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리 (完)

한창 열기가 돌고 있는 이곳은 <모험가 길드>, 그러나 오늘만큼은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만이 모험가들에게서 풍겼다.

그것도 그럴게,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실력자로 알려진 프리먼과 빙혈이 부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만을 부지한 채 건졌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성격은 둘 다 글러먹었다지만 클랜 마스터로서의 위상은 대단한 두 사람이었으니까.

이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신문 기사로 일반 시민들한테까지 퍼져있는 내용이기는 했지만, 간단한 추리 정도밖에 할 수가 없는 그들보다는 훨씬 더 정보 파악이 쉬운 모험가들로서는 사건의 어느 정도의 전말은 알 수 있다.

"소문으로는, 그 흑월과 싸우기 위해 동원된 전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 어?"
"글쎄요, 저는 당시 그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정보는 가지고 있을 것 아니냐고! 지금 우리 클랜 마스터의 전신이 거의 다 타박상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고! 이 정도라면 길드에 책임을 물어야겠어!"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길드 안이었지만, 카운터 쪽에서 난 거센 소리에 많은 모험가들이 그곳에 시선이 쏠리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바로 1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마스터가 여러 명의 모험가를 상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 같다. 그는 전력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빠져있었지만, 관계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느새 다양한 사람들에게 협박과 같은 질문을 받고 있었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기자들이 길드로 쳐들어와서 전부 쫓아내느라 피곤해죽겠는데, 이번에는 모험가들인가. 젠장.)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모험가 길드>의 비공식적인 브레인인 부마스터는 곧장 머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이 자들을 제일 효과적으로 내쫓을 수 있을지를.

"우선 저희들에게도 물론 이 사고에 대한 정보들이 있습니다만, 공식적으로 모험가들이나 시민들에게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건 어째서냐!"
"정체를 감추고 있는 사회적인 범죄자나 불법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흘러갈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이해해주십시오."

천천히 설득을 하면서 눈앞의 모험가가 목에 걸어놓은 등급표를 힐끔 내려다본다. 색으로 미루어보아 대부분이 E, F등급의 자들이었다. 즉, 단순한 클랜 내의 조직원들일뿐이다. 그렇다면 공식적인 클랜의 입장이 아닌 우발적으로 온 것임이 틀림없을 터.

(그렇게 되면 논리적으로 파훼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

"이미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지금 이 사태는 어디까지나 두 클랜이 모두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전해주신 거란 말입니다. 물론 규칙에 따라 [멸의 지룡]과 [푸른 칼날]의 클랜 마스터께서 직접 동의하신 계약서의 내용은 직접 보실 수 있지만요."
"-젠장, 그런 거, 이미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래, 그들도 분해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이 슬픈데도 정작 이 사건에 개입했던 <모험가 길드> 측이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계획없이 무작정 쫓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하자. 우리들도 알고 있었잖아. 클랜 마스터가 그런 일을 맡게된 건 스스로의 의지였다고."
"이동현...! 네가 어떻게...!"

고개를 떨궈 부들거리던 건장한 남자를 한 명의 남성이 제지한다. 그의 뒤에서는 또 한 명의 여성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부마스터는 재빨리 두 사람의 정체를 파악한다.

(아, 지난 달부터 점차 치고 올라온 [멸의 지룡] 클랜의 마지막 멤버였나. 파티명이 없는 관계로 그냥 클랜명을 쓰고 있었지.)

"너희들을 이쪽 클랜으로 받아준 건 바로 우리들의 클랜 마스터인 프리먼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하아, 지금 논쟁이 이상한 곳으로 흩어진 것 같은데, 애초에 너희들이 하는 것은 그저 협박 내지는 명령이잖냐. 아무리 봐도 너희들은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뭐라!"
"애초에 우리들이 이런 말을 하려온 이유는 <모험가 길드>에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것이 아닌, 흑월의 정보를 찾아내 복수를 하려는 거였잖아? 하지만 너의 말은 그저 우리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이미지만 연출할 뿐이다."

