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제 1 경비대. 지금 현재 군은 어떤 것 같습니까?}
{아아, 이상 무. 기다린지 1시간이 넘었지만 아직 이쪽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곳은?}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나온 인원은 없다는 말이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만 끊도록 하죠.}
{-OK.}
흑월 포위 작전을 개시한 지, 벌써 1시간 24분. 아직까지도 다른 통로에 흑월의 조직원들이 보일 조짐이 없다. 계속해서 시간만이 흘러가는 사태.
현재 작전의 총 지휘를 맡은 김승호가 몇 번씩이나 통로 앞에 배치된 인원들에게서 정보를 요구하지만, 그 어느 통로에서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맡은 임무에는 최선을 다해야하는 상황.
김승호가 마지막으로 기사 단장과의 <전언>을 마치면, 곧 부하인 경비병들에게서 여러 번의 탄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밤늦게까지 야근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아니, 그것보다 애초에 여기가 흑월의 본거지가 맞는 거야? 괜히 그 길드 마스턴지 뭔지 하는 사람의 정보만 믿고 진행해도 되는 거냐고."
"...오늘도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건 힘들겠어."
이곳에 배치된 몇십 분 동안에는 팔팔했던 이들도 계속 이어지는 성과없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버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 모든 행동들이 신뢰없는 한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더 진이 빠지는 것이 당연, 모두가 지쳐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한 명의 경비병이 다른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승호에게 다가온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심상치 않은 표정에 김승호도 점차 부하들의 정신력이 떨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대장님, 그 길드 마스터란 작자.... 정말 믿어도 되는 겁니까? 제가 보기에는 흑월이 모험가에도 몇 명의 첩자를 심어두어 정보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게다가 그가 데리고 온 그 두 명의 모험가들도 저희들로서는 무작정 믿기는 힘듭니다."
그 발언은 직접적으로 그 세 사람을 의심하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물증도 없이 확정적으로 사태를 파악할 수는 없다.
"...증거가 없잖아. 저 둘이 그들의 첩자라는 사실이."
"하지만! 방금 전에 그 세 사람에게 <전언>을 넣었을 때도 그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잖습니까?! 본래 작전은 적어도 몇십 분마다 한 번씩 서로 정보를 주고 받자는 계획이었는데, 그 의무조차 시행하지 않다니. 이게 배신이 아니면 뭡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지. 애초에 흑월의 전력은 국가로서도 측정 불가다. <전언>을 하지 못하게 될 확률이 적지는 않을 거다. 그게 아니면 이 건물 자체가 마법 그 자체를 막을 수도 있고, 가능성은 수백 가지다. 괜한 의심 말고 제자리로 가."
어찌저찌 의심이 많은 부하를 다시 보내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말도 지당하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나 그들에 대해 변호를 해주는 대장이 이상한 게 아닐까.
사실 프리먼과 빙혈은 기절, 지난은 <격리 공간>의 안에 있어 <전언>이 닿지 않았던 것뿐이지만, 아무런 연락이 되지 않아 정보가 없는 그들로서는 쉽사리 행동도 취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서 잠자코 기다릴 뿐이다.
그가 고민을 하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가 다시 김승호에게 <전언>을 걸어왔다. 방금 전의 기사 단장이었다.
{김승호 대장인가. 여기는 기사 단장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음.... 내가 기사 단장이라고 굳이 높임말을 쓸 필요는 없다만, 지금 중요한 때니까 그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지금 모험가들이 전부 연락이 끊겨져 있는데, 우리들도 침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부에서 말이 나왔다.}
김승호가 흑월의 내부 사태에서 이상함을 감지하고 그 이상의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에 비해 기사 단장은 그 즉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방안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협조를 얻기 위해 이렇게 자신에게 계획을 알려주는 거겠지.
(과연, 이 자도 알아챈 건가. 나도 부하들이 알려줘서 겨우 눈치챈 것을 스스로 터득하다니, 역시 폐하의 방패는 두뇌도 명석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몇십 년 동안이나 전장에 서있는 기사 단장과는 달리, 평화롭게 경비대를 운영하고 있었던 자신은 그 사이에 물러터져버린 걸 수도 있다. 썩혀진 실력 따위, 이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이 사건이 끝나고 슬슬 은퇴해야 하나.... 나름 내 또래 중에서는 잘 나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자만이었군.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이런 평화로운 생각을 할 여유는 없겠지.)
