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전투 (4)

"이제 시민 따위 무시할 필요 없다! 여기 광장에 있는 놈들을 죄다 죽여버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크게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말에 격앙된 범죄자들의 전투의 함성이 광장을 울린다. 곧 있으면 진압될 것 같았던 전황도 아직은 뒤집히지 않았다.

물론 용사들이 움직이고, 기사들이 계속해서 전장에 투입되고, 모험가가 같이 싸워준다 해도 그들은 지켜야 할 대상이 있다. 그렇기에 모든 전력을 공격으로 돌릴 수 없는 것도 한몫했다.

그와 반대로, 그들 대부분은 <유메니티>의 슬럼가에서 온 자들. 원래부터 밑바닥이었던 출신들이 많은지라 그들로서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어 마구 날뛴다. 생활할 거처도, 함께할 가족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조차도 저들에게는 그저 필요 없는 장애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히 잘살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와 이런 식으로 한꺼번에 폭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데. 다음부터는 미리미리 이런 것들에 대해 대처를 해야 하려나.)

잘도 이런 공격적인 녀석들만 모았구나, 흑월.
만약 나중에도 이런 녀석들이 모여 계속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고 하면, 그건 좀 곤란해진다. 그러면 정말 그 녀석의 의견대로 아예 흑월을 지배해서 관리하는 편이 좋을까?

(이 의견에 대해서는 나중에 두 수호자를 불러 천천히 얘기를 나눠 논의하면 되는 문제로 끝내면 되려나.... 지금은 우선 눈앞의 이 녀석들이 문제인데.)

옆의 학생들이 다른 쪽을 보고 있는 틈을 타 양팔을 휘두른다. 방금 만들어낸 따끈따끈한 신상의 <마법 화살>이 공중에서 생겨나더니, 적에게 날아가 몇 사람 정도를 쓰러트린다.

물론 그런데도 적지 않은 녀석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기는 하다. 눈빛을 보니 죽일 생각이 역력하구먼.

몇 번이나 말했듯, 지금의 우리로서는 도움을 받기가 힘들다. 기껏해야 우리 주위에 있는 자 중 몇몇이 이곳에 간신히 도와줄 수 있을 정도.
용사들은 오히려 평소보다도 출력을 제한해 싸우느라 고전하고 있었다. 하긴, 평소와 같이 싸운다면 시민들까지 모두 휩쓸릴 테니까.

그렇게 되면 이제는, 여기에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저들을 대처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건 내가 아니지만 말이지."

스르르륵, 옆에서 검이 검집에서 뽑히는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분리되면서 나오는 검의 마찰음은 그것만으로도 각오를 다진 자의 묵직한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왔다!"

연두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 말하자마자, 그의 앞에서 검이 번쩍이면서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발자국 뒤에 있던 시민들은 그 일격에 진정한 살의가 담겨 있는 것을 아는지 비명을 지른다.

서로 검이 맞닿은 채로 부들부들 떨리기는 하지만 일종의 정체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밑부분에서 검을 받치고 있던 정안섭에게로 칼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꼬맹이가. 감히 작업 중인 어른들을 방해해?"
"저도 이제 나름대로 성장한 거로 생각했는데, 어른들의 눈에는 아직 체감이 잘되지 않은 모양이네요. 여러 가지 기술도 배웠고요. 가령-"

-이런 기술처럼 말이죠.

그는 자신의 검 자루를 잡은 손을 위로 올려 상대방의 검격을 물 흐르듯이 흘려낸다. 곧이어 상대가 대응할 틈도 주지 않도록 동시에 범죄자의 발을 걸어 넘어트려 중심을 잃게 만든다.

"<가속>."

그리고 곧장 자신의 신체의 움직임을 마법으로 커버하여 순식간에 위력을 높인다. 단 한 방에 많은 것을 걸은 일격. 그 검격만으로 상대방의 갑옷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그 위력을 버티지 못했는지 방금 그 한 방으로 칼날이 많이 닳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런 평범한 검으로 저 정도의 일격을 날리다니. 상대방의 갑옷이 좀 낡았기는 했다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겠지.)

