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재회 (完)

"-뭐.... 흑월의 지배라고?"
"그래, 이미 예전부터 이 <유메니티>에도 정보부를 하나 둘까 생각 중이었으니까. 마침 네가 이 나라의 상층부와 커넥션이 있으니 나로서도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편하고 말이야. 그리고 이번 문제도 잘 해결할 수 있을 테고."

지난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한다.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했지만, 눈앞의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다시 고민하는 지난.

(...하지만 저 녀석의 능력과는 별개로 이건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의 제안을 가볍게 받아들이기에는 이 사건의 스케일이 너무 거대했다.

이미 <유메니티>의 왕을 포함한 상층부들은 몇 년 동안 실체조차 보이지 않았던 흑월의 꼬리를 발견했다는 말에 벌써부터 군까지 움직이려고 한다. 즉, 은폐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

그런 높으신 분들의 사정을 모르면서 무작정 지난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아닐 터, 그라면 분명 이미 모든 상황의 흐름을 파악하고도 충분하다. 그런데 도대체 이 자는 무슨 속셈으로 이런 제안을 거는 것일까.

(-한 번 떠봐야겠는데, 이거.)

워낙에 눈앞의 남자는 항상 묘수를 두어 그 누구도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모르도록 감추기에 그 속내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라면 오직 그 분뿐일 정도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건지 의문이 드는데. 분명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면 라이 님께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냐?"
"...무슨 말이지?"
"애초에 지금 이 기회에 흑월을 무너트리기만 하면 네 제안을 따르지 않아도 위기는 극복할 수 있어. 이미 군은 어느 때에도 돌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고, 경비대에서도 즉시 전력을 준비하도록 획책했다."

번쩍! 다시 한 번 밝게 초록 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그러므로 이번 발언은 진실이다.

"아무래도 사실인가 보지...?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또한 우리 모험가 길드에서도 여러 클랜을 통해 비밀리에 의뢰를 발령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했으니 곧 실력있는 여러 강자들이 이번 작전에 동원될 거라고 할 수 있다고. 오늘 저녁, 흑월은 끝난다."
"-!!!!"

충격적인 발언에 바닥에 굴려놓은 암살자가 단단히 밧줄에도 묶여있음에도 불구하고 힘껏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는지 차가운 눈초리를 띄며 마치 쓰레기를 보는 표정을 짓는 두 사람.

"뭐냐, 지금 이 상황에. 이 녀석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잖냐."
"그것보다 아직도 있었네. 이제 돌아가도 됐는데, 감옥으로."

(너희들이 묶어놓고 여기에다가 방치해놨잖아! 게다가 아까부터 계속 의미모를 말만 하고,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거냐!)

내용이 바뀌면서 잠시 그의 존재 자체도 잊어버렸는지 두 사람은 드디어 다시 그의 존재를 인식한다. 재갈이 물려 있어서 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지만 그런 것쯤, 방금 전에 들었던 말도 안되는 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아아, 재갈이 물려있어서 시끄럽군. 최대한 정신을 짓눌려 놓았는데도 금방 회복한 건가. 역시 한 부문의 간부라서 그런지 정신력이 대단하군."
"...그것보다 지금 우리에게 뭘 말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 일단은 네가 물려놓은 저것 좀 빼보시지. 발음이 부정확하니 들리지가 않잖아."
"정보를 토해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선은 그렇게 하도록 하지."

길드 마스터의 말에 한숨을 쉬면서도 그림자는 묵묵히 그의 재갈을 빼냈다. 나중을 위해서라면 이런 것쯤은 해주자고 생각했으니까.

(''그 작전''을 위해서라면 이 녀석의 동의가 필요하니, 어쩔 수 없지.)

왜 그가 이리도 쉽게 자신의 요구 사항을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지난이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남자에게 집중하는 것이 좋다. 간단한 조사로는 얻을 수 없는 흑월의 내부에서의 정보를 잘만 하면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재갈을 빼내자마자, 암살자는 지금까지 쌓여왔던 말들을 모두 토해내듯 빠르게 불만을 토로한다.

"콜록콜록! 흐아.... 너희들, 흑월을 지배한다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거냐! 그 분의 지혜는 그 누구보다도 총명하시고, 여러 강자들을 상대로 살아남으신 엄청난 분이시다! 나같은 거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라고!"
"...시끄럽군. 다시 물려놓을까?"
"-히익!"

기껏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더니 도로 다시 재갈을 물려놓으려는 검은 그림자. 재빨리 지난은 그의 행동을 막는다.

"아니, 됐어. 그나저나 너, 흑월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우리는 이미 흑월이 너희 범죄자들의 하나의 회의 장소라는 것은 알아냈지만, 그 외의 정보는 알기 힘들어가지고 말이야."
"하, 내가 그 말에 응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어차피 저 도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진실과 거짓조차 파악할 수 없는 불량품이라고."
"-!"

