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전투 (2)

"경비병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녀석들을 공격하거나 시민들을 보호하고, 기사단은 적극적으로 이 방해꾼들을 배제해라! 모두, 빨리 움직여라!"

그의 말을 듣고 몸이 반응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기사 단장은 지난이 왕의 곁에 있는 것을 파악하고는 재빨리 자신은 왕녀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노리는 타겟은 다스 에이나 폴로라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지만, 극악하고 악랄하기로 유명한 흑월 소속의 범죄자들을 믿을 수가 있었다. 이런 일을 벌일 조직은 이 나라에는 흑월밖에 없을 테니까.

잘그락거리며 갑옷이 전체적으로 흔들린다. 갑옷과 장창의 무게만 해도 몇십 kg가 될 테지만, 훈련된 기사인 그로서는 오히려 적당히 달려갈 만한 무게라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다른 이들의 사기를 돋우며 명령을 내린다.

"폐하의 말씀대로 경비들은 시민을, 기사들은 적들을 대처해라! 만약 싸울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부디 도와주기를 바란다!"

본래라면 국가의 소속되지 않는 병력을 마음대로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싸운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지나가면서도 거대한 장창으로 적을 어느 정도 쓸어버리기도 한다.

"<창격>!"
"-끄아아아아악!"

뭉쳐있는 범죄자들을 창 하나로 한꺼번에 전부 꿰뚫는다.
시민들의 앞에서 이런 참상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창에 묻은 선혈을 바닥으로 거세게 털어내면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

(한 그룹당 6, 7명씩. 그룹은 최소 두 자릿수.... 우리가 예상하던 전력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인가.)

만약 자신들이 쳐들어갔던 그 흑월의 조직이라는 데에 이만큼의 전력이 있었으면 졌을지도 모를 정도의 어마어마한 전력이라 할 수가 있다. <유메니티>처럼 강대한 국가가 아닌 서쪽에 있는 소규모의 나라들이라면 금방 차지해버릴 수 있을 만큼.

"기사들이여, 최대한 시민들을 이 전투의 현장에서 멀어지게 해라! 시민들은 모두 대피하십시오! 이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확성> 마법을 통해 광장의 많은 사람을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무슨 이유인지 저들은 아직은 기사나 경비병들을 향해서만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 마음이 언제 바뀔지는 모르는 법이다. 사태가 안 좋아지면 무고한 자들을 인질로 잡을 수도 있었다.

(우선 여러 시민을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적들을 모두 쓰러트리는 데에는 그 후에도 늦지 않아.)

다행히도 사태를 파악한 시민들이 광장에서 멀어지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는 하지만, 모여 있는 사람의 수가 엄청난지라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였다. 이런 긴박한 순간에 이 혼란을 정리해줄 사람이 있을 리는 전무하니까.

그리고 또 하나 다행인 건 모험가들이 자발적으로 흑월과 싸우고 있다는 점. 지난의 보고에 따르면 모험가들도 흑월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었는데 그들도 이 사태를 일으킨 범인이 흑월이라는 점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흑월이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 컸다는 것이군. 이건 나중에 정말 이 나라에 있는 흑월을 뿌리째 뽑을 필요가 있겠어."

감히 대국의 왕과 타국의 용사 앞에서 이런 부끄러운 짓을 하다니.
전체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의 조직원들은 전부 재판이 아닌 여기에서 처형을 시켜도 모자랄 판이지만 우선 지금은 지키는 것이 먼저였다.

얼핏 보이는 저 멀리에 있는 다섯 명의 여성. 두 명의 왕녀와 한 명의 용사 후보가 보이지만 남은 두 사람은 누구인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없으므로 흑월의 조직원은 아니다.

저들이 이러한 장면을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적어도 기사 쪽의 지망생이 아닌 이상,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멀리서 그들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크게 소리친다.

"제 1왕녀님, 제 2왕녀님. 두 분 모두 괜찮으십니까?"
"그 모습은.... 기사 단장인가요?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도대체 왜 갑자기 수상한 사람들이 광장에서-"
"-범죄 조직 흑월의 행패입니다! 지금은 우선 두 분 모두 빨리 대피하시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곧장-"


-치이잉!


곧장 눈치를 채고 뒤로 돌아 방패를 들었을 때는 이미 하나의 검이 그의 몸을 스친 뒤였다. 다행히 투구부터 갑옷까지 차려입은 그였지만, 충격이 오는 것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어딜 보고 있는 거냐, 이 멍청한 놈!"
"기, 기사 단장! 괜찮은 겁니까?!"