말을 마치곤 휙, 고개를 돌려 부마스터를 바라보는 이동현. 이제 아까 전에 하려던 말을 계속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자신들의 진심을 보여 주위의 모험가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이런 사태가 몇 번이고 지속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두를 안심시킬 단 한 마디가 필요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분합니다. 길드 마스터께서 온몸에 붉은 피를 묻히시곤 경비 대장님을 길드로 데려오실 때는 저뿐만이 아닌 모두가 깜짝 놀랐죠. 그러나, 아직은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현재 조사원들이 경비대의 협조를 받아 증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폭발로 다 날아가 버린 탓에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모두가 흑월의 검거를 원하고 있기에 지금까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
"아마 여러분들뿐만이 아니라 지금 <유메니티>에 뻗어있는 수많은 길드와 클랜들 모두가 흑월을 증오하고 원망하고 있으며, 직접적인 지원은 클랜 개인적인 사유상 불가능할 지라도 정보 공유 정도는 약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흑월도 다른 곳으로 피난처를 옮긴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부분을 염두에 둬 그들의 심리 상태를 추정해 조사를 해볼까 합니다."

여기서 잠시 말을 끊는다. 중요한 사건 정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요를 그들에게 간략히 말해주었다. <모험가 길드>의 사정과 수많은 클랜들의 협조에 관한 것도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이번에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거대한 힘.

-그 마지막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여기서 승부다.


"그러니까 여러분, 모두 도와주시겠습니까?"


이번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받아들여준 모험가들에게, 은근슬쩍 이곳을 쳐다보고 있는 모험가들에게,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이 사건을 알게 될 거물급의 프로 모험가들에게, 그는 고개를 깊이 숙인다.

비록 이것에 대해서 흥미를 가져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사과의 의미를 잘 표현해내기만 해도 이 자리에서는 넘어갈 수 있다. 다만, 그래도 모두가 도와준다면 더 일처리 효율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모험가 길드>의 2인자인 그가 고개를 숙였다는 것만 해도 이 사건의 파장이 크다는 것과 자신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표현해줄 수 있다. 지난의 부재에는 자신이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으읏."
"자, 어떻게 할 건지 여기서 정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 클랜 중에서는 그래도 당신 파티가 제일 경력이 화려하니까."

유일하게 여기서 D등급인 파티의 결정을 이동현이 재촉한다. 모두가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 이야기한다는 건 필히 부담감은 크겠지. 거기에다 이곳에는 자신들의 선배와 후배가 동시에 있는 자리이다. 더욱더 부담감은 커질 것이다.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 상황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는 건가. 하긴,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이런 귀찮은 상황 속에 직접 뛰어들 모험가는 없겠지.)

부마스터가 승산 없는 싸움에 도박을 건 것을 후회하며, 길드에 어울리지 않는 긴 침묵이 자리잡고 있을 때즈음, 그의 옆에서 누군가가 쭈뼛쭈뼛 손을 들기 시작한다. 분명 이동현과 같은 파티를 맺고 있던 여성이었다.

"저, 저는 이 <모험가 길드>를 돕겠어요. 흐, 흑월은 악의 조직이니까요."
"-링링?!"

옆의 이동현조차 그녀의 발언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듯,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얼핏 봐도 링링의 표정은 진검이었다.

"생각해봐요, 동현 씨. 부마스터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증거는 탐색 중인 상태고, 여러 가지 내부 사항들을 저희들에게 밝혔다는 말은,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예요. 그렇다면 이 나라에 신세를 지고 있는 모험가인 저희들도 도와야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니, 뭐. 분위기를 봐서라도 그건 맞는 것 같지만...."

여러 수단을 떠올리며 그녀의 말을 수습하려고 하는 이동현이었지만, 링링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모험가들 쪽으로 돌리면서 다른 모험가들에게 큰소리로 말을 건넨다.

