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전투 (完)

흑월 습격 작전이 실패한 그 날 밤.
지난은 폭발로 인한 부상으로 인해 쓰러진 김승호를 들고 황급히 <모험가 길드>로 데려왔다. 그러고선 재빨리 치료를 받게 하려고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웬만한 포션은 이미 먹였으므로 죽지는 않을 거로 생각하지만, 포션은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일 뿐 중상에는 완벽한 치료가 되지는 않는다. 꼭 나중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후유증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너덜너덜해진 그의 속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까.

"....."

아무런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모양이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모습은 몇 살 되지 않은 어린아이라도 기겁할 만큼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지난이었다. 그 모습은 그 작전에 같이 참여한 다른 용맹한 모험가들도 흠칫할 정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증거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나중에 수사팀이 폭발의 잔해로 널리 퍼져버린 것들에서 증거를 찾아보려고는 한다지만, 아무래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은 그쪽 분야가 아닌 지난으로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나간 복도를 전부 채울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폭탄이다. 거기에 바깥에 있던 자들에 의하며 폭발의 잔해로서는 이상할 정도의 대량의 종이들이 바깥으로 나돌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결과는 이미 나온 거나 마찬가지인 일.

"...흑월, 전부 이걸 노린 건가...."

지난이 <모험가 길드>에 도착하고 나서 뱉은 첫 마디. 그의 말 한 글자마다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주위에 있던 모험가들은 그의 한 마디에 다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풍기고 있는 흑월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눈에 보일 만큼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평소의 점잖은 길드 마스터답지 않은 모습에 겁에 질렸다.

모두가 그러던지 말던지 상관 없다는 태도로 지난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면서 절대로 이 기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번에 만나면.... 아예 모든 것을 부서버리겠다는 각오로 상대하지 않으면 안되겠어."


★★★


저번과 같이 그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여러 개의 단검. 당연하지만 전부 맨손으로 잡아버린다. 빠르고 정확할 뿐, 그 이상의 장점은 없는 평범한 패턴이기에 어렵지 않았다.

"...이 정도의 실력만을 봐도, 가볍게 C급은 넘어가겠지만."

상대는 규격 외의 존재인 수호자 지난이었다. 당연히 이 전투의 미래는 예상되어 있었고, 그것을 알기에 눈앞의 적은 더욱더 이를 꽉 깨물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몇 개의 단검을 더 던진 후에 곧장 와이어를 그에게 뻗는다. 저번보다는 실력이 더욱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에서 1을 더해봤자 11이 될 뿐, 대략 100 이상의 크기를 가진 그를 이길 수는 없다.

거기에 아까와 같이 후퇴와 공격을 반복하는, 하염없이 시간과 체력만을 낭비하는 전법을 다시 사용하면서 그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든다. 기사 단장과 용사 일행이 있다면 충분한 전력이긴 하다만, 암살자에게 있어서는 빈틈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끝이기에 서둘러야 했다.

"포기하고 비켜. 나는 이 이상의 시간 끌기를 용납할 생각은 없다."

적이 뻗은 와이어를 손으로 붙잡아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당긴다. 그러나 금방 줄이 끊어지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는 뜻. 인질과 지켜야 할 대상이 없어 더욱 자유로워진 만큼, 사신이 지치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검은 이미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서둘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방해가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무기와는 달리 지난의 신체에 와이어가 붙어봤자 의미는 없었을 테니까.

곧바로 사신의 바로 앞까지 달라붙어 끈질기게 그를 추격한다. 더 이상의 거리 벌리기는 무리라 판단했는지 사신은 와이어를 전부 한순간에 풀어버리더니, 펄럭이는 망토 속에서 꺼낸 단검을 순식간에 빼 들어 지난과의 접근전을 강요받았다.

그에 맞춰 지난도 자신의 오른쪽 손을 들어 주먹을 쥔 자세로 일갈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근거리인가. 괜찮네. 제대로 후려 깔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

사신은 그 말을 듣고 <가속> 마법을 사용해 자기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스피드로 재빨리 그곳에서 벗어났지만, 그 대가로 건물의 벽에 부딪혀 버렸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피하지 않았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격이 순간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또각


"...!"