이 자신에게 이런 공격을 할 이유가 있는 자는 흑월의 조직원들뿐. 그녀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너무 시야가 좁혀져 있던 모양이었다. 공격한 남자의 뒤에 있던 제 2왕녀가 걱정스러운 듯이 소리친다.

"크흐흐흐.... 왕녀 전하. 지금은 이 녀석을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다음은 당신들의 차례가 될 테니까 말이야. 뭐, 금방 끝낼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저 비겁한...."

충격에 잠시 비틀거리고 있으면 기회다 싶어 온갖 둔기로 무장한 자들이 그를 덮쳐오기 시작한다. 저 검은 망토를 입은 패거리와는 다른 복장과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 다른 부문에 속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녀님의 걱정을 사게 하다니. 이게 무슨 <유메니티> 최강의 방패냐."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죽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무기력한 그의 모습에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조직원.

그 순간, 거대한 방패를 위로 들면서 검을 막는 동시에 방패로 그의 얼굴을 가격한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기절하여 뒤로 쓰러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주위의 범죄자들을 향해 창을 휘두른다.

"뭐, 뭐야. 이 녀석, 갑자기 공격을-"

한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공격이 그에게 덮친다.

그들이 반응할 아주 조금의 틈도 주지 않은 채 거리가 닿는 족족 그들을 처리하고 있다. 리치 상으로도 장거리에 유용한 창답게 그들이 접근할 틈도 주지 않은 채로 재빠르게 모든 것을 해결한다.

"-<길이 증가>."

더불어 F급 마법을 영창하여 창의 길이를 효율적으로 더 늘린다. 이걸로 그가 대응할 수 있는 거리가 더 늘어나면서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다가가자마자 영혼을 잃어버린 고깃덩어리가 될 뿐이었다.

"이, 이봐! 물러나, 물러나!"
"-적어도 네 녀석의 손에 왕족분들을 놀아나게 두지는 않겠다!"

기사 단장의 맹공에 당황한 그들이 잠시 거리를 두기도 전에 그의 창이 범죄자들을 상대로 정의를 집행한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쌓여가는 그들의 시체들이 그의 주위에 수북이 널브러진다.

그의 공격에 휙 하고 제 2왕녀의 곁으로 날아가는 남자. 고통스러워하며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둔다. 모든 것이 후회로 점철된 듯한, 또 어떻게 보면 무언가로 인한 공포가 덮친 듯한 입체적인 표정이 기사 단장을 상대하고 있는 그들의 감정을 잘 나타내준다.

물론 범죄자인 그들을 옹호해줄 생각은 개인으로서 1도 없다. 단지, 그보다 주목해야 할 점이 저 상황에서는 있었다.

"저자가, 이 나라 최강의 방패인 기사 단장...."

문득, 다이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그의 난폭한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을 자세히 보면 실은 수많은 공격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을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은 거대한 방패로 막고, 막을 수 있는 공격은 막으며, 처리하기 모호한 공격들은 전부 무시하거나 창으로 흘려보냈다.

(역시, 내가 이틀 전에 봤던 단순히 힘만 센 골렘들과는 달라. 그리고 또 그걸 단순하게 대처하는 학생들과도 다르고.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 방식이 확실히 정렬되어 있어.)

자신이 입학시험을 보았던 제 2 시험관에서 본 그때의 광경을 떠오른다.

골렘을 피해 단순히 처치하는 정도로 끝났던 그들과는 달리, 그는 정확히 다수의 인물과 싸워 모든 공격을 파악하고 방어하여 반격에 나서는 행동이 그가 얻은 지위가 단순히 운으로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기사들이여, 당황하지 마라! 시민들을 보호해라!"
"예! 알겠습니다!"
"덤벼라, 흑월 녀석들아!"

게다가 저 리더십, 모두가 그의 말을 듣고 즉각 움직인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의무를 벗어던지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범죄자들과 싸운다. 물론 그들이 가진 의무가 그들을 움직이게 했겠지만, 그 모든 것을 교육한 자도 다름 아닌 그였다.

그녀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들이, 그에게는 존재했다.

(...나도 과연, 그처럼 할 수 있을까.)

왕궁에서도 몇 번밖에 본 적이 없던 그가 갑자기 다르게 보인다. 강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마는, 저 정도로 강한 존재일지는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저렇게 믿음직한 존재일 줄은 몰랐다.

"아.... 그래서 아버님이 그렇게-"
"예, 예? 뭐라고요?"