하지만 그 물러터진 계획이라는 것은 아직 실천할 때가 아니다. 적어도 이런 어디에서 갑자기 마법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전장에서까지 가져올 생각이 아니란 말이다. 지금만이라도 그는 한 명의 수장으로서 도움이 되야 했다.
(그래, 지금은 이 일에만 집중하자. 은퇴는 그 다음 문제다.)
-이것이 바로 프로의 자세인 경비대의 대장, 김승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내부 침입을 할 인원은 어느 정도로 할 생각이십니까?}
{음.... 그리 바로 확답을 줄 지는 나도 예상은 못했지만, 우선은 내가 직접 군을 이끌고 갈 생각이다. 적어도 저 내부에 한 명 정도는 그 괴물같은 녀석을 곤란하게 만들 자가 있다는 뜻이니까.}
직접 나서 흑월의 안을 살펴보겠다는 기사 단장.
당연히 그가 직접 나서게 된다면 전력적으로는 문제가 전혀 없다. 비록 지난이 이겨내지 못한 함정이 있더라도 <모험가 길드>에서 사무적인 업무만 보던 그보다는 더 경험이 많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직접 나선다면 반대로 이곳의 전력은 약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 사태를 막기 위해 지난이 당신을 그곳에 배치해 둔 것이 아닌지?}
{.....}
다만 이 작전은 그곳에 모든 흑월의 전력이 있다는 가정하에 진행되는 작전이었다.
만약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이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이곳으로 내려온다면 아무리 남은 인원 중에서 가장 강한 김승호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다. 기사 단장도 그 리스크를 알기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일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흑월의 내부를 살펴보면서도 이곳을 지킨다는,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그러니까, 흑월 기지에는 내가 들어갑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
그리고 그 방법을 알고 있던 김승호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비록 이 날이 그의 마지막 생애가 될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안된다! 저 안에는 네가 죽을 수도 있을 만한 실력자들과 함정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되면 너는 분명히 죽게 될 거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거. 하지만 희생이 없으면 이 작전의 실패 확률은 커지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그걸 대장인 제가 떠맡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김승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옆에서 투덜대고 있는 부하들을 힐끔 쳐다본다.
가족이 있지만, 항상 야근으로 인해서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했던 이안.
경비병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실히 부모님을 모시며 잘 사는 에런.
이 사태가 끝나면 다음 달에 여자친구와 결혼하게 될 브룩스.
{-적어도 다른 놈들은 죽으면 고통받을 가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재빠르게 훑어보고만 올 테니, 단장님은 여기서 계속 다른 조직원들이 오지 않나 살펴봐 주십시오.}
{저, 잠깐! 혼자 무슨 말을 하는 거-}
팟, 김승호는 더 이상 기사 단장의 말을 듣지 않고 강제로 <전언>에 사용하던 마력을 끊어버린다.
본래 지시관이 이렇게 전장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안되는 것이 원칙적이지만, 여러 경험이 쌓인 기사 단장이라면 곧바로 사실을 알아채고 작전의 수정을 거칠 것이다. 그와 만나본 일은 손에 꼽을 만큼밖에 없지만, 이 짧은 시간 내에 그에게서 강한 신뢰감을 얻었다.
(만약에 다음이 있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싶군. 그때가 올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 마음 먹었으면 이제 실천할 뿐이다. 기사 단장이 무슨 짓을 벌이기 전에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 한다.
"아, 얘들아. 미안한데, 나 화장실 좀 갔다와도 되냐?"
"-? 예, 가십시오."
★★★
"이제 곧 최상층인가. 잠겨있군."