그 말에 잠시 울컥한 지난이었지만, 사실 그의 말은 이 도구의 약점을 정확하게 찌르는 발언이었다.

이 암살자의 말대로 [진실과 거짓의 수정구슬]은 어디까지나 말의 진실과 거짓만을 구별지을 수 있는 마도구였다. 즉, 반대로 말하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거나 진실과 거짓으로 나눠질 수 없는 질문은 가려낼 수가 없다는 말이라는 뜻이다.

아직 경험이 많이 쌓이지 않은 카프 일행에게는 이 도구가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어느 정도의 경력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는 통하지가 않았다. 이래봬도 이 자는 자신들이 아니면 상대하기가 곤란한 암살 부문의 어엿한 간부였으니까.

"저 녀석 말이 맞다. 만약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싶었으면 따로 빼낸 후에 했었어야지. 몇백 년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군, 지난."
"...쳇."
"...?"

암살자가 그들의 대화에 물음표를 띄우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어쨌든 다시 이야기를 본제로 돌리자면, 그런 이유로 내 제안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말이군?"
"아니, 그런 거라기보다는.... 굳이 너의 제안이 필요한가, 라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있어서 말이지."
"여전히 생각이 무르구만, 지난. 그런 관점에서만 보면 안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하게 만드는 거냐? 잠깐 그 약도 좀 줘봐라."

곧바로 그가 약도를 주자 책상 위로 펴보면서 주변의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록 말단이라고 할 지라도 그의 부하인 이상 실수는 용납되지 않을 테니까.

(사소한 길의 장애물들과 비밀 루트로 추정되는 모든 곳이 다 적혀있어.... 혹시 이 녀석의 부하들도 다른 나라의 정보부 이상의 정확성을 가졌다는 그 소문이 사실인 건가? 그나저나 엄청나게 많이 빠져나갈 길을 준비해두었구만.... 다 막아내야겠어.)

"자, 봐라. 예를 들어 네가 이쪽의 비밀 루트를 막지 못해 조직원들을 몇 명 놓쳤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될 것 같지?"

그가 조직 주위의 통로 중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가 이 약도를 본 이상 그들을 놓치게 될 일은 없겠지만, 분명 그러한 관점에서의 질문이 아닐 것은 명확하다.

"음.... 우선은 모두 도망가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전력뿐이라면 몰라도 내가 있는 이상, 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가진 것을 다 가지고 어디로 도망가지 않겠어?"
"물론 그런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로 뭉쳐져 있던 흑월이라는 성가신 전력이 여러 개의 조직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이 더 복잡해지지 않겠어?"
"-!"

그러면서 그는 여러 군데의 건물들을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원 모양을 만든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전부 약도에 적혀있는 흑월의 기지 주변에 있는 것이었다.

"여기와 저기, 그리고 이런 부분에도 다시 세우기가 좋겠군. 만약 이번에 일망타진을 하지 못하면 분명히 이런 곳에서 새로 결성될 거다. 이 뒷골목은 워낙에 환경이 좋으니까."
"이 넓은 슬럼가를, 어떻게든 하라는 말이냐...."
"어느 도시라도 치안이 안 좋은 빈틈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지. 특히나 보안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는 이 <유메니티>는 몸을 숨기는 자들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거든. 안 그러냐, 흑월(黑月)?"
"으읏-!"

그의 눈빛이 바닥에 누워있는 흑월의 조직원을 꿰뚫는다. 짙은 살기의 흐름에 더해 여러 가지 트라우마가 정신적 압박을 그를 괴롭게 만든다. 그러고는 [진실과 거짓의 수정구슬]을 그의 눈앞에 보여주더니, 진위 여부가 갈리는 대답을 스스로 시도한다.

"지금, 너. <도청> 마법을 써서 저쪽 편에 연결하려고 하는 건가 본데, 그런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딱히 지금 당장 네놈을 살려둘 필요는 없으니 그런 낌새조차 보이면 바로 이 세상에서 없애버릴 거니까."
"...하긴, 우리로서도 흑월의 간부를 잡았다는 대대적인 실적이 필요한 것뿐이지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겠지. 다만 우리 길드원들을 건드린 것에 대해서는 조금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니까 말이야.... 조금 힘조절은 해야겠어."

두 사람의 말에 수정구슬에서 초록색의 빛이 아주 격하게 번쩍거렸다. 그 여파는 얕게 이 방을 비추어주던 전과는 다르게 아예 작은 태양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이 방의 시야를 빛으로 덮어버렸었다.

