리상으로는 와이어보다도 더 짧을 테지만, 안정성으로는 더 좋을 테다.

잠깐의 공방으로 서로의 상태는 잘 알았다. 암살 부문장은 단검에 발라진 독에 의해 신체 능력이 저하되어 있었고 그 상태를 만든 것도 카프였다. 다만, 그런데도 전면전에서 그에게 큰 상처를 주지 못한 것은 카프의 실력 부족일 것이다.

(역시, 썩어도 준치라더니 저 정도의 독을 주입한 정도로는 완전한 마비가 오지 않는 건가. 더군다나 아직도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지 못하다니.)

-이건 위험하군.

그런 생각이 카프의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적의 와이어가 일제히 카프의 신체를 잘라버릴 기세로 다가온다.

잘 알려진 급소뿐만이 아니라 당하면 전투의 속행이 힘들어지는 곳까지 다양한 곳을 노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카프는 강화된 시력으로 어느 정도는 막고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까지는 갖췄으나 완벽하지는 않았고, 또 그뿐이었다.

(거기에 실력은 저 녀석이 더 우위이고.... 거기다가 내가 별다른 기술이 없다는 것을 간파했을 때는 곧바로 나를 죽일 셈이겠지.)

그분한테서 배운, 암살 부문장을 죽이기 위해 따로 단련했다고 해봤자 며칠 동안 단검의 사용법에 대한 심화 학습과 기습, 그리고 실전 경험밖에 한 적이 없다. 덕분에 조금 향상된 실력을 보여 그를 당황하게 한 거라고 해도 그를 쓰러트리는 영역까지는 가지 못한다.

"어떻게 된 거냐. 초반의 그 기세는 도대체 어디로 갔냐 이 말이야."

암살 부문장이 오른쪽 검지를 자신을 향해 까딱거리자, 카프의 바로 뒤에서 그의 목을 노린 와이어가 꿈틀거리더니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를 향해 날아온다. 눈치채고 단검을 이용해 자르지만, 날카롭고도 단단했기에 튕겨내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몇 개 정도는 튕겨내지만, 그보다 몇 배나 되는 와이어에 의해 일어나는 상처로 점차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카프. 그렇지만 덕분에 아까와 같은 근접전이 가능할 정도의 위치까지 따라붙었다. 그에 당황하지도 않고 암살 부문장은 여전히 두 팔을 움직인다.

"내 와이어가 중거리에서 가장 위력적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선택을 한 건가."
"나에 대한 평가는 그만해! 나는 이제 너의 부하가 아니다!"

언제까지고 자신을 옭아매는 듯한 기분 나쁜 말투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진다. 예전의 카프라면 처음부터 흥분해 그를 공격했겠지만, 그분의 말씀에 따라 전투 중에서도 냉정한 시선을 바라보라는 조언을 따른 덕분에 어느 정도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잠시의 틈조차도 상대방은 이용할 수가 있다는 충고였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잠깐의 감정에 따라 그의 단검이 암살 부문장의 머리카락만을 스치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덕분에 적은 더욱 거리를 두는 데에 성공하고 만다.

"예전에 버려져 있었던 너를 주워서 지금의 너를 만든 게 누구지? 다름 아닌 나다, 카프. 만약 내가 거기서 그냥 지나쳤다면 그때 넌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나를 배신하는 거냐."
"닥쳐라! 너는 나를 한낱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어! 이제 와서 나를 챙겨주는 척하려는 거냐!"

자신의 인생의 길이를 더 늘여준 자에게 버려진 기분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있었던 자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기분도 모르면서. 계속해서 지껄이는 것이 참으로 역겹다.

과거에 자신이 저런 자를 모시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마음가짐만으로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는 거였는지 자신조차 처음 알 정도로 극심한 변화였다.

"다른 이들은 내가 죽어달라 하면 바로 죽어줄 정도의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과거에 내가 기대했던 모습이 결국 이렇게 되다니, 정말로 실망이군."

암살 부문장이 전투에서 목표를 정신적으로 몰아넣는 것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니, 최근에는 자신이 직접 나가지 않았으니 오랜만이라 할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라도 상대방에게 정신적인 공격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단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로 말이 통하는 인간일 것. 마물에는 1도 효과가 없는 멍청한 짓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마음에 피해가 갈 정도로 긴밀한 사이거나 정보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점.

더불어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세 번째로는 가장 도발하기 쉬운 단어를 골라 쓰는 것. 덧붙여서 그 말이 간단하고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대사일수록 더욱 약이 오른다.