<격리 공간> 속, 지난은 마력의 흔적을 쫓아 눈앞의 검은 색의 거대한 대문을 눈앞에 두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지금 이 문 안에 있는 자가 방금 전 사태를 만든 장본인.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는 존재다. 그러나 분노로 진정한 목적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나저나 내가 이곳까지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가지 않다니, 무모한 녀석이군. 아니,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그 녀석처럼 전체적으로 흑월 기지의 모든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른 프로 모험가 수준 이상의 탐지는 가능한 지난이었기에 이 앞의 강력한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간을 끌 여유는 없어.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는 지난이 오른쪽 주먹을 뒤로 한 채 포즈를 잡는다. 이 정도의 거대한 철문도 부숴버릴 수 있을 절륜한 위력만큼의 마력을 담으면서 그대로, 앞으로 움직인다.
-쾅!
곧 폭발음과 함께 철문이 크게 뒤로 날아갔다. 그의 손은 아무런 부상없이 멀쩡했다. 아까와 달라진 점이라면 오직 하나의 빛만이 보이는, 아주 칠흑같은 어둠만이 반겨주는 복도가 새로 생겼을 뿐이다.
"....."
복도마다 얼핏얼핏 놓여있는 나무 상자들이 복도 양 끝부분에 빼곡히 쌓여있어 의문을 불러오기는 했지만, 흑월들이 옮기려던 자료라고 생각하며 지나친다. 이러한 것들은 이 공간에서 나가자마자 그 즉시 조사해보면 될 것이다.
한참동안 함정의 유무를 파악하며 빛이 나오는 복도 끝 부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마력의 농도가 짙어져오는 현상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과 더불어 천장에 나오는 불길한 빛은 그 장소를 지옥으로 돌변시킨다.
-또각
드디어 지난의 구두가 통로의 끝에 도달았을 때,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을 흑월의 부문장들이 사용하던 회의장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테이블과 그 주위의 여섯 개의 흑색 의자. 천장에는 빛을 밝혀줄 조명이 있긴 했지만, 오히려 이 장소의 어두운 분위기를 강조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주위에는 아까 전의 복도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나무 상자들이 놓여있었다.
거기에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인해 당황한 것처럼 여기저기 널려있는 종이들.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거기에는 전부 자신들의 부문에서 맡은 여러 가지의 의뢰표들이 눈에 띄었다.
"이것들은.... 어디에 눈을 둬도 전부 범죄적인 요소들뿐이군. 그것보다 아직까지도 온기가 남아있어. 격리된 공간 속이라지만 이런 외부적인 요소들까지도 포함되는 건가."
이 서류들을 전부 온전히 챙겨가기만 해도 이번 작전의 의의는 충분했다. 다음번의 꼬리를 추적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또 하나, 예상치 못한 수확이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이 나라의 귀족들의 이름도 전부 리스트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걸로 드디어 나라를 좀먹는 배신자들을 처리할 강력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 전에 이곳에서 나가야 하지만.
"...잠깐, 그런데 왜 이 온기가 아직도 있는 거지? 침입한지 벌써 1시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있지만은 않았을 텐데."
거기에 더불어 아까까지 이곳에서 마력을 내뿜었던 자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그의 탐지 범위가 넓지 않다고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 있다면 자연스레 눈에 띄게 될 것, 그런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기색이 보이지가 않았다. 마력은 이 방의 전체를 뒤덮고 있기에 이제 더이상 마력으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망을 간 건가? 아니, 이 문을 제외하면 창문도 다 상자들로 막혀있고, 따로 비밀 통로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도대체...."
번뜩, 순간적으로 '그 녀석'이 말한 암살자들의 특성이 떠오른다. 같은 동업자로서 이 흑월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의 조언이자 충고.
(-너, 정말로 은신 파악 능력이 제로구나. 이렇게나 재능이 없는 자도 드문데.)
(...애초에 수도권 전체가 기본 탐지 범위인 너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안될 것 같은데 말이지? 나도 이래봬도 웬만한 프로 모험가 이상인데.)
(그런 핑계, 전투 중에는 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저 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고치는 편이 훨씬 더 이로우니까. 잘 들어, 나 같이 능숙한 자들은 절대 상대방의 앞에서 상대하지 않아. 오히려 상대방의 사각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가 한 방을 노리지. 그러니까-)
-그런 자를 상대할 때는 항상 배후를 조심하라고.
"이런-!"
