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리 (1)

- 어젯밤, 슬럼가에서 대폭발.... 환영식, 과연 추진될 것인가? -


오늘 아침, 카운터에 있던 신문들 중 하나를 동화 1닢을 주곤 구매했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는 1면을 크게 장식하고 있는 문구가 하나. 바로 위의 글이었다.

신문의 내용에 따르면, 위의 제목 그대로 어젯밤 슬럼가에서 흑색의 건물이 의미 모를 대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자세한 원인은 조사 중이라지만, 건물의 내부에서 폭파한 것으로 보아 폭탄 테러같은 것은 아니었다. 기자로서는 아마 건물의 내부 설계 구조 중에서 어딘가 결함이 있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밖에 할 수 없을 뿐.

곧바로 다음 장을 넘겨보면 그곳에는 처참히 부서져버린 한 건물이 찍힌 사진이 보였다. 확실히 주위의 건물들과는 달리 화재로 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층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걸로 벌써 네번째로 거대한 건물을 보았다.

사진 속의 무너진 건물의 층수를 손가락으로 하나 둘씩 세어본다. 3층하고도 반 정도가 되니, 적어도 4층 이상의 건물임은 틀림이 없군.

"이만큼이나 거대한 건물을 세우다니.... 이 정도의 재력을 가진 걸로 보아 역시나 방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나."

이 정도 수준의 조직력을 갖춘 곳이라면야 지난이 고전할 만도 하다. 아니, 사실상 그의 천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전투력이 높은 것과는 별개로 하나의 조직을 완전히 잡아들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난은 그 부분에 대해서 취약했다. 마치 그 녀석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군.

"뭐, 그 녀석도 위험한 나라인 <단지로우스>를 담당하고 있는 한 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난보다는 약하겠지."

이 폭발의 여파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도 신문에 나와있다. 당연히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내부의 두 명이 중상, 밖에서 건물 밑에 '우연찮게'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폭발의 잔해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듯하다. 실제로 나도 밤새 <정신 수신>을 통해 불만을 접수하고 있던 무렵, 얼핏 폭발음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어난 폭발에 비해 사망자는 없다는 것. 그곳에 있던 '누군가'의 제지가 들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기사에 의하면 그런 사실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진짜 이 기사는 여러모로-

"...믿을 수가 없는 소식이네. 이거 순 거짓 투성이 아니야?"

내 공식적인 정보원인 로딘이 오늘 아침에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의도적으로 나라가 은폐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한다. 하긴, 흑월에 처절하게 발렸다는 걸 신문 기사의 1면으로 장식하기에는 무리긴 하니까 이해는 간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도가 넘은 스케일이 아닐까. 그 슬럼가라는 장소 자체가 군이나 경비대와 워낙 연관이 없는 곳인데 그만큼이나 다수로 쳐들어갔으니.... 아무리 밤에 갔다고는 하지만 슬럼가에도 눈이 있는데.)

기사로는 그냥 부상을 입은 사람이라고 어중간하게 써놓았지만 흑백의 사진 속에는 미처 다 가려지지 못한 자들이 정체가 드러난다. 누가봐도 무기와 갑옷을 껴입은 기사들과 경비병들이 보인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감추려고 한다는 사실은 어제의 흑월을 덮치는 것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권력층을 잡아놓았다면 기사 제목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있어야 할 테니까.

굳이 감추고 싶은 이 비밀을 기사로 작성한 이유는 그저 이 사건을 감출 수가 없을 만큼 스케일이 컸기 때문이다. 폭발이라는 것은 평화로운 <유메니티>에서는 사고가 아닌 이상 잘 볼 수 없는 현상이니까 말이다.

"...하아,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지난이 실패한 건가. 어떻게 됐든 지금은 매우 분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겠지. 지난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상층부도 큰일난 건 마찬가지지만."

하필 또 이런 불길한 사건이 중요한 이벤트 바로 전날에 일어난 만큼, 현재 상층부는 고민이 많을 것이다. 주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신문을 보며, 소문을 키우며, 웅성거리면서 그 불안감을 점차 높여가고 있다.

"내일 용사님의 파티가 오신다고 하시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 게다가 아무리 봐도 이 사진에는 창을 들고 있는 경비병들이 있잖아."
"...나라가 개입할 정도로 이 사건에 무언가가 있다는 거네. 그것도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다. 도대체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어."