(그리고 너는 그 세 가지의 사항 모두 해당하는 어리석은 녀석이지. 여기서 너의 가장 큰 정신적 지주는 나였다. 그렇다면 그 점을 이용해서 너를 궁지에 몰아주겠어.)

"그럼....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번 볼까, 카프!"
"...!"

암살 부문장이 크게 팔을 벌리더니 이윽고 한꺼번에 모든 와이어들을 그가 있는 쪽으로 휘두른다. 양옆에 있는 벽들을 아예 잘려나가는 것이 아닌 갈려 나간다는 표현이 적절한 정도의 날이 서 있었다. 절대로 막을 수가 없는 일격.

지금까지 그가 보여온 패턴은 단검을 던지고, 휘두르고, 막는 것뿐. 기본기는 강화되었지만, 그 이상의 기술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도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 시간에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다고 해도 애초부터 그들 사이의 경험차는 엄청났으니까.

(그에 비하면 나는 이곳 모든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췄지. 너로서는 나를 이길 수가 없다고, 카프.)

"미리 말하지만, 카프. 넌.... 영원히 내 아래다. 그리고 강자는 약자에게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벌일 수 있지. 네가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바로 나 자체다."
"....."

양쪽으로 다가오는 선혈의 철사에 카프는 무언가 다짐한 듯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다 달려가던 발을 잠시 멈추고는, 그대로 도약하여 위로 뛰어올랐다.

"그렇다면, 뛰어서 가면 될 뿐이야! 너 따위가 나를 구속하지 말라고!"

와이어는 크게 한 번 휘두르면 다시 자세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피할 수 없는 일격이라 말했지만 위로 뛰어오른다는 선택지를 취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점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 절대로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아아, 그 정도는 예상했다. 충분히."

그런 암살 부문장이 한 손에 다섯 개의 손가락, 총합 열 개의 손가락 모두를 탁 튕겨내자마자 갑자기 다른 와이어들이 물고기를 잡는 그물망마냥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게 그가 생각했던 해결책인가.

"네 녀석이 이 공격을 보고도 막지 않을 건 진작 알고 있었다. 막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위로 올라올 것을 유도한 공격이지. 물론 그냥 막고 온다고 했어도 상관없었다. 노리는 것은 하나였으니까."
"....."

계속되는 도발에도 카프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공중에 머무른다. 그러고는 바로 위에서 단검 몇 개를 그에게로 던진다.

조금 전에 서술되었듯이 와이어는 크게 한 번 휘두르면 다시 자세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미 와이어를 컨트롤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면, 선혈의 광란이라고 해도 피하거나 막을 도리가 없다.

그의 예상이 빗나가는 데에 성공한 건지 보기 드물게 암살 부문장이 당황하는 기색을 약간이지만 얼굴에 비추었다. 대놓고 얼굴에 짜증을 표하고는 손으로는 힘껏 와이어를 잡아당기는 데에 집중하고는 마법의 영창에 집중한다.

"-<풍압>!"

D급 마법이라 발동하는 데에 약간의 딜레이가 걸렸지만 아슬아슬하게 단검을 바람으로 밀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평소라면 남은 한 손으로 전부 단검으로 튕겨냈겠지만, 그가 조종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사용한 것에 대한 반동으로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잠시 마력 부족으로 휘청거려 그와 연결되어 있던 수많은 트랩에도 약간의 영향이 간다. 그 틈을 노려 카프가 품에서 더 많은 단검을 꺼내 그에게로 착지하는 과정을 거친다.

"후우, 후우.... 솔직히 놀랐다. 그런 와중에도 이런 수를 생각해놓을 줄이야."

적이고, 두 번이나 자신의 계획을 망친 희대의 문제아이자 증오의 대상이라지만, 이번의 수에는 진심으로 그를 인정하면서 감탄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오랜만에 스릴 넘치는 현장의 분위기와 그에 걸맞은 강자와의 싸움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아까 말한 발언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선혈의 광란]의 이름을 네까짓 애송이가 며칠 만에 망치게 만들 줄 아는 거냐?"
"이건...."

카프가 거의 바로 앞까지 떨어져 단검을 들이밀려고 할 때 자신의 몸에 생긴 이변을 깨달았다. 팔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땅에도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고정된 것처럼.

"이제 이런 촌극은 끝내도록 하지."
"뭐, 뭐냐.... 왜 움직일 수가 없는 거냐.... 이거 놓지 못하겠어?!"