그 말을 떠올리자마자 확실히 어떤 기척이 지난의 뒤를 노리는 것이 은연 중에 느껴진다. 살의는 커녕 마치 장난을 치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어떻게든 느낄 수 있을 정도.
우선 적이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은 그것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잠깐, 그런데 내 앞에는 거대 테이블이....)
이미 뒤의 그림자는 지난의 회피 경로까지 미리 예상하고 뒤와 옆에 대한 대비를 해두었을 터, 그렇게 되면 앞으로 피하는 것이 그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수이다. 선택지가 없다. 신경쓰지 않고 테이블 위로 점프한다.
뒤에서 무언가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세기를 보아 무기의 부피는 크지 않을 듯하다. 아마 은밀하지만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한손 무기일 가능성이 크다.
쉬익, 이번에는 무언가 이쪽으로 날아온다. 위치는 그가 착지하려는 곳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말은 발이 땅에 닿자마자 부상을 입힐 작정이었다.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살해할 목적이 담긴 진심의 일격.
(그렇게 둘 순 없지.)
지난이 공중에 머물러 있는 중, 오른발로 밑의 테이블의 한 부분을 세게 누른다. 테이블은 곧 위로 높게 치솟더니, 임시방편이지만 그의 앞을 가로막는 하나의 장벽이 되버린다. 아주 날카롭게 날이 갈린 단검 세 개가 순식간에 테이블을 향해 거의 동시에 꽂힌다.
그 묘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은 왼발로 테이블을 뒤로 찬다. 방향은 단검을 날린 그림자에게로 정확히 날아간다. 우선 상대방의 대해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녀석과 같은 수단을 사용하는 걸 보면 동업의 암살자라는 건 일단 확실하지만. 그러나 그 외의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자, 한 번 모습을 봐볼까."
모습을 드러나도록 유도하면서도 절대 눈앞의 자에게서 시야를 떼지 않는다. 테이블은 빠른 속도로 적을 향해 똑바로 날아간다. 과연 단검만으로 간단하게 자르는 것은 무리겠지. 그러면 피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수밖에.
"...어리석은 짓을."
"오."
순식간에 여러 크기의 조각들로 흩어지는 테이블. 이미 원형은 남아있지 않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며 첫 마디를 꺼낸 암살자의 손에는 단검 대신 와이어가 있었다. 무기 교체 타이밍인가.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무기를 파악했으면 별 문제가 없다. 어차피 그 녀석만큼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을 테니. 모든 걸 그 자와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이 분야에서만큼은 최고봉인 자이기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빨리 정리할 뿐이지.)
말없이 와이어를 휘두른다. 가늘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공격이고 하물며 밤이라 어두워 보이지도 않지만 전투 상태의 지난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져 있었다. 방어 마법도 전개하지 않은 채 전부 맨손으로 튕겨낸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에 이번에는 급소를 노리지만, 그 수법 역시 지난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암살자로서 가장 목숨을 빨리 끊기 위해 노린 것이겠지만 오히려 그 수가 더욱 패턴을 단조롭게 만든다.
"포기해, 너로는 나를 이길 수 없어."
그의 앞까지 와 오른쪽 주먹을 살짝 휘두른다. 하지만 그 위력은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이어 상대방의 생명의 경종을 울린다. 말도 안되는 점프력으로 위로 치솟는 그림자. 저 자로서는 제일 우선의 생명책을 선택한 것이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지난의 노림수였다. 공중에 머물러 있는 사이였다. 위쪽으로 손바닥을 내민다.
천천히 감기는 손바닥의 마력.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위력을 담아본다. 어차피 <격리 공간>의 안인 만큼, 현실에서는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다.
"-<폭파>."
모험가 중에서도 몇십 년의 경력의 지닌 프로 모험가 정도가 사용 가능하다고 알려진 D급 마법. 그러나 그가 사용하면 몇 배의 위력을 보여 더욱 위협적으로 변모한다.
이 대폭발에는 충격을 흡수하는 흑월의 벽에 거대한 구멍이 동그랗게 뚫려 바깥 풍경이 보일 정도였다. 만약 이곳이 격리되지 않은 공간이었다면, 밖에서 대기 중인 경비대와 군에게 포착될 정도로. 다만 상대방의 전의를 깎는데는 본의 아니게 성공한 듯하다.
