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밤 (5)

-3층, 좌측 계단

"이 자식이! <분노의 주먹>!"
"흐응. <분노의 주먹>."

두 거한이 서로 마주보면서 주먹을 날린다. 서로의 균형은 한동안 팽팽하더니 곧바로 두 마법이 동시에 깨져버리고 만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한 뒤의 [멸의 지룡] 클랜원들과는 달리, 프리먼은 클랜의 수장답게 그 누구에게도 손을 대지 못하게 방어한다. 현장의 긴장된 분위기는 모두의 숨을 멈추게 만든다.

"크윽, 네 녀석은 뭐야?! 갑자기 다짜고짜 공격하다니!"
"멍청한 자식. 남의 거주지에 쳐들어온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거냐."

짜증나는 선배의 명령에 따라 좌측의 계단을 탐색하고 있던 도중 프리먼은 거구의 남성에 의해 기습을 받게 된다.
얼핏 위의 대화를 들으면 죄를 진 인물은 프리먼이라 착각할 지도 모르지만 엄연히 그는 법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 눈앞의 인상 나쁜 아저씨와는 다른 케이스란 말이다.

"닥쳐! 범죄자 주제에 뭔 그런 상식적인 말을 하는 거냐! 게다가 덩치에 맞지 않게 기습이나 걸어오다니, 정정당당히 마주보고 싸우자고!"
"그러는 너도 덩치에 맞지 않게 상당히 정의로운 자군. 인상만 본다면 당장이라도 내가 스카웃하고 싶을 정도야. 너, 이쪽으로 넘어올 생각 없냐?"
"방금 전 그 소리를 듣고 넘어갈 바보가 있겠냐? 죽어!"

분노로 흥분한 목소리와 동시에 프리먼이 앞으로 돌진했다.
방금 잠깐동안의 합으로 느낀 점이 있다면, 이 경비 부문장이라는 자는 상당히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동급 수준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무작정 돌진을 하는 것으로는 그를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프리먼 자신조차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필요는 있을 터, 우선은 그것을 알아내야 후에 자신이 유리해진다.

(쓰러트릴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없애버리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여러 가지 묘책을 쓰는 수밖에 없겠지. 일단은 접근전으로 가야겠군!)

"으아아아아아! 너는 곧 쓰러지게 될 거다!"
"흥! 무늬만 모험가인 자식이 나대는군!"

그의 돌진에 경비 부문장이 응하면서 두 사람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력을 담아 주먹을 휘둘렀다. 비록 모험가의 입장이라 도적같은 범법자들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쳐본적이 없는 프리먼이었지만, 그래도 힘에서만큼은 같은 등급의 모험가들 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지라 쉽게 밀리지는 않았다.

프리먼의 주먹이 적의 오른쪽 팔에 명중했다. 곧바로 적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자신도 즉시 상대의 코를 향해 주먹을 날려 맞춘다. 잠시 휘청대는 듯한 경비 부문장이었지만 자극을 받았는지 오히려 멈추지 않고 연격을 날린다. 프리먼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으아아아아아!"
"흐어어어어엇!"

그리고 둘은 동시에 상대의 얼굴을 향해 서로 카운터를 날린다. 두 사람 모두 이번에는 충격이 상당히 컸는지 잠시 뒤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바닥으로 쓰러지지는 않는다.

뒤에서 그 둘의 격한 싸움을 보고 있던 클랜원들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패닉 상태로 있었다. 자신들의 수장인 프리먼과 동급인 적이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고 오히려 짐이 될 가능성이 더 컸지만 그래도 돕지 않으면, 생각도 들어 생겨나버린 갈등.

혹여나 자신들의 클랜 마스터가 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지만, 그 설마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을 최악의 상황이 꼭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100% 이기는 싸움이라는 것은 없는 법이었으니까.

"<분노의 주먹>!"
"<분노의 주먹>!"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일방적인 전투는 아직까지도 서로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한계가 있을 테니 언젠가는 쓰러질 터, 도우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도와야 한다.

"역시, 우리들은 프리먼을 도와야 한다. 이긴다고 해도 벌써부터야 체력을 소모해버리면 나중의 중요한 검거 때에 녀석을 놓쳐버리고 말 거다."
"그러다 인질이 되어서 선배의 발목을 잡아버리면 어떻게 할 건데요? 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실력자를 상대로 너무 무모해요!"