민중들도 이런 가짜 기사들에 쉽게 속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바로 옆 테이블의 두 사람의 성인 남성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아도 이 거짓 신문에 대한 반응을 알 수 있었다.

저 건물이 흑월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시민이라면 알 수가 없지만, 이 나라 안전의 상징인 경비대와 군이 움직인 것 정도는 쉽게 파악해낸다. 그럼, 자연히 이 사건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 알 수 있게 된다.

저 멀리에 7각성의 두 사람이 보인다. 그 두 사람은 어째서인지 같은 테이블에서 마주보고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투고 있던 두 사람이었는데 그새 정이 들었던 걸까?

(아니, 재-현 저 녀석, 뒤에 뭔가를 들고 정안섭의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마침 잘 됐어, 한 번 엿들어볼까.)

과연 천재라 자칭하는 두 사람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재-현이라면 몰라도 정안섭은 나름대로 신문을 보는 것 같으니까.

-E급 마법, <도청> 발동.

"크크큭, 네 녀석. 머리에 감은 하얀 건 패션이냐? 정말로 잘 어울리는데, 다른 곳에도 감게 해줄까?"
"아니, 그건 부디 사양할게, 재-현."

정안섭은 어제의 과격한 입학 시험으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상태로, 그뿐만이 아니라 옷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몸의 내부에도 여러 상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갑옷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정통으로 맞은 것 같으니.

하지만 그런 재-현의 가벼운 도발에도 미소를 짓는 저 멘탈, 과연 7각성이다. 부디 여기 <유메니티>의 왕녀라는 작자가 본받았으며 좋을 정도다.

"하필이면 자리가 없어서 너같은 자식이랑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니, 그냥 계속 혼수상태였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크큭."
"....."

아, 점점 선 넘네, 저 녀석.
옆의 정안섭을 봐봐. 그도 지금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잖아. 뭐, 재-현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그런 말을 해도 미안한 감정은 조금도 들지 않아할 것 같지만.

"-근데, 그렇게 부상을 입을 정도로 시험을 봤으면 적어도 합격은 했겠지? 그 정도도 되지 않으면 가지고 놀기도 싫어지는데 말이야?"
"...딱히 나는 너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지만 말이야. 글쎄, 솔직히 시험에서 기억나는 건 골렘에게 맞고 뻗은 것밖에 없어서 말이야. 솔직히 오늘 나올 시험의 결과도 잘 모르겠어."

둘은 신문 기사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말도 하지 않고 어제 본 입학시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주위의 사람들이 흑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당연히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너희 시험 전에는 서로 탐색전을 하면서 정보를 모았잖아?

(어디까지나 저 녀석들이 주목하는 건, <그랜드 스쿨>의 입학이었던 건가. 그저 사회적으로 소란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군.)

자신들과 관련이 없다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거구만. 그것은 철저히 개인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을 재-현뿐만이 아니라 정안섭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자기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하아, 됐어. 관심이 없다면야 이런 거에 마력을 낭비할 필요도 없지. 그러면 <도청>은 끊어버리고 슬슬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올까나."

어제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신문지 한 장만 들고서 이 여관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그러므로 여유가 있는 오늘이야말로 천천히 쇼핑을 즐겨볼까나. 어제 필기 시험이 있었을 때도 필기도구 하나 없었으니 우선 그것부터 사놓아야 한다.

"만약에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더라도 실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은 일단 전부 사두어야겠다. 그렇게 되면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돈이네."

금화가 있으니 내가 필요한 것은 모두 구입 가능하겠지만, 앞으로의 내 행적이 확실치가 않으니 꼭 필요한 것만 사기로 하자. 괜히 쓸데없이 낭비해서 미래에 힘들게 되지 말고.

(세라 피아, 너는 나를 일하게 하려고 한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할 것 같다. 내가 꼭 이 돈으로 최대한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계획을 짜놓을 거거든.)

학교에 들어간다면 최대 3년,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몇 주분 정도의 여유는 있다. 이 정도 기간이라면 주위 환경을 조사해서 돈을 불리는데는 충분할 거다. 그렇게 된다면 자금에 대한 걱정은 끝이다.

"자, 고민도 해결됐으니 이제 기분 좋게 나서보자고!"