"...설마,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날 줄은-"
어느새 벽에 붙어 그가 뚫은 구멍 바로 위에서 아연실색한다. 비로소 지금에와서야 지난과 자신간의 전력차를 실감했을 테다.
"이제와서 후회해도 늦었어. 네 녀석의 운명은 곧장 재판행이다. 그러니까, 순순히 따라오지 않겠나?"
아마 이 제안에 응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혹여나 몰라 한 번 질문해본다. 체포 전, 범인에게 투항 권고를 하는 것이 경비대의 의무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 권한을 어느 정도 위임받은 이상, 법칙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
"그래, 침묵인가. 마침 잘 됐어. 나도 지금까지 계속 화를 참아온 터라 어디선가 날뛸 필요가 있었는데 딱 자리가 마련이 되어 있었군. 여기서라면 가능하겠어."
비록 전투 때에는 침착해야 한다지만 이 3일 사이에 너무나 많은 심리적 고통을 껴안게됐다. 이제는 터트려도 되지 않을까.
순간 지난이 위협적이라는 걸 알았는지 그림자가 <연막> 마법을 써 이곳 전체를 연기로 감싸게 한다. 그래봤자 지금의 지난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이 자도 그걸 인지하지 않은 채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다.
저 멀리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곧 여러 개의 단검이 그의 눈 부분과 심장, 목 부분 등 여러 치명적인 부위로 날아온다. 역시나 별 문제없이 두 손가락 사이로 칼날을 잡는다.
곧장 연속으로 여러 방향에서 날려지는 흉기들. 지난은 여전히 별 어려움 없이 몇 자루는 잡고 피하면서 그를 눈으로 쫓고 있다. 의미없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원거리로 날 상대하려는 거군. 체력의 소모를 노리는 건가?)
인간이지만, 동시에 수호자인 지난은 강하다. 이 정도의 전투로는 숨도 차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저 자가 가만히 있는 지난을 상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더 체력 소모가 아닐까.
(영 의도를 모르겠군. 하지만 적어도 저 녀석의 전력은 깨달았다.)
다른 자들과 다르게 여러 곳에서 단검이 거의 동시에 자신에게 온다는 점은 신기하긴 하다. 아까 전처럼 와이어를 이용하여 적의 급소를 능숙하게 노리는 것도 강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점점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위를 돌면서 여러 방향으로 단검을 던지기는 하지만 격상의 자신에게는 통하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더 수가 없다는 얘기.
"그렇다면 이제, 끝내자. 시간 낭비는 끝이다."
전체적으로 모든 걸 파악한 지난은 그림자가 이동할 경로를 예상하여 연기 속에서 등장한다. 예상치 못한 돌진에 그림자도 대응이 늦어버린다.
지난은 손끝을 모아 손으로 찌르기 적합한 모양을 만든다. 그 후에 손끝에 적정량의 마력을 담아 망토로 감춰진 그림자의 중앙 부분을 노려, 찌른다.
"-!"
"너같이 날카로운 걸 다루는 녀석에게는 이걸로 상대해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창격>!"
거친 마력의 흔적이 그림자의 몸통을 사정없이 관통한다. 마법으로 더욱 정밀해진 찌르기와 더불어 거침없는 그의 손놀림의 합이 맞아떨어지면서 그림자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고통으로 물들어진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팔을 뒤로 빼는 지난. 그의 손에는 금속과 같이 철분이 함유된 붉은 액체가 바닥으로 뚝뚝 흐르고 있었다. 쇠 냄새가 나는 비릿한 냄새 속에서 바닥으로 쓰러진 그림자가 실성한듯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잠깐 정도만 바닥으로 가라앉아있던 연기도 이제는 바깥과 연결된 구멍을 통해 전부 나가버렸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지난은 그저 담담히 <모험가 길드>의 수장으로서 한 마디 한다.
"자, 아직 네 녀석의 이름은 알 수가 없지만, 너를 체포하겠다. 잠자코 이제 <격리 공간>을 푸는 것이 좋을 거야."