저게 우리 F반의 1위인 정안섭의 실력인가.

저번 시험에서 골렘과 싸워서 보여주었던 아쉬웠던 실적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시원하기까지 한 일격이다. 적어도 전투력은 출중하니 나중에 우리 F반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면으로'만' 본다면 바로 옆에 더한 녀석이 하나 더 있기는 하지만.

"칼날이 많이 닳았으니, 이것 좀 빌리겠습니다."

그러면서 태평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검과 상대방의 검을 뒤바꾸는 정안섭. 아마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도 어딘가에서 떨어진 것을 주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 여유있게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이, 뭐 하는 거야! 거기서 빨리 피해!"
"...?"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안섭이 고개를 들어보면, 조금 전의 일격을 맞은 남자가 두 손으로 주먹을 뭉쳐 그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적어도 한 방은 먹이겠다는 의지. 당황해 뒤로 물러나려고 하지만, 때는 이미 늦다.


-파앙!


주먹에서 나올 수가 없을 법한 강력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고개를 위로 드는 정안섭.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모습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그를 근육진 팔로 막아준 남학생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하지만.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방심하지 말라고 했잖아!"
"-?! 건영아!"
"제길, 빨리 일어나기나 하라고, 이 썩을 녀석...!"

그의 말에 정안섭이 재빨리 옆으로 대피하지만, 서서히 밀리고 있던 장건영은 이미 몸이 땅 위로 붕 뜬 모양이었다.

그가 대피한 것을 확인하자, 괴성을 지르며 방어 자세를 위해 교차시켰던 팔을 장건영은 몸의 바깥으로 뺀다. 그리고 상대편과 동시에 주먹을 내지르며 상대의 얼굴을 노린다.

"어째서 항상 귀찮은 일은 내가 떠맡아야 하는 거냐!"
"우오오오오오오!"

서로 다른 불만을 표출하는 두 사람의 일격.

곧이어 서로의 안면에 주먹이 맞닿는 불쾌한 소리가 나며 두 사람 모두 주먹을 뻗은 그 자세로 서로 멈추었다.

몇 초.... 아니, 몇십 초 동안이나 서로 그 자세를 유지했지만, 한계가 온 듯, 한 사람이 곧 처참한 얼굴로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며 자세를 무너트렸다. 마지막 한 마디만을 남겨두고서.

"...이 괴물 자식, 이걸 버텼단 건가."
"너 같은 놈한테 쓰러졌다가는 저기서 고군분투하시는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으니까."

그가 바로 이 나라 기사 단장의 아들, 장건영.

가지고 있는 신체 능력은 웬만한 어른들보다도 더 나은 상태. 거기에 어느 정도 전투 감각도 살아있다. 그 전투 센스를 부친에게서 온전히 이어받았다면 틀림없이 그와 비견될 업적을 세우겠지.

-단지, 그의 성격 때문이라도 현재 그렇게 될 일은 전무하지만 말이야.

거친 한숨을 내쉬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 또한 전혀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쩍 닦아 손등으로 닦아 없애지만, 아직 남아있는 선혈이 그 싸움의 고단함을 표현한 듯하였다.

그 사이, 정안섭 또한 호흡을 가다듬고 그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슬쩍 보이는 미남의 미소에는 상쾌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였다.

"아아, 도와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때야 고개만 돌려 그를 주시하는 장건영이었다. 정안섭은 그의 코에 묻은 붉은 색의 자국에 진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상태를 확인한다.

"뭐야. 그 피는? 저기,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장건ㅇ-"
"-어이, 방금 뭐한 거냐."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건영이 표정을 험악하게 바꾼다. 그러고서는 일갈한다.

"다른 녀석을 지키려다, 너 혼자 멍청하게 희생될 작전이냐? 너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해서 아무런 경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어?"
"...!"

예상외의 진중한 말에, 정안섭도 웃고 있던 미소를 멈추고 진지하게 그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그 증거로서, 아까까지는 장건영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이번에는 검을 잡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손은 상처를 입었는지 약간 붉은 기가 있었다.