......

"흠흠, 잘 먹었습니다!"

한 명의 소녀가 기분이 좋은 듯, 텐션이 올라간 상태로 다 먹은 디저트를 식탁에 살짝 내려놓는다. 그리고 후다닥 의자 옆에 있는 하얀색의 모자를 쓰기 시작한다.

흑발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의 주위에는 여러 종족의 여학생들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귀여운 애완동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초리다.

"흐응~ 이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훨훨 날아다니던 천재님의 일상인가? 어제랑은 너무 다른 모습이라 대치가 안 되는데?"
"그러니까! 게다가 먹는 것이 그렇게 많은데 도대체 그게 다 어디로 가는 거야?"
"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들이 보내는 눈빛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눈동자를 깜빡거리는 브론.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며 그들은 슬쩍슬쩍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참는다.

"...? 내가 뭐 이상한 짓을 했니?"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 맞아! 정말 그냥 우리도 기분이 좀 좋아서."

사실 여기에 있는 여학생들은 브론과 실기 시험을 같이 받았던 학생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에게 구조를 받았거나 그녀와 같이 팀을 이루어 친해지게 된 학생들이다. 그러다가 이곳 <플러스토어>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되어 식사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아니, 진짜 어제의 브론은 진짜 멋졌다니까? 휙휙 날아가지고 골렘들을 일격에 쓰러트리는 모습, 이게 진정한 걸 크러시 아니겠어?"
"...거, 걸 크러시?"
"그러니까!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사실상 7각성의 멤버로서 그 시험을 이끌었잖아!"
"어? 고, 고마워. 아, 잠깐만! 이 접시를 갔다놓고 올게!"

여기저기서 그녀에 대한 칭찬이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들으면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수도 있는 말.... 이 아니라 실제로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진심을 알고 있기에 브론은 은근슬쩍 현재의 분위기를 회피한다.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드는 그녀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엄청난 토크 집중력이다.

"확실히.... 이 정도는 약간 부담스러운 거리이기도 하네."

한숨을 한 번 쉬고난 후에 그녀는 접시를 갖다놓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분명 이 주위에 접시들을 갖다놓는 곳이 따로 마련이 되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제도 분명히 여기쯤에서.... 아."

고개를 돌려보면 저 멀리 연두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정안섭이 식탁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같은 입학 시험에서 짧은 시간동안이었지만 동맹을 맺었던 인연이 있었다.

그의 어깨에 누군가가 팔을 올리는 것을 보아 함께 동석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손님의 몸에 가려져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혹여나 <그랜드 스쿨>에서 만날지도 모르니 인사 정도는 건네도 좋을 것이다.

한발짝 한발짝,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간다. 분명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의료실로 실려가는 모습밖에 보지 못해 감사 인사를 미처 전하지 못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머리에 붕대만 감고 있는 것으로 보면 괜찮은 것 같다.

(처음에는 손을 들면서 안녕, 이라고 시작하는 게 가장 좋겠지.)

"안녕, 정안섭! 분명 우리 어제 입학 시험에ㅅ....?"
"-아앙? 뭐냐, 네 자식은."

드디어 그의 식탁에 다달았을 무렵, 인사를 함과 동시에 그의 곁에 있던 동석자의 정체를 깨닫고는 손이 굳는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린다.

"...재-현?"


★★★


바깥을 구경하면서 생필품을 전부 구입하면, 어느새 어제 사건이 일어났다던 슬럼가와 이어지는 길인 뒷골목까지 오게 되었다. 직접 자신이 현장 검증을 하고 싶었다는 욕구가 들어났기 때문일까.

로딘에게서 들었던 기지의 위치와 신문의 사진에서 보였던 배경들을 대조하여 점차적으로 목적지에 가까워져 간다. 이렇게 건물이 많은 곳에서는 그런 장애물을 감안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가르쳐주는 <방향 탐지>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후우.... 이게 바로 흑월의 기지인가. 이 정도로 크게 박살난 걸 보면 어지간히도 폭탄을 많이 사용한 것 같은데."

사실 이 폐허를 보기 위해 이곳으로 굳이 오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다르다. 이곳의 흔적을 보면서 정황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지속저으로 가져다주는 로딘의 정보에도 어딘가가 빠져있는 부분이 있으니 이런 점은 내가 보충해야 하는 일이다.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잿가루를 손으로 만져본다. 타버린 종이조각들과 나무상자들에 의해 생겨버린 검은 가루들이 흑월의 검은 기지와 맞물려 한층 더 사악해 보인다.