"어이, 아무리 내가 마법으로 약간 강도를 올렸다고 해도 이정도는 너무 강한 거 아니냐? 도대체 이 녀석한테 얼마나 원한이 깊었던 거냐, 너는?"
"...시끄러워. 이딴 거에 마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 빛 때문에 기절했잖냐."
"지금 이건 네 진한 살기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린 거다. 정말, 쓸데없이 그런 건 굉장하단 말이야."

지난의 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다시 바닥에 자빠져버린 남자를 보고 그는 잠깐동안 짧게 무언가를 읇조리더니, 더이상 그에게서 흥미를 잃은 듯,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하아, 그나저나 이 정도에 기절해버리다니, 지금의 이 녀석을 데려가봤자 내 예상보다 큰 이득을 가져오진 않을 것 같군. 이건 그냥 너 주마."
"...뭐? 그러면 아까 전에 협상을 하자는 말은 뭐였던 거냐? 그리고 네가 말한 흑월의 지배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아, 방금 말했다시피 아직 그 협상은 유효하다. 다만, 그 협상 조건이라는 것이 달라질 뿐이지. 곧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다."
"기다려! 갑자기 왜-"

지난이 말을 끝마칠 틈도 없이 그는 기절해버린 범죄자를 놔두고는 어딘가로 <전이>하여 사라져버렸다. 사실 이 정도의 시간을 지난에게 빌려준 것만 해도 그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었지만-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야, 너는...."

-그 특유의 묘수로 인해 생기는 주변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가게 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

{어어, 지금 바로 <모험가 길드>에서 <전이>해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로 갑자기 <전언>을 걸은 거냐, 로딘.}
{아, 예! 방금 제가 드린 그 내용은 괜찮았던 건가요?}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고 나한테 <전언>을 걸은 거냐? 몇몇 건물의 창문 위치와 개수가 완전히 다르더군. 게다가 미묘하게 옆으로 어긋난 약도의 그림이 약간 거슬렸다. 종합적으로, 24점.}

하나하나 로딘의 사소한 실수까지도 짚고 넘어가는 상사에 말단인 로딘으로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특유의 무결점은 부하뿐만이 아닌 자신과 동급인 수호자들에게도 정평이 나있을 정도였으니까.

{히잉, 저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말이죠. 그럼 그 분께는 어떤 것을...?}
{그래서 내가 지난한테 준 것은 내가 여기 <유먼>의 슬럼가를 몇 시간만에 모두 조사한 결과물로 줬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제대로 일 못하냐, 로딘!}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항상 처음은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결국 마무리는 항상 사죄로 끝나는 로딘. 하지만 이번의 그의 상사는 그 부분에 대해 관심이 식은 모양이었다.

{됐고, 방금 전 나한테 한 이야기, 모두 사실인 거겠지.}
{다, 당연하죠! 제가 직접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확실합니다! 그 자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성격이라고요!}
{뭐, 너의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지난한테 협조를 요청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만약이라는 변수 상황이 있는 한은 여지를 남겨둬야겠지. 그러니까 그 방법이 실패하더라도 여러 가지 변수에 대처할 수 있을 것들을 준비해놓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또 자신감 넘치는, 그래도 주어진 상사의 명령에는 충실히 따르는 막내가 진지하게 그의 명령을 받았다. 그 태도에 만족한 그림자는 곧 <전언>을 끊어버린다.

"흑월.... 하필이면 <단지로우스>의 내부 사정에 손을 대고 있었다니.... 이건 <단지로우스>의 수호자로서 두고볼 수만은 없다."


★★★


"또 어딜 간 거냐, 이 제멋대로인 녀석은...."

중년의 남성은 오지 않는 한 남성에 대해 지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의 냉정한 그답지 않게 매우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 옆의 부하들에게도 보일 정도였다.

"이미 그 녀석의 마지막 <전언> 이후로 몇 시간이나 지났으니 잡혀버린 것은 확정적이겠고, 제기랄.... 다시 일이 잘 풀리나 했더니, 이번에는 사신까지도 말썽인 건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그가 품 속의 단검을 잡으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중이면, 옆의 간부가 직접 물어오기 시작한다.

얼마나 눈치 없는 거냐고 무심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적어도 부하들에게서만은 신뢰를 잃으면 안된다. 어디까지나 흑월의 한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부문장으로서는 모두를 경계해야 했지만, 같은 암살 부문의 보스로서는 그들과 같은 동료이기도 했으니까.

"그 제멋대로인 녀석 말이다. 이미 지금쯤이면 벌써 회의장에 들어갔을 시간인데 잠깐 어디를 다녀온다고 말한 후에 아직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군."
"아아, 그 썩을 놈의 자식말입니까."

암살 부문장의 간결한 설명에 단번에 그가 누군지 알아버리는 간부. 그들에게 있어서는 사신이라는 칭호보다는 썩을 녀석, 제멋대로인 녀석이라는 칭호가 더 가까웠다.