"여러분! 저는 이 나라에 온 지는 얼마 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적어도 여기가 좋은 곳이라는 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있던 곳과는 다르게 모두가 안전하고 모두가 밝게 웃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우리 모험가가 이런 환경을 만드는 데에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계속 이어진 그녀의 말은 전체적으로 이 나라에서 모험가가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으며, 이 나라의 안전을 위해 모험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쯤 과장이 들어가긴 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는 어느 정도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몇 명의 모험가가 수긍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조금씩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그 재능으로 사람들을 구해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하긴, 우리들도 이 나라의 안전에 어느 정도 신경을 써서 일을 줄여준 경향이 있지. 우리 모험가들이 <유메니티>의 명성에 도움이 됐다고 하면, 우리로선 영광이야. 좋아, 나도 그녀의 말에 동참한다. 너희 <모험가 길드>를 도와주겠다고."
"나도 마찬가지다. 용감한 그녀의 말을 듣고서라도 이 나라를 위해 힘을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한 명의 의견에 또 다른 한 명이 찬성한다. 그것이 또 다른 한 사람의 모험가의 동조를 이루어낸다. 어느새, 이 길드의 3분의 1정도가 그녀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나도, 나도!"
"뭐, 이 <모험가 길드>에는 담겨진 추억이 많으니까. 이 기억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에라도 무리하지 않은 부탁은 들어줄 의향이 있지."
"게다가 그 흑월 녀석들, 항상 우리 모험가들을 방해했으니까. 이번 기회에 전부 쓸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이제는 모험가들의 반 이상이 흑월에 대한 살의를 품으면서 그들의 의견에 동참해가기도 한다. 그만큼 흑월이 생각보다 깊게 무력 사회에서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의견에 호의적일 수는 없는 법. 당연히 그 속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기 마련이다.

"잠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이득이 뭐가 있지? 저 여자의 말대로 모험가란 존재가 이 나라의 보안에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무상으로 일해야 될 이유는 되지 않을 텐데?"

점차 여론이 기울지던 그때, 용감하게 발언한 자에게 내부의 모든 자들의 시선이 꽂힌다. 그 자는 이 <모험가 길드>에서도 나름대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던 남자였다.

머리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지만, 팔짱을 끼고 있는 그의 태도와 눈밑에 있는 흉터는 그가 심상치 않은 자라는 걸 모두에게 각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스톤."
"으응? 내가 한 말에 틀린 말이라도 있는 거냐? 너희 클랜 마스터도 받았을 거 아니냐, 보수. 그저 당연한 것을 우리는 요구하고 있는 것뿐이다."

하긴, 그건 저 녀석의 말이 맞지, 라며 다른 모험가들도 그들의 말에 동조한다. 순식간에 여론이 스톤 쪽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모험가에게 있어서 보수라는 것은 생활이 달린 문제다. 프로 모험가 수준의 높은 등급을 가진 자들로서는 별 걱정이 없는 문제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이 나라도 모험가들에게 주어진 보수에 의해 지켜진 것이니까.

"음.... 확실히 그건 그렇겠네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저희같은 일개 모험가가 관여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럼 여기서는 길드의 의견이 중요한 시기이네요. 저기, 부마스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말에 부마스터가 당황하긴 했지만,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다시 모여들었다.
다만, 이번에는 말하기가 힘든 것이, 그는 예산의 담당을 맡고 있지가 않다. 그 권한에 대해서는 길드 마스터인 지난에게 있었다. 확실하지가 않은 문제인 것이다.

"그, 그게-"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안된다고 하는 것도 김빠지는 일. 우선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한다. 거짓말로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까.

큰일났다. 어떻게 해도 미래가 좋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모험가들에게 보수를 줄 수 있는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만약 거짓말로라도 줄 수 있다고 했을 때, 그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길드에 대한 신뢰가 대폭 감소한다. 그러면 안봐도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줄 수가 없다고 하면, 기껏 이렇게 모험가들의 동의를 얻어낸 것에 대한 의의가 없다. 곧바로 흐지부지 되며, 다시 이런 주제에 돌아올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그가 선택할 만한 것은 시간을 끄는 것. 솔직하게 예산을 확인한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면 저 성질급한 모험가들이 기다려줄지가 의심되기는 한다. 그러나 현재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는 솔직하게 말하고, 합의를 이루어낼 수밖에!)