옆에서 들리는 하이톤의 목소리에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던 다이아는 다시 정신을 현실 세계로 돌렸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이 모르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듯했다. 그녀의 옆에는 지금까지도 떨고 있는 용사 후보가 보였다.

"아뇨,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분명히 이름이-"
"아.... 아! 예! 그.... 용사 후보인 이니라고 합니다! 이 나라의 제 2왕녀님이신 다, 다이아 님 맞으시죠? 그게,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가 하고...."

기사 단장과 자신의 차이를 실감하고는 낙담한 모습을 모두 그녀에게 들킨 듯하였다.

다행히도 그 내용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때아닌 이런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비교하다니, 정말 자신이 미친 듯하였다. 아까까지도 계속 언니와 <그랜드 스쿨>에 대한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상인이 자신을 지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그런가요. 그보다도, 기사 단장님은 정말 강하신 분이네요. 벌써 다른 사람들을 전부 쓰러트리셨어요."

그녀가 깜빡 생각에 잠긴 사이, 기사 단장은 벌써 다른 이들을 모두 자신의 발밑으로 굴복시킨 상태였다. 주위를 살펴보며 방패와 긴 창을 들면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약간 섬뜩하단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강하긴 하네요."
"예, 맞아요. 방금 주위의 자들을 기준으로 저분의 등급을 살펴봤을 때는 아무래도 최소 D등급 이상은 되시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옆의 이니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다이아는 잠시 말을 뜸 들이고는 마지못해 대답하였지만, 아무래도 옆의 장본인은 그걸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대중만으로 상대방의 등급을 정한다는 것이 평범한 인간으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 하지만 용사의 능력으로 받은 것이라면 납득이 가네.)

용사들은 평범한 자들이라면 얻지도 못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하니, 그중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 하면 아마도 탐지 능력을 지닌 직업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휴우, 하마터면 평범한 용사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 뻔했네....)

"괜찮습니까, 제 1왕녀님, 제 2왕녀님?"
"아, 예. 괜찮아요."

그 사이, 다가온 기사 단장은 바닥으로 피를 툭툭 털어내면서 그들에게 접근했다. 그러면서도 주위의 경계는 잊지 않는다.

"다행히도 이곳으로는 흑월의 암살자들과 용병들이 오지 않은 듯하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군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한테는 아무런 일도 없었고 말이죠."
"....."

그녀의 말에 기사 단장은 다행이라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그와 반대로 옆의 제 1왕녀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주위를 둘러보면서 전황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용사분들도 다행히 모두 이곳에 계셨군요. 멀리서 보고 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혹여나 불안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또다시 뵙게 되었네요."

게다가 그곳에는 두 왕녀 말고도 용사 후보인 이니와 용사 파티에서 각각 궁수와 마법사의 역할을 맡은 일리아나와 위트니, 세 명의 여성도 함께 있었다. 이니는 그의 말에 호응해주었지만, 남은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아직 정체를 확신하지 못해 움직이지 않았는데, 저자들은 도대체 누구지? 설마, 이 나라의 범죄자들인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음. 그게 아니면, 반란군."
"...지금이라도 알아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보다 다른 분들은 어디로?"

다행히도 두 왕녀와 용사 세 명의 신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자세히 보니 3명의 용사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보다 먼저 뒤에 있던 일리아나가 그들의 행방을 알려주었다.

"아, 리더라면 우리들의 무기를 가지러 갔다. 이 환영식에서는 리더를 제외한 나머지는 무기 반입이 안 되잖아. 그래서 데클렌과 켈럽을 데리고 무기를 가지러 간 거야. 그리고 자신은 살상력이 낮은 평범한 검을 가지고 온다고 했고."
"그렇습니까.... 그러면 조금만 더 시간을 벌어야겠군요. 만약 무기를 가지고 오신다면 그때는 부디 협력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거대한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가 고개를 숙여 협력을 구한다. 며칠 전,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가 직접 고개를 숙였던 그때의 상황과 겹쳐져 보인다. 분명 저번에 이니한테 고개를 숙인 것도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요, 용사님! 분명 마차에서 저에게 해맑은 웃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용사의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저기의 저 사람들은 시민들을 혼란시키는 악이고요! 그렇다면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요?"

진심을 담은 그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니 자신도 일리아나의 말을 인용해 그녀에게 부탁한다. 분명 지금까지 봐왔던 그녀라면 분명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으음, 그렇긴 한데- 이게 약간 곤란해."
"-예?"


하지만 이니의 예상과는 반대로 일리아나의 대답은 No였다.