이런 긴박한 때에 의견은 좀처럼 좁아지기 어려워 보였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였기에.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두 사람의 싸움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다.

프리먼이 왼쪽 주먹을 전력을 담아 날리는 것을 경비 부문장도 봐주지 않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힘껏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나름 여유있는 표정으로 도발적인 말투와 더불어 프리먼의 주먹을 꽉 쥐기 시작한다.

"흐흐흐, 뭔진 모르겠지만 네 클랜원들 전부 초조해보이는 표정이군. 왜? 버거우면 지금 당장 저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되는데? 그 정도는 나도 기다려 줄게, 앙?"
"...하아, 하아. 들을 필요도 없어. 보나마나 인질로 삼으려고 그러는 거겠지."
"으음? 정말로 그게 본심인 거냐? 아니, 내가 보기에는 저 녀석들이 이 전투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쓰레기라는 말을 돌려서 표현하는 것 같은데?"
"-닥쳐!"

서서히 나오는 동료 비난적인 말에 프리먼이 순간적인 격노로 또 하나의 주먹을 그의 턱을 향해 날렸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경비 부문장도 다시 손바닥으로 방어하면서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면서도 그의 추악한 입놀림은 멈추지 않는다.

"흐하하하하! 맞네, 맞아! 내가 뒷세계에서 몇 번이나 살펴본 결과 이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녀석의 본심은 하나였어. 바로 모든 말이 다 거짓이었지. 그러니까 너의 그 격한 반응도 전부 거짓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거다!"
"...이 새끼가...."
"그래, 딱 네 뒤에 있으니까 싫어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 적어도 네 녀석의 부하들이니까 말이야...!"

-턱

그가 대화로 잠시 정신을 다른 쪽으로 돌렸을 때 경비 부문장이 프리먼의 다리를 발로 차 균형을 무너트렸다. 그러고서는 곧장 그의 두 주먹을 잽싸게 놓고는 다시 주먹으로 그의 안면에 연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자아, 너와의 잡담은 딱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나도 일해야 할 시간이라."

다시 한 번 기습을 당한 프리먼으로선 어떻게든 그의 극심한 연격을 두꺼운 두 팔로 막아보려고 하지만, 이미 한 번에 너무나도 많은 데미지를 입은 탓에 완전한 방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방 한 방 살의를 담아 날리는 흑월 부문장의 주먹은 다른 평범한 시민이라면 한 방이라도 끔찍하게 살해당할 수 있는 위력을 품고 있다. 그저 어디까지나 모험가의 육체를 지닌 프리먼의 맷집이 그것을 버텨내고 있는 것이었을 뿐이며, 데미지는 그대로 몸에 축적된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일반적으로 단련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급소를 친다면 어떻게 될까?

"마지막으로.... ! <폭파>-!"

이번에는 완전히 그를 죽일 생각인지 아까 그와 전면전을 벌였을 때는 사용하지 않았던 D급 마법까지도 사용한다. 그의 주먹은 프리먼의 턱을 노려 밑에서부터 위로 솟구쳤으며 동시에 엄청난 폭발음이 나면서 폭발이 나버린다. 순식간에 깊게 깔리는 연기가 프리먼의 얼굴 전체를 감싼다.

"-프리먼!"
"이, 이런. 빨리 길드 마스터에게 <전언>을 날려!"

그때서야 지난에게 <전언>을 날리자는 의견으로 결정이 났던 [멸의 지룡]이었지만, 그 전에 자신들의 클랜 마스터인 프리먼이 패배해버렸다. 지금의 그들의 기분은 단결된 마음으로 생애 최악이다.

"...후우. 아까 전에 내 부하로 들어온다면은 부디 목숨만은 살려둘려고 했었는데. 너무나도 싱거운 상대였군."
"비겁하긴! 그냥 순전히 기습으로 쓰러트린 거면서!"
"-<분노의 주먹>."

항의하는 시끄러운 날벌레들을 자신의 남은 분노들로 말끔히 해치워버리는 경비 부문장. 나름대로 그 성가신 길드장이 이곳으로 오려는 행위를 막으려는 의도 또한 은연중에 있던 것도 사실이다.