"이 정도로 많이 나온다면.... 거의 환경 오염 수준 정도로 많이 탄 건가."

나 말고도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와있었다. 이 사태를 정리하고 있는 경비병들을 제외하더라도 슬럼가의 인물들일 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파괴된 흑월의 전 건물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거주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들린 것일까?

(그런 거,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문제지만, 나한테 피해를 주는 건 좀 관뒀으면 좋겠는데. <정신 수신>으로 들어오는 불만이 전보다 더 많아졌다는 건, 여기의 슬럼가 인원들도 이 폭발을 어제 인지했다는 말이잖아.)

보통 이러한 현상을 겪고나면 당분간은 불안과 공포에 의한 감정으로 나를 괴롭히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재빨리 흑월을 잡아들였다는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 불안이 지속된다는 말.

"여러모로 민폐라고, 흑월(黑月)."

후우, 한숨을 한 번 내쉰다. 괜히 또 일이 늘어났다는 사실 때문일 거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경비병들의 시야가 있어 내부까지 들어가 정보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외부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시각적 정보는 꽤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우선 정확한 확인을 위해 기사의 내용을 떠올린다. 내부에서 나타난 부상자는 두 명, 우연찮게라는 말로 포장한 외부의 부상자인 경비병들이 여러 명. 정체를 감출 수만 있다면 굳이 이 부분에서까지 거짓을 날조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로딘이 준 정보로는 내부의 두 사람은 우연찮게도 모두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정체는 바로 지난과 이틀 전에 만났던 경비 대장인 김승호로, 지금 이 경비대의 지휘를 맡고 있는 책임자가 김승호가 아니라는 것만 봐도 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난으로서는 그런 것보다 그저 분노로 속을 썩히고 있을 것 같지만.

"애초에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자신들의 기지를 폭파시킨다는 건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고. 겸사겸사 증거도 지우려고 그런 건가."

없어져버린 증거는 다시 복구가 힘들다. 거기에다 폭발로 인해 흩어져버린 증거들을 모아 정보를 수집하려고 해도 그건 그거대로 시간을 끌 수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적들을 많이 지울 수 있었겠지.

"다행히 작전을 신중하게 짜서 극단적인 인명 피해는 없는 것 같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유메니티>의 완벽한 패배다. 정보도 놓쳐, 흑월도 놓쳐, 인명 피해도 일어나고 말이야. 결정적으로 이 사건에 군중들이 인지를 했다는 것이 제일 마이너스군."

왜냐하면, 내가 피해를 입잖아. 오히려 더 불만 접수가 늘어났다고.
이제 이렇게 되면,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을까, 그게 아니면 다시 한 번 더 지난을 믿어보는 것이 좋을까.

만약 정말로 로딘의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 번 더 기회가 내일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인지하고 있는 나는 여기서 결정권이 주어진다.

"자아, 과연...."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계산을 해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차이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여기서 내가 움직인다면, 단 하나의 틈도 주지 않고 흑월의 모든 것들을 싹쓸어버릴 수 있겠지. 그야말로 완전 전멸. 아예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지난으로서는 낙담하겠지. 책임감이 강한 지난의 심리 상태는 현재 불안정하다. 내가 괜한 행동을 하면 괜히 그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그가 <정신 수신>을 이용해 나한테 부담을 주지는 않겠지만.

"어떡하지.... 정말 어떡해야 할까...?"

부하를 챙길 것일까, 그게 아니면 나한테 오는 부담을 줄일 것인가.
전의 나라면 틀림없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그저 없애버렸을 것이다. 지난에게 의견을 구하지도 않고. 왜냐하면 그로서도 그것이 제일 효과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업무 모드인 나로서는 미처 수호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서툴렀다.

"...그래, 지난도 내가 온다고 해서 열심히 노력한 것일 텐데, 초대받은 자가 나대면 안되겠지. 한 번 더 지켜보도록 해보도록 하겠어."

그 자신도 알고 있겠지.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그러면 오직 그 기회를 스스로 갈취해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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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1-08 14:31 | 조회 : 44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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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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