드디어 결론을 내리고 입을 떼려는 순간, 모두의 살기가 들이닥쳐온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모험가들의 시선. 보수라는 말에 그들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그가 고민하면서 소모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신뢰도는 떨어져간다. 어떤 핑계를 대고 있을까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리고 그 살기가 평범한 일반인과 다름없는 자에게 집중되면 어떻게 될까?

"-으, 억."
"...?!"

정신을 잃게 된다. 그들의 살기가 진심이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그런 걸 알 수가 없을 모험가들은 갑자기 바닥으로 쓰러져버린 부마스터에 대해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도 이런 전개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이봐, 갑자기 왜 쓰러진 거야! 완전히 정신을 잃었는데?"
"뭐, 뭐지? 누군가의 습격인가!"

주변을 둘러보는 모험가들, 그러나 범인이 나올 리가 없다. 자기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곧장 무기를 뽑아드는 부마스터 주위의 자들. 경계심이 강한 모험가들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기를 뽑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게 비록 거리의 안이라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주위의 분위기는 경계심과 서로에 대한 의심으로 물들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이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우울한 목소리가 그들의 위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지금 무슨 짓이냐. <모험가 길드> 안에서 무기를 뽑다니, 그것도 전체적으로. 너희들 전부 감옥으로 들어가고 싶은 거냐?"
"-길드 마스터!"

지난이 계단을 통해 그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면서 모두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자가 있다면, 곧바로 자신이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다들 서로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팽배해있는데, 만날 보는 자라도 깊게 사귀어본 적이 없는 우정이니까 이렇게 되는 건가. 여러모로 우리 길드로서도 고쳐야 할 점이 많군."
"...저, 길드 마스터. 어제의 부상 때문에 병원으로 이송되신 거 아니었나요? 그게 아니더라도 마스터가 누워서 쉬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태연하게 그들 사이를 누비는 지난에게 [멸의 지룡]의 클랜원들 중 한 명이 그에게 물어봤다. 프리먼의 상사인 만큼, 더 높은 사람이었기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아, 어제 김승호를 옮겼을 때 말이냐. 그건 전부 김승호의 피다. 내가 밑에서 받치고 있어서 흘러내리는 피를 내가 맞은 것뿐이라고.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냐. 누가 나에게 설명 좀 해주지 않겠어?"
"아, 네. 그게 실은-"

본래라면 부마스터가 상황 설명을 해줘야 하겠지만, 지금의 그는 쓰러져있다. 그러면 당연히 여기 있는 목격자 중에서 한 명을 골라 물어보는 것이 정석이겠지.

여차저차 방금 전의 사정을 설명받은 지난은 점점 표정이 굳어가더니, 마지막에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자신들의 강력함을 모르는 자들이 있었다니.

"이봐, 너희들은 모험가다. 모험가. 온갖 시련을 넘어온 만큼, 그 강력함은 평범한 민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쓰러트릴 수 있단 말이야. 왜 너희들은 그런 힘의 절제라는 걸 모르는 거냐, 어?"
"그, 그 말은...?"
"너희들이 내뿜는 살기에 평범한 이 녀석이 쓰러진 거라고. 이 녀석도 두뇌는 우수하고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만, 이 녀석도 어떻게 보면 민간인이다. 굳이 그렇게 살기를 담지 않아도 되잖아."
"아니, 그게.... 무의식적으로...."

사실 그들의 입장으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겠다. 늘 그렇듯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피어낸 위기감에 대한 방어 본능이랄까? 그러나 모험가들끼리는 서로 효과가 없더라도 일반인인 그에게는 너무 무거운 압박이었던 것을 그들이 간과한 것이다.