자신과 실력이 비슷할 클랜 마스터와 하나의 클랜들을 상대로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으며, 많은 곳에 새겨진 싸움의 흔적들이 그가 어느 정도 고전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목숨이 걸린 싸움을 하는 것은, 암살 부문장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해도 사양하고 싶었다.

"나는 약한 놈을 천천히 희롱하는 쪽을 좋아하지, 강자들과 치고받는 싸움은 안 좋아하니까."

그러나 그의 신속한 대처에도 불구하고 이쪽으로 누군가가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그 성가신 마스터가 이리로 달려오는 듯 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회피할 수밖에 없는 신세다.

그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꾸깃꾸깃한 스크롤을 확인하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그 암살자가 새겨놓은 하나의 마법이 그 안에 각인되어 있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직접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었는데, 괜한 놈 의뢰에 내가 오히려 말려들어가는 것은 나조차 거절하겠다. 그 녀석에게만 좋은 꼴 보이는 셈이니까 말이야. 으으, 생각만 해도 짜증나는군."

자신의 주먹에 미미한 촉감이 남아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 그 공격으로 즉사했을 것이라고는 보기가 힘들었다. 다만, 이 정도의 확실한 공격이라면 아무리 이 자라도 기절 정도는 했겠지. 정확히 급소를 때렸으니까.

"운이 좋았어, 너도. 그리고 나도. 이 정도에서 끝났다는 거에 말이야."

더이상 들리지 않을 모험가에게 마지막 말을 건네는 자비를 베풀어주는 큰 면모를 보여준다. 이 얼마나 마음이 깊은 자신인가. 마침 저 멀리서만 들렸던 발소리의 주인도 이제는 그의 시야에 보이는 정도가 되었으니 물러날 타이밍이 딱 된 것이다.

"프리먼, 어떻게 된 거냐! 뭐.... 네가 경비 부문장인가!"
"빙고. 바로 맞췄어. 그런데 어쩌나, 곧바로 헤어져야 하는데."

곧 그를 눈치챈 지난이 마법을 걸어 그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지만, 그보다 그가 스크롤을 쓰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이곳에 오기까지 거리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는 정보로만 들은 길드 마스터를 보고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보면서 추악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미 늦었어, 길드장. 여기서 끝이다."


★★★


지난이 <전언>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그 장소 전체가 참혹한 환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경비 부문장의 뒤에 엎드려 쓰러져있는 프리먼의 모습을 확인했다. 거구의 30대 후반의 남성이라고 들었으니 확실할 것이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도 다 판단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인원수가 모두 쓰러져 있는 그의 클랜원들. 거기까지라면 지난 자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보에 의해 경비 부문장이라는 자의 전력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아무리 그 자가 강하더라고 해도 <유메니티>의 모험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인 프리먼을 쓰러트릴 줄은 지난조차 예측하지 못한 사태였다. 그 뭐라해도 프리먼과 빙혈은 그가 직접 양성해온 후배들 중에서도 강한 편이었으니까.

"-이 자식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면, 당장 <가속> 마법을 발동하여 적을 향해 분노의 돌진을 감행한다. 또 다른 피해자를 냈다는 사실에 자책하면서도, 곧장 복수를 하기 위해 흑월 포위 작전에 영향이 갈 수도 있는 자신의 담당 구역을 포기하면서까지 그에게 달려든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실제로 겪으니 정말 최악인 기분이다. 혹시라도 내가 전력을 잘못 판단한 건가?)

방금 전, 혹여나 하는 마음에 빙혈에게도 <전언>을 걸어보았지만, 그 또한 받지 않았다. 만약 눈앞의 상황과 완전히 똑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온갖 좋지 않은 상상들과 순간적으로 일어난 분노에 몸을 침식당하는 지난이었지만, 두 번의 경험을 거친 지금에서는 감각적으로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그도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진정하자. 우선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할까.)

먼저, 제일 이상한 점은 그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여유있다는 듯이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손에 무슨 스크롤을 들고 있는 것 또한 의문점이 든다.

(솔직히 저 녀석 혼자의 전력으로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를 이길 수가 없어. 그렇다는 말은 사이에 함정이 있거나 저 스크롤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군.)

