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2)

"뭐라고요? 방금 그 말이 사실입니까?"
"어어.... 그렇다네. 지난."

다스 에이나 폴로의 말에 지난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짊어지고 있던 자를 무심코 손에서 놓고 말았다. 묶여있던 그였기에 팔다리를 이용해 제대로 착지하지 못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웬만한 것에는 놀라지 않을 다스 에이나 폴로마저도 기겁할 만한 기백을 띄고 있었다.

"우선 진정하게. 폐하께서도 많이 놀랐지 않으셨나. 그리고 이건 흑월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내부에서 우리가 서로 싸울 이유는 없으니까."
"알고는 있지만...!"

기사 단장의 흥분을 가라앉히라는 말에도 지난은 분노가 치밀어 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기어코 이니까지 끌고 가다니.

계속해서 감정적인 상황들을 내버려 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하지만, 또다시 또 찾아온 비극적인 상황에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 그러나 우선 지금은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정보 수집이 필요했다.

(후우, 후우.... 일단은 좀 진정해야 할 필요가 있군.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일단 <격리 공간> 내부를 깨고 돌아왔을 때, 이미 여기 광장에서의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지.)

지난이 오자마자 딱 절묘한 타이밍에 용사 일행의 마법사인 위트니가 준비해둔 마법이 광장 전체에 발동되었다. 수면 마법이라 해서 강제로 적용자를 취침시키는 아주 강력한 마법.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마법은 적과 아군을 대상으로 지정해서 발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단지 그녀가 이 넓은 광장에서 일일이 한 명씩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을 뿐.

거기에 켈럽의 치료, 일리아나의 원거리, 용사와 전위의 근거리 공격까지 모든 것이 이 상황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거기에 최후의 방어선인 기사 단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할 터였다.

"근데,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그의 자조하는 말에 기사 단장과 다스 에이나 폴로가 무심코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 침을 한 번 삼킬 정도의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그건 그의 곁으로 모인 용사 일행들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할 정도였다.

전위였던 데클렌은 방패를.
궁수인 일리아나는 활에 화살을.
마법사인 위트니는 손에 마력을.

여기서 유일하게 순수 전투직이 아닌 켈럽과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 용사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다만 다섯 명 모두 그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타국 출신이다 보니 그의 심경에 대해 완전한 위로는 할 수가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후우...."

용사 일행과 기사 단장, 그리고 이 나라의 왕을 대신하여 용사가 직접 나서서 물어보기로 했다. 가까스로 분노를 제어하고 있는 그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지난.... 씨께서 가지고 있는 분노와 슬픔은 아마도 저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보다도 훨씬 더 크겠죠. 그러므로 저희도 당신에 대해서 함부로 조언이나 위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지금의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 그저 소중한 자들을 잃은 것에 관한 결과에 좌절하고 있는 거야."

지난은 그리 말하면서 바닥으로 숙인 고개만을 다스 에이나 폴로를 향해 돌리면서 그를 쳐다보면서 허락을 구한다. 다만, 그가 하는 말은 정상적으로 왕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 것에 더 가까웠긴 했지만 그래도 모든 이들이 그것에 신경 쓰는 일은 없었다.

"폐하.... 부디 이니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이대로 흑월한테 굴복해서는 <모험가 길드>의 길드 마스터로서 그녀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녀의 상관인 저는 이니를 구하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자네.... 하지만-"
"-이미 요 며칠간 많은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부디 양해를."

지난은 그리 말하며 서서히 무릎을 꿇었던 자세에서 벗어나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이 장소에서 벗어나기 전, 뒤에 묶여있는 사신에 대한 설명도 잊지는 않는다.

"아, 저 뒤의 저 녀석은 흑월의 최강 전력 중 하나니, 도주하지 못하도록 잘 붙잡아주십시오. 쇠사슬을 이용한 <잠금> 마법으로 묶어두기는 했지만, 마법은 아직 사용 가능할 테니까요. 물론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은...."