"-오해하진 말고 들어. 우리 용사 일행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웨포스트>에 소속되어 있지만 여러 나라의 협약 때문에 우리는 어떤 나라의 일을 세부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게 되어있어. 저기에 계신 폐하께서도 과거에 찬동하신 일이야."
"그, 그럴수가...."
"물론 용사의 의무로서 시민들을 위해 싸우기는 할 테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뿐. 이 일을 일으킨 조직을 우리가 직접 퇴치할 수는 없어. 게다가 지금 시즌의 우리는 많은 나라에 가봐야 해서, 그건 당신도 이해해줄 수 있겠지?"

한낱 평민인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조약이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정치판에 개입하고 있을 기사 단장으로서는 뼈가 저리도록 아픈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 인정합니다. 저희가 뿌린 씨앗은 저희가 거두어야 할 테죠. 저 조직은 저희가 어떻게든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기사 단장님."
"어쩔 수 없는, 현실."

일리아나와 위트니의 말에 기사 단장이 씁쓸한 듯한 표정을 지은 것 같았다. 갑옷 안이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이아로서도 참 씁쓸한 이야기였다. 이 나라의 왕족으로서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평민인 이니로서는 그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모양이었다.

"하, 하지만! 앞으로 고통받을 <유메니티>의 시민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저 조직이라는 것을 없애야 하지 않나요? 물론 나라 간의 맺은 협약도 그렇지만, 적어도 용사라는 것은 악을 없애야 하는-"
"그렇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동참한 협약을 어겨도 되는 건 아니야, 이니. 그리고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목표는 마왕을 쓰러트리는 것, 그리고 시민을 지키는 것뿐이다. 타국의 개인적인 일에 우리들의 전력을 쓸 수는 없어."

보기 드문 일리아나의 단호한 말에 위트니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옆의 이니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의견을 굽힐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주위의 시민들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용사라고 판단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평민인 저에게 용사 여러분들은 그저 하나의 빛이었다고요.... 그런데, 그런데!"
"...그건 한 시민으로서의 너의 판단이고, 전체가 모인 국가로서의 견해는 다르지. 그들은 그저 우리를 유용하게 전장에 배치하고, 그 결과로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거다. 애초에 이런 일들은 그 나라의 군대가 하는 일이야."

점차 과열되는 두 사람의 의견. 주위의 소음도 더 격해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을 믿고 있는 그분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만약 여러분들이 와주시면 더 많은 생명이 구해질 텐데요?"
"방금 말했듯이 그건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는-"
"-설마, 시민들이 품은 많은 기대와 희망을 배신하려는 건가요?"
"...어이, 이봐? 배신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지 않나?"

이니의 말에 일리아나가 눈을 가늘게 바꾸었다. 아마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는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분명 저한테 마차 위에서는 정의감을 갖고 하라고 하셨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으세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문득 일리아나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니의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저한테는.... 시민들을.... 지키라고...."
"....."

아무 말도 없이 그녀는 이니의 진의를 꿰차기 위해 생각한다. 이미 높으신 분들의 정치놀음에 익숙해져 있는 용사로서는 나라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왕족인 다이아와 기사인 기사 단장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반면에 그녀가 원래 속한 계급은 하층의 평민. 별다른 방어 조치가 없는 그들로서는 용사들만이 그 믿음일 것이다.
거기에 그녀가 스스로 공언한 것처럼 용사의 팬이라던 이니는 아마 그 의존성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용사인 그녀가 자신과 같은 평민들을 버린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렇게 되면, 사과해야 하는 것은 내 쪽이다.)

그녀의 정신조차도 그리 편치는 않을 테다. 평소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할 고위층의 사람들과 용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부담감이 커져 있을 터였다. 그런데 위와 같은 마음이 든다면 이런 감정 표현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라 보았다.

"...미안해, 이니. 여기에 대해서는-"
"저기, 일리아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

사과하려던 찰나, 급박한 목소리의 위트니의 말을 듣고 위를 쳐다본다. 갑자기 아까까지는 멀쩡했던 하늘 전체가 화살들로 덮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면, 저 멀리 건물의 위에서 활을 들고 있는 여러 사람이 포착되었다. 같은 조직에 속해있는 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비 없는 공격.

만약 자신의 주력 무기인 활과 충분한 양의 화살을 갖고 있었다면 저 많은 화살을 격추할 정도의 능력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하나의 빛줄기가 그 화살들을 한 번에 소멸시키는 것이 더 빨랐다.

"저 공격은 분명...."