"이건 저번의 입학시험과 같은 애들 장난이 아니야. 물론 그때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죽을 수 있다고. 정신 차려라. 방심하다가는 한 번에 목이 잘려 죽을 거다. 그게 안 된다면 나대지나 말라고."
"...그래, 충고 고마워. 전부 이해했어. 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딘가 오만한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탁탁, 먼지를 털면서 검을 들면서 포즈를 취한다. 그 누가 오든 상관없이 베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자세.

"그리고 나를 걱정해줘서 고마워. 네 말대로 이곳은 전장, 한껏 경계해야지."
"...쳇, 입학시험의 연이다. 빚도 갚았겠다, 더는 도와주지 않을 거다. 나는 철저한 개인주의니까."

역시 기사 단장의 아들답게 전투에서 명심해야 할 규칙들을 다시 한번 그에게 상세히 알려준다. 단지, 모두의 단결력과 협동심을 중시하는 군대에서 왜 그런 성향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스톤과 같은 크기의 범죄자가 무너진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보다도 더 몸집이 커 보였다. 물론 전투력은 그와 별개일 테지만 꽤 강해 보이는데....

"...생각보다 더 실망이군. 이 녀석은 몸집이 돼서 상대해봤다만, 그저 동네에 하나씩은 있는 양아치 수준이잖아."

그러면서 그를 쓰러트린 장본인은 넘어져 있는 그의 머리를 신발로 세게 짓밟더니, 천천히 발끝을 돌리며 능욕한다. 그런 악취미에도 상대가 범죄자인 만큼, 저 정도는 처벌의 수준까지도 되지 않으려나.

노란색으로 염색된 머리카락에 한쪽 눈을 가린 외견에, 왼쪽 눈 아래에 있는 긴 흉터가 돋보이는 남학생, 재-현이 발을 치우고는 그 거대한 남성의 머리카락을 잡고는 그와 눈이 마주치도록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봐, 아저씨. 나를 갈가리 찢어버리겠다며? 그 도끼로 나를 썰어버리겠다며? 그런데 왜 못하는 거야, 어?"

지금의 재-현은 아무런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딱히 무기를 든 것 같은 분위기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만큼 자신의 힘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인가 보네. 확실히.... 지금까지 힘에 밀렸던 적은 없는 것 같고.)

오늘 아침에 다이아의 공격으로 한 번 쓰러지기는 했지만, 그건 자신에게 유리함을 가져오기 위한 작전이었고, 그마저도 곧바로 일어나 거의 상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실제로도 꽤 강한 녀석인가.

만약 입학시험 때에 그의 전투를 한 번이라도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무기를 들지 않고서 무기를 든 자를 이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기의 정안섭과 장건영보다도 강할 지도 모르겠군. 어디까지나 추측이다만.

"빨리 일어나 봐. 다른 녀석들보다도 더 많이 먹고 체중을 불려왔으니, 더 많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래야지, 응? 설마 저기의 저런 약골들과는 다를 거 아니야."

안 일어나면 죽일 듯한 눈빛이구먼.
그를 마치 먹잇감으로 인식한 것처럼 재-현은 그와 일방적으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한동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그도 이 이상은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를 놓았다.

"쳇, 기절했군. 됐어, 어차피 이런 녀석들 주변에 찾아보면 나오니까. 크큭, 오랜만에 허락된 합법적 몸풀기다. 나름 즐겨둬야겠지."

아니, 딱히 국가가 너의 폭력을 허락한 적은 없는데. 단지 손이 부족해서 다른 이들과의 전투에 너희 학생들이 끼어드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본래 학생들이라면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대피해야 한다.

"어이! 어디에 없는 거냐! 나랑 싸워볼 용감한 새끼가! 이제 이런 약해빠진 녀석들만으로는 지겨워 죽겠다고!"

이 녀석은 정말 이 광장 안의 전투가 자신의 놀이판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러면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러다가 정말로 죽는다고, 너.