제 3자가 듣는다면 마치 비꼬는 듯한 말이었지만, 그런 그들의 말에도 다른 이들은 대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내뿜고 있는 기가 너무나도 거세서 그런 것일까.

단 한 가지 그들이 알아챈 점은 그의 상대가 될 흑월은 걸리는 즉시, 처참하고 완벽하게 무너질 거라는 점.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신.... 도망갈 생각은 부디 하지 마라. 만약에라도 그랬다간 피 한 방울조차 증발시켜버려 세상에서의 흔적을 지워버릴 테니까. 알겠어?"
"-!"

그의 진심이 묻어있는 말에 사신은 막혀있는 입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느 정도의 제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압도적으로 져버린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느낀 그였다. 포어가 한 방에 기절한 것도 이해가 갈 정도.

"<전이>."

그리고 단 한 마디. 왕의 대답도 듣지 않고서는 그는 광장에서 빠져나왔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빠른 속도로 이곳저곳을 찾아보러 다닐 것이 분명할 것이다.

"지난 녀석.... 결국, 폭주해버렸군."

그녀의 작은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우선 이 나라의 왕으로서 다스 에이나 폴로는 진정되지 못한 광장의 현장을 치우기 위해 움직일 힘이 남아있는 자들에게 힘차게 소리친다.

"어쨌든 용사 일행들의 분투와 켈럽 군의 치유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흑월 놈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몽땅 잡아넣어 처형하도록 하겠다!"

이 행동은 사태에 대해 승리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시민들의 불안감을 덜려는 목적 또한 있었다. 어디에 누군가의 눈이 있을지도 모르니 지도자로서 불길한 모습을 그들의 귀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동시에 살아남은 기사들과 경비병들에게 흑월이라는 악을 없애기 위한 적극적인 도움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동조를 얻어내려면 일단 사기를 높이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다면 폐하. 사태가 진정된 지금이라면, 저도 그를 따라서 용사 후보인 이니 님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괜찮을까요? 그를 그대로 두기에는 아직 좋은 상태가 아닌 것처럼 보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기사 단장. 그러지는 않겠지만, 최악의 사태라도 자네라면 그를 어느 정도 제지할 수 있겠지. 단, 웬만한 범위 내의 일은 그의 말을 들어주게."
"...감사합니다. 그럼."

그는 갑옷을 쿵쾅거리면서 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들고 있던 거대한 창을 가지고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로써 <유메니티> 최강의 전력이 두 사람이나 빠져버렸다. 아마도 사정상 흑월에는 손을 못 대는 용사 일행들을 대신하여 용사 후보인 이니를 데리고 온다는데 막는 것은 어렵겠다. 그럴 바에야 그냥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더 이득이라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광장의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군. 그와 더불어 곧장 흑월을 잡아낼 확실한 플랜을 짜는 수밖에 없겠다."


★★★


"이제 슬슬 오신 것 같군."

그녀가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몸이 얼어붙으면서 시간만을 보낼 때, 문득 암살 부문장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다. 놀랍도록 싸늘한 그 말은 마치 그녀에게 죽음의 시간이 닥쳐온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실루엣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마침내 그녀의 눈에도 보일 만큼의 거리까지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면 걸어오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암살 부문장과 같은 허름한 망토를 입은 것이 아닌 마치 고귀한 귀족들 전용의 정장을 입고 있는 점이었다.

(저 사람이.... 이 사람이 기다린다던 그 사람?)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서 오셨군요."

그가 아까 말했던 사람이 맞는 듯, 암살 부문장은 나이에 맞지 않게 허리를 굽히면서 정장의 사내에게 아랫사람으로서의 태도를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던 그가 지금은 남을 따르는 한낱 개가 되어버렸다.

(저러니까 진짜로 그냥 평범한 중년 아저씨같이 보여. 아니, 그래도-)

방심하면 목이 달아난다. 거기에 이번에는 정말로 위기다. 발을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

음영에 가려져 있던 얼굴도 점차 앞으로 오면서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또한 절대 어려 보이는 나잇대의 인간은 아니었으며, 얼굴만 봐도 남에게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한 무서운 남성이었다.