푸른 햇빛을 등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지난의 얼굴은 그림자로 인해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여있다. 오직 자신을 쫓고 있는 눈만이 주위의 파랗게 칠해진 배경만큼이나 아주 서늘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 일말의 자비조차도 허락해주지 않을 듯한 분위기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흑월이 해온 일에 비하면. 이 정도의 감정이 드는 것은 지성이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검은 망토의 암살자도 그에게 죽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도 저항하는 건가."

<연막> 마법을 써서 우선 주위를 연기를 통해 하얗게 덮어버린다.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아까의 와이어 때처럼 그를 번거롭게 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터-

"-크헉!"

순간, 입에서 선혈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곧장 발견할 수 있었다. 상처의 원인이 된 부위는 그의 복부. 정확히 이틀 전에 부상을 당했던 그곳이다.

"이봐, 나는 시간 끌 생각이 없다고 했지?"

그래. 눈앞의 남자는 절대로 그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 물론 이 이상의 시간을 낭비할 생각도 없었다. 화려한 기술이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강력한 마법이 아니더라도 그를 쓰러트리기에는 충분히 강력했다.

연기 사이로 도망가는 것도 대놓고 보이는데 막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 정도의 부상을 다시 한번 입혔으니, 아까와 같은 움직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예정된 사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의 원한을 풀어줄 처형뿐이다.

그의 복부를 뚫은 손을 밖으로 빼낸 후에 지난은 그의 턱을 잡곤 위로 들어 올렸다. 뚝뚝 떨어지는 피가 자신의 것임을 깨닫고는 붉게 빛나는 눈이 그를 보면서 무기력하게 가만히 그를 째려볼 뿐이었다.

"아직도 눈빛이 죽지 않았네. 평소 같으면 마음에 든다고 했겠지만...."
"...뭐냐."

갑작스레 사신의 몸이 하늘 위로 붕 뜨더니 곧장 중력의 힘을 강하게 받은 듯 밑으로 수직 낙하했다. 그를 잡은 손이 그의 얼굴을 빠른 속도로 딱딱한 돌바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범죄자의 눈초리로서는 안 맞아. 그저 혐오스러울 뿐이다."

곧 거대한 소리가 나면서 동시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광장의 바닥에 새겨진다. 다행히 <격리 공간> 안이라 무사했지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만큼의 격한 공격이었다.

기절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역시나 흑월의 최강 전력. 붉은색의 액체만 추가로 흘릴 뿐 그 이상의 효과는 없다. 무력으로 기절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걸로 그도 현재 자신의 입장을 깨달았을지도 모르니, 한 번 물어보았다.

"이봐, 이 공간을 풀어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뭐, 얼마 동안이긴 하지만, 너도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잖아?"
"...누가 그런 제안을 듣고 그쪽으로 가고 싶겠냐. 멍청한 녀석. 크크크, 그것보다 이렇게까지 여유 부려도 되는 건가? 자꾸 그렇게 시간을 끈다면 죽어버릴 거라고? 네 소중한 인맥들이-"


-콰앙!


그의 옆으로 지난의 주먹이 강력하게 꽂힌다. 볼을 아주 살짝 스쳐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짙은 상처가 조금씩 선혈을 내뿜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여전히 독한 녀석이다. 자기가 위기에 몰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지난을 도발하면서 그의 초조함을 유발한다. 거기에 승산이 있다고 보았는지 그는 그 입을 가만두지 않았다.

"...깜짝이야. 역시 이 말에는 너도 화를 내는 건가? 그렇다면 끔찍한 얘기, 하나 더 해주지. 만약 내가 그 녀석이라면 타겟의 사지를 전부 잘라버려 전 세계에 공개할 거다."
"...의미를 모르겠군."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거냐고? 당연히 이제 이 상징적인 존재조차도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지. 내가 받은 의뢰의 목표는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거든. 그렇지 않나?"