그런 난폭한 이 녀석의 말에 반응한 건 아마도 아니겠다만, 저 멀리 광장의 서쪽 부근에서 새로운 무리가 다가왔다. 기사나 경비병도, 이 나라의 모험가도, 흑월에 소속된 범죄자도 아니었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점은, 적어도 절그럭거리며 다가오는 이들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듯이 끝없는 절망에 빠져있는 여러 개의 안구. 개인의 자유가 아닌 누군가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피력해주는 힘없는 걸음걸이. 하지만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단련된 그 신체는, 누가 봐도 어딘가 무술을 배운 적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명확한 증거였다.

"저, 저런...."
"썩을 놈들.... 이런 짓까지 하는 건가."

그들의 몸에는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흉한 상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빠져나와 있는 선혈은 시간이 지나 굳어있다. 심지어 폭력을 가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듯한 상처도 몇몇 인물들에게 남겨져 있는, 학대로 점철된 불합리한 상처.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바로 모두의 목에 장착된 흑색의 거대한 목걸이.

"예속의 목걸이인가."

거기다가 그들이 각자 들고 있는 무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나름대로 힘을 갖추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저들의 정체는-

"전투 노예로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을 공격하고, 죽어가야 하는 아주 가혹한 운명 속에서 살아가야 할 불쌍한 자들."

그것도 아주 다종다양한 종족들을 모아놓았구먼. 인간은 기본 옵션으로, 수인이나 드워프에 엘프, 그 보기 힘들다는 다크 엘프까지 전부 잡아놓은 것을 보면 이들을 모은 흑월의 부문장은 엄청난 수집가임이 틀림없다.

"칫, 기껏 강해 보이는 녀석들이 보인다 했더니. 저런 녀석은 건들 수가 없잖아. 그것도 아주 종류별로 다 모아놓고는.... 저 노예의 주인들은 필히 엄청난 변태겠지."

그런 말을 지껄이며 흥미가 떨어진 듯 시선을 다른 쪽으로 옮긴다. 아직도 너는 그딴 식으로 인물을 대하는 건가.
하긴, 이번에는 재-현의 말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지. 잘못하면 국가 문제로까지 퍼질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이 나라에서의 노예의 매매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유는 즉슨, 타 종족의 심기를 건드릴지도 모르며, 무엇보다 다른 종족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유메니티>인 만큼 그런 법을 내세우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노예화가 합법이라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 점은 저기에 잡혀있는 노예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거다. 오히려 피해자에 가까운 입장이니 흑월의 범죄자와는 달리 무턱대고 공격하기가 곤란하다.

"하아.... 또 일이 늘어난 건가."

이제 곧 소동이 진압되려던 차였는데, 또 이런 골칫거리를 만들어내다니. 아무래도 정말 흑월은 내가 어느 정도 관리할 필요가 있는 모양이다.

예속의 목걸이는 모두 쇠사슬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단 한 사람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상태. 그가 잡고 있어서 아직은 움직이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만약 명령이 내려지고, 쇠사슬을 잡은 손을 놓는다면-


"-가라. 모든 살아있는 녀석들을 공격하라."


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놓는 거냐. 이걸로 오늘 밤도 피곤해질 것이 확정이구먼.

전투 노예들은 오직 주인의 명령만을 듣고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지 못한다면 목걸이에 의해 아주 거대한 고통을 받게 된다.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무고한 시민들과 싸우는 수밖에 없겠지.

(뭐, 어떠한 일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불법 조직인 이상 놀라지 않을 거로 생각했었지만, 이번에는 좀 까다롭군. 주로 감정 쪽의 측면에서 말이야.)

당하는 쪽과 하는 쪽 모두가 그들이 원해서 하는 행동이 아닐 테니, 여기서는 개인의 판단으로는 힘들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왕의 판단이 필요한 법이다.

자, 왕이시여. 어떻게 할 건지를 이 나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렇게까지 귀찮을 정도로 위대하다고 시민들에게서 말해졌으니,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지를 말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당신의 차례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업무가 늘어날지도 줄어들지도 모르니까, 될 수 있으면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는데."

다시 한번 전세가 흑월에 기울어졌다. 공격할 수 없는, 정확히 말하자면 공격하기가 까다로운 적들이 그들을 공격하기에 빠르게 결정해야 할 부분이다.