"자, 그렇게 됐으니 다들 무기를 내려놔. 거기, 이제 방패도 내려놔도 돼. 안 다칠 테니까."

그의 말에 무기를 뽑았던 모험가들이 모두 무기를 되돌려 놓는다. 검은 칼집에, 화살은 화살통에. 그 와중에 방패를 들고서 떨고 있던 한 F급 모험가도 안심할 수 있도록 차분한 어조를 사용했다.

"그런데 마스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모두에게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건가?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돈 문제는 꽤 살벌한 문제니까."
"아아, 그거 나도 잘 알지. 돈으로 인해 해산한 파티도 있고, 자칫 잘못해서 범죄로 빠져든 이도 있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들도 진지하게 다루어야 겠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어떻게든 된다."

오오오오오! 길드 안이 순식간에 좋은 분위기로 바뀐다. 여전히 단순하게 반응하는 녀석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 미세한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

"잠깐, 네 녀석. 어떻게든 된다, 라는 말은 무슨 뜻이지? 어떻게든이라는 말은 적어도 우리에게 긍정적인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서는 해명을 해주지 않겠나?"

(...저 대머리 자식. 계속 방해를-)

스톤이라는 모험가가 또 한 번 의문을 제시한다. 여기서부터는 길드의 개인적인 사정이라 더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모험가들도 그 말을 듣고 의문을 품었는지 다시 이쪽을 힐끔 바라봤다.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아, 진짜 귀찮게 하는군. 솔직하게 말하자면, 흑월에 대한 너희들의 보수가 평균 의뢰보다 적지 않은 이상, 우리의 예산이 바닥이 날 거다. 즉, 너희들이 일한 만큼보다 보수를 덜 받는다는 말이지."
"-뭐라?!"

모험가들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그에게 말을 건네려는 순간, 지난이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우선 그들의 폭주를 막는다. 이때는 순간적이 재치를 발휘해야 한다.

"잠깐, 잠깐. 사람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안다고. 이 사태는 어디까지나 우리 길드에서만 부담했을 때의 이야기다. 당연히 위의 말대로 실행하면 너희들에게서 반발이 심하다는 것은 우리들도 알고 있어."
"...그래서? 결론이 뭐냐?"

말을 한 번 잘못하다가는 목을 베어버릴 것처럼 그를 쳐다보는 모험가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직원들 월급을 깎는 것은 또 우리 길드에 분란을 야기할 수 있지. 그래서 이 모든 부담은 내 쪽에서 지도록 하겠다. 이런 위기 상황 때는 사비라도 털어야지. 이러면 문제 없겠지?"

여기까지나 양보해줬다. 만약 여기서 안된다면 차라리 이 협약을 끝내는 것이 낫다.
모험가들도 서로를 마주보면서 눈으로 대화하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서로 협의가 된 듯 대표로 한 사람이 나왔다.

"...그러면 상관 없다. 좋아, 우리들은 전적으로 <모험가 길드>를 도와주겠어. 여기 있는 모두가 협의한 내용이다. 어때?"
"OK. 단, 이 약속은 구두로만 다루도록 하자. 왜냐하면 강제성을 지닌 협약을 맺으면 너희들도 불편하고 우리들도 불편할 테니까. 서로의 신뢰를 걸고 하는 거다, 어떤가?"

지난의 제안에 모든 모험가들이 찬성한다. 범죄로 빠져들 사람이 아닌 이상, 신뢰를 걸고 한 약속에는 나름대로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한이 없다는 점도 그들의 마음에 들게 했다.

"좋아, 그렇다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그때가 오면 흑월을 쓰러버리는 데 우리가 일조하겠어. 보수만 잘 챙겨달라고."
"그래, 이걸로 약속은 끝이다."

이렇게 부마스터가 기절하면서까지 얻은 기회를 지난이 낚아채면서 서로 간의 약속이 만들어졌다. 물론 기절시킨 건 그들이지만.