겉으로는 잘 알 수 없지만, 속으로는 그에게서 반응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사신. 그에 맞춰 더욱더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였다.
지난은 그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반응을 보여주었다.

"저번 밤과 같이 입만은 아주 잘 놀리는군. 그때는 그 방식이 통했지만, 오늘은 아니야."

현재의 지난은 아까 전과는 다르다. 그를 한 번 바닥에 내던지면서 이성이 약간 돌아왔다. 이런 사태를 일으킨 자 중 하나인 사신을 체포한 것은 좋으나 아직 흑월의 모든 것을 부수지는 못하였다. 여기서 실수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는 전투 때의 분노와는 다른 이성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 녀석의 도발에 귀를 기울이지 말자. 흘려보내는 거다.)

<유메니티>의 왕가에 대해 그렇게까지 원한을 품고 있던 녀석들이다. 저런 감정을 과격한 표현을 통해 입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난은 그의 말을 무시한다.

사신도 그가 이성을 되찾은 것에 그리 놀라지 않았으니, 그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원한을 푼 것으로 보였다. 자, 이번에는 자신으로부터의 질문이다.

"그래서. 아까 전의 제안은 받아줄 거냐? 서둘러 여기 <격리 공간>을 원래대로 해놓는다는 말. 만약 그렇지 않으면-"
"-죽이려는 속셈인 거냐? 마음대로 해라."

뇌를 거치지 않은 듯한 사신의 즉답에 약간 흠칫했지만, 지난은 그걸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이 처한 입장을 알고 있는 건가. 협박은 통하지 않을 듯한 견고한 입장이다.

"...뭐, 나도 이 공간을 풀어달라고는 했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은 알고 있다. 일단 너와 같이 강력한 존재라면 그 흑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보는 가지고 있겠지. 우선은 정보를 얻고, 처벌은 그다음이다."

지난은 그 말만을 마친 채 그의 목에서 손을 뗐다. 어차피 열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신이 직접 강제적으로 열어버리는 편이 좋았다. 죽이는 것도, 기절시키는 것도 힘들다면 가장 빠르게 여는 방법은 이 방법뿐이었다.

사신은 이미 땅에 박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수호자인 그와 싸우면서 이만큼이나 버틴 것이니, 이 정도의 상처와 힘만 빠진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실력자라는 반증이 되니까.

"아마 알고 있겠다만,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라. 금방이라도 쫓아갈 수 있으니까."
"...쳇."
"흐음, 그나저나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군. 하지만 그만큼의 전력이다. 폐하에게는 한 발자국도 가지 못했겠지. 너를 잡았다고 치면 충분히 이득이 되는 건가."

문득 지난이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가만히 눈만을 굴리던 암살자가 그를 의문의 시선으로 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도주하려는 틈을 노리는 것 같기도 했으나, 아무래도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내 지난은 그를 무시한다.

-만약 이때의 그가 쓰러져있는 암살자가 짐짓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면, 과연 운명은 바뀌었을까.

"...흑월이 이 나라의 왕을 노린다고? 아아, '그런 것'으로 되어 있었지."


★★★


계속해서 다스 에이나 폴로를 지켜주던 든든한 장벽이 사라지자, 갑작스레 상황은 일변하기 시작했다. 왕을 지킬 핵심적인 인물이 사라진 것이다.

"-크, 큰일 났다!"
"모든 인원은 빨리 가서 폐하를 지켜라!"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기사 단장이 몇몇 기사들과 경비병들에게 명령하지만, 그들도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악랄하기로 유명한 흑월의 조직원들이니만큼, 순순히 길을 비켜줄 리도 없고 말이다.

"제기랄, 그렇다고 내가 뚫고 가기에는-"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가자, 데클렌. 그리고 위트니!"

다른 이들보다 수 배는 많은 수에 둘러싸여 있는 기사 단장을 대신해 용사가 그 임무를 자청했다. 타국에서 온 자들은 보통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그녀가 가진 직책도 있고, 무엇보다 비상사태라는 점에서 그녀의 도움이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모험가들의 관리자인 지난과 기사단을 이끄는 수장인 기사 단장을 제외한 또 한 사람의 지도자가. 많은 전설을 일구어낸 용사 일행의 리더이자 변하지 않는 중심인 용사가 직접 왕을 보호해준다면 맡길 수 있었다.