거미줄에 걸린 나비와 같이 고정된 카프를 두고 암살 부문장은 손가락마다 묶여있었던 은사(銀絲)를 먼지 털듯이 한 번에 놓는다. 그런데도 카프가 묶여있는 와이어에 영향은 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에 박혀있던 채로 전투 중에도 자신을 괴롭게 만들던 독이 든 단검을 몸에서 빼낸다. 그러고는 치료를 위해 품속에서 포션 하나를 꺼낸다. 특유의 고얀 향기를 맡아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지만 망설임의 시간을 거치고는 단숨에 들이마신다.

"으엑.... 여전히 고약한 맛이구먼, 이거."

약간의 공백기가 있던지라 오랜만에 마셔보는 포션의 맛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는 텅 빈 병을 바닥으로 던진다. 조금 흘러버린 액체를 손으로 닦고는 아직도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불쾌한 식감을 뒤로하고 묶여있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네 뒤에 누가 있는지는 나로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감히 죽음을 각오하고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에는 솔직히 좀 놀랐다, 인정하지. 꽤 크게 한 방 먹었어. 하지만, 아무리 차분한 나라도 그런 거에는 열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이 말이다."
"...이게 바로 다 네 녀석이 일을 키운 탓이다. 애초부터 네가 그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지금의 네 상황도, 나와 이런 관계가 되는 것도 없었겠지!"
"흠, 이 상태에서도 반항하는 건가. 나에 대한 증오심으로 이렇게까지 힘을 쓸 수 있을 줄이야, 네 배후의 녀석도 제법이군."

카프는 방법을 바꾼 듯 암살 부문장을 향해 도발과 위협을 동시에 펼친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아직 그에게는 어설프다. 교육을 아직 제대로 못 받았다는 건 확실하다는 명확한 증거.

(그렇지만, 이 녀석의 말도 맞긴 하지....)

지금의 카프를 죽이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긴 하지만, 그러다가는 또 어떤 수를 벌일지 모른다. 만약 그의 후방에서 지원해준 자가 그의 몸에 생체 폭탄을 심어뒀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적어도 한 번 쓰고 버릴 장기 말이라면 자신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거라도 맞으면, 지금의 난 재기불능인가."

숨 막히던 용사와의 혈투에, 독으로 약해진 몸으로 전 부하까지 상대한 것이다. 지금 서있는 것도 포션의 힘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것뿐. 그런 와중에 혹시나 모를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더 폐가 되지 않게 일단은 일 초라도 빨리 도망간 이니를 쫓는 게 우선이었다. 앞에 벽이 있으니 도망갈 수는 없겠지만, 용사의 힘이 언제 각성할지 모르는 지금 서둘러 바삐 가는 것이 더 좋을 듯했다.

"그렇지만.... 역시 도망갈지도 모르니 대비책은 해두어야겠지."
"어이.... 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와이어로 묶여있는 카프의 밑바닥에 마름쇠를 뿌려 내려오더라도 피해를 입도록 획책해둔다. 모든 날이 날카롭게 서 있는 것이 아주 피부에 깊게 파고들 것이 분명하였다. 만약 그가 어떠한 이유로 와이어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다치지 않을 수는 없겠지.

"자아, 그럼. 잠시 거기에 좀 있어 줘야겠어.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

"이야.... 이건 예상을 못 했는데...."

정장을 입은 남자가 벽에 기대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을 보고는 난감하다는 듯이 그녀를 위에서 내려보듯 쳐다본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네. 여기서 내가 위에서 쳐다본다는 게 맞는 말인지조차."

아니, 정정하겠다.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은 강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 그 외에는 다 허세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그녀는 허세인 건가?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려고 그런 것인가? 아니다. 지금 그녀가 보이는 모습은 다름 아닌 강자였다.

"갑자기 저 벽에 꽂힌 단검을 들자마자 살기를 보이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지."

벽에 꽂힌 단검이라는 것은 조금 전 암살 부문장이 패기 좋게 던졌던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지금 상태는 각성 상태로 보였다.

"하필, 내가 상대일 때 이런 상태가.... 저기요, 들리시나요? 저, 갑자기 상황을 보니까 이 목표한테 살해당할 것 같은데요?"
"....."

분위기가 변한 이니도 그가 다른 자와 <전언>을 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지금 상태를 알아챘다. 불완전해져 있던 자신 안의 자질이 위협을 느끼고 나서야 실현되어가는 것이다.

"저, 용사의 각성을 해버린 그녀에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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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04 18:29 | 조회 : 68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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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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