"폐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저희는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 겁니까?"

주위에 있던 지난과 기사 단장도 이 광장에서의 흐름을 보고 있을 다스 에이나 폴로의 판단을 기다렸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서 범죄자들을 썰고 있던 용사들의 일행도 그쪽으로 다가오는 전투 노예들을 보고는 그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폐하, 저희 용사들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말씀만 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만.... 이상황에서의 판단은 나름대로 전 세계에 파장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으으...."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유메니티>.

무려 용사들까지 있으니 그의 행적이 주목할 만한가. 만약 그가 용사들에게 이상한 지시를 한다면 다른 나라들의 수뇌부에서 용사들과 관련된 조약에 대해 취하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강대국이라는 지위도 위험하게 될지도.

한동안 말을 아끼던 다스 에이나 폴로도 여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드디어 입을 떼기 시작한다.

"...저자들을 구할 방법이 없는 건가."

없으니까 모두 당황하고 있는 거겠지. 만약 된다면 안된다고 하겠어.
어딘가 홀로 자조하듯이, 그리고 누군가에게 해답을 원하는지. 모두가 당신의 말만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되면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지."

그가 나지막이 읊조린 말이 <확성> 마법에 따라 모두에게 퍼져나간다.
그런가, 결국은 그도 해답을 내놓지 못한 건가.

하긴, 내가 생각해놓은 흑월의 이점 중의 하나도 이러한 행동이었으니 놀라울 것도 없지. 봐봐, 아까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행동을 취했으니까 이렇게 곤란해지잖아.

거기에 더해 흑월의 사기를 올려주는 요소가 하나 더 등장했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치이잉!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바람을 가르던 소리가 나더니,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한 사람이 손을 휘둘러 공격한다. 검은 장갑을 낀 손가락에는 잘 보이지 않는 와이어가 몇십 개나 있었다.

"역시나, 이곳으로 온 건가.... 사신!"
"길드 마스터 지난.... 더는 만나 뵙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저게 흑월의 히든카드인 건가.

저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녀석은 다른 이들보다도 압도적인 힘이 느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수호자인 지난의 시선을 받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모양이니 담력 또한 기대해볼 만하겠지.

더불어 지난이 검으로 공격을 막은 그 짧은 사이에 그의 검에 와이어가 살아있는 생명체인 듯이 얽혀들어 갔다. 수많은 실이 하나의 검을 조이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방금 그건 완전히 저쪽의 왕을 죽이려고 했던 살의의 일격이다. 전투 노예들로 전력을 또다시 분산시키고 다시 노릴 셈인가. 그는 아직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간인지라 당황하는 낌새를 보였다.

"폐하. 아무리 봐도 이거 최악의 상황이다. 이거 어떡하지?"

돌아올 리 없는 대답에도 나는 물었다. 그것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한 자조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


"뭐냐, 너희들은."
"누구죠, 저들은...?"

경비 부문장이 간부와 함께 광장에서 멀어지고 있으면, 돌연 달려와 자신을 막아세우는 두 모험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갑옷과 레이피어를 가진 검사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강자라는 느낌을 풍기고 있는 묘한 남성이었다. 실력으로만 보면 이 나라에서도 유명한 자인 것은 우선 틀림없다.

다른 하나는 아예 대놓고 강하게 생긴 험상궂은 얼굴과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특이 사항으로서 주먹이 크고,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들이 있다.

"뭐냐, 너희들. 죽고 싶어? 빨리 비키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도, 도대체.... 누구지...?"
"시끄러워, 임마. 딱 봐도 우리에게 적의를 품고 있잖아."

옆에서 말을 더듬거리는 NO.2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반박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살기가 자신에게까지 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렇게 반응할 정도의 적을, 자신이 만든 적이 있던가.

그런 그가 가만히 있을 때도 그 두 사람은 각자 자세를 잡아 그들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작게 지껄인다.

"저 녀석이 네가 저번 밤에 싸웠던 경비 부문장인가, 조심해야겠어."
"...이번에는 진짜로 쳐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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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04 18:21 | 조회 : 622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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