첫번째로 함정이라면 그나마 생각해볼만 아이디어다. 만약 다수에게도 적용되는 함정이라면 이 정도의 수가 쓰러진 이유는 나름대로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그의 강화된 온갖 오감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함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게다가 이렇게나 많은 인원들 중 단 한 명도 함정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이 함정에 프리먼이 걸렸다고 해도 그를 이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거법으로 저 스크롤인가. 하지만 이러면 너무 사용할 수 있는 범위의 마법 종류가 많아 파악이 힘든데, 어떻게 하지?)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가능했으나 머리를 쓰는 심리전은 다소 부족한 지난.
저 마법의 정체에 따라 그의 이 행동이 독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근거리까지 다가온 이상, 더는 멈출 수가 없다.

두 사람의 거리는 이제 200m까지 줄어들었으며 지난은 오른쪽 주먹을 위로 들어올렸다.

"이 범죄자 녀석! 더는 도망칠 때가 없어!"
"-하하하, 이미 늦었다고! 이건 <전이>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라고!"

지난을 조롱하려는 듯, 일부러 가까워졌을 때 스크롤을 발동하려는 경비 부문장.
사실 이 <전이> 마법은 흑월의 또다른 아지트로 이어져 있었다. <전이> 마법의 기본 조건은 시전자가 가본 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 장소도 모르는 지난 일행이 쫓아올 수 있을 리가 없다.

(흐흐, 지금의 저 녀석이 짓는 놀란 표정. 정말로도 기분이 좋아. 다 잡은 적을 눈앞에서 놓치다니, 얼마나 절망스럽겠어?)

그를 생각으로 희롱하면서 추악한 미소를 짓는 경비 부문장. 조금 있으면 그들과 작별이었다. 그 절망적인 모습을 직접 눈에 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상상만으로도 격렬한 즐거움을 느낀다.

눈앞의 그가 보기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이제는 종지부를 찍을 차례.

"자, 이대로 작별이다! <전ㅇ!>"


-터억


스크롤을 찢어, 마법을 영창하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목을 조른다. 자연스레 영창은 무효가 되었고, 여전히 길드 마스터는 그의 앞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당황해 재빨리 그의 목을 조르는 팔을 빼내려고 하지만, 생각보다 두꺼운 팔뚝과 자신에게도 지지 않는 힘, 그리고 뒤에 있어 행동이 쉽지 않아 대항하기가 어렵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 생각조차 잘 되지 않는다.

(크윽! 뭐야, 뒤에 이 자식은? 분명 다른 녀석들은 다 처리했을 텐데? 그게 아니면 나 몰래 숨겨진 복병이 있었던 건가?!)

계속해서 자신의 목을 조르는 두꺼운 팔목을 빼내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는 도중에도 성가신 괴물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미 스크롤은 바닥으로 놓쳐버려 다시 주울 수도 없다.

"-내가 말했지. 너는 곧 쓰러지게 될 거라고."

그때, 위에서 그를 조르고 있는 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까까지만 해도 들어본 적이 있는 듣기 싫은 묵직한 저음.
그러면서 무심코 힐끔 옆의 손바닥을 바라본다. 그 자의 손은 마치 무언가 폭발물이라도 만진 것처럼 손이 말 그대로 너덜너덜한 상태로 되어있다.

"방금 그 폭발을 이 한 손으로 다 막아내느라 죽을 뻔 했다. 호시탐탐 계속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내 클랜원들까지 건드리다니, 용서 못해. 하지만, 지금은 마스터한테 맡기겠어."

그 말과 동시에 그의 목이 더 세차게 조이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전부 짜내는 듯이 목에 핏줄까지 돋아난다. 이미 지난은 그의 앞까지 다가와 소름 끼칠 정도의 농축된 마력을 손에 모은 상태이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상황에서도 모든 상황을 이해한 경비 부문장은 마지막 발버둥이라는 듯이 팔꿈치로 뒤의 남자를 연속으로 힘껏 때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조임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젠장! 이거 놔!!! 이 쓰레기가!!!!! 아아!!! 그때 제대로 확인해서 네 놈을 확실하게 죽였어야 했는데!!!!!!"
"-크윽, 빨리 마스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자 추악한 모습을 보이며 거세게 저항하는 남자. 그런 그의 파워에는 뒤에 서있는 자도 놀란 듯 지난을 재촉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지난의 주먹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야 한 명, 잡았군. 잘했다, 프리먼."
"....."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뒤의 프리먼이 살짝 미소를 지은 것으로 보였다.
여하튼 아까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폭발음과 동시에 경비 부문장의 몸이 앞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동시에, 프리먼 또한 그 즉시 기절해버린다. 가지고 있던 부상 정도가 심했던 것일까.