"...그래서, 목표는 어디에 있는 거죠?"
"아.... 네. 저기 저 소녀입니다. 지금은 겁을 먹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어, 그런데 그분은 어디에?"

그의 차가운 말투에 암살 부문장이 꼬리를 내리면서도 그의 신상을 확인하는 듯이 몇 개의 질문을 번갈아 가며 던진다. 몇 번의 대화를 주고받으면 그때야 자신이 확신하던 인물이 맞는지 표정을 밝게 한다.

"그 증거로서 여기, 대량의 스크롤입니다. 이걸 원하셨던 거, 맞죠?"
"예, 맞습니다! 이러한 높은 품질을 가진 스크롤을 제작하실 수 있으신 분은 오직 그분뿐이니까요!"

가방에서 꺼낸 많은 수의 스크롤. 거기다가 시험 삼아 열어놓은 스크롤 안에는 <전이> 마법이 새겨져 있어 C등급 상당의 품질을 자랑하는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그만한 스크롤을 하나 사는 데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그분께서는 당신께 꽤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선불로서 이만큼이나 가져온 겁니다. 뭐, 그분에게 있어서 이만한 스크롤을 대량으로 만드는 것은 하루도 안 걸리지만 말이죠."
"하하. 그거야 당연히-"
"그리고 그분이시라면 당신의 목숨 따위는 바로 앗아갈 수 있고요. 만약에 제가 왔을 때 그녀를 데려오지 못했다면 의뢰 실패로, 죽을 뻔했다고요? 당신."

그의 마지막 말에 암살 부문장은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보다도 조금 더 강한 경비 부문장과의 기 싸움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던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 흑월의 누군가가 보게 된다면 눈을 의심하게 될 상황.

하지만 그 남자와 암살 부문장 두 사람 모두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일 뿐이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잠시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띄웠지만, 다시 아부의 눈초리를 띄운다.

"...정말 다행이네요. 그분의 눈밖에 들지 않아서."
"당연하죠. 그분께서 화가 나시면 나라 하나 정도는 쉽게 집어삼키실 수 있으시니까요."

이니는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서는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 도주할 타이밍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선 저 사람이 나를 금방 죽이지 않은 이유는 저 정장을 입고 계신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서인 것 같고. 저렇게 쩔쩔매는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저 사람의 뒤에 있는 '그분'이라는 존재가 더 강하다고 인식해도 되겠지?)

그것보다 그게 아니면 광장에서 일으킨 사건이 말이 안 된다. 만약 그가 이니를 죽이지 못한 것에 대한 살해 협박을 받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하면 대충 앞뒤가 맞는다.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인 건가....)

"자, 그럼-"

아주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이니였지만, 암살 부문장의 한 마디에 다시 정신을 현실로 돌렸다. 요즘 들어 쓸데없이 생각만 하는 것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때에 있어서는 필요하지 않다.

"보고 싶으신 거죠? 해체 쇼."

그는 망토 속으로 두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집어 끄는 것처럼 힘을 주어 와이어를 밖으로 꺼냈다. 그러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이니를 눈앞에 두고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한다. 이걸 위해 그는 기다려왔다.

-저 소녀를 처참히 죽이기 위해.

"흠.... 물론 광장에서 일으켰다는 사건도 그분께서는 재밌게 관람하셨습니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요. 설마 이걸 위해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분께서는 이런 잔인한 것을 보기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별로이신 건가요?"

그가 고개만 돌려 정장 차림의 남성을 바라보면서 물어본다. 겉으로는 당당한 태도로 나왔지만 내심 불안감이 다시 조성되기 시작한다.

남자는 그분이라고 불린 배후의 <전언>을 받고 있는지 홀로 자문자답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곧바로 떨어진 허락.