"일리아나, 너는 계속해서 적들을 잘 판별해서 원거리 공격을! 켈럽, 전투직이 아닌 너는 잘 피해 다니면서 버프를 걸어줘! 데클렌, 위트니. 너희 둘은 폐하의 수호를 부탁한다! 평소처럼만 하면 되는 일이야, 알지?"
"으, 음....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데클렌의 물음에 용사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건물 위에서 이곳으로 빠르게 접근해오는 수상한 자를 보면서 검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당연히, 이 사태의 장본인을 처리해야겠지! 제일 마지막으로 나온 걸 보니 나름대로 강자인 것 같네. 저 녀석만 없애면 될 것 같아!"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동시에 수만 번 이상을 싸워본 자로서의 감이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실제로 다른 조직원들과는 남다른 기운이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을 깨닫는다.

"...왠지, 불안함. 리더가 평소처럼 한다면 여기는 위험해짐."
"걱정 마, 위트니! 그것보다, 그 마법은 준비된 거야? 과연 이만큼이나 넓은 범위로 상대를 가려가면서 한다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너라면 할 수 있지?"

위트니의 불안을 가볍게 흘려보내면서 다시 한번 더 체크한다. 이만큼의 시간이 흐르기까지 위트니가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움직이면 피해가 더 커질 뿐. 그래서 용사는 그녀의 마법이 발동되기까지 시간을 벌기로 하였다.

"응, 앞으로 5분 정도만 더 하면.... 될 듯해. 근데 그때까지.... 괜찮아?"
"당연하지! 조금이라도 힘 조절을 잘못하면 큰일 나니까 조금 더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적어도 저런 악당 하나 쓰러트리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럼, 다녀올게!"
"...바이."

그 말만을 마치고서 높이 점프하여 순식간에 건물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서는 그의 앞길을 막는다. 달려오던 암살자도 그 모습에는 잠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망토 안에 감춰진 겉모습은 예상외로 어느 주위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중년 남성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남자가 다른 평범한 자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쉽게 깨닫고 곧장 경계 태세를 갖추게 했다.

"우선은 서로 대화가 통할지 모르겠지만, 이름은 뭐지?"
"...지금은 [선혈의 광란]이라는 이름을 대주지."

혹시나 해 물어보았지만, 의외로 대답 자체는 평범하게 해주었다. 단지, 그가 말한 이름이 평범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했지만.

"뭐, 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해 자기소개는 패스할게. 그런데 애초에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무엇을 원하기에 이런 짓을 벌인 거냐고. 설마 저기의 폐하의 목을 정말로 노리고 있다는 것은 아니겠지?"
"....."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암살자는 두 손가락에 끼워진 와이어를 꺼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이 이상의 시간 낭비는 하지 않을 거라는 의지가 강하게 전해져온다.

"어쩔 수 없네. 더 말해줄 것도 없을 것 같고. 그렇지만 나, 용사야? 정의를 추구하는 자로서 너를 놓칠 수는 없다고?"
"...그것 참 오글거리는 대사로군."
"당신의 그 잘난 이명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선혈의 광란]이 미처 반응할 수 없을 만큼의 그 거리를 한 번 도약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그사이의 틈을 메꾸는 용사. 우선은 막아내지 못할 거로 생각해 그는 적의 바로 위로 뛰어올라 아슬아슬하게 그 일격을 피한다.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손가락에 묶인 와이어를 움직이려는 그. 하지만 명색이 용사이니만큼 그 신체 능력은 다른 자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어느새 그의 앞까지 다시 검이 다가와 있는 상태였으므로 재빨리 와이어로 간신히 방패를 만든다.

"그 얕은 두께의 방패로는 온전히 막지 못해!"