앞의 기사 단장이 멀리 보이는 이상 현상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일리아나의 손에는 동료에게서 받은 고급진 활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 그와 더불어 발밑에는 적에게서 얻은 화살통이 떨어져 있었다.

빛이 끝나면 여러 개의 화살을 한 번에 잡아 조준하지 않고 곧바로 발사한다. 그녀가 발사한 화살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동시에 건물 위에 있던 자들을 일격사 시켰다.

"...굉장하네요. 그렇지만, 어째서.... 이런 엄청난 힘을 가졌으면서...."

이니가 솔직하게 그녀의 우수함을 칭찬해준다. 그렇지만 그 뒤에 붙은 수식어는 전혀 긍정적이지 못한 대답이었다.
이미 눈물은 그친 상태지만, 말라버린 눈물만큼이나 잃어버린 그녀의 신용을 되찾기 위해 말을 선택한다. 용사 일행이 절대 시민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니. 조금 전에 보았다시피, 용사의 힘으로는 이렇게 다른 이들의 생명을 빼앗기 쉬워. 그러니 우리들의 힘을 통제하기 위한 제어 장치는 어떻게든 필요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용사는-"
"하지만! 절대 우리는 시민들을 버리지 않아! <가속의 화살>!"

휘익, 하고 이니를 스쳐 간 화살은 정확히 한 모험가를 노리고 있던 범죄자를 정확히 맞추었다. 털썩하고 힘없이 쓰러지는 것이 마치 원래부터 그런 존재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단지 우리가 주어진 범위 내에서 우리는 시민을 구하는데 집중할 뿐이야! 그걸 위해서라면 우리는 목숨을 가리지 않을 거야! 우리가 지금 하는 행동은 누구를 위한 행동이지?"
"...!"

그녀는 말을 끊지 않으면서도 기사 단장을 쏘려고 하는 궁수들을 모두 제거한다. 그와 더불어 다른 용사들이 가볍게 암살자들을 해치우거나 다친 시민을 위해 치료해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의 목적은 시민들을 지키는 것! 그리고 악을 처단할 뿐이다! 기사나 경비병들은 시민들의 보호를! 모두가 각자 주어진 일을 하도록 해라!"

간접적으로 그녀의 말을 지지하듯 기사 단장이 창을 들면서 모두의 사기를 드높여준다. 각자가 맡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말이다.

"...아까는 제가 말이 너무 심했습니다. 일리아나 님."
"아니, 나야말로 미안하다. 아무래도 나도 옛날에는 너처럼 생각했을 때가 있었을 테니, 그걸 고려해주지 못했어. 너로서는 화가 날 수도 있었겠지."
"예,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아요. 화가 난 이유는 소동을 일으키는 저기의 범죄자들 때문인데. 그러니까 결론은-"
"-저 녀석들이 문제다 이거지. 좋아! 그러면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
"예! 일리아나 님!"

그들의 말에 앞에 있는 기사 단장도, 다이아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좋게 마무리된 이 상황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걸까. 그러나 그들을 밑에서 지켜보던 위트니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두 사람의 결론이 이상함."


★★★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는 두 사람은 재빨리 한 장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장소는 현재 시민들이 도망쳐 나온 곳과는 완전히 반대로, 그들이 자진해서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팔에 둘렀던 붕대는 이미 풀어버린 지 오래다.

"제길, 그 내용을 듣느라고 시간이 늦어버렸군! 벌써 사태가 일어나 버렸잖아! 그 경비 대장 녀석, 왜 이렇게 오랫동안 말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꽤 긴 내용이었다는 건 사실이잖아. 인과 관계가 명확한 일이었던 만큼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알아두느라고 시간이 간 걸 생각하면 오히려 짧은 거지."

프리먼과 빙혈은 큰 부상을 당해 누워있는 김승호로부터 [선혈의 광란]이란 자의 정보를 받게 되었다. 그 내용은 심히 끔찍했으며, 빙혈이 당한 이유도 이해가 갈 만큼의 전과를 남기고 있었다.

"왜 하필 이런 중대한 일을 우리가 맡게 된 거지? 제기랄,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부탁이구먼, 이거!"
"시끄러워. 잘 되면 술이라도 한잔 사준다 했잖아. 됐고, 빨리 길드 마스터에게 가서 말해보자고. 이 정도 급이면 <전언>으로는 쉽게 믿지 못할 이야기일 테니까 말이야."

경비 대장이었던 그가 끈질기게 조사한 정보를 가지고, 그들을 재빠르게 광장을 향해 뛰어갔다.

0
이번 화 신고 2021-04-04 18:20 | 조회 : 697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