"...아뇨, 괜찮습니다. 그대로 진행해주셔도 될 것 같네요."
"!!"

이니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그 두 사람에게 있어서 이미 인간의 목숨 따위는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것을. 강자만이 정의라는 암살 부문장의 말에 따라서 그는 자신보다 더한 강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음을.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분명 그녀의 앞을 기다리고 있을 상황은 전혀 긍정적이지 못할 것이다. 그 마음에 공포로 억눌려있던 신체가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벼랑 끝에 몰린 생존 본능이 강자가 풍기는 공포심을 이긴 것이다.

재빨리 그들에게 등을 돌려 빠른 속도로 서둘러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래 봤자 저들에게 잡힌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라도 끌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암살 부문장이 품에 있던 단검을 던지자 도망치려고 하는 이니의 빰을 가볍게 스친 것이 느껴졌다. 곧이어 저 멀리 암흑 속에서 단검이 꽂히는 소리가 그가 있는 쪽까지 들린다. 벽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 빠르게 꽂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잠시 후에 벌어질 참상을 알려주는, 불쾌하고도 듣기 싫은 소리.

"-!"
"이제야 알겠지? 네가 아무리 멀리 도망간다고 해도 그 앞은 벽이야. 포기하고 그만 얌전히 죽음을 맞이하는 게 좋을 거다."

그가 직접 단검을 던지면서 그녀의 앞에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소리로 암시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도 이니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간다.

(이번에도 분명히 길드 마스터께서 도와주러 오실 거야! 부디, 저에게 저번과 같은 기적을 내려주시길!)

그녀는 다시 한번 하늘을 보면서 기도한다. 저번의 어두운 하늘이 아닌 화창하고 예쁜 하늘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절망스러웠다.

"아.... 뭐, 이런 것도 즐거움이죠. 지금 당장 그녀를 쫓겠습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분이 즐거우시다면."

그의 말대로 곧이곧대로 멈춰줄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그의 뒤에는 이번 의뢰인인 그분의 부하가 있다. 그러므로 직접 그가 나온 것이다. 절대적으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

손가락에 몇 개씩 걸려있는 와이어에 걸린 장치를 작동시키면서 점차 앞으로 나아간다. 어차피 도망갈 길도, 저번과 같이 다른 방해꾼이 이곳으로 올 수도 없는 완벽한 장소로 데려왔다. 의뢰인이 만족한다면야 그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옳았다.

(이런 복잡한 의뢰를 하는 썩을 놈의 의뢰인이라지만, 이만한 고품질의 스크롤을 만들어내고 그만한 돈을 낼 수 있는 자다. 지금은 비위를 맞춰주는 수밖에.)

물론 이러한 생각은 그의 부하 앞에서는 드러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다.

"자아, 이런 건 전부 약자들에게 풀어내는 것이다. 천천히 이 상황을 맞이해볼까."

비록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취미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저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여러 행동을 벌여야만 했다. 다른 부문장들을 끌어들여 흑월의 전력이 이만하다는 것을 전국적으로 알리면서, 자신의 명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최대한의 수를 썼다.

<유메니티>의 상층부가 일으킬 행동에 대한 대처를 해야 한다는 후폭풍이 있었지만, 이 정도의 선에서 의뢰인을 만족하게 했다면 다시 전과 같은 영향력을 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남은 건 이제 약자의 처리뿐.

(그자가 원하는 대로 최대한 잔인하게, 시간을 들여서 말이지.)


"여전히 자기 멋대로군. 당신은."


그때, 암살 부문장의 위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단검.
예상도 못 한 누군가의 기습에 눈치채는 것이 늦어진 암살 부문장에게 몇 개의 단검들을 피하지 못하고 부상을 허용해버렸다. 절대로 오지 못할 장소로 <전이>했으니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늦춘 듯한 모양이었다.

곧이어 위에서 착지한 누군가는 품에서 꺼낸 단검을 그에게로 날카롭게 던진다. 암살 부문장은 손가락으로 걸고 있던 와이어를 순간적으로 튕겨 단검의 궤도를 옆의 벽으로 바꾼다.