그러면서 아예 와이어를 잘라버리다 못해 그의 손에까지 진동이 올 정도의 파워를 선보인다. 뒤로 크게 강제로 밀려나는 것이, 만약 와이어로 막지 못했을 상황을 생각하니 간담이 오싹하다. 하마터면 건물 위에서 떨어질 뻔해 크게 부상을 입을 뻔하였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두 동강이 나는 정도인가-)

"-어딜 보고 있어? 내가 힘 조절이 서툴러서 평소보다 힘을 뺐다지만, 그게 당신을 봐준다는 의미는 아닌데?"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또 곧장 검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힘 조절을 했어도 이 정도의 실력을 보인다는 말이다. 정작 이런 미친 움직임을 하는 자는 땀 한 방울 없이 그를 상대하고 있지만.

이렇게 되면 감각적으로 와이어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무리인 건지 검을 맞고 베였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저 멀리 날려져 보낸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멀리 날아가더니 어떤 건물의 벽까지 날아가더니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으, 응?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역시 더욱더 힘 조절을 해야 했었나? 설마 바로 즉사해버린 것은 아니겠지?"

그가 자신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자 그제야 용사는 공격을 멈추었다. 길거리에서 범죄나 저지르는 저런 범죄자 따위가 자신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적절히 대처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이게 제일 약하게 때린 건데 저 정도나 날아가다니....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데. 응? 저 연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건 뭐지?"

한참 동안 자신이 날려버린 적의 방향을 보고 있으면, 저 멀리 건물에 부딪히면서 생긴 흙먼지 속에서 어떤 검은 실루엣이 움직이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자신을 상대하러 이곳으로 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그림자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듯했다.

멍하니 계속해서 지켜보면 그때야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저자가 노리고 있는 것은 오직 이 나라의 왕. 그렇다면 굳이 용사라는 최강자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까 날아갔던 것도 그저 연기에 불과한 거였어? 이런, 나를 속일 줄이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재빨리 뛰어간다면-"

문득, 저 밑의 기사가 위험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수많은 검은 그림자들에 둘러싸여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게 된 이상, 용사로서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 저기에는 누가 뭐래도 믿을 만한 나의 동료들이 지키고 있어. 거리는 이미 많이 벌어졌으니 여기서는 기사들과 경비병들을 도울 수밖에.)

잠시 갈등했지만, 자신의 동료들을 믿기에 곧장 밑으로 내려간다. 대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놓친다는 것은 그녀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곳으로 가게 되면, 내 동료들 때문에 오히려 더 후회할 거야. 광란 씨."

.......

그의 예상대로 왕의 앞에는 용사 일행의 일원인 데클렌과 위트니가 그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확한 구성원은 예측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아슬아슬하게 허용범위였다.

곧 그들도 암살 부문장이 다가오는 것을 파악했기에 각자가 전열을 짜서 그를 상대할 준비를 하였다. 그 뒤에는 기사 단장이 용사 일행들과 같이 왕녀들을 수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원군으로서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지금의 내가 저들과 싸우더라도 1명도 이길 수 없겠지. 거기에 아까 전의 썩을 용사 때문에 생각보다 심한 부상을 입었군.)

혼신의 힘을 다해 와이어로 막았지만, 역시나 용사답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충격으로 인해 아직도 손이 떨릴 정도다.

"뭐, 타겟에는 가까워졌다. 이제 옮기면 될 뿐인가."

암살 부문장은 손에 꽉 쥐고 있는 스크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품에 넣어두었다. 이제부터는 목숨을 건 돌격이 될 테니. 저들은 하나하나가 그를 죽일 수 있는 강자들의 소굴이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을 것 같은 일을 해야 한다니.... 모순이군."
"네가 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냐, 죽어라!"

전위가 앞으로 나온다. 마법사는 무언가 대형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대처법은 간단하다. 그가 지키려는 자를 노리면 될 뿐이다.
다스 에이나 폴로를 향해 와이어를 튕기면 데클렌은 어쩔 수 없이 방패를 그리로 밀어 넣어야 했다. 그 틈에 그를 발로 밟아 더욱 높이 도약하여 위로 뛰어올랐다.

"-어리석은 자식. 그곳은 저 녀석의 영역이다!"