(그 녀석의 성격을 보면 왜 그런지 당장 이해가 가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같은 직종의 자들한테까지 그런 취급을 받는 특이한 녀석이기도 하지.)

이 뒷골목에서는 그야말로 무력과 세력, 그리고 돈을 가장 많이 거머쥐는 자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사신은 그 능력과 위상에 비해 주변에서의 대접이 너무나도 거칠었다. 심지어 그를 유혹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조차 암살 부문장이 보지 못했을 정도다.

(이제 남은 간부는 이 녀석뿐인가....)

자신을 제외한 그의 암살 부문을 책임지던 간부(or 그에 마땅한 팀) 중에서 벌써 NO.2와 NO.3의 실적을 지닌 카프 일행이 모두 잡혀버렸다. 남은 간부는 NO.4인 마지막 간부.

"포어, 너밖에 안 남았군. 나한테 남은 간부가 말이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다른 간부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오직 잡히기만 하는군요. 하지만 저 포어만은, 계속 옆에서 부문장 님을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한창 우울할 때 제일 약한 간부만이 남다니, 정말로 이번에 자신이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다시 한층 커져버린다.
그리고 그때, 저 통로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이리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비록 속으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암살 부문장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유일한 사내.

"...미안하군. 잠시 일이 생겼던지라."
"아니, 괜ㅊ-"
"야!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부문장 님을 기다리게 하다니, 정신이 나갔구나?! 안그래도 지금 부문장 님의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 당장 사과드려!"

암살 부문장이 개의치 않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지만, 또 옆에서 눈치없는 부하가 나대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서는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다.

"됐다, 포어. 우선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곧바로 회의장에 들어가도록 하자. 더 이상의 시간을 끌었다가는 나중의 우리에게 불리해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부문장들 따위 당신과 비교하면-"

팟, 하고 아무런 징조도 없이 포어가 말을 제지당했다. 사실상 암살 부문장도 알 수 없는 마법들 중에 하나를 사신이 사용한 것이 틀림없다.

"포어라고 했나. 지금 여기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러 시선들이 이곳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섣부른 발언은 그만두는 것이 좋을 텐데."
"-!!?!!???!"

알 수가 없는 그의 마법에 놀라긴 하지만, 확실히 그의 발언을 듣고 주위를 살펴보니 여러 가지의 감정이 섞인 눈초리들이 이곳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누군가의 시선은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되니까.

"됐네, 이제 됐어! 사신, 너도 그만해라. 이 녀석도 그 정도의 진한 살기를 담으면서 말했으니 충분히 깨달았을 테니까. 그리고 포어 너도 여기에서의 무례한 발언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알아둬라."
"-흐으, 흐으.... 아, 알겠습니다, 부문장 님."
"그러면 곧장 가보도록 할까. 안내해라."

암살 부문장의 말에 사신이 포어에게 걸었던 마법을 풀면 곧장 포어는 무릎을 꿇는다.
곧바로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어가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장 홀로 앞으로 먼저 나아가는 최고위 암살자.

"저 녀석.... 포어, 우선은 우리도 빨리 가도록 하지.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회의에 늦어버릴 테니까."
"콜록, 예.... 그러도록 하죠...."

포어 또한 거의 상태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는지 다시 바닥에 손을 짚으며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눈앞의 사신에 대해 살기를 품으며 스스로에게 맹세한다.

(-저 자식! 내 언젠가 죽여버리겠어!)

......

터벅터벅, 좁고 기다란 암흑과도 같은 복도를 세 명의 그림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려고하는 목적지는 복도의 끝부분인 빛이 나오는 곳, 그러나 그 빛 또한 주위의 암흑만큼이나 불길한 구석을 담고 있었다.

복도를 빠져나온 중년의 남성은 그의 앞에 있는 자리가 빈 의자로 걸어나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그 검은색 의자에 착석했다. 뒤의 두 명은 익숙한 듯 나란히 그의 뒤에 간격을 벌려 서있는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군."

마지막으로 그가 의자에 앉고난 후에는 모든 의자에 착석이 완료된 상태였으며, 이제 의자에 착석한 자들은 총 6명의 남녀였다. 그리고 그가 앉자마자 미리 착석하고 있었던 5명의 남녀가 자연스레 남성에게 적대심을 드러냈다.

(여전히 만만히 볼 수 있는 자들이 아니군.)

이들은 서로를 도와주는 동료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서로를 경계하면서 언제든 약점이 보인다면 약해진 사냥감을 물어뜯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태를 거치면서 이제는 중년의 남성에게 적대심을 표출한 것이리라.

더욱더 불편해진 분위기 속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그럼, 모두 모였으니 다시 한 번 우리 흑월(黑月)의 회의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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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31 20:48 | 조회 : 716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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