"어떤 자식이냐, 너는! 그 아무도 이곳으로 올 수 있을 리 없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그가 크게 외쳐도 그자는 검은색의 망토를 휘날리면서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생각보다 강한 그의 실력에 놀라면서도 재빨리 그가 휘두른 왼팔을 피한다. 미처 피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는 붉은색의 선혈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단검을 휘두르면서 위협적으로 자신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거리를 벌리려고 뒤로 물러나도 그가 지닌 와이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접근전을 강요시킨다. 그와 더불어 계속해서 힘이 빠지는 것이 무언가 기묘했다.

(설마, 단검의 독인가!)

미처 피하지 못한 몇 개의 단검들이 한꺼번에 꽂혔기에 더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 듯하다. 안 그래도 이런 방식에 관해 싫증이 났었는데, 그런 방식으로 당하니까 더 약이 오른다.

그러든 말든 단검이 몇 번이나 그의 급소를 지나간다. 틈을 봐서 그를 발로 차 약간의 거리를 두게 하고 와이어를 평균적인 성인 남성의 목이 있는 부분으로 휘두른다. 그조차도 예상한 듯 자세를 크게 낮춘 후 다시 붙는 검은 망토.

이번에는 와이어로 단검을 막는다. 여러 개가 복잡하게 엉켜버린 와이어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한 채로 힘을 준다. 잠시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적을 천천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챈다.

"이 자식.... 어디서 그 단검을...!"
"....."

망토로 인해 얼굴은 보이지 않아 신분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들고 있는 단검의 손잡이에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무늬를 띄고 있었다. 바로 흑월 중에서도 자신이 이끄는 암살 부문 출신의 암살자들만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런.... 우리 암살 부문에도 스파이가 있던 것인가! 거기에 나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과연.... 나중에 다시 한번 골라낼 필요가 있겠군. 알려줘서 고맙게 됐다."
"...스파이인가."

일부로 눈앞의 적을 도발하면서 여유 있는 척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비상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보가 어디서 빠져나갔는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이곳을 알아낸 것도 이해가 간다.

(문제는 어떤 녀석이 이딴 짓을 했다는 건데.... 그건 저 녀석을 고문하면 알 수 있겠지. 우선은 빨리 무력화시키고-)

힐끔, 뒤의 정장 사내를 눈 끝으로 쳐다본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차가운 표정이 암살 부문장의 초조함을 더해간다.

"-뒤의 저 목표를 죽여야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장애물을 없애야 했다.
그런 그의 반응을 천천히 지켜보던 붉은 눈빛만을 보이던 검은 망토. 그가 눈앞의 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봐, 이 단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건가?"

갑작스러운 그의 대화 시도에 암살 부문장이 의아해하긴 했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바로 돌진한다. 굳이 대화할 이유는 없다.
그 반응을 예측이라도 한 듯, 그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손으로 잡는다.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하는군. 당신.... 아니, 네 녀석은. 어째서 과거의 내가 그렇게 너를 섬겼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야. 그렇지 않나?"
"무슨 말을 하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드디어 이룰 수 있겠군. 예전의 힘이 없던 그때, 나는 너를 죽이려고 할 때 한 가지 맹세했다."

후드가 벗겨져 보인 얼굴은 암살 부문장이 심히 경악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 또한 잘 알고 있던 쓸모없는 쓰레기 중 하나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녀석을 죽일 거라고 말이야."
"너, 너는-"

흑색의 머리카락은 그대로였지만, 그의 분위기나 눈 밑부터 나 있는 흉터까지 약간 용모가 바뀌기는 했다. 그러나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이 얼굴. 그리고 그 당시에 그가 풍겼던 세상을 증오하는 듯한 눈초리가 지금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암살 부문장님. 당신께서 버린 카프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죽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 이때를 위해 실력을 갈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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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04 18:24 | 조회 : 773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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