"프리먼.... 이 정도의 부상을 입고 있었으면서도 아까까지 움직인 거냐. 이 녀석의 뒤에서 시체처럼 일어났을 때만 해도 놀랐었다고."

홀로 중얼거리면서도 품 속에서 꺼낸 포션을 기절한 프리먼의 곁에 둔다. 더불어 방어 마법도 그의 주변 공간에 전개시켜둔다. 아무리 그라도 두 사람을 옮기는 것은 힘드므로 알아서 나오라는 말이다.

이제 그가 해야할 일은 쓰러져 있는 범죄자를 밖으로 이송해야 하는 일이다. 현재의 그는 밧줄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직접 그를 옮겨야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지만, 나중에 흑월 조직원들을 놓쳤을 때의 증언을 받아야 할 수도 있으니 생각할 수 있는 뇌와 말할 수 있는 입 정도는 무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곧바로 옮겨보도록 할까."

몇 번이나 던질까 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구석으로 몰아넣으며 그에게 가까이 간 그 순간-


"<-- -->."


"어?"

순식간에 그 두 사람이 사라지고, 자신만이 혼자 서있게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배경은 아까와 같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빛을 밝혀주는 푸른 횃불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지만 방금 전과 다르게 눈앞의 두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잠깐, 이 횃불이 원래 이렇게 파랬었나?

"...이거는 무슨 상황이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혼란에 빠져버린 지난은 이 사태의 원인을 신속히 알아내기 위해 여러 곳을 탐색해본다.

배경은 아까와 달라진 점이 없지만, 분명히 아까와는 조금 다른 기색이 섞여있는 것이 지금 그가 서있는 장소에서 계속 느껴졌다. 즉 이곳은 마법으로 인해 격리된 공간인가.

물론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 격리된 공간에서 시간을 낭비한다면,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자의 계획을 그냥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그도 이러한 점은 상기하고 있어 간신히 다 잡은 범죄자를 놓쳤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분노를 담아두고 있는 중이다.

"후우.... 이 <격리 공간>을 썼다는 말은 누군가가 나와 같이 이 공간에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 녀석을 찾아서 쓰러트리면 되겠군."

<격리 공간>의 마법이 끊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만, 이 상황에서 가능할 법한 방법은 그리 다양하지가 않다.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1. <격리 공간>을 사용한 시전자의 의식이 끊어졌을 때.
2. 시전자의 의지로 마법의 유지를 포기할 때.
3. 시전자의 마력이 끊어져 마법의 유지가 불가능할 때.

대략 이 정도로 나눠질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찾아 실행해야만 한다. 프리먼이 뚫린 이상, 그 기사 단장조차 뚫리지 않는다는 법은 없을 테니까.

지난은 곧바로 마력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의 강한 마력의 밀도를 감각적으로 확인하고 사뭇 놀란다.

"이 마력의 농도.... 상당히 높아. 이 마력의 양만 보더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군. 평범한 사람이라면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굶어 죽일 수 있을 만해."

심상치 않은 시전자의 실력에 놀라면서도 그는 더욱 심도 깊이 그 자의 마력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이틀 전의 실력이 부족한 암살자들과는 달리, 이번의 상대는 절대 쉽지 않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의 사실을 알아챘다.

"이 마력, 지금 보니까 맨 꼭대기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직접 자신과 붙어 한 번 결판을 내보자는 소리인가. 이 얼마나 무모한 자신감인가.
현재 그의 기분은 여러모로 최악. 절대로 기분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기분과는 반비례하게 몸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격노로 인해 더 전투력이 상승했을까. 요새 평화적인 분위기로 인해 거의 쓰지 않았던 근육을 최근들어 자주 써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더 몸상태가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이 정도의 상대라면 방심을 하지 않는 이상 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아주 큰 착각을 했다. 내 전투력을 얕봤다는 거지.)

아마 상대방은 자신과의 1대 1 승부로 확실하게 처리를 하려는 듯하지만, 그 방법에는 한 가지 거대한 결점이 있었다. 바로 상대방보다 더 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이 작전의 실패는 확정적인 것이다.

"좋아, 올라가주지. 오랜만에 내가 '도전자'로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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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1-06 00:15 | 조회 : 708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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