"---"
"이미 통로부터 있던 상자들은 내가 전부 봐두었다. 아마 다른 기지로 옮기려고 미리 둔 거겠지만은, 벌써 증거는 모두 확보되었어. 빨리 항복해라."
"-ㄱ는군...."
"...뭐?"
그의 말에 한동안 하염없이 웃고 있던 그림자의 웃음 소리가 문득 끊겨버린다. 그리고는 서서히 얼굴을 들어 피와 같은 적안으로 눈앞의 강자를 노려본다.
"웃긴다고.... 정말.... 이 아무것도 모르고 조롱당하는 네 녀석의 말로가 말이다."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치는군. 넌 이미 도망갈 때도, 나와 싸워서 이길 수도 없다."
"크크큭....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1차원적인 말이 아니다. 약간 어긋나긴 했지만, 이건 '계획대로'니까."
"...?"
지난이 혹여나 무언가 있을까 주위를 둘러본다. 그 사이에 도망갈까 그를 은연중에 감시하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눈에 띄는 것은 보이지가 않는다. 기껏해야 저 벽의 구멍으로 그가 도망친다는 시나리오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봤자 지난이 금방 뒤쫓겠지만.
"저기,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 여기에 올 때까지 부문장들이 보이지 않았는지."
"그거야 당연히 이곳이 <격리 공간> 속-"
지난이 반박하며 말하려고 했지만, 곧 다시 주위의 환경을 둘러본다.
<격리 공간> 속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현실이 아닌 또 다른 환영과 같은 존재이기에 현실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이 공간 속에서 깽판을 쳐도 현실에서는 아무런 영향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의 정체는 뭘까? 이 공간 속에는 우리들 밖에 없을 텐데."
"...설, 마...."
그리고 또 한가지의 특성은 바로 이 공간 마법에 걸려든 자 이외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다. 만약 스크롤과 같이 마법이 각인되었던 것을 풀었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이번에는 저 자가 직접 사용했을 테다. 그러니 이 공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불가능할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지난, 무사한 건가?"
"...김승호! 여기는 어떻게?!"
무심코 그 자의 말에 따라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정말로 이 나라의 경비 대장인 남성이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오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그 사이, 그림자는 구멍이 뚫린 곳으로 향한다. 그러고선 지난을 조롱하기 시작한다.
"크흐흐흐흐, 벌써 모든 부문장들은 <전이> 스크롤을 이용해서 비밀 기지로 이동했다. 네가 올라있있었을 때는 이미 다른 곳으로 향했지."
"-제길! 이 녀석이! 놓칠 것 같냐!"
잠시 동안 의식이 김승호에게 멀어졌을 동안, 벌써 그는 구멍을 향해 낙하하려는 참이었다. 지금 가도 타이밍이 될 것 같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이 자가 떨어지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 때문이었다.
"아참, 참고로 그 박스 안에 든 것들은 전부 폭탄이다. 괴물 같은 네 녀석은 살아남을 지도 모르지만 그 김승호라는 작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럼, 더는 뵙지 않았으면 좋겠네."
"...뭐?"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밑의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아무것도 모르는 김승호가 지난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몇 층을 달려왔는지는 몰라도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보아 쉬지 않고 달려온 듯했다.
"하아, 하아.... 드디어 찾았다, 지난. 왜 도대체 <전언>을 받지 않는 거야.... 하아."
"...<전언>?! 잠깐, 설마!"
김승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지난은 하루빨리 이 장소에 있을 두 모험가에게 <전언>을 걸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연락을 받지 않는다.
"받아.... 제발 받으라고.... 이 새끼들아! 프리먼, 빙혈!"
"지, 지난! 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다른 부문장들은?"
패닉한 지난이 허둥지둥하는 와중에도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김승호는 그를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림자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나온 반응일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모든 상자들에게서 째각, 째각, 시계 바늘이 조금씩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뭐, 뭐지, 이 소리는? 어이, 지난 이것은 어떻게 된-"
"-도망쳐."
그의 단호한 말투에 김승호가 되물어보았다. 하지만 모든 걸 아는 지난으로서는 이제-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 김승ㅎ-!"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가 말을 끝마칠 틈도 없이 건물의 윗부분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