데클렌이 중심을 잃고 잠시 주춤하는 것을 확인할 때에 그 말이 들려왔다. 그것과 더불어 얼굴을 돌려 그의 옆을 지나가는 아주 빠르디빠른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용사 일행의 원거리 담당인가.


"귀찮군.... 아주 귀찮아 죽겠어, 이 벌레 같은 새끼들이!"


계속해서 추가타로 날아오는 몇십 개의 화살을 가지고 있던 스크롤을 꺼내 찢는다. 아까 전 그가 들고 있던 것과는 다른 것으로 그의 안위를 스스로 챙기기 위해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던 방어 마법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그녀가 쏜 화살들을 전부 튕겨냈다.

그러면서 곧장 <가속> 마법을 걸어 급가속하여 일리아나 또한 서둘러 스쳐 지나간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와이어를 튕기면서 주위의 기사들과 경비병들의 숨통을 한순간에 끊어버린다.

저 멀리 기사 단장 쪽을 향해 도망가고 있는 다스 에이나 폴로의 등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 뒤에 있는 왕녀들과 이니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난관으로 예상되던 기사 단장은 지금 많은 그림자의 공격과 포어의 독을 이용한 공격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독이 튀면 그들에게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최대한 방패로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드디어 때가 됐다.

"이제 장애물은 모두 사라진 건가. 드디어 저 녀석의 목을 딸 수 있겠군."

길었다. 이 얼마나 길었단 말인가.
평소 해내고 싶긴 했지만, 무리가 있었기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의뢰와 함께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결과, 이게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끝이다."


★★★


"허억, 허억...."
"생각보다 끈질기군, 저 녀석들...!"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은 결과에도 프리먼과 빙혈은 경비 부문장과 그의 간부를 쓰러트리지 못하고 체력만을 소모하고 있었다.

"제기랄, 이제 더는 시간이 없는데 말이야!"
"허억.... 빨리, 이 정보를 길드 마스터께 알려야 되는데...."

그들은 광장으로 어떠한 정보를 주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던 찰나였다. 그 정보를 준 장본인인 김승호의 말에 의하면 그 [선혈의 광란]이라 불리던 자는 분명 무슨 큰일을 저지를 것이라 했다. 과거에도 그랬기에 말이다.

"설마, 나도 그저 최고위 암살자라는 길드 마스터의 말을 들어봤지만, 그 정도였을 줄이야. 전성기 때는 진짜 한 이름 날렸던 놈이었구먼."
"그런데 하필 이럴 때 나타나서 말이냐! 그딴 성가신 놈이 말이야!"

목표를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잔인한 자. 목표를 한 번 노린다면 죽일 때까지 아낌없는 비용을 투자한 다음에서야 적성이 풀릴만한 자라고 한다. 단지 의뢰를 통해서만 받는다 하지만-

"-그 암살 성공률은 거의 90% 이상이라 했던가.... 10번에 한 번을 제외한다면 전부 죽인다는 말인 거냐."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프리먼. 만약 그 사실이 진실이라 한다면 아까 전부터 흑월 녀석들이 말하는 왕을 죽이겠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블러프, 그렇게 되면 목표는 따로 있다는 말이 돼."

그러면 최종적인 목표는 그 밤에서의 암살을 실패한 10%의 목표일 테다. 그리고 지금 그 인물은 광장에 있으면, 그 암살자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어."


다스 에이나 폴로 바로 뒤까지 암살 부문장은 가속된 몸으로서 다가왔다. 왕의 주위를 둘러싸는 기사들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자는 가짜 인질일 뿐, 관심조차 없다. 이제서야 누군가가 깨닫는다 해도 이미 늦었다.

그는 왕의 옆에 있던 목표의 옷자락을 거세게 손으로 잡고는, 그 목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곧장 가지고 있던 <전이>의 스크롤을 찢으면서 타겟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희열의 웃음을 짓고 있다.

"-드디어 잡았다. 의뢰자의 목표이자, 용사 후보인 이니. 너를 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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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04 18:23 | 조회 : 88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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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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