(...이걸로, 적어도 다음 작전의 전력은 확보해놓았다. 어젯밤과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벌어지게 하지 않을 거야.)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난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버려져 있던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악몽을 발판 삼아 이렇게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래, 내일의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찾아 습격해주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말이야.)


★★★


"오, 사람들이 엄청 많군. 이거 보는데 시간 좀 걸리겠는데."

예정된 시각, 예정된 장소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그곳에 모여있었다. 시험 결과가 적혀진 결과표가 <그랜드 스쿨> 정문의 공지판에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많은 학생들이 얼핏봐도 120명의 3배 이상은 되는데, 아직 여기에 안 온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경쟁률은 더욱 치열하겠군. 뭐, 한 번 확인해보기는 해야하니까."

군중들 사이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위에서부터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한다. 1위에서부터 120위까지의 순위가 적나라하게 모두에게 공개가 되어있었다. 이거, 개인적인 정보의 유출 아닙니까.

"학생들을 거대 골렘에 아무런 안전 장치 없이 투입하는 녀석들이 뭔 양심이 있겠다만은.... 에휴...."

1~20위가 A반, 21~40위가 B반 식으로 각각 20명씩 한 반에 투입되는 것으로 기재해놓았다. 사실 이미 모든 전말을 파악하는 나로서는 시험관들이 자기 마음대로 뽑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뭐, 어느 반이든 좋아.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오."

위아래로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으면, 눈에 익는 몇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브론은 41위로 C반의 1위, 각각 나름대로의 존재감을 보여줬을 재-현과 정안섭은 각각 81위, 101위로 E반의 1위, F반의 1위인가.

"시험관들이 뽑아 이미 반은 정해져 있었을 테니까, 각 반의 1위라면 모두 그들에게서 인정받은 건가. 우연찮게도 전부 7각성들이 1위를 차지하고 있군."

아니, 우연이 아닌가. 나름대로 7각성들이 반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거겠지.

그나저나 정안섭이 F반이라는 것은 좀 의외였다. 성격도 좋고, 미남이고, 전투력도 나쁘지 않으며, 리더십도 있다는 것을 실기 시험에서 확인했을 텐데 이렇게나 낮다니. 7각성 중에서 유일하게 혼자 기절해서 그런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거대 골렘은 학생들의 신분으로는 쓰러트리기가 거의 불가능했어. 오히려 쓰러트리는 편이 더 이상하다고.)

그러나 시험관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걸 수도 있다. 그래도 1위의 영광을 안겨준 것을 보아하면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닌 듯하군.

그 외에도 여러 네임드들이 합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장건영은 성격이 문제가 된 것인지 115위로, F반이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와 말다툼을 했던 이주헌은 25위로, B반의 상위권을 차지하며 차이를 벌려놓는다.

(정말 말 그대로 무작위네. 실기 시험에서 활약한 장건영 대신 이주헌인가.)

그나저나 중앙을 훑어봐도 내 이름이 보이지가 않는다. 보이는 네임드들의 이름만 찾다보니까 정작 자신의 가명을 찾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라이, 라이, 라이.... 어?"

이 와중에도 또 한 사람의 네임드를 찾아버렸다. 이 나라의 제 2왕녀 다이아였다. 과연 그녀의 순위는-

"...119위?"

뭐야, 그 녀석. 큰 소리를 뻥뻥 친 것에 비해 거의 제일 마지막이잖아.
물론 나와는 시험장이 달라서 어떠한 활약을 보여주었는지는 미지수일 테지만, 부상을 심하게 입어도 활약을 보인 정안섭이 F반 1위이다. 같은 반에서의 순위가 낮은 것이라면 적어도 그보다는 활약이 적었을 것이다.

"크크, 뭐야. 이거 보니까 거의 턱걸이로 통과했잖아. 그럼 그녀의 밑에 있는 녀석은 얼마나 얼간이인 거-"


-120위 라이


"아."

드디어 찾은 내 이름은 내가 놀려댔던 그녀의 이름의 바로 밑의, 진정한 턱걸이로 이름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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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1-08 14:31 | 조회 : 498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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